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신종교독립운동
한말부터 일본의 침략에 저항하는 민족운동을 전개하던 신종교는 1910년 8월 29일 일본의 강점 이후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될 때까지 꾸준히 민족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일제의 강점기는 무단통치기(1910-1919), 문화통치기(1920-1931), 민족말살기(1932-1945)로 구분하고 있다. 시기별로 신종교는 무단통치기와 민족말살기에는 비밀결사의 형태로, 문화통치기는 문화운동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천도교는 일본 강점 직후 각국 영사관에 이를 반대하고 부당성을 주장하는 성명서를 발송하였다. 이와 더불어 천도교에서는 보성사(普成社)를 중심으로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민중운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1911년 범국 ...
2025-10-06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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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구
천도교
본관은 평산이며 경상남도 단성군 출신이다. 일찍 아버지를 잃고 편모 슬하에서 자라면서 한학과 사상의학을 수학했다. 1900년에 서울에 올라와 정치 단체에 가입하였다가 발각되어 1905년에는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주해 3년 동안 거주하기도 했다. 귀국 직후인 1914년에 경상남도 진주에서 천도교에 입교하여 1915년부터 생을 마칠 때까지 천도교 활동을 하였다. 1915년부터 천도교 창녕군 전교사가 되어 경남 일대에서 포교 활동을 벌였고, 1923년에는 진주교구 종리사로 임명되고 포교에 성과를 거두었다. 주관포덕사를 거쳐 종법사, 상무종법사, 주관도정 법정 등으로 계속 지도적 위치로 진출했다. 1929년에는 천도교중앙총부 의결 ...
2025-10-03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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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길
각세도천지원리교
각세도천지원리교(覺世道天地原理敎)의 경전 중 하나.
2025-10-03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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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참배
1910년 한·일병합 이후 일제는 신사정책을 통해 일본 천황의 조상신을 모신 신사를 국가적으로 조성, 관리함으로써 조선의 정신까지 지배하려고 하였다. 조선의 민족성을 말살하고 천황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기 위해였다. 1945년 6월까지 신궁(神宮) 2곳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 크고 작은 규모의 신사 1,062곳을 세웠다. 1925년에는 서울 남산의 신궁터에 세운 대규모의 조선신사를 조선신궁(朝鮮神宮)을 개칭하고 그 안에 둘 3종신기(三種神器)를 일본에서 가져와 진좌제(鎭座祭)을 거행, 참배를 요구했으나 기독교인과 사립학교 학생들의 반발로 일단 유보하였다. 1935년 중일전쟁을 앞둔 일제는 신사참배를 의무로 강제하고 이를 거 ...
2025-10-03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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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안
신도안은 논산시 두마면과 대전 유성구 일부에 걸쳐 있는 해발 500m 내외, 동서 약 4㎞, 남북 약 3㎞ 넓이의 분지이다. 『계룡산록(鷄龍山錄)』에 따르면 신도안이 속한 계룡산은 백두산으로부터 흘러내린 모든 산들의 맥이 멈추어진 곳으로서, 조선개국 당시 태조가 이곳에 도읍을 정하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공사를 중단하였다고 한다. 논산시 두마면 부남리의 대궐 터에는 조선의 태조가 무학대사(無學大師)와 정도전(鄭道傳)을 데리고 와서 새로운 수도를 건설하기 위해 공사하였다는 주초(柱礎)와 제방이 지금도 남아 있다. 1924년 동학의 한 교단인 시천교 제3세 교주 김연국이 황해도와 평안도의 신도 2,000여 명을 데 ...
2025-10-03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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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설교
금강대도
종교에서 초월적, 신비적 요소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특히 종교 창업기에는 창교자의 카리스마를 유지하기 위해 신비적인 요소가 더욱 중요성을 발휘한다. 금강대도의 창도자인 이토암도 창업 초창기에 여러 가지 신비적인 권능으로 제자들을 모았다. 수많은 영험과 이적, 그리고 문장과 풍수, 의술 등이 신도설교의 방편으로 등장한다. 토암은 “내가 장차 신도설교로 천하를 귀의케 하리라.”고 하여 자신의 권능을 은연중 드러내었다. 다만 이것은 인간의 도덕성을 끌어내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라 하여 제자들에게 적극적으로 권장하지는 않았다. 즉 “신도설교를 하다 보면, 혹 현묘한 일이 생기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와 같이 기괴한 행동을 ...
2025-10-03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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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단정도회
김연은 1963년 서울 용산구 도원동에서 단군계 신종교 성격의 단체인 본회를 창립하였다. 그는 기독교인 정득은(鄭得恩)으로부터 사사받고, 증산교 신자인 강기산(姜騏山)의 가르침에 따라 단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하여 기존의 단군신앙 단체와는 다른 전개를 보였다. 특히 김연은 단군이야말로 한민족의 국조인 동시에 세계 인류의 시조라는 것을 신의 계시에 의해 깨달았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는 본회에서 단군을 숭봉하는 것은 국민정신을 진흥시키고 단합시키며, 나아가 천하를 하나의 집안으로 만드는 새 세계의 건설운동이라고 주장하였다. <참고문헌> 『한국신흥종교총감』(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10-03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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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내림
기타
신내림은 한자로 빙의(憑依)·접신(接神)·강신(降神)·망아(忘我)로 표현된다. 신내림 상태가 되면 신이 무당의 몸에 내려와서 의식을 지배하게 되는데, 무당의 혼이 몸을 이탈하는 것이 아니라 신이 내려서 자의식을 잃거나 의식이 변하게 된다. 완전히 자의식을 상실하는 정신이상 상태가 아니라 주변 상황에 맞추어 자신을 통제하는 반의식 상태로 간주된다. 신이 내리면 몸의 감각은 과도한 흥분상태에 들어가며, 전율하거나 발작을 일으키기도 한다. 신내림은 입무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거치게 되며, 이를 신병 혹은 무병이라고 말한다. 무당은 신내림을 통해 초월적 세계와 현실세계를 연결해 준다.
2025-10-03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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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학공부
증산계
태극도(太極道)를 창립한 조철제(趙哲濟)는 1957년 11월 동지 치성을 마치고 모든 임원을 불러 ‘내가 이제 50년공부(五十年工夫)를 종필(終畢)할 도수’라 말하고, ‘남은 일은 도인들의 진법(眞法)공부라 내가 50년 공부로서 얻은 공부법이니 유일무이한 진법(眞法)이요 진법(陣法)이며 천지대학(天地大學)이요 청학(靑學)이라’하며, 수도의 구체적인 방법으로 시학공부(侍學工夫)와 시법공부법(侍法工夫法)을 제시했다. 그는 이해 11월에 도인들의 수도공부의 설석(設席)을 명령하고 공부는 시학·시법으로 구분케 하고 각 공부반은 36명으로 하며, 시학은 5일마다 시강식(初降式)을 올리고, 15일마다 합강식(合降式)을 올리며, 4 ...
2025-10-03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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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일식
천도교
천도교는 1909년 10월 수운의 성(誠)·경(敬)·신(信)·법(法)의 수행을 주문송주, 청수, 성미, 교리강습으로 구체화하고 1911년에는 오관(주문, 청수, 기도, 성미, 시일)을 확정했다. 성미제는 새로 추가된 것인데, 이는 일진회 세력의 출교 이후 재정적 확보를 위해 1907년에 만들어진 것이고, 시일식은 1906년부터 문명개화운동 당시 전국에 조직되었던 성화회(聖化會)와 병행하여 표현되던 것이었다. 원래 초기의 시일식은 청수를 봉행하고, 주문 낭독과 가장의 교리해설로 시천주의 의미를 알려주는 가족단위의 성화회였으나 점차 대중집회적인 성격을 갖추어 나갔다. 1906년 6월 시일식의 성화회 절차는 심고, 청수봉전, ...
2025-10-03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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