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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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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내에서 무심대사(無心大師)로 불리는 신수영(申壽英 1878∼1961)이 경상북도 안동 삼정산의 유하사(遊夏寺) 주지로 있다가 1945년 11월 10여 명의 신도를 데리고 계룡산에서 백일기도를 드린 뒤 다음해 신도안에 입주하여 석계리 백암동 입구에 팔모정(八母亭)과 법정사(法正寺)를 짓고 다시 그 아래에 법룡사(法龍寺)를 창건하였다. 앞으로 이 땅에 단군국조의 운수가 열릴 것이므로 단군국조를 숭배해야 한다고 믿고 1948년 천진전(天眞殿)을 세워 단군영정을 모셨다. 이곳을 계룡천진전이라 부른다. 1961년 신수영의 사망 후 지정영(池正永)이 팔모정을 지으라는 신수영의 영계(靈啓)를 받았다고 주장하자 이수학은 신기수(申 ...

2025-07-09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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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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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신신앙대본사

배선문은 1933년 6월 27일 강원도 평창에서 출생했다. 9세 때 초등학교에서 그림그리기 시간에 태극기를 그린 것이 화근이 되어 3일간 벌을 받게 되는데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민족과 국가를 생각하게 되었고 이후 그가 입산수도하여 민족사상과 단군사상을 기반으로 한 종교를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단군신앙을 하게 된 이유로 어려서 할아버지한테 받은 『단기고사』를 읽은 것도 한 영향이라고 말하였다. 그는 군복무를 마친 1958년부터 5년간 입산수도한 끝에 깨침을 얻어 1962년 강원도 평창의 청학산 기슭에 ‘청학시교당’을 개설하였으며 이후 전국 각지에 선원을 개설하고 신자를 두었다. 1959년에는 두타산 무명동굴에서 ...

2025-07-08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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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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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천교

보천교의 차경석(車京石)이 급증하는 전국의 교인을 효율적으로 통괄하기 위해 1916년에 24방주제를 도입하여 핵심 간부 24인(방주)을 임명하였다. 1919년에는 경상남도 함양의 대황산록에서 고천제를 올리면서 24방주제를 60방주제로 확대하였다. 60방주는 금·목·수·화의 4방주 동·서·남·북의 4방주 춘·하·추·동의 4방주 그리고 24포주(胞主) 24운주(運主) 등을 말한다. 60인의 방주들에게는 각 방면(方面)을 새긴 상아방인(象牙方印)과 방철(方鐵) 즉 선추(扇錘)를 주었다. 각 방주 아래에는 1명의 대리(代理) 1인과 6명의 육임(六任)을 두었다. 대리와 육임에게는 교첩(敎帖)과 상아직인(象牙職印)을 주었다. 육 ...

2025-07-08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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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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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문화연구원

박천봉은 1922년 경상북도 길주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교사와 교감을 지내는 등 교육계에 종사하다가 마을금고를 운영하는 사업을 시작했으나 실패하게 된다. 이후 그는 인생무상을 느끼고 종교의 현묘지도를 찾기 위해 헤매다가 단군사상에 있어 ‘홍익’이야말로 현묘라는 것을 깨치게 되었으며 1986년에 서울시 서대문구에 단군전(홍은사)을 세웠으며 이후 홍익문화연구원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참고문헌>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한국종교학회, 1985)

2025-07-08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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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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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는 설립일 및 창교자 등이 불명확하나 1985년 『한국신종교 실태조사보고서』(한국종교학회 1985)에서 본교의 홍보전단지를 인용하여 교리 및 사상 등을 보고하고 있어서 그 내용을 알 수 있다. 본교는 진인도(眞人道)라고도 자칭하고 있으며 ‘새마음 새생활로 새인생길 확립하여 진실세상 이룩하세’라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또한 ‘진실한 불생(不生) 불변(不變) 불멸(不滅)의 안식처는 본래의 마음’이라고 하고 ‘우리는 무법을 찾아 죄업을 닦아서 육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 진아(眞我)를 다시 찾고 밝고 무아무진한 지혜를 계발하여 진실의 기준을 세워 그것을 실행하여야 한다. 그 기준은 무법(無法) 진아(眞我)이다’라고 한다. ...

2025-07-08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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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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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구로는 부채 신기(神旗) 신간(神竿) 신도(神刀) 거울 등이 있고 악기로는 장고 북 징 동고리 수고(手鼓) 제금 방울 요령 오금(烏金) 등이 있다. 유기로 만든 거울을 굿당에 걸어놓고 모시는데 신라 김유신의 어머니 만명(萬明)이라고도 하며 명도(明圖)라고 부른다. 조선 숙종 때 장희빈이 저주하기 위해 사용한 활 인형(角氏) 각종 동물 등도 무구라고 할 수 있다. 무구는 무복(巫服)과 같이 각 굿거리마다 다른 것을 사용하는데 제석거리의 삼불(三佛) 부채나 별상거리의 삼지창과 신칼 등이 그것이다. 상산거리에서는 방울과 바라를 던져 신의(神意)를 점친다. 칠성거리의 물동이나 별상거리의 작두 대감거리의 떡시루 등도 무구라 할 ...

2025-07-08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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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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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주가 창립한 무을교의 초기 이름

2025-07-08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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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도본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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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나철은 1909년 대종교를 중광(重光)하고 1910년 대종교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그리고 1914년 남도본사를 경성(京城)에 설치하고 강우(姜虞)에게 맡도록 하였고 동년 동도본사를 동간도 청파호에 설치하고 담당을 서일(徐一)에게 맡겼으며 상해에 서도본사를 설치하고 담당을 신규식과 이동녕에게 맡겼고 북도본사를 노령 소학교에 설치하고 담당을 이상설에게 설치하였다. 이 네 곳 본사를 4도본사라 한다. 동도본사는 당시 중국 길림성 왕청현(汪淸縣) 춘명향(春明鄕) 유수하(流水河) 덕원리(德源里)에 있었다. 왕청시내를 거쳐 곧장 대두천을 따라 내려가면 강 건너 동북쪽으로 춘명향 서대파(西大坡) 덕원리가 나타난다. 이 일대는 192 ...

2025-07-07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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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성덕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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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대도

개인적인 도덕의 완성과 종단 전체의 발전이라는 두 가지 의미로 볼 수 있다. 이토암은 “악을 짓지 말고 선을 행하여서 도성덕립하라.” “심성을 배합하여 허령불매(虛靈不昧)하여 만물의 이치를 자각한 연후에야 도성덕립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개인의 수도가 완성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너희들은 다른 소원을 구하지 말고 아무쪼록 도를 잘 닦아서 도성덕립하는 그 시대를 기다려라.”고 하였는데 이는 종단이 발전하여 널리 알려진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참고문헌 : 『건곤부모님과 금강대도의 진리』(이재헌 미래문화사 2003) 『금강대도 종리학 연구론』Ⅱ(이재헌 미래문화사 2010) 『성훈통고 편집본』(금강 ...

2025-07-07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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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입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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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덕도

도덕입법일은 1952년 음 5월 27일 도주 김옥재와 법주 도학수가 도덕의 법을 세운 날이다. 성덕도에서는 매년 본원에서 전국 도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경축 행사를 거행한다.

2025-07-07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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