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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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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천교

이중성은 1897년 음력 4월 29일에 경상남도 동래군 기장면 동부리에서 부친 이치삼(李致三)과 모친 밀양 박씨 사이의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1914년에 일본에서 공부한 적이 있으며, 20세인 1916년부터는 중국과 일본을 오가며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이중성은 주로 독립운동 자금 조달의 임무를 맡았는데, 이 때문에 그가 보천교와 접촉하였다고 한다. 1928년 봄에 차경석을 만난 이중성은 보천교의 외무를 주관하는 수호사장(修好司長)을 맡기도 하였으나, 보천교를 탈퇴하여 독자적인 수도 생활을 하였다. 1946년에 『천지개벽경(天地開闢經)』 편술을 마친 그는 1958년 11월에 타계하였다. 『천지개벽경』은 1992년 ...

2025-10-08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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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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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교본부

이정립(李正立, 1895~1968)의 호는 남주(南舟)이다. 1895년 2월 19일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송정리에서 출생했다. 목포 영흥소·중학교를 졸업하고, 18세에 해남보통학교에서 교편생활을 하였다. 1914년 선도교(仙道敎)에 입교한 후, 일본에 건너가 1915년 동경고등사범학교에서 지리역사학을 전공했다. 1919년 보천교(普天敎)에 들어가 잡지 『보광(普光)』의 주필 및 사장직을 맡았으며, 1924년 보천교에서 인수하려 했던 《시대일보》주필을 맡기로 하였던 지식인이었다. 그러나 차경석과 뜻이 맞지 않아 형 이상호와 함께 보천교 개혁운동에 가담하였으나 여의치 않아 보천교를 탈퇴했다. 그 뒤 10여 년 동안 중국 ...

2025-10-08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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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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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발한개천각

이유립은 1907년 평안북도 삭주에서 부친 관집과 모친 태인 백씨의 아들로 출생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만세를 불렀으며, 이기(李沂)가 창도한 단학회에서 주관하는 배달의숙(倍達義孰)에 입학하여 계연수(桂延壽)·최시흥(崔時興)·오동진(吳東振) 등의 강의를 들었다고 한다. 1921년에는 조선독립소년단의 단장이 되어 이름을 채영(采英)으로 바꾸었다. 이후 의민사(義民社)·천마산대(天摩山隊) 등 항일단체의 소년통신원으로 뽑히기도 하였다. 1924년 삭주고등보통학교 3학년에 입학해 1927년에 졸업하였고, 한동안 만주에 머물다가 1930년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 뒤 이기의 신교육종지를 실천하기 위해 삼육사(三育社 ...

2025-10-08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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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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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이용태는 1890년 충청북도 충주군 산척면에서 출생하였다. 호는 단암(檀菴). 19세까지 한학을 공부하였고, 제천군 봉양면장과 백운면장을 지냈다. 백운면장을 지낼 때 동생 용준(容俊)이 압송되는 것을 목격하고 독립운동에 뜻을 두었다. 1929년 대종교총본사를 찾아가 신가(神歌)·개천가(開天歌)·단군교포명서 등을 얻었으며, 『삼일신고』·『신단실기』 등을 얻어 보았다고 한다. 대종교가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1939년 4월 만주로 건너가 김교헌을 만나 입교한 뒤 참교(參敎)·지교(知敎)·경의원장(經議院長)을 지냈다. 1942년 일제가 대종교를 탄압하기 위해 조작한 임오교변으로 체포되어 8년형을 선고받고 ...

2025-10-08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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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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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대도

어머니의 꿈에 옥황상제가 나타나 하얀 솜을 많이 주기에, 공경하여 품에 안는 꿈을 꾸고 이승여를 낳았다. 집안이 가난하여 배움에 나아가지 못하였으나 어릴 때부터 세상 이치와 법도를 스스로 깨우치는 일이 많아 주위를 놀라게 했다. 24세(1897년)에 서자암과 결혼한 후 홀로 세상이치를 궁구하더니 33세(1906년)에 결정적인 종교적 체험을 통해 대도를 자각한다. 이 때 토암(土庵)이 깨달은 대도는 ‘선후천 교역기에 타락된 인간의 도덕성을 건곤부모인 자신이 개화(開化)함으로써 큰 겁운에 싸여 죽어가는 인류를 구원하고, 나아가 우주의 화평을 이룬다는 것’이었다. 그 후 자신은 금강도사라 하고 자암은 연화도사라 하면서 포덕에 ...

2025-10-08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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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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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화불교

천화불교(天華佛敎)의 창종자 이숙봉(李淑峰)은 충청남도 천안시 북면 오곡리의 명문사족인 이한철(李漢哲)의 딸로서 7남매의 4녀로 태어났다. 본래 불교가문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남달리 불문에 뜻이 깊었다. 그녀의 나이 8세 때 마을 뒷산에서 금불상을 주었는데, 이를 계기로 영적인 능력이 생겨났다고 한다. 자라면서 더욱 신심을 일으켜 불사(佛事)에 큰 뜻을 두었고, 명산대찰을 두루 헤매며 기도와 수도에 전념한다. 33세 때 어느 날 찬란한 꽃관을 쓰고 화려한 흰옷을 입은 자비스러운 여인이 나타나서 그녀에게 “나는 모신(母神)인데 그대가 부처님께 정성이 지극함에 감동하여 그 원하는 바의 불사를 이루어 주고져 하노라”라고 하는 ...

2025-10-08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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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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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세도

이선평의 도호는 신계(晨鷄)이다. 1882년 2월 23일 황해도 문화군 구월산하 태산촌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도에 뜻을 두고 16세 되던 해에 보서(寶書)를 얻으려고 중국에 가던 중 평안도 순안군 적리 암치내에서 한밤중에 ‘천하대보 정진무외 무궁조화 각재자기(天下大寶 正眞無外 無窮造化 各在自己)’라는 16자의 대보송(大寶頌)이 허공에 나타나는 것을 보고 깨친 바 있어 중국으로 가지 않고 구월산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그는 10여년 동안 수도생활을 하였는데 20세에 상통천문(上通天文)하고 하달지리(下達地理)하며 중달인사(中達人事)하는 영통(靈通)의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 뒤 의술·점복·풍수지리서를 탐독하면서 ...

2025-10-08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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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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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영산법화종

대한불교영산법화종의 창종자 이법화(李法華)는 1912년 12월 27일 경기도 시흥에서 태어났다. 유교집안의 둘째아들이었던 그는 일찍 결혼하여 가정생활을 꾸렸으나 불법에 뜻을 두고 1939년 27세 되던 해 『법화경』에 귀의한다. 박한영, 안진호, 권상로 등에게 법화경의 강의를 들었으나 깊은 뜻을 쉽사리 이해 할 수 없어서 태백산에서 홀로 수행한다. 그리고 일련계(日蓮系)의 일본승려 후지이 닛타츠(藤井日達: 1885-1985)의 문하에 입문 출가한다. 그러나 세계대전에서 일본의 패망을 예언하였다가 세 번이나 투옥되기도 하였다. 화엄경의 ‘초발심시 변성정각(初發心時 便成正覺)’의 문구가 항상 뇌리를 떠나지 않았던 그는 19 ...

2025-10-08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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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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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

『한단고기』의 「고구려국 본기」에 따르면, 을밀은 고구려 안장왕 때의 조의선인으로 뭇 사람들의 존경을 받아 따르는 무리가 3천 명에 이르렀으며, 평양에 을밀대를 세워 그곳에 살면서 하늘에 제사 드리고 무리들과 함께 수련하였다고 한다. 또 그가 지은 다물흥방가(多勿興邦歌)라는 노래를 무리가 함께 불렀다고 한다. 조의(皂衣)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정의가 있다. 하나는 고구려의 하위 관등으로, 『삼국지』 위지 동이전 고구려조에서 “여러 대가들은 역시 스스로 사자, 조의, 선인을 두었다[諸大加亦自置使者皂衣先人].”고 한 데에서 연유한다. 이로 보건대 본래 제가(諸加)들의 가신적 성격이 강하였으나, 이후 왕권에 편입되면서 신료적 ...

2025-10-08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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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도솔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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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녀교

윤도솔행(尹兜率行)은 윤선녀교를 창교한 윤선녀(1906-1994)의 법명이다. 그녀는 1906년 9월 24일 익산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결혼하여 슬하에 5남매를 두고 가사에 전념하였으나 그녀의 나이 26세 때부터 도에 뜻을 두고 20여 년간 걸식을 하며 기도생활을 계속하였다. 그러던 중 영문(靈門)이 열기 시작하여 사람들의 전생사(前生事)를 이야기 하는가 하면 까치와 대화를 하기도 하였다. 치병과 예언이 적중하여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였는데, 8.15해방과 6.25전쟁이 일어날 것을 미리 예언했다고 한다. 그녀의 본격적인 종교활동은 1961년 5월 15일로 잡고 있으나 점복활동은 그녀의 나이 26세 때부터였다. 그 ...

2025-10-08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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