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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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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이시영은 1869년 11월 3일 서울 저동에서 부친 유승(裕承)과 모친 동래 정씨의 아들로 출생했다. 호는 성재(省齋). 1895년 관직에 나가 형조좌랑·홍문관관리·승정원부승지·국내부수석참의 등을 역임하였고, 1895년 관직을 물러나 10여 년간 정치학·법학 등 근대학문을 공부했다. 1905년 외부교섭국장으로 임명되었으나, 을사늑약 이후 물러났다. 1908년 한성재판소장·법부민사국장·고등법원판사 등을 역임하는 한편 안창호 등과 국권회복을 위한 신민회(新民會)를 조직했다. 1910년 경술국치로 국권이 상실되자 가산을 정리하여 서간도로 망명했다. 1911년 신흥강습소의 설립을 주도했고, 1912년 신흥강습소를 신흥문관학교로 ...

2025-10-08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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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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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단군전

이남성은 1918년 황해도 개성에서 출생했다. 고향에서 상업에 종사하다가 해방 후 남하하여 서울에서 숙부에게 사상의학을 배웠고,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대전으로 이사하여 한약상을 경영하였다. 그는 대전에 살면서 도덕기초회의 신자가 되었고, 단군에 관심이 깊어진 그는 다시 대종교에 입교하여 단군을 신앙하다가 1955년 대전시 부사동에 전각을 세우고 천단을 만들어 대종교충남도본사라는 간판을 걸었으나, 내용적으로는 자신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한 독자적인 종교활동을 하였다. <참고문헌> 『한국신흥종교총감』(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10-08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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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원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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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원불교 정기간행물은 『월말통신』을 위시하여 『월보』, 『회보』로 이어졌으나 일제의 언론탄압정책과 경제의 핍박으로 인하여 1941년에 자진 정간했다. 이를 계승하여 1949년 7월에 『원광』이 창간되었으며 교화·교육·자선 등 각 방면에 걸친 원불교의 활동 상황과 종법사의 법설, 교리 연구논문 및 해외소식·신앙수기·시·수상·타종교 소개 등이 게재된다. 1969년 국가의 ‘간행물 일제 정리’ 방침에 따라 계간으로 등록하고 제63호(1969년 10월 20일)부터 국가의 공인을 받은 정기간행물로 발행되기 시작했다. 1984년 8월호부터 월간으로 전환했으며, 통권108호(1984년 9월 20일)부터 편집체제를 세로편집에서 가로편집 ...

2025-10-08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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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일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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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우일신회의 초기 이름.

2025-10-08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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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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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사(龍華社)를 창립한 김종용(金宗用, 1901-?, 호 槿下)은 1901년 10월 1일 전라남도 무안군 지도면 전증도에서 탄생했다. 1923년에 일제 경찰에 들어가 보천교를 사찰하는 임무를 맡아 일하다가 경찰 생활에 회의를 느껴 사표를 내고 1934년 보천교에 입도했다. 차경석은 그가 건의 하는 대로 많은 개혁을 단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1936년 차경석이 사망하고 보천교가 문을 닫게 되자 홀로 증산 강일순을 신앙하는 생활을 했다. 1945년 해방 후 대법사 조직에 참여했고, 1954년 총무직을 맡아 일했다. 대법사에서 나온 그는 1959년 용화동에서 용화대도(龍華大道)를 창설하게 되었다. 100간부조직에 착수하여 ...

2025-10-08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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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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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천도교

용담성지에는 최제우가 도를 깨치고 포교활동을 시작한 용담정과 천도교인들의 수도장인 용담수도원이 자리 잡고 있다. 용담성지 앞산이 구미산(龜尾山)이며, 그 계곡에 용담정(龍潭亭)이라는 정자가 있다. 용담정(龍潭亭)은 도학으로 이름 높았던 최제우의 아버지 최옥이 나이 60이 넘도록 자식이 없어 은거하여 세월을 보냈던 곳이다. 최제우는 장년이 되어 제세안민(濟世安民)의 도(道)를 찾고자 10여 년간 전국을 순회하다가 가산만 탕진하고 뜻을 이루지 못하자, 착잡한 심경으로 다시 용담정으로 돌아와 각도에 전념하였다. 최제우는 이곳에서 1860년 4월 5일 한울님으로부터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이라는 무극대도(無極大道)를 받아 동 ...

2025-10-08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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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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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업신은 그 집안으로 업이 들어왔다고 믿는 집에서만 모셨기 때문에 집안에서 업신이 나가면 가운(家運)이 쇠퇴한다고 믿었다. 업신은 터주를 모시는 뒤뜰에 같이 모셨는데, 모시는 종류에 따라 족제비업, 긴업[구렁이], 두꺼비업 등으로 불렀다. 업둥이에서 ‘업’도 가신의 업신과 같은 업으로, 업둥이란 복을 가져오는 아이란 뜻이다. 따라서 과거 자신의 집 앞에 버려진 아이는 업둥이라고 해서 거두어 길러야 그 집안에 복이 들어온다고 믿었다. 업신은 신체(神體)를 별도로 만들어 모시기도 했고, 집안의 지붕이나 주춧돌 등에 깃들어 있다고 여기기도 했다.

2025-10-07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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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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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도

심인경(心印經)은 안두승(安斗承, 1906-1985)이 창립한 자아도(自我道)의 경전으로 『자아도안씨비방요결(自我道安氏秘方要訣)』이라는 책속에 포함되어 있는 짧은 글이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시존왈천 최령왈인 상약삼품 신여기청 황황홀홀 사사명명 존무수유 경각이성 회풍혼합 백일공령 흑조상제 일기비승 지자역오 매자난행 이천천광 호흡맹정 출입현빈 약존약망 면면부절 고대심근 인각유정 정합기신 신합기기 기합기진 부득기진 개시강명 신능입석 신능비형 입수불익 입화불분 신의형생 정의기령 부조부잔 송백청청 삼품일리 묘불가청 기취즉유 기산즉영 칠규상통 구규광명 성일성월 조요금정 일득영득 자연신경 태화충일 골장근경 득단즉령 부득즉경 단 ...

2025-10-07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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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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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도

광명도의 창립자 정요순은 잃어버린 민족정신을 회복하고 정치의 좌우세력을 합일시키며, 종교와 종파를 귀일시키고, 나아가 인류의 삼대 불행인 전쟁, 질고(疾苦), 기한(飢寒)을 없애기 위해 ‘인류광명화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이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출판부를 설치하여 많은 책을 출판하게 되는데 『신지』는 『인류독본』 등과 함께 이때 출판된 문헌으로 보인다. 주된 내용은 인류광명화운동을 강조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참고문헌> 「정요순의 광명도」(김홍철, 『圓光』, 원광사, 1990)

2025-10-06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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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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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동학은 경상도가 발상지이나 충청도로 전파되면서 그 세력이 급속히 전국 각지로 전파되었다. 손천민이 활약한 청주목은 충청도 동학 중심지의 하나로서, 그는 청주목의 이방을 지냈고, 손병희, 서인주와 더불어 청주목의 핵심 지도자로 활약하였다. 손천민은 ‘동학은 보국안민하는 큰 도’라고 하여 손병희를 입도시켰다.(1882년) 손병희는 그의 서조카(庶姪)이다. 1883년 손병희 서인주 등과 함께 동학 2대 교주 최시형(崔時亨)을 찾아가 수도와 문답을 하며 동학을 포교하였다. 1893년 서울에 올라가 복합상소(伏閤上疏)를 하여 교조신원(敎祖伸寃)을 요구할 때, 상소문을 지었고, 서병학(徐丙鶴)의 무력사용을 저지하였다. 1894년 ...

2025-10-01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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