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74

삼박자축복

|

순복음교회

삼박자축복이란 본래 개신교 설교에서 자주 사용되던 말인데 특히 순복음교회의 조용기 목사에 의해 강조되었다. 그는 설교 때마다 “예수 잘 믿으면 영혼 구원뿐 아니라 물질과 건강까지 얻는다.”고 자주 외침으로써 이 표현은 순복음교회의 상징적 표어로 자리 잡게 되었다. 삼박자축복 표어가 한국에서 크게 퍼질 수 있던 또 다른 요소는 브루스 윌킨스(Bruce Wilkinson)가 저술한 『야베스의 기도』라는 책의 유행이었다. “야베스는 일가 가운데서 가장 세력 있는 사람이었다. …야베스는 이스라엘의 하느님께 이렇게 빌었다. ‘부디 저에게 복을 내리시어 제 영토를 넓혀주시고 손수 액운을 막아 어려운 일 당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

2025-07-09 21:33

13

삼대계훈

|

모악교

삼계대훈은 여처자(余處子 1887-1954)가 창립한 모악교(母岳敎)의 교의 중 하나 이다. ①마음속이지 말라(正心) ②언덕(言德)을 잘 행하라(布德) ③남 잘되게 하라(相生) 등이다. <참고문헌> 『범증산교사』(홍범초, 도서출판 한누리, 1988)

2025-07-09 21:12

13

사종의무

|

원불교

조석심고는 아침저녁으로 일정한 시간에 삼세의 모든 부처님과 선조 부모 전에 문안을 올리고 각자 원하는 바를 고백하고 심축하는 신앙행위이다. 법회출석은 각종 법회 출석에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보은헌공은 일상생활에서 근검ㆍ절약ㆍ절식의 생활로 저축한 재물을 가지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거나 공익사업에 희사하는 것이다. 입교연원은 일원상의 진리를 모르는 사람들을 교화하여 원불교 교도가 되도록 인도하여 혜복의 문로를 열어주는 것이다.

2025-07-09 20:13

13

부여단군제단

|

강화는 부여지방에 알려진 역학자(易學者) 이후영(일명 달(達), 호 야산(也山))의 제자이다. 이후영은 새로운 역리(易理)를 내세워 김일부(金一夫)에 비견할 수 있고, 새로운 시대의 문화생활을 지배할 최고의 역리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또한 한민족은 국조 단군을 신봉하여야 보본(報本)의 의(義)와 민족의 도의를 향상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1951년 자신의 주거지인 부여군 은산면 옥가리에 소규모의 제단을 설치하고 개천절에 제향을 올리다가 1958년에 사망하였다. 이후영의 유지를 계승한 강화(姜和)는 1964년 부소산(扶蘇山) 남쪽에 있는 자신의 집에 소규모의 단군제단을 설치하고 동지 약 50여 명을 규합하여 개천절 제향 ...

2025-07-09 17:07

13

법문교리순천도본부

|

법문교리순천도본부(法文敎理順天道本部)는 장기준이 창립한 순천도의 한 계파이다. 원래 박남수 ․ 박금수 형제가 박일문을 받들고『현무경(玄武經)』을 공부하다가 1967년에 ‘동도교월평교회(東道敎月坪敎會)’로 등록을 했다. 박씨 형제가 주로 도생들을 모아『현무경』을 공부했다. 그러다가 이들 형제가 다 세상을 떠나자 1981년에 정동옥(鄭東玉)이 대표가 되어 김제군 금산면 쌍용리 월평에서 법문교리순천도본부라는 간판을 걸고 새로 시작하게 되었다. 주로 농한기인 겨울에 신자들이 이곳에 모여 현무경부(玄武經符)을 공부한다. 이 파의 도맥 계보는 증산-김경학-장기준-류춘래-반성환-박일문-정동옥으로 이어진다. 정동옥도 박일문과는 다른 ...

2025-07-09 00:47

13

범종교연맹결성준비위원회

|

1967년 신도안에서 박제두가 창립한 통일제단의 별칭. 참고문헌 : 『한국신흥종교총람』(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07-09 00:36

13

방정환

|

천도교

방정환은 어려서 한학을 공부했고, 7세에 보성소학교에 입학하였다. 일제의 경제적 독점에 따라 아버지 사업이 실패하자 굶주리는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도 10세 때에 소년입지회(少年立 志會)를 만들어 토론 모임을 열었다. 1914년 선린상업학교에 입학했으나 가정형편상 중퇴를 하였다. 1917년 손병희의 셋째 딸 손용화(孫容嬅)와 결혼하였고 1918년 보성전문학교에 입학했다. 1919년 3.1운동 당시 천도교 보성사에서 독립선언서와 함께 독립신문을 찍어 배부하였는데 이를 지휘했던 보성전문학교장인 윤익선이 체포되자 방정환이 이어서 발행했다가 그 역시 체포되었다. 석방된 후 1921년 일본으로 건너가 동양대학 문화학과 청강생으로 ...

2025-07-08 23:43

13

방면

|

대순진리회

대순진리회의 방면 조직은 지역으로 방면을 명칭하지만 지역적 개념이 아닌 연운제의 원리에 따라 인맥으로 구성된다. 처음에는 방면이름을 ‘ㄱ방면’ ‘ㄴ방면’ ‘ㄷ방면’ 식으로 불렀다가 도인의 증가에 따라 방면의 수가 늘어나면서 방면 대표자인 포장과 관련된 지명을 방면이름으로 정하기 시작했다. 현재 방면은 1000호(戶)를 기준으로 하며 그 책임자인 선감의 포교연운으로 구성된다.

2025-07-08 23:36

13

반구정

|

대순진리회

반구정을 처음 지은 사람은 조선 전기 생육신의 한 사람인 조려(趙旅 1420~1489)의 현손 조방(1557~1638)이다. 조방은 경남 함안에서 태어나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홍의장군 곽재우(郭再祐)와 함께 화왕산성(火旺山城)에서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무찔렀던 인물이다. 그는 임란이 평정되자 경남 함안군 칠서면 용성리 ‘창녕 낙동대교’ 부근의 말바위 곧 두암(斗巖) 위에 반구정을 짓고 자호(自號)를 두암이라 하였으며 마주 바라보이는 곽재우의 창암정(滄巖亭)을 수시로 내왕하면서 교우하였다고 한다. 이후 정자가 침식되고 기울자 그 후손들이 1858년 5월에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 장암리 333번지로 정자를 옮겨 세웠다. 19 ...

2025-07-08 23:30

13

박정곤

|

무궁도

박정곤은 1908년 천도교에 입교한 후 어느 날 꿈에 천인이 나타나 “수심정기무궁도(修心正氣無窮道)”라는 최제우의 유훈을 말을 듣고 크게 깨달았다고 한다. 그 후 1915년에 천도교를 나와 무궁도를 창설하고 교주가 되었다. 1917년 황해도 황주군 영풍면에 무궁도 본부를 정하고 포교를 하다가 1924년에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 『朝鮮의 類似宗敎』(村山智順 저 최길성․장상언 공역 계명대학교출판부 1991)

2025-07-08 23:02

13

처음으로 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