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모악산
≪금산사지(金山寺誌)≫에 따르면 본디 높은 산을 의미하던 ‘엄뫼’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어머니산이라는 뜻으로 의역하여 ‘모악(母岳)’이라 했고 ‘큼’을 음역하고 ‘뫼’는 의역해서 ‘금산(金山)’이라고 적었다고 한다. 구전에는 모악산 꼭대기에 아기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닮은 큰 바위가 있어 모악산이라 했다고도 한다. 예로부터 미륵신앙의 본거지가 되었다. 서쪽 사면에 있는 금산사(金山寺)는 599년(백제 법왕 1)에 창건된 것으로 통일 후 신라 불교의 5교9산(五敎九山) 중 하나가 되었으며 국보 62호인 금산사 미륵전을 비롯하여 여러 보물을 소장하고 있다. 옛 기록에는 모악산에 80여 개소의 암자가 있었다고 하지만 현 ...
2025-07-08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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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전거리
굿 과정에서 굿판 주변으로 물려 놓았던 잡귀와 잡신들을 종류별로 모셔 놀려 보내는 거리이다. 마당에는 뒷전상이 차려진다. 뒷전상에는 떡 나물 빈대떡 밥 청수 사과 배 감 산자 좁쌀 한 홉 생계란 세 개 북어 세 마리 술 석 잔 등이 차려진다. 무당은 평복 차림에 오른손에는 부채 왼손에는 북어를 각각 들고 만수받이를 한다. 지역에 따라 뒷전거리를 마당굿(경기도 화성)·수부굿(충청도 부여)·거리굿 또는 시식(施食)풀이(부산 및 경상도)·도진(제주도)·거리풀이(강원도)·뒷전풀이(평안도)라고 불린다. 뒷전에거리에 모시는 잡귀와 잡신으로는 걸립·터주·지신할머니·수광대(首廣大)·서낭·사신(使臣)·맹인·하탈(下頉)·말명·객귀(客鬼) ...
2025-07-07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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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팥죽
동지에는 팥죽을 쑤어 먹는데 참쌉가루를 쪄서 새알 모양으로 만든 떡을 죽 속에 넣어 먹는다. 이렇게 심(心)을 삼은 떡을 새알심이라고 한다. 공공씨(共工氏)의 바보 아들이 동짓날에 죽어 역질 귀신이 되었는데 생전에 팥을 두려워했으므로 팥죽을 쑤어 물리쳤다고 한다. 팥죽꿀에 타서 시절음식으로 먹기도 했고 시식(時食)을 삼아 사당에 고사하기도 한다. 팥죽 물을 대문에 뿌려 액을 막기도 한다. “팥죽(豆糜)이 악귀를 물리친다[壓勝燐]”는 속신이다. 굳이 붉은 팥죽을 쑤는 것은 귀신이 붉은 색을 두려워한다는 오랜 속신에서 비롯한 것이다.
2025-07-07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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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강목
국학
단군조선부터 고려말까지를 다룬 통사이다. 20권 20책의 필사본. 본편 17권 부록 3권으로 구성되었다. 편년체로 쓰여졌으나 주자의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의 형식을 따라 강(綱)과 목(目)으로 서술되었다. 저자가 45세 때인 1756년(영조 32)부터 편찬을 시작해 3년 만에 초고를 완성했다. 초고 완성 후 스승 이익(李瀷) 친구 윤동규(尹東奎)·이인섭(李寅燮) 등과 서신으로 의견을 교환하고 수정 보완 작업을 가함으로써 편찬을 시작한 지 22년 만인 1778년에 일단 완성을 보았다. 서문에 밝힌 책의 편찬 동기는 기존의 우리나라 역사서들이 사료의 수집과 서술이 요령에 문제점이 있으며 의례(義例)에 어긋났고 시비를 ...
2025-07-07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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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진언종참회각총본원
1967년 대한불교진각종의 창종자 손해봉이 사망하는데 이보다 앞서 손영진(孫榮振)이 교권을 이어 받고 대한불교진언종참회각총본원으로 교명을 바꾼다.
2025-07-07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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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삼론종
1989년 이대산 김석파 등의 주도로 창종된 불교종단.
2025-07-07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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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교회
조형하(趙衡夏)가 유교진흥의 목적으로 1923년 11월 본회 창립총회를 열어 창립된 유교계 신종교.
2025-07-03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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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사증산교
안세찬이 창립한 증산도의 초기 이름
2025-07-03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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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각교
각세도 도주 이선평은 포교를 시작한 후 사관제도와 삼십암제를 두어 교단의 체제를 정비하고 각 지부들을 관리하였다. 사관은 동서남북의 각 방면에 두었으며 자신의 제자 중 뛰어난 인물 4명을 선발하여 각 관의 도주로 임명하였다. 초기에 각세도남관에는 김해제가 임명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각 관에 대한 본부의 통제가 원활하지 못하였고 이선평이 살아있을 때부터 내부에는 여러 가지 분란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남관 도주였던 김해제는 이선평 생전에 ‘천인교’를 설립하여 분파하게 되고 이선평은 다시 장명성을 남관의 도주로 임명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장명성은 이선평이 사망한 후 ‘대각교’를 창립하여 독립한다. 장명성이 사망한 후에 ...
2025-07-02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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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민회
본회는 한국전쟁 후 조용승이 조직한 ‘수국회(守國會)’가 전신이 된다. 수국회의 강령은 ①민족적 절대불굴의 영원수국정신통일(永遠守國精神統一)과 ②공산주의와 침량(侵*)세력에 절대불복종의 정신통일을 목적으로 ③국부민강(國富民强) 도덕사회 건설을 도(圖)함이다. 수국회는 1955년 장경래(張景來)·이수기(李壽基)·심정섭(沈貞燮) 등과 협의하여 ‘단민회’를 형성한 뒤 단민회에 흡수되었다. 본회의 이념은 어떻게 하여 영원한 독립국가로서 훌륭한 민족이 될 수 있을까에 있으며 이는 민족단결과 정신통일에 의해 가능하며 이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국조 단군성조를 숭봉하여야 하며 이것이 성취되면 전 민족의 단결과 통일된 정신으로 영원한 독 ...
2025-07-02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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