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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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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원불교에서 교단의 최고 지도자인 종법사의 취임과 퇴임을 성대히 축하하는 행사를 말한다. 대(戴)란 새 종법사의 취임을 봉대 축하한다는 뜻이며 사(謝)란 종법사가 임기를 마치고 퇴임함을 의미한다. 대사식은 신ㆍ구 종법사의 취임과 퇴임이 동시에 거행될 경우에 있게 된다. 종법사 궐위로 인한 추대나 임기를 거듭할 경우에는 추대식만 거행하게 된다. 원불교에 있어서 법통의 전승방식이 개인에서 개인으로 전해지는 인적 단전(單傳)이 아니고 12년 1회 36년 1대로 하여 기간으로 법통이 전수되는 공적 전승인 공전(共傳)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를 원불교 교헌에서는 “법계(法系)는 인적 단전(人的 單傳)으로 하지 아니하고 每 36年 ...

2025-07-03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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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는 담담한 물과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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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대도

『성훈통고』는 이토암 선생의 핵심적 가르침이 나타나 있어서 중요한 전적이지만 한문으로 되어 있어서 일반인들이 읽기에 어려움이 있다. 이에 번역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는데 이를 완역(完譯) 하지 않고 토암 사상의 핵심적인 부분만을 추려 내어 총 15장 342절로 편역(編譯)해 내었다. 제1장 도성보(道聖寶) 제2장 의성(義誠) 신앙 제3장 도덕 제4장 수도 제5장 대겁운의 임박 제6장 구원관 제7장 포교-시행방편(時行方便) 제8장 충・효・성경 제9장 가화 제10장 청결 제11장 언행중여산(言行重如山) 제12장 남녀평등 제13장 예법 제14장 약사여래 제15장 대지명당(大地明堂)이다. 너무 요점만 추려내다 보니 방대한 자료가 ...

2025-07-02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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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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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의 전신은 우규(禹黊)로부터 비롯된다. 즉 우규가 금강산에서 김도암(金道岩)이라는 자로부터 선도의 전수를 받고 선도교라 칭하여 포교하였다. 이후 1928년 보천교 전 간부였던 이달호(李達濠)와 김응두(金應斗) 등이 발기하여 당시 경성부 낙원동에 천궁을 봉안하고 비로소 ‘대도교’라 칭하여 포교하였다. 당시는 교도수가 약 5천 명 정도 되었으나 1933년 말 경성부 숭인면 돈암리 184로 사무소를 옮겼다. 1934년 8월말 교도수는 2860여 명(남1860명 여1000명)이었다. 종지는 선도를 닦아 자아의 본령을 발하여 자기의 천성을 밝히고 천하에 포덕하는 데에 있었다. 참고문헌 : 『朝鮮의 類似宗敎』(村山智順 저 최 ...

2025-07-02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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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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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이나 마을과 같은 일정한 공간을 전제로 하여 그 공간 및 공간에 속한 사물이나 인간들 공간에서 이뤄지는 생업과 같은 삶의 활동 등과 관련된 다양한 대감신이 존재하고 있다. 대감신은 어느 지역에서나 욕심이 많고 한 집안에 재복을 가져다주는 신으로 그려진다. 한편 대감신은 인간에게 재수와 복을 가져다주는 존재인 동시에 인간에게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는 존재이다.

2025-07-02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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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백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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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룡과 그의 아내 김판례가 1946년 대전 보문산에서 창립한 단군계 신종교.

2025-07-02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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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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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단군기원은 1907년 나철이 대종교를 일으키면서 연호로 채택하였으며 48년 대한민국정부 수립과 함께 이를 공용 연호로 하는 법률이 반포되기도 했다. 1962년 1월 1일 폐지되었었으며 이후 서력기원이 공용 연호로 쓰이게 되었다.

2025-07-01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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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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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율종의 제9조로서 종남산에 주석했던 도선율사(道宣律師 596-667)가 개창한 종단이다. 상부종(相部宗)이나 동탑종(東塔宗) 등의 계율종단이 후대에 쇠퇴한 데 비해 남산종은 계속 번성하였다. 도선은 지수(智首)로부터 10년간 『사분율(四分律)』을 배워 626년부터 645년 사이에 『사분율산번보궐행사초(四分律刪繁補闕行事鈔)』 『사분율산보수기갈마소(四分律刪補隨機褐磨疏)』 『사분율주계본소(四分律注戒本疏)』 등 3대 율소와 『사분율습비니의초(四分律拾毘尼義鈔)』 『비구니초(比丘尼鈔)』를 저술하는데 이 다섯 개의 주석서가 남산종의 5대 소초(疏鈔)가 된다. 우리나라에 전해진 경로나 단일종단으로서의 성립도 불분명하지만 1406년 ...

2025-07-01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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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정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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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나정련은 1882년 9월 15일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칠동리 금곡에서 나철의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호는 염재(念齋). 어려서 한학을 공부하였으며 가업에 종사하다가 1905년 경성 초동으로 이사하였다. 1910년 부친이 대종교를 중광하자 입교하였고 부친을 시봉하였다. 1911년 영계(靈戒)와 참교(參敎)를 받았다. 1914년 만주 연길현 의란구로 이주하여 계몽운동에 참여하였고 1916년 지교(知敎)를 받았다. 1920년에는 구룡(九龍)학교의 교장으로 임명되어 2년간 민족교육에 헌신하였다. 1941년에는 당시 대종교총본사가 있던 옛 발해수도 영안현 동경성(東京城)으로 이주했으며 경의원 참의(參議)에 피임되었다. 1942년 ...

2025-07-01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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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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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화동대도

김형규는 1891년 3월 29일 경남 합천군 쌍벽면 안계리에서 출생했다. 27세때 보천교에 입교하여 치성 절차 주문에 따라 열심히 공부를 했으나 보천교의 타락과 신풍운동이 일어나 대립된 양상을 보고 보천교에서 탈퇴하여 독자적인 수양생활을 계속했다. 이후 1947년 해인사에서 보화교 교주였던 김환옥을 만나게 된다. 그는 저녁 치성 중 ‘백의초상관음불(白衣肖像觀音佛)’이란 소리가 크게 울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앞에 있는 부처가 바로 김환옥의 얼굴이었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김환옥을 받들기로 마음먹고 보화교에 입도하게 되었고 김환옥에게서 ‘대봉’이라는 호를 받게 된다. 1954년에 김환옥이 사망하고 1959년에 원평 보화교 ...

2025-06-30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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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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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사

용화사(龍華社)를 창립한 김종용(金宗用 1901-? 호 槿下)은 1901년 10월 1일 전라남도 무안군 지도면 전증도에서 탄생했다. 23세 되던 1923년에 일제 경찰에 들어가 주로 보천교를 사찰하는 임무를 맡아하다가 뜻한바 있어 경찰직을 사임하고 1934년 보천교에 입도했다. 그리하여 차경석의 상담역을 맡아 일했다. 차경석이 죽고 보천교가 해산되자 홀로 증산 강일순을 신봉하는 생활을 했다. 1945년 해방 후 이상호의 대법사에 들어가 총무직을 수행하기도 했으나 이곳에서 나오게 된다. 그리하여 1959년 김제군 금산면 용화동에서 용화대도(龍華大道)를 창설했다. 그 후 간부 100명의 조직에 착수하여 1년 여간 추진하였으 ...

2025-06-30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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