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74

단군연구회

|

세계종교

신철호는 1989년 10월 5일 밤에 하느님으로부터 결재천문(決裁天文)을 받아 서울 도봉구에서 김정희와 함께 세계종교를 창립했다. 또한 그는 한때 ‘단군연구회’의 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단군연구회는 우주종교진리회라고도 호칭하였다. 신철호가 종교활동을 겸하면서 본회의 활동을 하였다는 점에서 단군연구회에 대한 구체적인 활동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신철호가 단군정수회의 이춘상과 손을 잡고 1965년부터 『정수회보』를 간행하였으며 『한국근대민중종교사상』에 「단군사상과 대종교」를 주제로 논고를 싣기도 하는 등 저작활동에도 적극적이었던 점을 통해 볼 때 이러한 활동의 근거가 된 것이 단군연구회일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 ...

2025-07-01 23:10

15

단군교

|

이창규(李昌奎)가 창립한 단군교중앙본부의 초기이름.

2025-07-01 20:35

15

농민성보

|

기독교

나운몽은 1947년 용문산에 용문산기도원의 전신인 ‘애향숙(愛鄕塾)’을 설립해 기도와 성령운동을 시작하는 한편 관련 인력을 배출하였다. 이후 전국을 돌며 강연회 및 부흥회를 통해 성령운동을 일으키는 등 한국기독교 성령운동의 선구자로 성령운동의 바람을 일으켰다. 1950년대에는 한국기독교계 최초의 기도원인 용문산기도원을 설립하여 한국기독교 기도원운동의 효시를 이루었으며 이곳에 구국제단을 쌓고 구국기도를 하였다. 그는 문서선교에서도 앞장서 1945년 이승만으로부터 휘호를 받은 월간 ≪농민성보≫를 발간했으며 <기독교공보>를 운영하였다. 또한 ≪신앙세계≫ 창간과 함께 1960년에는 기독교계 최초의 일간신문인 <복음일보>(<복음 ...

2025-07-01 02:02

15

김환옥

|

보화교

보화교(普化敎)를 창립한 김환옥(金煥玉 1896-1954 호 淸江)은 1896년 1월 11일 전라북도 정읍군 칠보면 신흥리에서 부친 김용술(金龍述)과 모친 박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병으로 시달리며 자랐다. 1921년에는 신효묘방(神效妙方)을 얻어 창생을 구제할 생각으로 보천교(普天敎)에 입교하여 9년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으나 큰 뜻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하여 1929년에 보천교를 나와 사방으로 주유천하를 했다. 1930년 주신수련(主神修練)의 입공에 들어가 입공한 지 3일째 되던 날 수운 최제우와 증산 강일순이 나타나 수운은 ‘나를 보고 수운 아버지라고 불러라’하고 증산은 ‘나를 보고 증산 어머니 ...

2025-07-01 00:04

15

김주희

|

상주동학교

상주동학교의 창립자.

2025-06-30 23:31

15

김서종

|

대종교

김서종은 1893년 6월 13일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면 구성리에서 출생하였다. 1905년 보성전문학교 법과를 졸업하고 양원(養源)여학교에서 3년간 교편을 잡았다. 그 후 영남 각자의 동지들을 규합하여 영우저축회(嶺友貯蓄會)를 창설하였다. 1922년 북만주 빈강성(濱江省) 오상현(五常縣)으로 이주하여 큰 농장을 경영하였으며 하얼빈에서 ㈜북만농구공사(北滿農具公司)를 창설하여 재만 교포들의 복지향상을 위해 노력하였다. 1915년 대종교에 입교하여 이듬해 참교(參敎)가 되었고 나철이 삼성사(三聖祀)에서 민족의 비운과 교세의 어려움을 스스로 책임지고 순교할 당시 그를 수행하였다. 그 후 지교(知敎)와 상교(尙敎)로 승질(陞秩)하 ...

2025-06-30 16:07

15

김방서

|

천도교

김방서는 1893년 동학교도가 보은 장내에 모여 척왜양창의(斥倭洋倡義)를 요구하며 집회를 가졌을 때 봉성(鳳城 : 지금의 전라남도 구례) 대접주로 참가하였다. 그 뒤 금구의 접주로 활약하였는데 전라도의 북접(北接)이라고 불린다. 동학농민군이 각 군에 집강소를 설치 할 때 익산의 대접주로서 대도회소를 설치하였다. 장흥의 관군들이 전봉준의 남접군이 북상한 틈을 타 동학도를 토벌하기 시작하자 동학군 3000명을 이끌고 12월 3일 장흥성을 함락시키고 장흥부사를 죽였다. 그러나 곧 일본군의 지원을 받은 관군의 공격으로 동학군은 대패하였다. 전봉준·손화중(孫華仲) 등과 재기를 도모하다가 전라북도 순창 복흥산(福興山)에서 체포되었 ...

2025-06-30 15:58

15

김덕태

|

도교

도교(道敎: 봉남계)를 창립한 김덕태(金德泰)는 경상남도 울산에서 태어났다. 부산영도에 거주할 때 병이 있어 김봉남의 부인 박씨에게서 물법치료를 받고 효험이 있은 후로 봉남의 신자가 되었다. 봉남이 사망한 뒤 부산 동래구 온천동에서 환자들을 시술하면서 천지의 어머니인 태상노군(太上老君)이 자기에게 강림해 있다고 하면서 자신을 신격화시켰다. 그래서 신자들은 김덕태를 ‘천지어머니’라 신봉하였으며 한때 수백 명의 신도가 있었다. 법단에는 천지어머니라고 하는 노고(老姑)의 상을 모시고 있었는데 이 상은 김덕태의 얼굴과 흡사했다. 수련은 태상노군을 주송하면서 단식을 했고 이런 수련으로 환자들의 병을 고치게 했다. 참고문헌 : 『 ...

2025-06-30 15:57

15

김덕명

|

동학

김덕명은 1895년 금구 용계에서 태어났다. 1886년 동학에 입도하고 그 해 10월 11일 경상도 상주의 화령 근처에 있는 전성촌으로 제2대 교주 최시형(崔時亨)을 찾아가 도를 받았다. 1887년에는 원평에 동학의 도회소(都會所)를 설치하고 포교에 힘썼다. 그는 교조신원운동 과정에서 원평집회의 주역이였으며 1894년 4월 무장봉기 이후 원평지역 농민봉기 황토현 전투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다. 원평 전투의 패전으로 동학혁명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김덕명은 이후 금산면 장흥리 안정사동에 약 1개월간 숨어 있다가 붙잡혀서 서울로 압송되었고 1895년 3월 29일 전봉준·손화중·최경선·성두환(成斗煥)과 함께 처형되었다.

2025-06-30 15:56

15

기우제

|

가뭄에 대한 대책은 민간뿐만 아니라 국가에서도 적극적으로 강구하였다. 가뭄이 계속되면 농작물의 파종이나 성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으므로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는 기우제를 지내는데 이를 ‘물제’라고도 한다. 다른 농경의례와 달리 기우제는 비가 내리는 효험이 있을 때까지 반복하여 지내는 특성이 있다. 의례를 지내는 제주(祭主)를 바꾸거나 제장(祭場)을 옮기고 주법(呪法)을 바꿔가며 반복하여 지낸다. 한 지역에 여러 방법의 기우제가 전승되기도 한다. 또한 효험이 있다고 믿는 기우제는 급속히 다른 지역에 전해져서 일정 지역에 밀집된 분포를 나타내기도 한다. 기우제의 유형은 ① 산 위에 장작을 쌓아놓고 불을 놓는 형 ② 동물희생이 ...

2025-06-30 01:16

15

처음으로 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