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74

오계잠

|

증산계(증산교본부, 증산도, 증산법종교, 인도교)

증산교의 신자들이 지켜야할 계명으로 대다수의 증산교파에서 사용한다. “①마음속이지 말라. ②척 짓지 말라. ③언덕(言德)을 잘 가지라. ④남 잘되게 하라. ⑤한술 밥의 은혜라도 반드시 갚으라.”이다. 증산교본부 2대 종사인 이정립(李正立)은 ‘이 다섯 가지 계잠으로 일상생활의 규범을 삼아 일심으로 실행하여 성격에 합화(合化)하도록 하라고 가르쳤다. 안세찬의 증산도에서도 이 오계잠을 그대로 쓰고 있다. 증산법종교에서는 오계명(五戒銘)이라 하여 증산교본부와 같은 내용으로 되어있다. 인도교의 채경대(蔡慶大)는 오잠이라 하여 불은악(不隱惡)·불피혐(不避嫌)·불숙원(不宿怨)·불식비(不飾非)·불절기(不折氣)를 말하기도 했다. <참 ...

2025-10-07 22:25

8

영세종주도

|

영세종주도(永世宗主道)를 창립한 정대오(丁大午, 1930-?)는 1930년 전라남도 무안군 이로면에서 출생했다. 19세 때 순천도법문파를 알아 전봉래 연원으로 류춘래(柳春來)를 만나고 그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수련을 쌓았다. 그러던 중 1964년 『현무경(玄武經)』에 있는 ‘성사의통경주용담무극신대도덕봉천명봉신교대선생전여율령(聖師醫統慶州龍潭无極神大道德奉天命奉神敎大先生前如律令)’이라는 구절을 읽는데 갑자기 새로운 후천역(後天易)이 떠올랐다는 것이다. 그는 그의 일생 해야 할 일을 십상성도(十相成道)로 표현했다. 9상은 준비과정이고 10상 째는 중생제도라고 했다. 수십 년 동안 9상을 성취시키고 모든 준비를 해오다가 1993년 ...

2025-10-07 17:39

8

영각교

|

1919년 이호필(李鎬弼)이 은사였던 윤갑병(尹甲炳)을 교주로 세우고 창교한 불교계 신종교. [개설] 일제강점기 고양군 숭인면 회기리(高陽郡崇仁面回基里)소재의 연화사(蓮花寺) 승려였던 이호필(李鎬弼)은 같은 절에서 8년간 수행하여 오도(悟道)를 이룬다. 그리고 친구 이원승(李源承)과 협의하여 1919년 2월 10일 은사였던 윤갑병(尹甲炳)을 교주로 하고 영각교(靈覺敎)를 창립한다. 영각교 본부는 당시 종로 6-179에 설치하였다. 영각교의 종지는 현기미묘(玄機微妙)의 영적대법(靈的大法)을 설하여 일체중생을 재난과 고통에서 구제하고, 정각(正覺)을 이루게 하며, 자비공덕심(慈悲功德心)을 일깨워 무량의 대복(大福)을 얻게 ...

2025-10-07 17:03

8

연화산대한사

|

일련정종은 다른 종파와는 달리 니치렌을 본불(本佛)로 보고 있다. 연화산은 다이세키지의 산호(山号)를 다보후지대일연화산(多宝富士大日蓮華山)으로, 약칭하여 대일연화산이라고 한 것에서 유래한다. 일련정종의 본격적인 한국 유입은 한일국교정상화 이후이다. 왜색종교로 인식된 이 종파를 정부는 1964년에 금지시켰다. 이후 활동의 제약이 해제되고, 한국에서는 여러 분파가 활동하고 있다. 다이세키지의 신도단체였다가 독립한 창가학회의 한국지부인 SGI한국불교회를 필두로 한국일련정종총본부, 대한정법일련정종법화강불교회, 연화산대한사, 대한불교일련종 대법산광선사, 일련정종중앙회 등이다. 연화산대한사는 일련종 종립대학인 릿쇼(立正)대학을 졸 ...

2025-10-07 16:47

8

연성종교

|

일반적으로 한국의 종교분포는 인구총조사에 의해 파악된다. 그러나 종교학자 윤이흠은 자기확인방식에 의한 종교조사에 이의를 제기하고 경성종교와 연성종교의 구분을 제시하였다. 그는 종교집단과 자연집단과의 구분이 뚜렷한 종교를 경성종교라고 하고 그렇지 않은 종교를 연성종교라고 명명하였는데, 자기확인방식은 연성종교의 성원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는 문제점을 갖는다. 예를 들어 자신의 종교가 유교라고 답한 응답자는 많지 않지만, 한국인의 91.7%가 유교적 가치와 실천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불교의 경우에도 실질적으로 불교적 가치를 수용한 사람의 수는 불교인이라고 응답한 사람의 수의 두 배가 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2025-10-07 16:31

8

여처자

|

모악교

여처자(1887-1954)는 여본주(余本主)라고도 불렀다. 1887년 3월 19일 경상도 하동군 하동읍 화심동에서 태어났다. 두 살 되던 해에 아버지를 잃고 영천에 이사하여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려서부터 전혀 말을 하지 않아 벙어리인줄 알았는데 일곱 살 때 말문이 터지면서 가끔 신기한 말을 하곤 하여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과년하여 혼담이 오고 갔으나 완강히 거절하여 독신으로 일생을 마쳤다. 차경석이 부부의 연을 맺으려 했으나 이도 거절했다. 1937년 겨울 전남 나주 사람 서상섭(徐相燮, 일명 正一)이 신명의 계시를 받고 여처자를 찾아와 그를 받들기 시작하자 많은 신도들이 모여들어 이때부터 여처자를 중심으로 한 ...

2025-10-07 16:19

8

엔카운터(Encounter)

|

엔카운터(Encounter)는 ‘만남’을 의미하며, 엔카운터 그룹은 10명 정도의 참가자와 1~2명의 촉진자로 구성된 소집단이다. 일반적으로 2~5일 동안의 단기간 합숙을 통해 자기 자신과 대면하고 타인과 소통하는 경험이 유도된다. 1960년대에 로저스(C.R. Rogers)가 명명한 이래, 심리치료, 치유, 인성개발, 감수성 훈련, 인간관계 개선 등의 목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종교계에서도 공감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자신을 이해하고 주위와 화합을 이루는 인간성장을 꾀하기 위해 엔카운터 기법을 활용한 사례가 많다. 1980년 강진 무위사에서 시작된 불교계의 동사섭이 그 한 사례이다.

2025-10-07 16:04

8

에큐메니즘 Ecumenism

|

서로 다른 신앙고백을 가진 교파나 교회, 신앙 공동체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하나라는 사실에 근거하여 교회의 일치와 하나 됨을 실현하고자 하는 운동이다. 에큐메니칼의 어원인 헬라어 ‘오이쿠메네(oikoumene)’는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 또는 ‘사람이 사는 모든 세상’을 뜻하는데, 여기서 ‘일치’, ‘연합’이란 개념이 나왔다. 1054년 동서교회 분열 이후 20세기에 이르기까지 기독교는 수많은 교단으로 분열되었으며, 이에 따라 통합을 지향하는 에큐메니칼 운동도 함께 전개되었다. 20세기말부터 에큐메니즘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하여, 1910년 에든버러에서 열린 세계선교대회에서 중요한 선언을 이끌어 냈으며, ...

2025-10-07 16:02

8

안택굿

|

지역에 따라서는 안택, 안택고사, 무고안택, 독경, 재수굿, 축원굿, 소원굿, 운수맥이, 성주 달래기, 성주안택, 성주굿, 도신, 도신굿, 동방제, 경사굿, 신사굿, 상달고사 등으로도 불린다. 안택굿의 유래와 역사는 분명치 않으나 조선 후기 이래 독경무(讀經巫)가 주재한 무속제의의 전통을 계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정월 상원조에는 “소경[邀瞽者]을 불러다가 보름 전날부터 안택경(安宅經)을 읽으며 밤을 새운다. 액을 막고 복을 비는 까닭이다. 정월이 다 가도록 계속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의 독경은 주로 명통시(明通寺)라는 관청에 속한 맹인들이 담당했다. 충청도에서는 법사·경[정]쟁이 ...

2025-10-07 15:20

8

안상홍

|

하나님의교회세계선교협회

안상홍은 전북 장수에서 태어나 30세에 안식교 목사인 이명덕에게 침례를 받았으며, 1962년까지 안식교인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그 후 1964년에 안식교인 23명과 함께 부산에서 <하나님의교회예수증인회>를 설립함으로써 현재의 명칭인 <하나님의교회세계선교협회>의 창교자가 되었으며, 1985년 세상을 떠났다. 그는 평소에 장길자를 하나님의 신부로 지칭하며, 자신은 육신을 입고 온 하나님이며, 성경에 예언된 재림주라고 했다고 한다. 따라서 이 종단의 교인들은 안상홍이 하나님이며, 장길자는 하나님의 신부라고 주장한다. 교인들은 안상홍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안상홍이 다시 강림할 것으로 믿는다. 그는 한국의 신종교사에서 하나님 어 ...

2025-10-07 15:09

8

처음으로 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