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보천교농악단
보천교
1920년대 보천교에서 전국의 장구잽이와 쇠잽이 등을 선발하여 ‘보천교 농악단’으로 재조직하였다. 차경석은 보천교농악단으로 하여금 풍물굿을 자주 열게 하였으며 남선과 북선으로 패를 갈라 기예를 겨루도록 하였다. 보천교 농악단의 기예를 보기 위해서 교인뿐 아니라 인근의 수천 명의 사람들이 보천교 중앙본소로 몰려들었다고 한다. 차경석은 상쇠잽이의 머리 매는 방법이나 12발 상모 돌리는 것을 직접 지도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보천교농악단은 좌우로 상쇠잽이 12명씩 24명 장구잽이 역시 좌우로 12명씩 24명 등으로 구성되었다. 이외에 나발과 소고 북 피리 무당 날나리 징 등을 포함하면 그 규모는 100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
2025-07-09 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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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승천
여호와새일교
여호와 새일교에서는 종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종말의 시기가 되면 2차례에 걸쳐 부활이 이루어지는데 1차에 부활하는 자들은 왕권을 받아 왕국 조직을 이루어 지상천국을 이루기 위한 것이고 2차 부활은 심판을 위한 부활로 모든 사람들이 부활하여 심판을 받고 천국과 지옥에 갈 사람들로 나뉘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까지 죽지 않고 살아있는 사람들 가운데 새일교단의 교리를 충실히 행하던 14만 4천명은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지 않고 하늘에 나타나는 주님을 영접하기 위해 그대로 변화하여 승천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변화승천하는 신도들을 변화성도라고 부르며 이들은 1차에 부활한 자들과 함께 지상천국에서 통치권을 행사한다. 이들을 정치에 ...
2025-07-09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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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선환
1948년 취직한 제련소를 그만두고 평양 성화신학교에 입학하였다. 이후 미국의 드류대학교 신학부와 스위스바젤대학교 신학부에서 신학을 공부하였고 1967년부터 감리교 신학대학에서 조직신학을 강의하였다. 유학시절 그는 아시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 결과 80년대 이르러 개방과 대화를 주장하는 ""종교 다원주의""를 제창하게 되었다. 개종을 전제로 한 제국주의적인 선교론이 아닌 대화적 선교론을 주장했다. 이에 한국적 신학의 과제로 크게 세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서구적 편견으로 인한 종교적 차별 타파 둘째 배타적 교회중심주의를 극복 마지막으로 종교다원론의 수용이었다 그는 1990년 ‘불타와 그리스도’라는 논문 ...
2025-07-09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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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종교연맹결성준비위원회
1967년 신도안에서 박제두가 창립한 통일제단의 별칭. 참고문헌 : 『한국신흥종교총람』(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07-09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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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국선도
국선도 청산선사의 문하였던 청도 이판암이 민족 고유의 선도 문화를 널리 보급하기 위해 1984년에 세운 단체이다. 이판암은 전통적으로 선조들이 백두산을 비롯한 명산에서 수련했듯이 수십 년간 산에서 수련하면서 전통적 수련법인 국선도를 새롭게 체계화했다. 이판암은 자신의 수련법을 ‘백두산족 수진삼법회통’이라 칭하는데 곧 지감 조식 금촉이라는 세 가지 방법을 생활화하는 것이다. 지감법은 감정을 그치고 몸을 가다듬게 하는 것이고 조식법은 호흡을 고르게 하여 평정을 유지하는 것이며 금촉법은 부딪힘을 금하고 오장육부를 단련하는 것이다.
2025-07-09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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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교회통
이 책은 다양한 종교를 불교의 교리를 기준으로 비교하면서 각 종교의 유사성과 차이점을 서술하고 있다. 제1편은 불교를 기준으로 다양한 종교의 교리를 비교한다면 제2편은 불교에 대한 비판을 변명하고 있다. 제1편의 내용을 예를 들면 제1장은 도교와 불교를 비교하면서 두 종교의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서술하고 있으며 제2장에서는 무교(巫敎)와 불교를 비교하면서 무교의 신은 그 자체가 신앙의 대상이며 불교의 신은 불법을 수호하고 신봉하는 호법신(護法神)의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밝혔다. 제2편 대변편(對辨篇)은 불교를 비판하는 기존의 논리들을 가져와 변별하고 불교 자체의 교리에 대한 비판의 논리를 가져와 해명하고 있다.
2025-07-08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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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
보천교
보천교의 차경석(車京石)이 급증하는 전국의 교인을 효율적으로 통괄하기 위해 1916년에 24방주제를 도입하여 핵심 간부 24인(방주)을 임명하였다. 1919년에는 경상남도 함양의 대황산록에서 고천제를 올리면서 24방주제를 60방주제로 확대하였다. 60방주는 금·목·수·화의 4방주 동·서·남·북의 4방주 춘·하·추·동의 4방주 그리고 24포주(胞主) 24운주(運主) 등을 말한다. 60인의 방주들에게는 각 방면(方面)을 새긴 상아방인(象牙方印)과 방철(方鐵) 즉 선추(扇錘)를 주었다. 각 방주 아래에는 1명의 대리(代理) 1인과 6명의 육임(六任)을 두었다. 대리와 육임에게는 교첩(敎帖)과 상아직인(象牙職印)을 주었다. 육 ...
2025-07-08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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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정환
천도교
방정환은 어려서 한학을 공부했고, 7세에 보성소학교에 입학하였다. 일제의 경제적 독점에 따라 아버지 사업이 실패하자 굶주리는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도 10세 때에 소년입지회(少年立 志會)를 만들어 토론 모임을 열었다. 1914년 선린상업학교에 입학했으나 가정형편상 중퇴를 하였다. 1917년 손병희의 셋째 딸 손용화(孫容嬅)와 결혼하였고 1918년 보성전문학교에 입학했다. 1919년 3.1운동 당시 천도교 보성사에서 독립선언서와 함께 독립신문을 찍어 배부하였는데 이를 지휘했던 보성전문학교장인 윤익선이 체포되자 방정환이 이어서 발행했다가 그 역시 체포되었다. 석방된 후 1921년 일본으로 건너가 동양대학 문화학과 청강생으로 ...
2025-07-08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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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구정
대순진리회
반구정을 처음 지은 사람은 조선 전기 생육신의 한 사람인 조려(趙旅 1420~1489)의 현손 조방(1557~1638)이다. 조방은 경남 함안에서 태어나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홍의장군 곽재우(郭再祐)와 함께 화왕산성(火旺山城)에서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무찔렀던 인물이다. 그는 임란이 평정되자 경남 함안군 칠서면 용성리 ‘창녕 낙동대교’ 부근의 말바위 곧 두암(斗巖) 위에 반구정을 짓고 자호(自號)를 두암이라 하였으며 마주 바라보이는 곽재우의 창암정(滄巖亭)을 수시로 내왕하면서 교우하였다고 한다. 이후 정자가 침식되고 기울자 그 후손들이 1858년 5월에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 장암리 333번지로 정자를 옮겨 세웠다. 19 ...
2025-07-08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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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석
보천교
1864년에 전라남도 진도군 동면(옛 지명)에서 태어난 박주석(朴周錫)은 1918년 10월에 제주도 한라산 산록의 법정사(法井寺)에서 승려 김연일(金連日)·방동화(房東華) 등과 함께 항일 무장봉기를 계획하였다. 박주석은 선봉대장으로서 인근 마을 주민 수백 명과 함께 서귀포 중문리의 경찰 주재소를 습격했다가 체포되어 징역 7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 목포 감옥에서 옥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에 그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보천교연혁사』(상·하)(보천교중앙총정원·협정원·총령원, 1948) 「濟州 法井寺 항일항쟁 연구」(안후상, 『종교학연구』제15집, 서울대종교학연구회, 1996) 국가보 ...
2025-07-08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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