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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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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대종교에서는 창립 후 백두산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나누어 각각 도본사를 두도록 하였다. 1914년 남도본사를 경성(담당: 강우) 동도본사를 동간도 청파호(담당: 서일) 서도본사를 상해(담당: 신규식 이동녕) 북도본사를 노령 소학교(담당: 이상설)에 설치하였다. 해방 후에는 남한을 관할하는 남도본사만이 현존하고 있다. 따라서 대종교에서는 남1도 남2도 남3도 남4도로 구역을 나누어 각 곳에 도본사를 설치하였고 부여와 성주 부산 광주 밀양 상주 공주 등에 지사(支司)를 두었으며 각지에 시교당을 두고 포교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2025-07-01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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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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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종교

김청탄의 본명은 김영곤이며 청탄(淸灘)은 그의 호이다. 정역의 창시자인 김항의 제자 중 대표적인 인물로 하상역과 이십청(이상룡) 김영곤 등이 있었는데 김항이 사망한 후 하상역이 중심이 되어 ‘대종교(大宗敎)를 창립하였고 그는 김항을 상제와 같이 신격화하고 오음주송의 수련에 의해 정역의 원리를 깨달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김청탄은 초기 하상역과 같이 대종교의 창립과 포교에 참여하였으나 얼마 후 독립하여 독자적인 교단을 형성한 후 충남 연산과 공주를 중심으로 하상역에 맞서는 세력을 형성하게 된다. 김청탄은 교단 초기 독자적인 교단명칭을 내세우지 않고 김항이 생전에 불렀던 호칭인 ’무극대도‘를 교단명칭으로 사용하다가 1921 ...

2025-06-30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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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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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사

용화사(龍華社)를 창립한 김종용(金宗用 1901-? 호 槿下)은 1901년 10월 1일 전라남도 무안군 지도면 전증도에서 탄생했다. 23세 되던 1923년에 일제 경찰에 들어가 주로 보천교를 사찰하는 임무를 맡아하다가 뜻한바 있어 경찰직을 사임하고 1934년 보천교에 입도했다. 그리하여 차경석의 상담역을 맡아 일했다. 차경석이 죽고 보천교가 해산되자 홀로 증산 강일순을 신봉하는 생활을 했다. 1945년 해방 후 이상호의 대법사에 들어가 총무직을 수행하기도 했으나 이곳에서 나오게 된다. 그리하여 1959년 김제군 금산면 용화동에서 용화대도(龍華大道)를 창설했다. 그 후 간부 100명의 조직에 착수하여 1년 여간 추진하였으 ...

2025-06-30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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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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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성교(關聖敎)

김용식의 구체적인 생애는 알려진 바가 없으나 1920년 박기홍(朴基洪)과 함께 종래의 관제(關帝)를 숭배한 숭신단체 전내무(殿內巫) 및 일반 민중을 교도로 하는 관제숭배자를 규합하여 관성교를 조직하였다. 김용식은 전내무 등에 의해 잘못 전해진 관제의 교를 교정하는 한편으로 관제의 충렬용의(忠烈勇義)로써 민중을 선도하려고 하는 취지요령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朝鮮의 類似宗敎』(村山智順 저 최길성․장상언 공역 계명대학교출판부 1991)

2025-06-30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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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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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불교

김해사람으로 일찍이 오방불교를 창시한 김광화에게서 도를 받았다. 그러나 김광화가 사망하고 김경배가 대를 잇자 이에 대항하여 1895년경 전북 진안군 주천면에서 금강불교를 세웠다.

2025-06-30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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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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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불교 도교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열경(悅卿) 호는 매월당(梅月堂)·동봉(東峰) 법명(法名)은 설잠(雪岑) 도호(道號)는 청한자(淸寒子)이다. 유교·불교·도교의 삼교(三敎)를 넘나들며 각각에 정통했던 보기 드문 인물이다.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신동으로 불렸다. 서울 삼각산에서 독서하던 중 1453년 수양대군이 단종을 폐위시키는 사건이 일어나자 책을 불사르고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설잠이라는 이름으로 양주 수락산(水落山) 인제 설악산(雪岳山) 경주 금오산(金鰲山) 등지를 두루 다니면서 많은 시문(詩文)과 소설을 지어 세상의 허무함을 읊었다. 47세 때 잠시 환속(還俗)하기도 했으나 얼마 뒤 다시 서울을 떠나 전 ...

2025-06-30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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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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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김서종은 1893년 6월 13일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면 구성리에서 출생하였다. 1905년 보성전문학교 법과를 졸업하고 양원(養源)여학교에서 3년간 교편을 잡았다. 그 후 영남 각자의 동지들을 규합하여 영우저축회(嶺友貯蓄會)를 창설하였다. 1922년 북만주 빈강성(濱江省) 오상현(五常縣)으로 이주하여 큰 농장을 경영하였으며 하얼빈에서 ㈜북만농구공사(北滿農具公司)를 창설하여 재만 교포들의 복지향상을 위해 노력하였다. 1915년 대종교에 입교하여 이듬해 참교(參敎)가 되었고 나철이 삼성사(三聖祀)에서 민족의 비운과 교세의 어려움을 스스로 책임지고 순교할 당시 그를 수행하였다. 그 후 지교(知敎)와 상교(尙敎)로 승질(陞秩)하 ...

2025-06-30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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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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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김방서는 1893년 동학교도가 보은 장내에 모여 척왜양창의(斥倭洋倡義)를 요구하며 집회를 가졌을 때 봉성(鳳城 : 지금의 전라남도 구례) 대접주로 참가하였다. 그 뒤 금구의 접주로 활약하였는데 전라도의 북접(北接)이라고 불린다. 동학농민군이 각 군에 집강소를 설치 할 때 익산의 대접주로서 대도회소를 설치하였다. 장흥의 관군들이 전봉준의 남접군이 북상한 틈을 타 동학도를 토벌하기 시작하자 동학군 3000명을 이끌고 12월 3일 장흥성을 함락시키고 장흥부사를 죽였다. 그러나 곧 일본군의 지원을 받은 관군의 공격으로 동학군은 대패하였다. 전봉준·손화중(孫華仲) 등과 재기를 도모하다가 전라북도 순창 복흥산(福興山)에서 체포되었 ...

2025-06-30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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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능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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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심교정원

김능복은 1940년 황해도 현성군 금산면 감수리에서 태어났다. 한국전쟁 당시 월남하여 익산군 함라면 신대리에 살며 초등학교와 중학을 졸업했다. 중학 2학년 때인 1969년 본원 창설의 원리인 「삼심대(三心大)」를 경험하게 되었다고 한다. 중학교 졸업 후 여러 종교를 편력하며 다니다가 군에 입대하여 1957년 제대하고 전북 익산군 함라면 신대리에서 윤불물십본지(圇佛物十本地:念佛宗)란 교명으로 문공부에 사회단체 등록을 했다. 그 뒤로도 원불교 · 통일교 · 삼각산 · 구복암 · 팔공산도덕암 · 대전기원정사 등을 돌아다니며 다른 종교의 교리사상을 섭렵하고 수양도 했다. 1978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2025-06-30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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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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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자손이 조상에게 지내는 여러 제사 중에서 돌아가신 날 곧 기일(忌日)에 지내는 제사가 기제(忌祭)이다. 기제사(忌祭祀) 또는 기일제(忌日祭)라고도 한다. 돌아가신 지 1년째 2년째 되는 해의 기일에 시행하는 의례는 각각 소상(小祥) 대상(大祥)이라 하고 돌아가신 지 3년째 되는 해부터 시행하는 의례를 기제라 한다. 기제의 대상은 보통 제주(祭主)를 기준으로 하여 사대(四代) 조상 곧 고조부모(高祖父母)까지이며 공적이 큰 조상은 불천위(不遷位)라 하여 4대를 지나도 계속 제사의 대상이 된다. 우리나라에서 기제가 언제부터 행해졌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고려말에 『주자가례(朱子家禮)』가 도입되면서부터 유교의례에 따른 기제의 시 ...

2025-06-30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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