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남선단군전
남지훈은 1918년 충남 한산에서 출생하여 예산에서 성장했으며 결혼했다가 20대에 남편과 사별하고 친가에 돌아와 산사를 돌아다니며 기도생활을 하던 중 단군의 현몽을 얻고 그의 계시에 의해 단군전 건립을 계획하였다. 1958년 계룡산에 주택을 세우고 동쪽 산 기슭에 단군전을 착공하였다. 이때 서울 사람 홍정초의 협조를 받았으나 경비 부족으로 중도에 중단하였다. 이것을 광명도의 창립자인 정요순이 교인들을 동원하여 내부시설과 외부환경을 정리해 주어 1964년 3월에 봉안하게 되었다. 그러나 광명도의 정요순이 이곳을 거점으로 광명화운동을 전개한다고 단군 앞에 교인들을 모아놓고 염파방송을 하자 이를 물리쳐 버렸다. 따로 신도를 ...
2025-07-01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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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철유서
대종교
나철은 1916년 8월 4일에 구월산 삼성사(三聖祀)에서 천제를 올린 다음 대종교의 도통을 김교헌에게 전수한다는 내용을 남기고 오전 11시 폐기법(閉氣法)으로 별세하였다. 이때 그는 유서를 남기는데 유서는 ①순명삼조(殉命三條) ②유훈(遺訓:密諭) ③전수도통(傳授道通) ④유계장사칠조(遺誡葬事七條) ⑤가중유서(家中遺書) ⑥별봉유서(別封遺書) ⑦이세가(離世歌) 등이 있으며 이 외에도 별봉(別封)한 유서가 63편이 있었고 중광가(重光歌) 54장(章)이 있었다. 참고문헌 : 『한국신흥종교총람』(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07-01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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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한
개천경조회
김지한은 1934년 경북 의성군 점곡면 옥곡동에서 출생하였다. 개천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계명대 무역대학원을 수료하였으나 일찍부터 기(氣) 수련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 ‘새한국문화교육원’이라는 수련도장을 열고 회원을 모아 수련을 시키며 기를 통한 질병치료에 종사하였다. 그러다가 그는 우리 민족이 지나치게 외래사상에 물들어가면서 주체성을 상실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단군신앙과 사상을 널리 보급하기 위해 1983년에 대구시 서구 평리에서 개천경조회를 설립하였다. 1997년에는 교단을 대구시 북구 조야동으로 이전하였으며 신도들에게 단전호흡에 의한 기수련과 실천조항 등을 가르쳤다. 그는 사회적으로도 폭넓은 행보를 보였는데 한국국사찾기 ...
2025-06-30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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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규
천도교
송암 김완규는 구한말 관직에 있다가 1910년 손병희 등의 권유로 천도교에 입교하여 봉도(奉道)·법암장(法庵長) 등을 역임하였다. 1910년 8월 15일 『천도교회월보』를 간행하고 문명개화운동을 주도하는 언론활동을 전개하였고 1910년 9월 1일 일제의 한일 강제 병합을 반대하다가 일본헌병에 체포된 바 있다. 1919년에는 3.1민족독립운동에 대한 계획을 듣고 이에 찬성하여 「독립선언서」에 서명할 것을 동의하고 민족대표로서 참가하였다. 출옥 후 천도교 도사로 종교활동과 민족운동을 계속하였고 1923년 10월 조선의 최초 노동단체인 노동단대회 집행위원을 역임했으며 광복 후 1945년 12월 삼일동지회 고문으로 있으면서 독 ...
2025-06-30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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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보
단군성주교
김근보(金根寶 1911-1977 호 新谷 雲寶)는 단군성주교의 제2대 교주이다. 1960년 단군성주교를 창립한 강승태가 사망하자 김근보가 2대교주로 취임했다. 그는 1911년 제주도 애월읍 광령리에서 태어나 일찌기 강승태의 도에 입도 하여 강승태가 사망 당시 단군성주교 본소 원장직을 맡고 있다가 2대 교주가 된 것이다. 법통 계승과정에서 이백환ㆍ김승례(이들은 동도법종금강도를 세움) 등과 심한 마찰을 빚기도 했다. 그는 법통체계 계승을 위한 많은 저술을 하며 교단을 이끌다가 1977년 사망했다. 김근보의 저술로는 『도덕경의문(道德警宣文)』ㆍ『성도정기기성운집(成道定機祈誠運集)』ㆍ『천지인합기대요(天地人合機大要)』 등 20여권 ...
2025-06-30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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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침례회보
기독교한국침례회
기독교침례회보의 2015년 현재 명칭은 침례신문이며 1955년 8월 19일 발행 당시의 명칭은 「침례회보」로서 1999년 9월 27일 「침례신문」으로 제호를 변경했다. 1970년 7월 1일 운영난을 겪으면서 제169호 발간을 끝으로 폐간하였다. 그 뒤 7년여 만인 1977년 5월 7일 박경배 목사를 발행인으로 김용도 목사를 편집인하여 복간 제1호를 발행하였으며 1992년 5월 12일에는 「침례회보」를 「침례회신문」으로 변경 등록하고 보급지역을 국내외로 확대하였다. 1999년 9월 27일에는 다시 정기 이사회에서 「침례회신문」을 「침례신문」으로 변경했다.
2025-06-30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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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화교역
『정역』에 나오는 금화호역(金火互易)의 별칭.
2025-06-30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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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사미륵불포교소
서백일(徐白一)이 창립한 용화교(龍華敎)의 초기이름.
2025-06-03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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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화신경
금강대도
금강대도 창시자인 토암 이승여(土庵 李承如)의 11경 28권 경 가운데 1932년(개도59년)에 열 번째로 반포된 것이 『금강화신경(金剛化身經)』이다. 장이 구분되지 않은 채 전체 1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23100여자로 이루어져 있다. 토암은 『금강화신경』의 처음 구절에서 “서로 자뢰한지 이십여 년 만에 금강으로써 삼경의 도근과 삼기의 도체를 믿어 우계(금천)에서 자취를 발하니라(相資二十餘年에 以金剛으로 三庚之道根과 三奇之道體를 信而發跡於牛溪也-니라).”라고 하여 우계(牛溪:우복동 금강대도 총본원이 위치 한 금천리 옥화촌)에 금강으로 화신하여 이 세상에 출세함을 밝히고 있다. 참고문헌 : 『대성경』(이승여 금강인쇄소 ...
2025-06-03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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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운공사
증산교본부
교운공사(敎運公事)란 증산 강일순이 자기의 이상과 교의에 의한 후천의 선도자가 될 신생종단이 탄생될 도수(度數)를 획정하였다는 내용이다. 이 과정은 4단계를 거치게 된다. 1단계는 증산이 ‘먼저 난법(亂法)을 낸 뒤에 진법(眞法)을 내리라’하여 27년의 난법도수를 정하였다는 것이다. 1909년으로부터 1936년까지 27년간 수많은 교파의 분열이 천양만태로 벌어진다. 2단계는 이런 난법 중에 후일의 준비가 있게 된다. ‘서전서문과 대학경일장하를 많이 읽으라’는 말이나 ‘무진동지에 기두(起頭)한다’는 말이나 ‘의통(醫統)을 전하라’는 말 등이 모두『대순전경』이 간행되는 등 진법의 토대가 준비될 일을 암시하는 것이라 했다. ...
2025-05-31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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