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대한통불교우암정사
본 종은 1976년 이혜봉(李惠鳳)의 주도로 충주시 우암정사(遇庵精舍)에서 창종되었다. 산중불교에서 벗어나 도심 속으로 들어가 불교를 생활화하고 과학 기술의 발달과 서양문물의 전래로 인간정신의 타락과 부도덕한 사회에서 부처의 교법을 통해 중생을 구제한다는 목적으로 출발하였다. 창종자 이혜봉은 1928년 2월 7일 황해도 평산 출신으로서 평양사범대 및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였으며 법주사 강원 대교과를 졸업하였고 단양의 옥련암 제천의 원각사 충주 대원사에서 주석하다가 1976년 충주에 우암정사를 건립하였다. 1985년 7월 조사 당시 우암정사는 500여 평의 대지위에 대웅전 및 부속건물 2동 7m규모의 석불을 봉안한 ...
2025-07-07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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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용화종
서백일(徐白一)이 창립한 용화교(龍華敎)의 현재이름.
2025-07-0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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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법사종
1994년 11월 11일 창종된 본종은 법사 종단이다. 본종은 미래불교의 선포는 재가불자들의 활동 여하에 달려있다는 진단하에 출가승들에 비해 일선생활현장에 깊숙이 침투하여 불교를 포교할 수 있는 법사들이 중심이 되어 호국불교 생활불교 현대불교의 3위일체를 갖추고 한국불교 및 세계불교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창종되었다. 『유마경』 『승만경』 『묘법연화경』 『금강경』을 소의경전으로 하고 기타 경전연구 및 지송은 제한하지 않는다. 1994년 11월 11일 창종 선포식 이래 1994년 11월 22일 제19차 세계불교도우회 한국대표단으로 참석하였으며 1995년 3월 11일에는 일본 고베지진 피해 재일동포를 위문하고 위문품을 전 ...
2025-07-07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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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진학원
대순진리회
대순진리회의 3대 중요사업 중 하나인 교육사업과 해원상생의 원리에 입각한 인재를 양성한다는 취지하에 1984년 2월 6일에 설립된 학교법인. 현재 대진고등학교 대진여자고등학교 대진디자인고등학교 대진대학을 설립 운영하고 있음.
2025-07-05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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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지침
대순진리회
『대순지침』은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신앙체계의 정립’에서는 종통 연운 종지 신조 목적 포덕·교화 등의 지침내용이 담겨져 있다. 2장 ‘수도·공부’는 바른수도생활과 신조에 의한 수도생활에 대한 지침의 내용이다. 3장 ‘조직기구’는 종단기구의 책무 종단체계의 확립 체계질서의 확립을 위한 지침이다. 4장 ‘처사의 모본’은 신앙생활에서의 모본 임원과 도인의 관계 조직체계의 관리에 대한 치침이다. 마지막 5장 ‘종단의 사업’은 종단사업의 추진방향에 대한 지침으로 구성되어 있다.
2025-07-03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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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학문
지상천궁대덕지교
지상천궁대덕지교 의례는 주문공부로 이루어지며 치성주를 비롯한 26개의 주문이 사용되고 있다. 『대성학문』에는 “한울아버님 ․ 땅어머님 ․ 광명미륵님 ․ 직선조 ․ 하감지위 천선조 ․ 처외선조 ․ 사시토왕 ․ 사해용왕 ․ 오악산왕 ․ 칠성여래 ․ 일광보살 ․ 지장보살 ․ 문수보살 ․ 인류왕보살 응감지위 천지대부모님 명령으로 자손들의 소원성취 시켜 주소서.”라는 치성주문이 담겨져 있다.
2025-07-03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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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교회
조형하(趙衡夏)가 유교진흥의 목적으로 1923년 11월 본회 창립총회를 열어 창립된 유교계 신종교.
2025-07-03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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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역
대종교
『정역(正易)』에 대한 해석서.
2025-07-02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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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산목
당산나무는 그 자체로 신목(神木)으로서 제당(祭堂) 역할을 하며 동시에 회의 공간 휴식공간으로도 기능한다. 마을을 수호하는 신격은 이외에도 산신각 장승 솟대 등이 있다. 당산목은 솟대(짐대)와 같이 있는 경우가 많다. 당산나무는 주로 느티나무나 팽나무 떡갈나무 등 장수목(長壽木)이며 은행은 열매 냄새 때문에 수호목으로 삼는 경우는 드물다. 이외에 감나무나 모과나무 살구나무 앵두나무 등도 드물게 여겨진다. 마을 입향조(入鄕祖)가 심은 수백 년 된 나무를 당산나무로 모시는 경우가 많다. 당산제 등의 마을굿의 치제 대상이며 개인적으로 길흉사를 점치거나 치성을 드리기도 한다.
2025-07-02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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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릉
단군릉에 대한 기록은 조선 성종대의 기록 등에서 이미 그 기록이 나타나고 있다. 다만 이 당시는 ‘청컨대 백성의 원하는 바에 따라 평양의 단군묘(檀君廟)의 예(例)에 의하여 해마다 봄·가을로 향(香)과 축문(祝文)을 내려 제사를 행하소서’라고 하는 등 단군묘로 표현되었다. 단군묘가 단군릉으로 표현된 것은 고종 37년(1900) 이후로 보인다. 당시 의관(議官) 백호섭(白虎燮)이 올린 상소에 ‘무릇 세 성인이 서로 이은 순서로 단군묘를 〖단궁릉(檀君陵)으로〗숭봉(崇奉)하는 것이 앞섰어야 하는데 아직까지 미처 겨를이 없었으니 어찌 숭보하는 거조(擧措)에 결함이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되어 있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단군 ...
2025-07-01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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