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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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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계

단군계 신종교 가운데 단군교종무청, 단군조선종천교, 삼신교, 천상환인미륵대도 등에서는 『천부경(天符經)』을 조화경(造化經)·『삼일신고(三一神誥)』를 교화경, 『참전계경(參佺戒經)』 혹은 『팔리훈(八理訓)』을 치화경(治化經)이라고 부르며, 그 의미에 대해서는 교단별로 각각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특히 이들 교단에서는 조화경을 한인(桓因), 교화경을 한웅(桓雄), 치화경을 단군(檀君)에 연결시켜 해석하기도 한다. <참고문헌>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7)

2025-10-11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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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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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도

천성도에서는 치성을 드리는 단을 설치하여 제사를 드리는데 이를 치성단이라 한다. 치성단에는 신단(神壇)이나 도단(道壇) 등이 있다. 또한 치성단에는 도장(道章)을 붙이는데, 그 중 도단에 붙이는 도장의 내용을 보면, ‘천성도’의 세 글자가 중앙에 있고, 그 좌우에는 태양진군(太陽眞君)과 태음진군(太陰眞君)이 있으며, 그 상하에는 충(忠)과 효(孝), 좌우에는 덕(德)과 화(和)가 쓰여 있다. 또한 네 모서리 구석에는 심외무신(心外無神), 신외무심(神外無心), 도외무성(道外無誠), 성외무도(誠外無道)가 쓰여 있다. 이러한 도장의 의미는, 천성도의 천성이 곧 도(道)이며, 도의 근원이 바로 태양진군인 햇님과 태음진군인 달님 ...

2025-10-11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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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운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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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한국사상연구회는 수운탄생 150주년을 맞이하여 『한국사상』 제12호를 기념논집으로 발간했다. 논집 표제는 “최수운 연구”로 하였고 발간사는 박종홍이 썼으며, 필진으로는 철학, 역사, 심리학, 종교학 등 다양한 전공분야의 학자들로 구성하였다. 내용은 전부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 최수운 연구, 2부 동학사상의 전개, 3부 천도교의 발전과정, 4부 자료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신일철은 「최수운의 역사의식」이란 글로 수운의 시운관(時運觀)과 개벽의 이상사회를 논하였고, 김경재는 「최수운의 신(神) 개념」을 논제로 하여 반대일치론(反對一致論)과 범재신론(汎在神論)을 탐색하였다. 또한 김광일은 「최수운의 종교체험 ...

2025-10-11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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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수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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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층신앙, 동학 천도교

오래 전부터 민간에서 행하던 신앙의 한 형태이다. 맑고 깨끗한 물을 그릇에 담아 장독대 등에 모셔두고 기원을 비는 민간신앙의 의례 중 하나이다. 이러한 물을 정화수(井華水)라고도 부른다. 동학 천도교를 비롯한 증산계통의 여러 교단, 그리고 수운교 등에서 초기부터 ‘청수(淸水)’라는 이름으로 모든 신앙의 의식에 봉헌되었다 초기 동학에서부터 행해지던 청수봉전은 해월(海月)대에 이르러, 모든 제례에서 제물을 차리는 대신에 오직 청수일기(淸水一器) 만을 모시는 제례로 바뀌게 되면서 더욱 중요한 종교적 의미를 띠게 되었다. 특히, 1875년 설법제(說法祭)를 행하는 자리에서 해월 신사가 강화(降話)로써 “앞으로는 청수일기만으로 ...

2025-10-11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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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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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운교

일제의 주목을 받아오던 수운교 간부 김찬호(金瓚鎬)는 1940년 5월에 일본경찰에 소환되어 심문을 받았고, 석방 후에도 그를 일반신도와 격리시킬 목적으로 수운교 금병산 도국에 거주할 수 없도록 퇴거령을 내리고 추방하였다. 김찬호는 고향인 강원도로 퇴거당해서도 가정천단을 모시고 수운교 신앙을 더욱 열성으로 믿었다. 또한 그는 수운교를 극비리에 포교하여 그가 기도 중에 받은 강서인 『명운경』을 설하며 널리 선전하였다. 아울러 일본이 1945년에는 틀림없이 패망한다고 선전하는 한편 강원도 삼일포에서 수운교의 의식으로 은밀히 기도를 봉행할 계획을 세웠다. 1941년 9월에 김찬호는 기도봉행에 대한 서신을 회람하다가 일본경찰에 ...

2025-10-10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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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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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천부경』은 대종교의 경전 체계에서 신전(神典) 또는 계시 경전에 해당한다. 그리고 신전 가운데 『삼일신고』가 교화경, 『참전계경』이 치화경에 해당한다면, 『천부경』은 조화경에 해당한다. 대종교에서 밝힌 ‘천부경의 내력’에 따르면, 『천부경』은 1917년경에 단군교당에 전해졌으므로 1909년 대종교의 중광 당시부터 공식 경전이 될 수는 없었다. 구체적으로, 1916년 9월 초에 계연수(桂延壽)라는 인물이 태백산 바위에 새겨진 『천부경』을 탁본(拓本)하였으나, 그 뜻을 알 수 없던 중 서울에 단군교(檀君敎)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 나섰지만 어긋나서 1917년 초가 되었다. 그 때 계연수는 길에서 서울로 돌아가는 사람에 ...

2025-10-10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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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중앙대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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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천도교중앙대교당은 1918년 4월 5일 천도교 부구(部區) 총회에서 새로운 교당을 짓기로 결의하여 이 해 12월 1일에 개기식(開基式)을 하였고, 1919년 7월에 착공하여 1921년 2월에 준공했다. 천도교 제3대 교주 손병희(孫秉熙)는 처음에 건평 400평 규모의 대교당을 계획하고 당국에 건축허가를 신청하였으나, 조선총독부는 교당이 지나치게 거창하다는 것과 중앙에 기둥이 없어 위험하다는 구실을 붙여 불허하였다. 천도교측은 절반으로 규모를 줄여 겨우 허가를 받아 1919년에 착공하였다. 천도교 중앙대교당은 천도교의 종교의식뿐만 아니라 각종 정치집회, 예술 공연 등의 일반 행사가 이루어졌던 곳으로 일제 강점기 민중의 광 ...

2025-10-10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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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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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생전에 피리나 젓대를 잘 불던 명성 높은 광대가 죽어서 창부신으로 추앙되어 일 년 열두 달의 횡수를 막아주는 수호신이다. ‘창부(倡夫)’는 무당의 남편이면서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이며, ‘창부대신(倡夫大神)’은 광대신(廣大神)을 가리키는 말로써 한마디로 풍류신이라 할 수 있다. 또 ‘화랭이’로 부르기도 하며, 무속악을 다스리는 신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2025-10-10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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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예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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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는 1917년 중국에서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라는 목표 아래 장영생, 위보라, 장바나바 등 세 사람에 의해 ‘진야소교회(眞耶蘇敎會)’라는 이름으로 창립되었다. 본교가 다른 교회와 다른 점은 첫째, 사람들에 의하여 왜곡되지 않은 사도교회의 정확한 재현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 둘째, 죄사함을 얻고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침례를 받아야 한다고 하는 점, 셋째, 예수를 믿는 자는 반드시 성령을 받아야 하고, 방언을 성령을 받은 확실한 증거로 믿는다는 점, 넷째, 예수와 관계를 갖게 하며, 사랑과 성결, 겸손, 봉사, 용서 등을 교훈하는 성례로서 세족례를 강조하는 점, 다섯째, 예수의 살과 피에 참여함으로써 주의 ...

2025-10-10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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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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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

‘집강’은 동학조직에만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조선왕조시대에 기율(紀律)을 담당하는 직책으로 존재하였다. 따라서 동학의 육임제도 중의 집강 역시 일반적인 제도를 좀 더 정교하게 발전시킨 것이다. 전봉준과 김개남은 남원에서 농민군대회를 열고 각 고을에 도소를 설치하고 농민군 중에서 집강을 두어 수령의 일을 행하도록 했다. 그래서 집강소를 전라도 각 군현에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집강소는 동학교단의 조직을 토대로 하여 성립되었다. 원래 동학의 교단조직으로 각 고을마다 설치한 접(接)의 수령인 접주(接主)를 집강(執綱)이라 한 것에서 연유하였다. 동학 농민군이 전라도 일대를 휩쓸어 마비가 된 상태에서 전주화약(全州和約)이 있고 ...

2025-10-09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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