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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하생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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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하생경』을 중심으로 하는 신앙이다. 말겁의 시대에 도솔천에서 미륵이 인간 세상에 하생하여 민중을 구제한다는 신앙을 말한다. 미륵신앙은 수나라시기부터 알려지기 시작해 당나라시기에 신앙되기 시작했고 미륵하생신앙은 중국에서는 원나라시기에는 미륵하생신앙을 중심으로 민란들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청나라까지 이어진다. 대표적인 것이 백련교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기 절간 노예인 무적의 미륵운동 만적과 만소의 궐기가 있었고 조선 숙종시기에 승려 여환과 무녀들의 비밀결사가 미륵신앙을 내세워 민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민중들에게 미륵은 혼란한 세상을 구제할 구세주로 신앙되었다.

2025-07-08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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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대불성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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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대도금강연화종

미륵대도금강연화종 창조주인 옥제천지님(나진홍)의 출생(음력 4월 28일)을 기념하는 봉축법회.

2025-07-08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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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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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는 설립일 및 창교자 등이 불명확하나 1985년 『한국신종교 실태조사보고서』(한국종교학회 1985)에서 본교의 홍보전단지를 인용하여 교리 및 사상 등을 보고하고 있어서 그 내용을 알 수 있다. 본교는 진인도(眞人道)라고도 자칭하고 있으며 ‘새마음 새생활로 새인생길 확립하여 진실세상 이룩하세’라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또한 ‘진실한 불생(不生) 불변(不變) 불멸(不滅)의 안식처는 본래의 마음’이라고 하고 ‘우리는 무법을 찾아 죄업을 닦아서 육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 진아(眞我)를 다시 찾고 밝고 무아무진한 지혜를 계발하여 진실의 기준을 세워 그것을 실행하여야 한다. 그 기준은 무법(無法) 진아(眞我)이다’라고 한다. ...

2025-07-08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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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극대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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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범은 1906년에 천도교에 입교 한 후 신앙하다가 동양학을 폭넓게 포괄하는 별파를 창립할 목적으로 1926년 무극대도교(无極大道敎)를 창립하게 되었다. 본교의 사상은 천도교의 교지를 근거하여 포덕천하·광제창생·보국안민을 표어로 했다. <참고문헌> 『朝鮮의 類似宗敎』(村山智順 저, 최길성·장상언 공역, 계명대학교출판부, 1991)

2025-07-08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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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극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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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의 창교주는 단군성주교를 창립한 강승태(姜昇泰 1895-1960) 이다. 1960년 강승태가 사망하고 나서 김근보가 종통을 이어 단군성주교가 되고 김성례가 동도법종금강도를 별립해 나가자 김순옥(金順玉)·홍희식(洪喜植) 등이 중심이 되어 제주도 제주시 봉개동 명도암에서 이 교를 만들었다. 강승태를 교조로 하고 1960년 말경에 단군천선무극대도(檀君天仙無極大道)라는 이름으로 문교부에 등록하였다가 1965년에 무극대도로 교명을 바꾸었다. 교주나 대표직이 없고 건도(乾道: 남) 12인과 곤도(坤道: 여) 24인이 합의하여 교를 운영해나가나 편의상 대표를 김순옥으로 하였다. 본교의 신앙의 대상은 옥황상제(증산 강일순) 이다. ...

2025-07-08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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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경성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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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정교

성야에는 진태양인 「한옛새해」의 자리에 「경존궁전」이 있고 거기에 경존 본존 성존 인존이 삼위일체로 있다. 「경존」은 망성경야에 스스로 계시는 세스팔다스 계옴이고 「본존」은 전유대계와 동성야를 통일 시키는 세스팔다스 마쁜내 계옴이며 「성존」은 성야에서 경존인 본존을 따라 대계에 강림하여 성야의 역사를 현세에다 이루는 세스팔다스 오베체빠 계옴이고 「인존」은 현세 즉 대계의 역사를 성야에다 이루는 세스팔다스 후일쓰맆 계옴이라 한다. 만경성야는 본래의 세계로 알려진 소위 인간과 사물의 인식현상 저쪽에 상존하는 그런 세계가 아니라 절대와 실상 및 본래와 존재를 끝없이 현실화시키는 ‘전유대계의 출산본래처’로 본다.

2025-07-08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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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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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심회

정심회 마음수행의 참다운 목적은 인간이 받아 나온 본래의 마음을 돌이켜서 자기안의 신성(神性)을 찾는데 목적이 있다. 수정같이 맑고 옥같이 청아 마음이 정심회에서 추구하고 있는 참다운 마음이요 진리의 실천이라고 한다.

2025-07-07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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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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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층신앙

마을을 수호하는 각 신령을 믿고 그에 정성을 드리는 의식. 내용 : 고대에는 지금과 같은 마을이 없었다. 원시공동체-부족국가에서 중앙집권체로 나아가면서 마을이란 존재는 사실 없었다. 현재 우리가 보는 마을(촌 동 읍 골)은 고려말 조선초에 초기형태로 나타났고 18세기 이후 농업생산력의 증대와 생산유통의 발달로 형성된 민촌(民村)에서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낸다. 물론 조선후기 마을 신앙의 근원은 고대의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 신앙대상이나 신앙내용은 사뭇 다르다. 고대의 신앙 대상은 천신과 산신 화신(火神)이 주였고 이는 이후로도 지속된다. 조선 후기 마을은 분촌(分村 민촌)이 되면서 지역의 각이한 신앙대상을 모시게 ...

2025-07-07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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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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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나 고려의 신앙 조직이었던 향도(香徒) 등의 유풍을 이어 마을 주민간의 상호 협력을 목적으로 조직된 촌락 조직으로 공동노동을 주로 수행하였다. 향도는 고려말 조선초에 이미 불교적 신앙을 탈피하여 마을이나 지역공동체의 역할 조직으로 변모하였다. 향도는 이후 마을의 공동 노동조직인 두레나 장례 시의 상부조직인 상두꾼 조직 등으로 분화하였다. 두레의 공동노동의 형태는 모내기·물대기·김매기·벼베기·타작 등 논농사 경작 전 과정에 적용이 되었으며 특히 많은 인력이 합심하여 일을 해야 하는 모내기와 김매기에는 거의 반드시 두레가 동원되었다. 또한 마을의 공동 잔치로 풋굿이나 호미씻이와 같은 논농사 이후의 놀이도 함께 하였다. ...

2025-07-07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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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회중앙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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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대전』『용담유사』 『동경대전 연의』 『용주선생봉명서』 『해월선생 법설주해』『금병산도솔천』『동도전서」 『통훈가사』등이 있다. 참고문헌 :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한국종교학회 1985)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류병덕·양은용 원광대학교종교문제연구소 1997) 「동학회중앙본부」(김홍철 『원광』 1990.10)

2025-07-07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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