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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삼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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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증산교

미륵증산교(彌勒甑山敎)를 창립한 정삼룡(鄭三龍, 1910~?, 일명 아지보살, 정보살)은 1910년 충청남도 서산에서 출생했다. 어려서부터 성격이 활달하여 여장부로 불렸으며 신기마져 있었다. 1954년 신병(神病)으로 36일 동안 기도를 하던 중 강일순의 영과 통령(通靈)이 되어 강일순의 도를 전하라는 천명을 받았다고 하며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치병활동을 했다. 1969년 도생들을 모으라는 강일순의 계시를 받았다고 하며 자신은 강일순의 화신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논산군 두마면 석계리에서 본교를 창립하고 교조를 강일순, 자기는 2세 교주라 했다. 이해에 그녀는 세계 24개국 대통령이 그에게 통치권을 이양하는 항복문서를 받 ...

2025-10-09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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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감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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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층신앙

조선 선조 때 이심(李沁)과 정감(鄭鑑)이라는 자가 비로대에서 한 대화체 형식의 책을 말한다. 장차 이 씨에 뒤를 이어 정(鄭)씨, 그 다음에 조(趙) 씨와 범(范) 씨가 각각 한양, 계룡산, 가야산 완주에서 몇 백 년씩 왕조를 세워 다스리게 되며, 왕조가 바뀌는 변혁의 시기에 큰 난리가 날 때면 이를 피하게 될 피장처(避藏處)인 십승지지(十勝之地)를 열거하고 있다. 『정감록』에는 도선(道詵), 무학(無學), 토정(土亭), 정북창(鄭北窓) 등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으로 볼 때 복수의 비결류가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정감록』은 유일한 참위서의 정본(正本)이라기보다 여러 예언서의 집성인 셈이다. 인조실록 6년 1월 3일에 ...

2025-10-09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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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산단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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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사당의 창립자인 이진탁은 41세 되던 1900년에 백두산에 입산하여 단군의 영적인 계시를 받았다고 한다. 그 후 구월산과 지리산, 계룡산 등을 돌아다니며 기도수련을 하였으며, 계룡산 신도안으로 이사하여 독자적인 단군신앙을 하다가 1909년 서울에서 나철과 정훈모 등에 의해 단군교(대종교)가 창립하는 것을 보게 되었고, 1913년에는 동지 박내인(朴乃人)의 협력으로 자택에 단군전을 세우게 된다. 작산단군전은 1913년에 설립되어 1930년에 정훈모에 의해 설립되는 시흥단군전보다 17년 앞선다는 점에서 근대 이후 한국 단군전의 효시가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진탁은 단군을 모시면서도 동시에 황제와 공자까지 모셨으며 ...

2025-10-09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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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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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진리회

대순진리회 『전경』에 의하면 “천존과 지존보다 인존이 크니 이제는 인존시대라。마음을 부지런히 하라.”(교법 2장56절)고 한 데서 지금은 인존의 이념이 지배하는 시대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인존사상은 전통적으로 일컬어온 인도주의(人道主義), 인본주의(人本主義), 혹은 인간중심주의(人間中心主義)와는 맥락을 달리하고 있다. ‘인존’의 이념은 기본적으로 유신론(有神論)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또한 신과 인간이 조화(調化)를 이룬 신인간의 모습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순사상의 이상적 인간관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대순지침』에 따르면 “우리 대순진리의 인존사상이 바로 평화 사상이다.”라고 하여 인존이 실현될 때 진정한 평화 ...

2025-10-08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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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불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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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불도

인불도의 창립자인 전판철은 어려서부터 앓던 지병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 후 치병의 능력이 생겼는데, 그는 환자의 손을 잡고 안마하면서 ‘인불대신’이라는 주문을 외우고, 환자로 하여금 이 주문을 외우게 하면 대부분의 병이 나았다고 한다. 따라서 인불대신은 주문이나, 이후 전판철을 따르는 신자들은 그를 ‘인불대신’이라고 칭하게 되며, 신앙의 대상으로 모시게 된다. 특히 전판철의 사후에는 일시적으로 단군성조의 위패를 모시던 사당을 ‘인불성전’이라고 고치고 전판철의 영정을 모시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한국민족종교총람』(한국민족종교협의회, 1992) 「전판철의 인불도」(김홍철, 『원광』, 1990년 4월호)

2025-10-08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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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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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대도

어머니의 꿈에 옥황상제가 나타나 하얀 솜을 많이 주기에, 공경하여 품에 안는 꿈을 꾸고 이승여를 낳았다. 집안이 가난하여 배움에 나아가지 못하였으나 어릴 때부터 세상 이치와 법도를 스스로 깨우치는 일이 많아 주위를 놀라게 했다. 24세(1897년)에 서자암과 결혼한 후 홀로 세상이치를 궁구하더니 33세(1906년)에 결정적인 종교적 체험을 통해 대도를 자각한다. 이 때 토암(土庵)이 깨달은 대도는 ‘선후천 교역기에 타락된 인간의 도덕성을 건곤부모인 자신이 개화(開化)함으로써 큰 겁운에 싸여 죽어가는 인류를 구원하고, 나아가 우주의 화평을 이룬다는 것’이었다. 그 후 자신은 금강도사라 하고 자암은 연화도사라 하면서 포덕에 ...

2025-10-08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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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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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교학

이능화(1869∼1943)의 자는 자현(子賢)이고, 호는 간정(侃亭)·상현(尙玄)·무능거사(無能居士)다. 본관은 전주(全州)로 홍문관교리와 이조참의, 군국기무처 회의원을 지낸 개화파 이원긍(李源兢, 1849~1919)의 아들이다. 어려서 한문을 수학하였고 20여 세에 한양에 왔다. 당시 어지러운 내외정세를 알고 국제문물에 접하기 위하여 불어·영어·일어·중국어 등 외국어 습득에 전력하였다. 1895년 관립법어학교에 입학하였다. 1897년 졸업도 하기 전에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불어를 가르쳤다. 1906년 10월 관립한성법어학교 교장으로 임명되었으며, 이어서 1909년 관립한성외국어학교로서 새로운 학제가 시행될 때 ...

2025-10-08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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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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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관

박태선이 전국에 수십 개의 전도관을 개관하던 1956년 11월 11일, 서울 중앙 전도관에서 박태선은 자신을 ‘감람나무,’ ‘이긴자,’ ‘동방의 의인’으로 공식 선언하는 행사를 거행하자 교인들도 이 선언을 신앙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기독교 이긴자는 『성경』계시록 2장 26절에 언급된 “만국을 다스릴 권세를 맡은 자”에서 비롯되었다. 그 후 그들의 신앙은 박태선을 예수를 대신한, 혹은 예수와 같은 구세주로 믿는 수준으로 발전하였다. 전도관의 영향을 받은 조희성, 김풍일, 일부 신종교 창교자도 스스로를 ‘이긴자’라고 주장하였다.

2025-10-08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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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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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종교와 철학 등 원불교와 관련 있거나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판단되는 내용도 수록했다. 『원불교대사전』은 총 1310페이지로 4536개 항목으로 대항목 114, 중항목 409, 소항목 4013으로 나눠 집필했다. 참여 집필위원은 32명, 첨부 사진은 135장이다. 『원불교대사전』은 원불교100년기념성업회 학술분과 사업으로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에서 2013년 편찬했다. 출판은 원불교출판사에서 했다.

2025-10-08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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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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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용이 창립한 용화사의 초기이름.

2025-10-08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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