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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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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범패는 불교의식에서 경문이나 게송에 곡조를 붙여서 노래하면서 부처의 공덕을 찬양하는 것을 말한다. 어산(魚山) 어범(魚梵) 어패(魚唄)라고도 하는데 중국 위나라 진사왕(陣思王) 조식(曹植)이 산동성 동아현(東阿縣) 서쪽에 위치한 어산(魚山)에서 처음 범패(梵唄)를 만들었다고 하여 유래된 명칭이다. 범패에 능통한 범패사(梵唄師)를 어장(魚丈)이라고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고승 진감국사(眞鑑國師)가 당나라에 유학하고 830년(興德王 5) 돌아와 지리산 옥천사(玉天寺 지금의 쌍계사)에서 범패를 가르친 것이 최초라고 한다. 고려시대에도 범패가 성행하였을 것이나 기록이 전하지 않고 조선시대에는 『산보범음집(刪 ...

2025-07-09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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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무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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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법수도교화원

삼법수도교화원(三法修道敎化院)을 창시한 배무생(裵戊生 1898-1961)은 1898년 4월 11일 경상남도 김해군 대동면 수안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젊어서부터 도에 뜻을 두고 여러 곳을 방황하며 스승을 찾다가 보천교(普天敎)에 입도하였으나 곧 탈퇴하고 말았다. 그 뒤 신병이 생겨 수년간을 고생하였는데 김봉남의 ‘물법치료’를 받고 회복하게 되자 그의 착실한 제자가 되어 밀양·양산·구포 등지에서 김봉남의 물법교를 포교하여 상당한 기반을 잡았다. 1950년 김봉남이 사망하자 1952년 경상남도 김해군 대동면 수안리 김해 김씨의 제각을 구입 여기서 봉남의 영정을 모시고 제각을 관리하였다. 그런데 제각소유권을 놓고 김옥재 집안과 ...

2025-07-08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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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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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총명 민첩하고 침착했던 박장식은 한문서당에서 천자문과 사서(四書)를 배웠으며, 틈틈이 일어를 공부했다. 경성법학전문학교(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전신)을 졸업하였으나 부친의 열반으로 일본 유학을 포기하고 귀향하여 한 때 인쇄업과 운수업을 경영했다. 1938년(원기23) 박중빈을 만나 제자가 되었으며, 바로 남원교당을 창설하여 초대 교도회장이 되었다. 1941년(원기26)에 전무출신했으며, 바로 ‘불법연구회 회규’ 정비, 『정전』 편수 업무를 주관했다. 이후 교단의 여러 가지 요직을 수행하였다. 유일학림 초대 학림장(1946), 원광중학교 초대 교장(1951), 원광고등학교 초대 교장(1953), 교정원장(1962) ...

2025-07-08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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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공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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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교인암파

증산교인암파(甑山敎仁菴派)를 창립한 박공우(朴公又 1876-1940)는 1876년 전주 교동에서 부친 박순문과 모친 오묘전의 아들로 태어났다. 키가 180cm가 넘었으며 풍체가 당당하고 음성이 웅장하고 힘이 장사여서 전라북도 정읍 · 고창 · 흥덕의 세 장을 주름잡고 다녔다. 3명의 부인과 혼인하여 5남 5녀를 두었다. 고창에서 야소교를 믿어 수십 명을 전도한 일이 있고 동학에 들어가 열성 있는 신도가 되었다. 그러던 그가 증산 강일순을 만나 그의 수제자중 한사람이 되고 증산의 천지공사에 적극 협력하였다. 증산이 사망하고 난후 기운을 내려 줄 것을 증산상제에게 기원하여 신력(神力)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191 ...

2025-07-08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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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향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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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산(香山) 또는 태백산(太白山 太佰山)이라고도 한다. 예로부터 동금강(東金剛)·남지리(南智異)·서구월(西九月)·북묘향(北妙香)이라 하여 우리나라 4대 명산의 하나로 꼽혔으며 신앙대상으로 숭배되었다. 또 일연(一然)은 《삼국유사》 ‘고조선조’에 “태백산을 지금은 묘향산이라고 부른다[卽太伯今妙香山].”고 주석함으로써 환웅이 3000명의 무리를 이끌고 내려왔다는 태백산을 묘향산으로 비정하였다. 고려중기 이후 묘향산이 단군신앙과 결부되어 민족 숭배의 대상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묘향산 향로봉의 남쪽 기슭에는 단군이 화생(化生)하였다는 단군굴이 있으며 그 주변에는 단군이 활쏘기 연습을 하였다는 단군대와 과녁으로 쓰였다는 천주대 ...

2025-07-08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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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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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국선도연맹

세계국선도연맹에서는 국선도의 도맥을 이은 최고지도자의 직위를 도종사라고 한다. 국선도 계열의 단체들은 스승이 제자에게 수련법을 계승하는 내림도법으로 선도가 이어져왔다고 보는데 도맥을 누가 이어받았는가에 대한 견해차에 따라 여러 갈래로 나누어진다. 세계국선도연맹에서는 9700여년 전 천기도인으로부터 무운도인 청운도인 청산도인을 거쳐서 현재의 도운선사 허경무에게 도맥이 이어진다고 본다. 1999년에 도운 허경무가 세계국선도연맹을 창설하여 도종사의 직위에 취임하였다.

2025-07-07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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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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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기 국내 최초의 단군신앙에 대해 대종교에서는 1904년 백두산을 중심으로 단군교를 포명한 백봉이라고 하였으나 일부에서는 1890년 평안남도 일대에서 단군신앙을 포교한 김염백의 신교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김염백의 신교가 이후 정통의 맥으로 이어지지는 못한 것으로 보이나 김염백의 신교에 입교한 사람 중에 한명윤(韓明允)이 자신의 집에 교단을 설치하고 스스로 교주가 되어 포교하였다. 한명윤은 신도들과 더불어 3월 15일 단군어천절과 10월 3일 단군개천절에 제사를 올리고 매 일요일마다 예배를 하되 술을 마시고 춤을 추는 것을 의절(儀節)로 삼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교단을 무교(巫敎)라고 비판하였으므로 한명윤은 1916 ...

2025-07-05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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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민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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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대종교 선도사였던 강천봉(姜天奉)이 1964년 계룡산 신도안에 있는 ‘계룡천진전(鷄龍天眞殿)’ 내에 국조 단군사상을 중심으로 민족문화를 연구하고 발양한다는 목적으로 설립한 문화원이다. 그러나 약간의 논지를 발표하기는 하였으나 강천봉이 다시 서울로 올라간 뒤에는 실제적으로 특별한 활동을 전개하지 못한 채 결국 사라지고 말았다. 참고문헌 : 『한국신흥종교총람』(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07-02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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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에이지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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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뉴에이지’ 보다 ‘뉴에이지 음악’(New Age Music)이라는 용어가 더 친숙하며 후자에 대하여 기독교 측이 (사탄 혹은 악마의 음악이라며) 부정적인 대중적 담론을 형성하고 주도함으로써 많은 이들이 ‘뉴에이지 음악’에 대하여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뉴에이지 음악’이 하나의 장르로 음악계에 정착한 것은 1980년대 스위스의 안드레아스 폴렌바이더(Andreas Vollenweider)가 최초로 최우수 뉴에이지 연주상을 수상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뉴에이지 음악이 대중음악에 흡수되면서 초기의 뉴에이지적(명상적 신비주의적) 특징이 많이 희석되었을 뿐 아니라 다른 음악 장르와의 지속적인 크로스오버(cross ...

2025-07-01 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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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중의약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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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조계종삼화불교

본교는 중국 남경에 위치한 중의약(中醫藥) 대학으로서 1995년 8월 불교조계종의 삼화불교대학과 분교를 채결한 이후 불교조계종 총무원장 혜인(손영모)이 한국총장을 맡고 있다. 참고문헌 : 불교조계종 홈페이지 http://www.shbuddhism.or.kr/

2025-07-01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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