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불승회유지재단
1962년 설송에 의해 창종된 대한불교불승종은 1991년 11월 21일 재단법인 불승회유지재단으로 등록하였다. → 대한불교불승종 참조.
2025-07-09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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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월드연구소
단학
이승헌은 1980년 안양시 충현탑 공원에서 시민을 대상으로 단학을 보급하기 시작하여 1985년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단학선원(한국단학선원연구소)을 개원하였다. 단월드는 종교적인 성격이 있음에도 종교단체라고는 하지 않는다. 1993년 주식회사로 등록하고 심신수련 및 뇌교육을 담당하는 정신건강 전문업체로 발전하였다. 1997년에는 수련방법에 두뇌활용법인 ‘뇌호흡법’을 도입하였다. 2002년에 사업장 명칭을 또는 ‘단월드’(단월드연구소 영어명 Dahn yoga 일본어명 イルチブレインヨガ)로 개칭하였다. 심신수련 과정을 보면 다음 3단계로 구분되어 있다. 기본과정에서는 매일 한 시간 동안 기체조 호흡 명상을 각 20분씩 수련하 ...
2025-07-02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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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미선교회
다미선교회의 이름은 1987년 이장림이 쓴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라』는 예언서로부터 유래한다. 다미는 ‘다가올 미래’의 약자이다. 그러나 다미선교회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시한부종말론’ 사건이 발생하면서부터이다. 1992년 10월 10일과 28일 특히 28일에 휴거가 일어난다고 주장하여 당시의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사건을 말한다. 그날 휴거는 일어나지 않았으며 신도들은 이탈하거나 끝까지 신념을 굽히지 않고 신앙을 유지하는 사람들로 나뉘었다. 물론 휴거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현상이지만 그 신앙을 굽히지 않는 사람들은 휴거의 연기설로 그들의 입장을 정리하였으며 이장림 역시 그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2025-07-01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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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에녹
기독교
본명은 한진교로서 연세대 교수였던 한태동 박사의 부친이기도 하다. 일제시대 때는 독립운동가로서 활동하기도 하였으며, 해방 후에는 한경직 목사가 운영하는 영락교회의 장로로서 활동하였다. 그는 1943년 기도를 통해 받은 계시의 책인 『영원한 복음』을 통해 계시록의 ‘한때 두때 반때’의 의미를 동양철학과 관련하여 해설한 것으로 유명하며, 이로 인해 이단 시비에 휘말린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할 것이며, 1978년부터는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것을 말하고 있는데, 그가 예언한 1978년을 보지 못하고 1973년 운명을 달리했다. 한국 종교사에서 그는 계시록을 동양철학과 관련하여 해설한 전통을 만 ...
2025-10-11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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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제의 난
이필제는 몰락한 양반 출신으로 1871년 처형당하기까지 진천·진주·영해·문경 등 네 곳에서 반란을 주도한 인물이다. 1863년에 동학에 입교한 이필제는 1869년 공주·천안 등을 중심으로 진천작변을 일으켰으나 밀고로 실패했고, 진주작변 역시 탄로가 나 실패한 후 1870년 7월 영월로 피신, 잠복하면서 동학도인을 이용한 반란을 계획하였다. 그는 최시형에게 사람 넷을 다섯 차례 보내 교조신원운동을 목적으로 자기와 만날 것을 요구하였다. 최시형은 그 사람됨이 미심적어 수차례 거절하다가 부득이하여 그를 만나 영해 운동을 함께 도모했다. 1871년 3월 10일(음) 밤 이필제는 최시형과 더불어 500여 명의 동학 도인을 모이게 ...
2025-10-08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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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부경
선도계
『음부경』의 저자는 황제(黃帝)라는 설과 황제를 가탁하였다는 설 등이 있다. 성립연대 또한 황제 때부터 당대(唐代)에 이르기까지의 시대적 차이도 커서 『음부경』의 사상과 경전 자체의 용어로써 그 성립시기를 추론하고 있다. 『음부경』의 주석가 가운데 청대(淸代)의 서대춘(徐大椿)은 『음부경주석(陰符經註釋)』 서문에서 작가와 연대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없지만 그 박학하고 오묘하고 정미하여 깊음은 황제와 노자의 정수를 얻은 자가 아니면 쓸 수 없다고 극찬한 바 있다. 주희는 당대(唐代)의 이전(李筌)이 심혈을 기울여 지은 것 같으며 당시에 신선(神仙)의 도(道)가 유행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음부경』이 문헌적으로 처음 보 ...
2025-10-08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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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산기도원
나운몽과 용문산기도원은 1950년대에는 변태성 신앙 운동가 혹은 사교로, 1960년대부터는 기성교회로부터 이단으로 몰렸다. 그의 종교운동을 변태성 신앙 운동과 사교로 규정한 곳은 대한예수교장로회 경북노회와 총회였으며, 그와 용문산기도원을 이단으로 규정한 것은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파) 경남노회와 총회였다. 나운몽에 대한 이단론은 주로 여성 편력에 대한 의심, 한국사 또는 한국종교와 연관시킨 무리한 성서 해석으로부터 나왔다. 그는 한민족의 아브라함 친족설, 한민족의 원시 유일신 신앙, 몽학선생으로서의 유교와 불교를 주장했다. 그것을 잘 드러낸 설교가 1960년 2월 6일의 설교 “진리는 결박될 수 없다”였다. 이 설교에서 ...
2025-10-08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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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향숙
기독교대한감리회
애향숙은 일제 강점기인 1940년 경북 김천의 용문산 자락의 부락민들을 대상으로 나운몽이 시작한 계몽운동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명칭에서 드러나듯이 이 단체는 ‘하느님 사랑’, ‘땅 사랑’, ‘민족 사랑’이라는 세 가지 구호를 내세웠다. 그러나 운동 시작 6개월 만에 민족운동 단체로 낙인찍혀 일제에 의해 해산되었다. 해방 후인 1947년 5월에는 나운몽은 애향숙을 재건하여 농촌운동을 다시 시작하는 한편 기도원 운동도 전개함으로써 농촌운동과 성령운동을 동시에 전개해 나갔다. 그 후 고등성경학교(1955년), 기드온신학교(1956년), 용문산수도원(1960년)을 잇달아 세웠으며, 1964년 문교부로부터 재단법인 애향숙의 인가를 ...
2025-10-07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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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호상
대종교
안호상은 초등학교를 마친 후 한학을 공부하였고, 1919년 서울로 올라가 중동중학(中東中學)을 다니면서 대종교에 입교(1920)하였고 그 해 일본에 유학하여 도쿄 세이소쿠 영어학교에 입학하였다. 1922년 중국으로 건너가 상하이 중덕학교(中德學校)에 유학하였으며, 이어서 독일에 유학하여 1929년에 독일 예나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영국·일본 등지에서 연구원 등 비학위 연수를 마치고 귀국하여 1933년 보성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철학연구회를 창립하고 1대 회장을 맡았다. 보성전문학교 재직 중 이광수의 소개로 모윤숙과 결혼하였으나 후에 이혼하였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에 연루된 바 있으나, 병 ...
2025-10-07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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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첩제
도첩제는 억불의 조선 초기에 강화되었다. 도첩은 일명 도패(度牌)라고도 한다. 예조에서 도첩을 발급해 주었으며 승려가 죽거나 환속(還俗)하면 국가에 반납하도록 하였다. 조선은 억불숭유 정책을 표방하면서 일반 양인들이 승려로 출가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노력하였다. 양인의 승려화는 농민의 감소로 이어지면서 조세 수입 감소로 인한 재정의 약화를 초래하고 군역이 감소되는 부정적 요소를 차단하고자 한 것이다. 이에 승려의 수를 제한하고자 하는 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도첩제는 중국 남북조시대에 시작되어 당나라 때 제도화되었던 것을 고려 말에 도입한 것이다. 조선 태조 때 강화되어 승려가 되려고 하는 자는 양반의 경우 포 10 ...
2025-07-07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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