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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신령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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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환은 1954년 통일교 창립 당시의 초기 멤버이다. 이후 통일교로부터 갈라져 나와 ‘우주신령학회’를 창립하였다. 자신들을 우주신(宇宙神)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통일의 진리와 방법의 지도본부라고 자칭하면서, 세계종교통일운동, 세계평화통일운동, 우주 UFO 교령기지(交靈基地) 건설운동 등을 전개한다고 하였다. 그는 또한 ‘UFO 인도 안착 본부’를 설립하여, 새로운 우주시대인 21세기 초에 UFO를 한반도에 인도·안착시키고 평화통일의 성업을 이룩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종교문제연구소, 1997) 『한국불교총람』(대한불교진흥원, 2008) 대한불 ...

2025-10-08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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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은혜수덕창해수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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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성녀(1855∼?, 전주이씨)는 전라북도 남원의 요촌동에서 출생하여 결혼 후 아들을 낳기 위해 요천천(堯川川)의 용왕에게 1회 3일간, 1개월에 세 번씩 10년 동안 기도를 드린 결과 득남하였고 용왕의 영감을 받아 1895년 이 교를 창립하였다. 2대 교주는 부성배, 3대 교주는 김현덕(金賢德)이다. 김현덕은 일명 용화할머니라고 하는데 창교자인 보호성녀의 손녀이며, 24세 때 입교하여 신앙생활을 하다 교주가 되었다. 1935년 전주시 덕진동 1가의 덕진연못가로 이주한 김현덕은 거기에서 20년 동안 구도한 끝에 용왕의 현몽으로 연못가에 법당인 천문각(天門閣)을 짓고 용왕의 계시를 포교하였다. 김현덕이 죽은 뒤 그의 아 ...

2025-10-08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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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대도 지상천국건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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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청림은 1973년 계룡산 머리봉 밑 삼일전(三一殿)에 들어가 수련을 시작했다. 이 삼일전은 누군가가 예언비서의 비결에 따라 기둥이 24개, 서까래가 72개, 문은 4개를 만들어 옥황상제가 거처할 집으로 지어놓고 문을 잠가두었다고 한다. 이 집을 자기를 위하여 지어놓은 집이라 생각하고 1981년 5월 ‘지상천국건설원(地上天國建設園)’이란 간판을 걸고 종교활동을 시작하였다. “하나님을 보여줄테니 모두 모아라”라는 신문광고를 내고 1981년 8월 19일 삼일전 앞에 십자가를 세우고 ‘인류평화대법회’를 열었다. 이날 신도 50명과 구경꾼 50명 등 1백여 명이 모여든 사람들에게 그가 보여준 하나님은 대자연이였다. 그는 신이란 ...

2025-10-08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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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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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 천도교

동학 천도교에는 두 종류의 경전이 있다. 『동경대전』과 『용담유사』가 그것이다. 이 두 경전 중 『용담유사』는 한글 가사로 된 경전이다. 『용담유사』는 가사라는 율격을 지닌 시문(詩文)의 형태를 띠고 있다. 『용담유사』가 집필이 되던 19세기 중반은 한문과 한글이라는 두 가지의 문자체계가 있었다. 한글은 일반적으로 언문(諺文)이라고 하여 천대를 받았지만, 우리의 정신과 정서가 깃들어 있는 우리글이기 때문에 우리의 정서를 표현하는 시문(詩文)을 쓰는 데에는 매우 적합한 문자이다. 최제우는 바로 이와 같은 면을 깊이 인식하고, 당시의 일반 대중들에게 자신의 가르침을 보다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전하기 위해서 한글로 표기를 하 ...

2025-10-08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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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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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교회

조셉 스미스 시니어와 루시 맥 스미스의 슬하에서 11명의 자녀 중 5번째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성서를 공부하고 기도 생활 등을 통해 가정에 종교적인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러나 어린 시절에 조셉 스미스는 정기적으로 교회에 출석하지는 않았다. 감리교회에 좀 더 관심을 가지기도 했지만, 기독교의 여러 교파들이 공존하는 상황에서 어떤 교파의 신앙이 올바른 것인지를 두고 고민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14세 때 기도 중에 그리스도가 나타나 “수세기를 거치면서 기독교가 타락했으며, 참된 복음을 회복하기 위한 예언자이며 종으로서 조셉 스미스가 선택되었다.”는 말을 듣는다. 1823년에는 모로나이라는 천사의 계 ...

2025-10-07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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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강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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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강교의 창립자인 이원영은 전북 임실 출신으로, 그의 아버지는 유명한 의병대장인 이석용(李錫庸)이었는데, 그는 아버지 때문에 일제로부터 극심한 탄압을 받았지만 아버지의 충의를 창명(彰明)하려는 뜻으로 고생을 극복하였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어려운 생활로 방황할 때 김항의 『정역』원리를 접하였고, 오음주의 수련에 의해 신비한 체험을 한 후 종교활동을 시작하였다. 해방 후 그가 행하는 오음주송으로 질병이 나았다는 소문이 나면서 한때는 수백 명의 신도를 거느린 교주가 되기도 하였다. 이원영의 교단은 따로 교단명칭을 내 걸지 않았는데, 한때 이원영이 아버지의 충의비를 세우고자 질요강을 만들어 교인들로 하여금 이를 매각하도록 했 ...

2025-10-07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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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중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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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대도

‘오중(午中)’이란 선천과 후천이 교역하는 과도기를 말한다. 큰 위기는 거꾸로 큰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대운(大運)’이라는 말을 덧붙여서 ‘오중대운’이라고 하였다. 오중 시대는 하루로 치면 오전과 오후가 바뀌는 정오와 같고, 일 년으로 치면 여름과 가을이 바뀌는 때이며, 원회운세(元會運世)의 법칙에 따른다면 사회(巳會)에서 미회(未會)로 넘어가는 중간 단계이니 오행(五行)으로 말하자면 화생토(火生土)와 토생금(土生金)으로 변화되는 시기이다. 오중의 특징은 하루 중의 한낮과 같아서 그림자가 지지 않는 가장 광명한 시기이며, 시계의 시침과 분침이 하나로 합하듯이 가장 평등한 시기이다. 또한 1년의 계절로 보면 덥지도 않고 ...

2025-10-07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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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묘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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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는 중국의 제후 묘제인 5묘제 수용 이전부터 나름대로의 묘제를 시행하였다. 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를 모시는 시조묘(始祖廟)나 시조의 탄생지인 나을(奈乙)에 설립한 신궁(神宮) 등이 그것이다. 삼국 통일 이후 중국의 묘제를 수용한 신라는 통일의 주역인 태종 무열왕과 문무왕을 중심으로 묘제를 개편하였다. 이는 최초의 김씨 왕인 미추이사금(味鄒尼師今, 262∼284)을 시조로 중앙에 배치하고, 무열왕과 문무왕을 천훼(遷毁)할 수 없는 것으로 고정시키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신문왕(神文王, 681∼692)이나 혜공왕(惠恭王, 765∼780) 대에는 이러한 신라의 독특한 오묘제가 정착되었다. 이후 신라 하대에는 무열왕과 문 ...

2025-10-07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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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묘 전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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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제 9중앙 전도관장이었던 유도순이 전도관의 신학원에서 두 권의 박태선 설교집을 근간으로 강의한 교재를 정리하여 책 『오묘』를 만들었다. 전도관 관장이나 전도사들은 1970년대 초부터 얼마간 이 책으로 교육을 받았으나, 오래 사용되지는 않았다. 이 책의 핵심 주제는 『박태선 설교 2집』의 내용과 같이 ‘동방의 의인,’ ‘이긴자,’ ‘감람나무,’ ‘심판,’ ‘14만4천,’ ‘천년왕국,’ ‘피,’ ‘이슬성신,’ ‘육신영생’ 등이라고 할 수 있고, 결국 육신영생 실현과 말세의 구세주 사명자는 박태선임을 증거 하는 것으로 보인다.

2025-10-07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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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내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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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성락교회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인 ‘전도’를 목적으로 1988년 창간되었다. 서울성락교회의 홈페이지에 따르면 “사도행전 17장 11-12절에 기록된 베뢰아 사람의 신앙을 모본(母本)으로 하여, 성령의 감동으로 성령을 깨닫고 성경을 닮는 신앙운동을 지향”한다고 한다. 2016년 현재 타블로이드판 4면의 크기로 격주 발행되며, 김기동 목사의 설교와 서울성락교회 성도들의 간증·신앙칼럼·소식 등을 게재하고 있다.

2025-10-07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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