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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교내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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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의 한국 신종교들은 기본적으로 유교, 불교, 무속에서 제시하는 전통적인 내세 관념을 계승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즉 음양론(陰陽論)에 입각한 유교의 귀신관을 수용하는 한편으로, 죽은 이의 원한을 풀어주어야 한다는 민간신앙의 관념을 계승하고 있다. 강증산은 제사를 지내지 않는 기독교에 대해 “서교(西敎)는 신명 박대가 심함으로 능히 성공치 못하리라.”라고 비판한 바 있는데, 조상 제사를 어떻게 지내느냐의 문제가 여러 신종교에서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 신종교가 보이는 특징은 내세 자체보다는 현세와의 관련성을 강조하며 현실의 삶을 충실히 할 것을 권한다는 데 있다. 이러한 생각은 동학의 해월(海月)이 제시한 제사의 ...

2025-10-06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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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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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수는 1980년에 수원 한문서숙 원장을 하다가 1984년에 수원에서 신명유도를 창립하고 본부를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송정리 한학마을로 옮겼다. 대제당에 단제(檀帝:단군)를 모시고 있지만 실질적인 신앙의 대상은 아니다. 본교는 유교의 정신에 입각 도의실천운동을 펴나가는 단체이다. 본교의 기본경전은 『사서삼경』이며, 권정수가 저술한 『도덕수기』, 『인도』, 『도덕론』, 『하얀 옷 하얀 마음』(백의백심) 등이 있다. 의례는 천제와 조상에게 올리는 년 2회의 대제인 만양제(滿陽祭:4월 11일, 양기운이 가득하게 된 날). 만음제(滿陰祭:10월 11일, 음기운이 가득하게 된 날)가 있다. 일상 수도생활을 보면 새벽 4시 3 ...

2025-10-03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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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도법문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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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준(張基準)이 창립한 순천도의 다른 이름.

2025-10-01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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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진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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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이용태는 대종교가 삼일철학과 삼법수행을 근간으로 하고 있으나, 대종교 교도들이 일상생활에서 실제적인 수행을 해갈 수 있도록 지도하는 서적이 없음을 애석해 하면서 수진비록을 저술하였다고 한다. 제1장 지감설(止感說)은 정좌(靜坐)·수령(修靈)·현상(顯相)·통지(通知)·망아(忘我)·원각(圓覺)으로 구성되었으며, 제2장 조식법(調息法)은 총론·폐기(閉氣)·태식(胎息)·주천화후(周天火候)로 구성되었다. 제3장 금촉법(禁觸法)은 금정욕(禁情慾)·독신고(讀神誥)·성변화(成變化)로 되어 있다. <참고문헌> 『애국지사 단암 이용태 선생 문고』(박달재수련원, 동화서관, 1997)

2025-10-01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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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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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치인이란 군자가 자기 자신에 대한 도덕적 수양과 이로부터 타인에 대한 정치적 실현을 의미한다. 이러한 군자의 바람직한 모습으로 이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은 『대학』의 팔조목(八條目)이다. 이 책에는 수기와 치인의 내용을 8개의 조목으로 구분한다. 격물치지(格物致知)·성의(誠意)·정심(正心)·수신(修身)은 수기의 내용에 해당하고, 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는 치인의 내용에 해당한다. 조선시대에 이이는 『대학』을 지침으로 삼아 『성학집요(聖學輯要)』를 작성하는데, 이 책은 수기치인의 구조로 사서와 육경에 씌어 있는 도(道)를 정리한 것이다.

2025-10-01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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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훈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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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대도

『성훈통고(聖訓通攷)』는 금강대도의 제1대도주인 토암 이승여(土庵 李承如)와 연화대도의 제1대도주인 자암 서의복(慈庵 徐宜福)의 행적과 언행, 그리고 제자들과의 문답, 영험, 이적 등을 모아 놓은 경전이다. 금강대도의 11경 28권의 대표경전이 토암 이승여의 생존 시에 직접 구술(口述)에 의해 저작된 경전이라면, 『성훈통고』는 토암의 사후에 이토암과 서자암의 탄생 이후부터의 성적에 관련된 모든 자료를 봉추 유치흥(峰秋 兪致興) 등 여러 제자들이 수집하여 완성한 방대한 분량의 경전이다. 당시 제자들 한사람 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해서 사진까지 곁들여 편집해 전 6권으로 되어 있다. 제1권은 내편(內篇) 상, 제2권은 내편 ...

2025-09-25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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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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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처음 상복(喪服)을 입고 난 뒤에 행하는 의식.

2025-08-02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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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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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운교

선성당은 봉령각 정문 앞에 조성된 기지로 장차 국내외 8만 4천 선성을 봉안할 건물의 이름이다. 현재는 기지만 조성돼 있다. 이 기지는 1934년 9월에 나무 푯말을 꽂아 표지로 삼았으나 그후 노후하여 1970년에 선성당 기지의 내력을 적은 석비를 건립하였다. 만성당과 선성당 기지는 도솔천단 기지와 함께 수운교 금병도국의 요지로써 천정대지(天定大地)라 불리는 것이다. 수운교인들은 이 선성당이 장차 국가에서 건축해줄 세계의 명소가 되리라고 믿고 있다. 참고문헌 : 『수운교 진리』(수운교출판부 1999)

2025-07-14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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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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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대도

본관은 달성이며 약봉(藥封) 서성(徐渻)의 12세손이다. 1884년 상산(祥山) 서상의(徐相儀)와 오상전(吳祥田)의 맏딸로 태어났으며 1898년 금강대도 창시자인 토암 이승여와 결혼하였다. 1910년 충청도 계룡산으로 토암과 함께 남천포덕을 단행한 후 연화대도를 창개 제1대 도주가 되어 오중대운(午中大運)의 남녀평등 사상으로 제자를 양성하다가 1927년 44세로 타계하였다. 금강대도에서는 토암이 천상에서 태청도덕천존(太淸道德天尊)이었으며 자암은 태을구고천존(太乙救苦天尊)이었는데 오중시대를 맞이하여 건곤부모로 하강하였다고 한다. 그는 일생동안 후원에 단을 설치하고 청수를 올리며 하루도 빠짐없이 하늘에 창생 제도를 발원하는 ...

2025-07-13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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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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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인은 독신생활을 극력 반대하는 아버지 몰래 집을 빠져 나와 17세에 원불교에 출가했다. 아버지는 소태산대종사께 상서를 올려 딸을 집으로 돌려 보내줄 것을 간청했으나 8년 동안 사가에 돌아가지 않았다. 서대인은 초창기 서울교당의 가난하고 어려운 가운에 교당을 일궈낸 산증인이다. 서울교당은 1926년(원기11) 창신동에서 시작하여 1933년(원기18) 돈암동으로 정착하는데 서대인은 그 교당에서 1931년(원기16)부터 공양원 생활을 했다. 당시의 교당생활은 생활비가 없어 새벽까지 삯품팔이 바느질을 해서 생계를 유지하기도 했다. 이러한 간난(艱難)함 속에서도 서대인은 1941년(원기26) 3월 경성성신여학교를 졸업했다. ...

2025-07-13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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