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대종교오대종지
대종교
대종교에서는 신도들에게 가르치는 5대 종지를 제시하고 있다. 5대 종지는 다음과 같다. ①경봉천신(敬奉天神): 공경으로 한얼님을 받들 것으로 인물의 본원을 아는 것 ②성수영성(誠修靈性): 정성으로 성품을 닦아서 인생의 양능을 가질 것 ③애합종족(愛合種族): 사랑으로 겨레를 합하여 인간세상의 평화를 얻을 것 ④정구이복(靜求利福): 정한 마음으로 행복을 구하여 인간의 자유를 누릴 것 ⑤근무산업(勤務産業): 부지런히 살림을 힘써 인류의 문명을 늘일 것. 이 5대 종지는 대종교의 교의를 현실화시켜 실생활에 응용하려는 신행합일(信行合一)사상을 강조한 것으로 진실한 신앙과 지혜는 실천과 행동에서만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것이다. ...
2025-07-05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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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새일교회
여호와 새일교단은 1965년 이유성 목사에 의해 시작되었다. 1915년 황해도 신계군에서 출생한 이유성은 17세 때 처음 기독교에 접하게 되었다. 해방 후 월남한 그는 1955년 고려신학교에 입학하여 다니다가 1957년 종교체험을 하고 신학공부의 필요성을 더 이상 느끼지 않아 신학교를 중퇴하였다. 1961년 침례교 목사 안수를 받았고 1964년 9월 24일 계룡산 숫용추에 천막을 치고 부흥회를 개최하였다. 이 때 새일수도원을 짓기 시작하여 이듬해에 완성하였다. 그 뒤 여러 차례에 걸쳐 신비체험을 하였으며 특히 1967년 8월 15일 이후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을 제자들이 그대로 기록하여 여러 권의 책으로 만들었는데 이 ...
2025-07-03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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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송
각세도
대보송(大寶頌)은 이선평이 16세에 큰 공부를 하고자 중국으로 건너가려 할 때 평안도 순안군 적리 암치내라는 곳에서 머물던 중 허공에 ‘천하대보정진무외(天下大寶正眞無外) 무궁조화각재자기(無窮造化各在自己)’라는 글자가 나타났다고 한다. 내용은 천하의 큰 보배는 정진 외에 따로 없으며 무궁한 조화가 모두 각각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뜻이다. 이선평은 이 주문을 받고 크게 깨친 바가 있어 중국으로 가는 것을 포기하고 구월산으로 들어가 수행에 정진하였다고 한다. 참고문헌 : 『한국신흥종교총람』(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7)
2025-07-03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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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황전
단황전의 창립자 김정숙은 일찍이 구도에 뜻을 두고 토굴에서 10여 년간 수도하던 중 하늘에서 불서기가 몸으로 내리면서 중생을 제도하라는 천명을 받는다. 이후 그녀는 중생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사람들의 운명을 판단해주고 불치의 병을 치료해주며 때때로 단황님께 제수를 올리고 천하통일을 위한 평화기도를 올렸다. 1982년 대전 석경산에서 천인합발을 위한 법시(法施 : 천제)를 올려 천인합발을 이루었다고 하며 앞으로는 제물 없이 수도하는 때가 왔고 단황운이 열려 잘 사는 시대가 도래한다고 하였다. 김정숙은 자신이 신앙하는 단군할아버지가 대종교와도 인연을 갖기 때문에 ‘대종교신도수도원(大倧敎新都修道院)’이라는 간판도 함께 걸 ...
2025-07-02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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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마니경전
단군마니숭조회
단군마니숭조회의 창립자 박종간은 자체적으로 여러 경전을 간행하였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단군마니경전』·『천부의 맥』·『맥의 천리』 등이다. 『단군마니경전』은 많은 경전 중에서도 본교의 가장 근본되는 경전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실제 이 경전의 구성이나 내용 등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세간에 알려져 있지 않다. 참고문헌 :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7)
2025-07-01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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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대황전
본교는 박노철이 무적(巫的) 능력과 단군의 신력(神力)에 의해 병을 치료하는 능력이 생기면서 신자들이 모여들었으며 1958년 단군을 모시는 당사(堂舍)를 짓고 당명을 ‘단군대황전’이라고 하였다. 이후 박노섭은 대종교본사에 접촉하여 본교를 대종교의 지부로 해 줄 것을 청원하여 ‘대종교삼선시교당’이라는 간판을 걸게 되었다. 그러다가 1965년에는 신도 가운데 홍옥도(洪玉道)라는 여신도의 재정적 후원으로 『단군예절교훈팔리삼백육십육사(檀君禮節敎訓八理三百六十六事)』상·하권을 간행하였고 이 경전의 교리에 근거하여 본전에 ‘단군예절교훈팔리삼백육십육사발간소’라는 간판과 ‘배달민족문화연구원’이라는 간판을 붙였다. 신앙의 대상은 삼신(三 ...
2025-07-01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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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원암
천도교
1854년 수운 최제우는 10년간의 방랑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와 처가가 있는 울산 여시바윗골로 이사했다. 여기서 최제우는 1855년 금강산 유점사라는 절에서 왔다는 승려로부터 을묘천서라는 책을 받게 되는데 그 내용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 최제우는 3일을 두고 그 뜻을 생각하여 진의를 파악하고 이후로 결심한 바 있어 더욱 수도에 힘썼다. 그는 그 이듬해 1856년 양산 통도사 내원암에 들어가 49일을 작정하고 견성공부(見性工夫)에 힘썼다. 그러나 47일 만에 문득 마음에 생각되기를 “이제 숙부가 환원하였으니 가히 공부를 마치지 못하리라” 하고 산을 내려와 집에 돌아와 보니 과연 그러했다. 이듬해 천성산 적멸굴에 ...
2025-07-01 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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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산천조전
조일광은 부여군 내산면에서 출생하였으며 20대에 미망인이 된 후 불교에 입교하여 신앙생활을 하다가 정심교(正心敎) 신자가 되었다. 정심교는 강일(姜一)이 창립하였고 유불선 삼교의 합일된 대도를 표방하였으며 신앙의 대상은 미륵불과 단군신명(檀君神明)이었다. 그런데 정심교에 다니면서 그녀는 단군신명을 얻어 교주에 버금가는 치병의 이적을 보이게 되었다. 그러던 중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교주 강일이 북한군에 끌려가고 신도 10여 명이 피살당하면서 정심교는 침체되었다. 전후 조일광은 정심교의 포교를 계속하여 교세를 거의 회복하였으며 1961년 대종교 부여지사의 책임자로 와 있던 강용구를 만나 대종교에 입교하고 이 지방의 포교책임자 ...
2025-07-01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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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인
도봉산삼성전
김흥인은 1924년 황해도 개성에서 출생하였다. 11세에 정신에 이상이 생겼는데 이때부터 어떤 신명(神明)이 접하여 모든 것을 지시해 주었다고 한다. 25세에 그 신명의 지시에 따라 개성에 있는 사직단에 삼성각을 짓고 화공(畵工)을 불러 신상(神像)을 그려 모셨는데 어느 날 대종교인이 찾아와 이 신상을 보고 단군상과 비슷하다고 하여 그는 비로소 자신에게 계시를 주는 신명이 단군신명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군 복무를 마치고 인천에서 한약종상을 경영했으나 그보다는 오히려 영적 능력에 의한 치유에 의해 무당으로 더 유명해져서 많은 신자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1956년 10월에 서울 도봉산 암석 아래서 산신제를 지냈는데 ...
2025-07-01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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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열
삼신도
김석열은 1912년 1월 18일 서울에서 출생했다. 한국전쟁 때 난리를 피해 대전으로 내려가 자리를 잡았으며 한의학을 공부하여 대전시 중구 오류동에서 한의원을 개원하였다. 그는 불교와 기독교 등 여러 종교를 전전하였으나 만족을 얻지 못하고 말살되어가는 민족얼과 민족주체성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다가 1984년에 삼신도를 창립하였다. 특히 그는 당시 ‘한세계인류성도종’의 창립자였던 정근철과 손을 잡고 『일신경(一神經)』을 간행하는 등 많은 저술활동을 통해 한민족의 위대성과 민족주체성을 고양시키고자 하였으며 또한 정근철과 함께 ‘하느님 명호도용 및 단군성조의 경칭 침해 배제 청구의 소’(92가합 71999호 사 ...
2025-06-30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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