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영산법화종종지
대한불교영산법화종
대한불교영산법화종은 구원실상(久遠實相) 석가모니불이 설한 매자(每自)의 시념(是念)을 바탕으로 하여 세계인류평화를 구현하는 것을 종지로 한다. 또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본존으로 하고, 법화삼부경(法華三部經)을 소의경전으로 하며, 일체경(一切經)을 조경(助經)으로 한다. 이(里)의 체(體)인 불(佛)과 절대적인 현실세계의 실상을 ‘묘법(妙法)’이라고 한다. 그 절대적인 불과 우주의 실상이 인(因)이 되어 활동하는 것을 ‘연화(蓮華)’라 하고, 그 활동이 영원히 질서정연하게 지속되는 것을 ‘경(經)’이라고 하며, 이것이 곧 법(法)이라고 본다. 즉, 이체(理體)의 인격화 구원실성 석가모니불과 영원불감의 우주실체와 ...
2025-10-07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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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기질
원불교
송규는 “우주만유가 영과 기와 질로써 구성되어 있나니 영은 만유의 본체로서 영원불멸한 성품이며 기는 만유의 생기(生氣)로서 그 개체를 생동(生動)케 하는 힘이며 질은 만유의 바탕으로서 그 형체를 이름이니라.”고 했다. 영은 우주만유의 본바탕이면서 영원불멸한 성품이다. 성품은 우주만유의 본래이면서 마음의 참모습이다. 이렇게 영은 밖으로 우주만유와 안으로 마음을 통관하는 진리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영은 주관적인 의미만이 아니라 주관과 객관을 통관한 절대적 진리인 것이다. 우주만유는 영원불멸한 영과 만유를 약동하게 만드는 기와 만유의 바탕이 되는 질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주만유는 한 이치 한 기운이라고 말할 수 있다 ...
2025-10-07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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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종
장막성전
유재열은 부모를 따라 말세 심판의 피난처로 알려졌던 경기도 시흥군 과천면 막계리 청계산 김종규의 호생기도원에서 생활하였다. 지도자 김종규가 기도원에서 축출되자 그는 17세의 나이에 ‘어린종’이라는 이름으로 추종자들을 이끌게 되었다. 그 후 유재열의 ‘장막성전’도 분열하자 그는 1980년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1985년에 귀국하였고, 현재 신종교 창교자의 처지가 아닌 평신도의 입장에서 개인사업에 전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5-10-07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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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
그는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할아버지의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하였다. 25세 때에는 산동학원(山東學院)을 설립, 신교육운동을 전개하였다. 26세 성균관 박사가 되었으나, 관직에 나아갈 뜻을 버리고 《황성신문》의 기자가 되어 크게 활약하였다. 1905년 《황성신문》이 무기 정간되자, 이듬해 양기탁(梁起鐸)의 천거로 《대한매일신보》 주필로 초빙되었다. 1910년 4월, 국권의 피탈이 확실시되자 애국지사들과 협의하여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1914년에는 윤세복의 초청으로 서간도 환인현 홍도천에 머물며 동창학교에서 국사를 가르쳤다. 이때 국사 교재로 『조선사』를 집필하였다. 1919년 2월에 일명 ‘무오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으며, ...
2025-10-07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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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교독립운동
한말부터 일본의 침략에 저항하는 민족운동을 전개하던 신종교는 1910년 8월 29일 일본의 강점 이후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될 때까지 꾸준히 민족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일제의 강점기는 무단통치기(1910-1919), 문화통치기(1920-1931), 민족말살기(1932-1945)로 구분하고 있다. 시기별로 신종교는 무단통치기와 민족말살기에는 비밀결사의 형태로, 문화통치기는 문화운동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천도교는 일본 강점 직후 각국 영사관에 이를 반대하고 부당성을 주장하는 성명서를 발송하였다. 이와 더불어 천도교에서는 보성사(普成社)를 중심으로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민중운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1911년 범국 ...
2025-10-06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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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영
법룡사
신수영은 1878년 경북 의주에서 태어났다. 13세에 출가하여 중이 된 뒤 삼정산 유하사(遊夏寺)의 주지를 역임하기도 했다. 1945년 해방이 되자 10여명의 신도를 데리고 계룡산에서 백일동안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1946년 계룡산 신도안 석계리 백암동 입구에 팔모정(八母亭)과 법정사(法正寺)를 짓고 이어 제자봉 밑에 법룡사를 세웠다. 그리고 1948년에는 법룡사 바로 위에 단군전을 짓고 천진전(天眞殿)이라 했다. 그는 미륵불을 주불로 신앙하였는데 가까운 시기에 미륵불이 주도하는 후천용화세계 운수가 개벽된다는 것을 믿었다. 이 용화세계는 유불선(儒佛仙)의 삼도(三道)가 합일되는 세계라는 것이다. 이처럼 삼도가 합일되는 ...
2025-10-03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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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령도덕회
본교는 1967년 9월 강순이(姜順伊, 1912-?)의 주도로 창교되었다. 강순이는 원래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불교 집안과 결혼하여 30여 년간 불교를 신봉하였다고 한다. 남편인 김병모(金 炳模)의 도박과 외도로 가정불화가 일고, 자식들이 죽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대전에서 도덕회(道德會)에 가입한다. 그리고 18년간 충실하게 도덕회 활동을 하다가, 이상한 기운이 나타나 계룡산에 입산하여 100일 기도를 시작한다. 100일 기도 중에 계룡산 할머니로부터 “나가서 억조창생을 구제하라”는 계시를 받았다고 하며, 대전 유성 인근에서 4년간 무료로 병을 고쳐주고 서울 신공덕동으로 올라가 7년간 치료활동을 행한다. 그 ...
2025-10-03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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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움산
무교계
산메기는 산을 의지하고 사는 사람들이 봄이나 가을에 날을 받아 가족, 친족 또는 주민들 단위로 산에 올라가 ‘산’을 대접하고 가정의 편안과 자손 발복을 기원하는 산간신앙 의례이다. 쉰움산은 삼척시 동쪽 15Km 지점의 두타산 북동쪽에 솟은 작은 봉우리이다. 태백산과 더불어 무속의 성지로 알려져 있다. 산 곳곳에 치성을 드리는 제단, 돌탑 등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쉰움산은 정상에 둥글게 우물처럼 파인 것이 50개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 가운데 용신당이 있다. 쉰움산은 가파른 오르막을 한 시간 이상 계속 올라가야 한다. 이 때문에 중간에 있는 은선암에서 망제(望祭)로 올리는 사람도 많다. <참고문헌> 「쉰움산 ...
2025-10-03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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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운교 석종
수운교
수운교 석종(石鍾) 또는 석고(石鼓)라고도 한다. 1.6미터 크기의 누운 큰 소 형상으로 된 돌로서 작은 돌로 쳐도 쇠 종소리가 난다. 1926년 교인인 송종덕의 현몽에 의하여 발견된 석고(석종)를 교주의 지시로 수운교 도량에 안치하였다. 삼대원이 성취되어 세계 평화가 되는 날 자연이 울린다고 전한다. 현재 수운교 도솔천 경내에 안치되어 있는 이 석고는 ‘석종’이라는 이름으로 대전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13호로 지정되어 있다.(1989년 3월 18일) 이 이외에도 경내에는 유사한 모양의 석종이 두 개 더 안치되어 있다. <참고문헌> 『수운교 진리』(수운교출판부, 1999)
2025-10-01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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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철화
영가무도교
송철화는 1904년 1월 26일 대전시 유천동에서 출생하였다. 일찍이 법률을 공부하여 변호사 사무실의 소송사건 알선업에 종사하였으나,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참담한 현실 속에서 인생문제를 고민하던 중 우연히 『정역』을 알게 되어 이를 연구하게 되었고, 도(道)를 얻었다고 한다. 당시 정역에 기반한 종교들이 점차 사라져가는 것을 애석하게 생각하던 송철화는 1960년 충남 논산시 두마면 향한리의 향적산 국사봉 아래 ‘허공산제당’을 짓고 본격적인 종교활동을 시작하였다. 한때는 수많은 사람들을 모아 수련과 도를 공부시키다가, 1976년 사망하였다. 그가 사망하자 교세가 크게 위축되었다. <참고문헌> 『한국신종교실 ...
2025-10-01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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