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대보름
정월 보름에는 가정에서는 안택(安宅) 고사가 마을에서는 풍농을 비는 행사가 줄을 잇는다. 찰밥 등으로 만든 약밥이나 오곡밥을 먹고 건강과 수명장수를 빈다. 홰(炬)를 가지고 동산에 올라 달맞이(迎月)를 하거나 달집태우기를 하기도 하고 다리밟기(踏橋)를 하기도 하였다. 부스럼을 예방하고자 잣이나 호두를 깨무는 부럼깨물기를 하고 귀를 밝게 하고자 귀밝이술을 마시기도 한다. 나이에 따라 구요성(九曜星)의 하나인 나후직성(羅睺直星)을 만나게 되면 추령(芻靈 제웅)을 만들어 길에다 버려 액막이를 한다. 마을에서는 가가호호 순방하며 지신밟기를 하여 행사 비용을 마련하고 이어 밤새도록 대동굿을 벌인다. 보름의 마을 행사는 지방에 따 ...
2025-07-03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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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학연구원
천진교 제 2대 교주인 해심 김덕경의 장남 김 진묵(金振黙)이 1983년 충남 6.20사업으로 받은 이 전보상금으로 대전시 중구 민영동에 설립한 분파.
2025-07-02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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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산록
도교
1책의 필사본. 사험결(沙驗訣)·주마육임정국(走馬六壬定局)·통천규첩법(通天窺捷法)·산도(山圖)·답산가·설심부(雪心賦)·마상시(馬上詩)·금낭시(錦囊詩)·지리종지(地理宗旨)·논산기(論山記)·수파법(水破法)·용호론(龍虎論)·수구론(水口論)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국의 산세를 사방의 사신(四神 주작(朱雀)·현무(玄武)·청룡(靑龍)·백호(白虎))으로 구분하고 함경도 함관령(咸關嶺) 강원도 대관령(大關嶺) 평안도 자모산(子母山) 황해도 구월산(九月山) 경기도 삼각산(三角山) 충청도 계룡산(鷄龍山) 경상도 도음산(禱陰山) 전라도 월출산(月出山)을 각 도의 주산(主山)으로 거론하였다. 이 주산들의 힘으로 각 지역의 산세가 뻗어나갔다 ...
2025-07-02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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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정서
단군교본부
단군교본부의 멸실 후 존재여부를 확인할 수 없고 내용도 알 수 없다.
2025-07-01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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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성조숭봉회
단군계 신종교 새종교원의 별칭. 참고문헌 : 『한국신흥종교총람』(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07-01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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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교
이창규(李昌奎)가 창립한 단군교중앙본부의 초기이름.
2025-07-01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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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
뇌에 대한 연구는 단순히 뇌질환의 예방과 치료라는 의학적 목적을 넘어 뇌(신경계)의 작용과 인간의 내면 즉 감정(마음)이나 종교성(영성)과의 상관성을 탐구하면서 그 연구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이에 해당 연구분야의 실험결과물은 이미 심리치료 그리고 의식 확장이나 영적 성장 프로그램에서 상당 부분 적용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뇌과학(신경과학)과 종교학(신학) 또한 서로 활발한 학문적 교류와 학제간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그 결과 종교적 경험이나 행동을 신경과학적 시각에서 설명하는 ‘신경신학’(neurotheology) 혹은 ‘영적 신경과학’(spiritual neuroscience)이라는 새로운 학문분야도 출현하였다. 한 ...
2025-07-01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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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표
제화동대도
제화동대도(帝和東大道)의 교리사상. 제화동대도 신도들 평소 의복에 녹표(祿標)를 부착하는데 20세 이상은 가슴에 남좌(男左) 여우(女右)로 한다. 본교에서는 이를 불사약으로 생각한다.
2025-07-01 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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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용
용화사
용화사(龍華社)를 창립한 김종용(金宗用 1901-? 호 槿下)은 1901년 10월 1일 전라남도 무안군 지도면 전증도에서 탄생했다. 23세 되던 1923년에 일제 경찰에 들어가 주로 보천교를 사찰하는 임무를 맡아하다가 뜻한바 있어 경찰직을 사임하고 1934년 보천교에 입도했다. 그리하여 차경석의 상담역을 맡아 일했다. 차경석이 죽고 보천교가 해산되자 홀로 증산 강일순을 신봉하는 생활을 했다. 1945년 해방 후 이상호의 대법사에 들어가 총무직을 수행하기도 했으나 이곳에서 나오게 된다. 그리하여 1959년 김제군 금산면 용화동에서 용화대도(龍華大道)를 창설했다. 그 후 간부 100명의 조직에 착수하여 1년 여간 추진하였으 ...
2025-06-30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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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호
조선기독교회
그는 1918년 봉산(鳳山) 신원교회(新院敎會)를 맡고 있으면서 장로교가 선교사의 주도아래 구태의연한 보수주의 신학에 매몰되어 있다고 비판하고 조선적 신학과 자유로운 신학연구를 이끌며 기성교회로부터 자치를 선언한 인물이다. 그의 이러한 활동은 서구의존적인 신앙과 신학에서 벗어나고자 했다는 점에서 한국의 기독교사에서 신앙과 신학의 토착화운동의 흐름과 같은 맥락을 형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김장호 외에 김종태(金鐘台) 현성원(玄聖元) 등도 조선기독교회를 주창하였다. 그러나 반선교사와 반교권(反敎權)이라는 그들의 좋은 취지의 활동에도 일제치하라는 상황 때문에 친일로 기울어질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었다.
2025-06-30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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