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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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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종교

신철호는 1989년 10월 5일 밤에 하느님으로부터 결재천문(決裁天文)을 받아 서울 도봉구에서 김정희와 함께 세계종교를 창립했다. 또한 그는 한때 ‘단군연구회’의 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단군연구회는 우주종교진리회라고도 호칭하였다. 신철호가 종교활동을 겸하면서 본회의 활동을 하였다는 점에서 단군연구회에 대한 구체적인 활동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신철호가 단군정수회의 이춘상과 손을 잡고 1965년부터 『정수회보』를 간행하였으며 『한국근대민중종교사상』에 「단군사상과 대종교」를 주제로 논고를 싣기도 하는 등 저작활동에도 적극적이었던 점을 통해 볼 때 이러한 활동의 근거가 된 것이 단군연구회일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 ...

2025-07-01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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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산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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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대도

1934년 11월 이토암 대성사부가 타계하자 처음에는 충남 연기군 금남면 신촌리에 양례(襄禮)하였는데 1946년에 연기군 금남면 영대리 삼태봉으로 이장하였다가 2001년 충남 논산군 노성산의 훈풍로심(薰風露心; 향내음 바람에 꽃 마음이 드러난 것)혈로 다시 이장하였다. 이곳은 토암 자신이 “만고에 신령스런 지경의 천연성지로다…이곳은 네 선생과 팔사(八士)의 몸이 거처할 땅이니라.”할 정도로 명당대지로 알려져 일찍부터 성지로 꼽혀왔으며 수 십 년간 종단의 숙원사업이었다. 노성산은 일매팔지(一梅八枝)의 형국으로 옥룡자(玉龍子)가 보고 “鷄鳴九曲天將曉하니 馬路春風北麓肥라. 天下名山何處在오. 舞童山下亂花飛”라고 찬탄했다고 한다 ...

2025-07-01 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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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통일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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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법화본종

한국불교법화본종에서 격년으로 행하는 남북통일기원법회. 참고문헌 :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7)

2025-07-01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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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통일기원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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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정유도

갱정유도는 도조 영신당주 강대성이 ‘대화중흥국’을 주창하고 2세 교주인 계도선사 김갑조가 ‘통일과 평화를 위한 민족선언 4대 항목’을 선포하는 등 남북통일과 세계평화를 위한 종교적 실천운동을 꾸준히 전개해왔다. 이 연장선상에서 갱정유도는 1984년 3월 20일 분단을 상징하는 휴전선 인근 임진각에서 남북통일과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기원대제를 봉행했다. 갱정유도인 600여 명과 내외귀빈 100여 명이 참석한 이날 기원대제는 ‘천황상제존위(天皇上帝尊位)’를 모신 제단에서 갱정유도의 전통적 종교의식에 따라 봉행되었다. 기원대제가 끝난 뒤에는 대통령과 남북한동포 그리고 유엔사무총장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각각 채택되었다. 참고문헌 ...

2025-07-01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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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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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화동대도

김형규는 1891년 3월 29일 경남 합천군 쌍벽면 안계리에서 출생했다. 27세때 보천교에 입교하여 치성 절차 주문에 따라 열심히 공부를 했으나 보천교의 타락과 신풍운동이 일어나 대립된 양상을 보고 보천교에서 탈퇴하여 독자적인 수양생활을 계속했다. 이후 1947년 해인사에서 보화교 교주였던 김환옥을 만나게 된다. 그는 저녁 치성 중 ‘백의초상관음불(白衣肖像觀音佛)’이란 소리가 크게 울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앞에 있는 부처가 바로 김환옥의 얼굴이었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김환옥을 받들기로 마음먹고 보화교에 입도하게 되었고 김환옥에게서 ‘대봉’이라는 호를 받게 된다. 1954년에 김환옥이 사망하고 1959년에 원평 보화교 ...

2025-06-30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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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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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인교 각세도남관

각세도의 도주 이선평은 깨달음을 얻은 후 교단을 설립하면서 동서남북으로 사관을 두었다. 이때 김해제는 남관의 도주로 임명된다. 그러다 1956년 이선평이 사망한 후에는 남관에서 독립하여 천인교를 설립하였으며 이후 천인교 포교에 힘쓰다 사망하게 된다. 김해제의 후계는 한계택과 한백우 등으로 이어지나 이후 천인교는 교세가 점차 미미하게 되었으며 결국 소멸하게 된다. 참고문헌 : 『한국민족종교총람』(한국민족종교협의회 1992)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7)

2025-06-30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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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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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백교

김판례는 대전에서 태어났으며 일찍이 일본으로 건너가 13년간 거주하였는데 시모노세키[下關]에 살 때 몸에 신기가 있어서 신설(神說)을 토설하였다고 한다. 해방 후 귀국하여서는 일시적으로 기독교를 신앙하였는데 몸이 심하게 괴로워지고 3남매가 병사하고 남편은 객사하는 등 집안에 우환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는 대전 보문산에 들어가 기도수련을 시작했는데 이후 신병과 가세가 풀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김판례는 이 모든 것이 단군국조의 은덕이라 믿고 단군초상화를 걸고서 기도를 시작했는데 이때 단백교를 함께 창립한 남편 양준룡을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1955년 대전시 대사동 보문산에 불당을 짓고 ‘마곡사본산대전선교소’라고 ...

2025-06-30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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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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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문좌(文佐) 호는 심산(心山)·벽옹(躄翁)이다. 1919년 전국의 유림 130여 명이 독립청원서에 서명하여 파리강화회의에 보낸 이른바 파리장서사건을 주도하였으며 이후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였다. 1921년부터 『천고(天鼓)』 『사민일보(四民日報)』등의 독립운동지를 발간하였고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를 조직해 군사선전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1925년 국내로 잠입하여 비밀리에 독립운동자금 모금활동을 벌이고 다시 중국으로 출국하였으며 이 때 모금한 자금을 1926년 나석주에게 주어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투척하는 거사를 단행하도록 하였다. 1927년 상하이의 영국인 병원 ...

2025-06-30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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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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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황전

단황전의 창립자 김정숙은 1935년 충남 서산에서 출생했다. 일찍이 구도에 뜻을 두어 10여 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토굴에 들어가 기도생활을 하였는데 어느 날 하늘에서 불서기가 몸으로 내리면서 중생을 제도하라는 천명을 받게 된다. 그 뒤 그녀는 중생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점을 쳐주고 병을 치료해 주면서 생활했다. 그러면서도 때때로 단황님께 제수를 올리고 천하통일을 위한 평화기도를 드리기도 하였다. 1982년에 대전 석경산에서 천인합발(天人合發)을 위한 법시(法施: 천제)를 하였는데 이때 쌀 5백 가마니 소금 1천 가마니 등 2천여만 원에 상당하는 제물을 올려 천인합발을 이루었다고 한다. 천인합발이 이루어졌으므로 앞으 ...

2025-06-30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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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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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남사파

봉남사파(奉南寺派)를 창시한 김완진(金完珍 1921-? 호 月河)은 1921년 제주도에서 출생했다. 김봉남(金奉南)의 조카였다. 경상남도 기장으로 나와 숙부가 지도하는 물법수련 공부에 힘써 봉남으로부터 월하라는 도호까지 받았다. 김봉남 사망 후 김해 교인들을 모아 자기 집에 ‘봉남사’라는 간판을 걸었다. 한 때 수백 명의 신도를 얻었으나 제주도로 돌아가 불승(佛僧)이 되었다. 아미타불과 봉남을 신앙하였다. 그는 봉남교를 불교적으로 만들어 포교하는 것이었지만 그러면서도 봉남이 가르친 물법치료와 주송수련은 그대로 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7)

2025-06-30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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