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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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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교(正道敎)를 창립한 이정원(李正院, 1935~?)은 1935년 1월 29일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에서 출생했다. 객지로 나와 생업에 종사하다가 1968년도에 신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1970년도에 부산진구 전포동에 법당을 차리고 점도 치고 굿도 하였다. 1973년 천사명으로 태상노군을 받고 스스로 천존대왕이라고 했고, 1978년부터는 스스로 하느님이라 했다. 1979년 대한승공경신연합회 부산진구 지부장직을 지내다가 그해 12월에는 대한불교유불선종(대한정도교)의 간판을 걸고 천신제를 지내기도 했다. 1988년에 부산시 부산진구 초읍동으로 이전하여 정도교라 하였다. 본교의 신앙의 대상은 하느님 즉 증산천사이다. 천상 ...

2025-10-09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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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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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세종주도

영세종주도(永世宗主道)를 창립한 정대오(丁大午, 1930~?)는 1930년 10월 25일 전라남도 무안군 이로면 대양리 내화촌에서 출생하여 녹동에서 성장했다. 19세시 순천도를 알고 도를 찾아 전라북도 김제군 황산면 남양리로 이사하여 거기서 살았다. 전봉래 연원으로 류춘래를 만나고 그의 가르침을 받으며 혹독한 수련을 하였다. 금구면 개전리에 수련소를 짓고 8년 동안 머리도 깎지 아니한 채 수련을 했다. 그러던 중 1964년 12월 26일 『현무경(玄武經)』을 읽다가 새로운 후천역이 떠올랐다고 하였다. 그는 그의 일생 해야 할 일을 ‘십상성도(十相成道)’로 표현했다. 9상은 준비과정이고 10상 째는 중생제도라고 했다. 수 ...

2025-10-09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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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판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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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불도

전판철은 1905년 전북 익산군 용안면 법성리에서 출생하였다. 13세 때 위장병에 걸려 오랫동안 고생하다가 40세에 병세가 악화되어 절명상태에 빠졌는데, 꿈에 자기가 용이 되어 천상으로 오르다 떨어지면서 소생하였다고 한다. 그 뒤로도 며칠 사이에 두 번 절명하였는데, 천상의 옥황상제와 선녀, 단군할아버지를 보고 깨어났다고 한다. 이후 그는 자신도 모르게 ‘나무아미타불’을 연발하였는데, ‘네가 어찌 천명을 반대하느냐’는 신설(神說)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또한 방 안에서 눈 감고 있어도 밖의 사물들이 눈앞에 있는 것처럼 나타나기도 하고, 사해용왕(四海龍王)을 비롯한 신명들도 보였다고 한다. 때로는 악마들이 나타나 해를 ...

2025-10-09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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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효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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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장효근은 이종일(李鍾一)·오세창(吳世昌) 등과 함께 《제국신문(帝國新聞)(1898년)》을 창간한 당대의 대표적 언론인이다. 그는 1905년 12월 천도교에 입도하였고, 1906년 6월에는 《만세보(萬歲報)》 창간에 참여하여 국가문명의 계몽과 자주독립사상을 고취하였다. 1909년부터 1910년까지는 천도교가 주도한 대한자강회(大韓自强會)와 그 후신인 대한협회(大韓協會)에 참여하여 오세창·최영직 등과 함께 《대한민보(大韓民報)》를 창간하였다. 1914년 8월 민중운동으로 보성사 안에 천도교구국단을 조직하였으나 실패했고, 1919년 2월 27일에는 천도교 산하 보성사(普成社) 총무로 있으면서, 3·1독립선언서를 인쇄·배포한 ...

2025-10-09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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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단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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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부여 장암면 장하리에 대종교인 강진구(姜鎭求)에 의하여 세원진 단군계 신종교 성격의 사묘.

2025-10-09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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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희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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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희선도태백원

인희선도태백원에서는 1984년『인희보감』 상·하권을 출간하였고, 본교의 중점사업으로 『인희보감』의 강론이 자리하고 있다. <참고문헌>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종교문제연구소, 1997)

2025-10-08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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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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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도(人天道)를 창립한 정용은(鄭鏞殷, 1930~1994)은 1930년 경상북도 안동군 진안면 현하동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증산교를 알게 된 후 전국의 심산유곡을 돌아다니며 수도를 하다가 1971년에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항촌리에서 밀교(密敎)를 설립했고, 1972년에 문공부에 등록하고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그의 종교 활동은 전국에 알려져 서울·부산·안동 등지에서 신자들이 찾아오곤 했다. 일시 사회변화에 따라 현실에 참여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가 무고죄로 수감되어 재판을 받은 일도 있다. 광주민주화운동을 전후하여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는 고발장을 보낸 것이 무고죄가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활동하다가 1994년에 사망했다 ...

2025-10-08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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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광명서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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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도

광명도의 창립자 정요순은 민족정신을 회복하고 정치의 좌우세력을 합일시키며, 종교와 종파를 귀일시키고, 나아가 인류의 삼대 불행인 전쟁, 질고(疾苦), 기한(飢寒)을 없애기 위해 광명도를 창립하고 ‘인류광명화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그는 인류광명화운동을 위해 많은 저술을 출판하고, ‘물심인화고등학관’ 등을 세워 인재를 육성하였으며, 정치인들에 서간을 보내는 등 적극적으로 운동을 실천해 나갔다. 아울러 인류광명화를 이루기 위해 인류광명화운동원들을 중심으로 ‘인류광명서원식’을 행하게 하였다. 이 서원식은 매일 두 차례에 걸쳐 행하였으며, 새벽에는 인묘시(寅卯時), 밤에는 술해시(戌亥時)에 하도록 하였다. 기도식순은 다음과 같 ...

2025-10-08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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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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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각교

이호필은 일제강점기 고양군 숭인면 회기리(高陽郡崇仁面回基里)소재 연화사(蓮花寺)의 승려였다. 그는 연화사에서 8년간 수도하여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1919년 2월 친구인 이원승(李源承)과 협력하여 영각교(靈覺敎) 창립하는데, 교주로는 스승이었던 윤갑병(尹甲炳)을 추대한다. → 영각교 참조. <참고문헌> 『朝鮮의 類似宗敎』(村山智順 저, 최길성·장상언 공역, 계명대학교출판부, 1991)

2025-10-08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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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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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교(性道敎)

이민제(李民濟)는 1907년 동학에 입도하였지만 이후 시천교에 들어갔다. 그는 입산수도 끝에 1923년 득도하여 『삼역대경(三易大經)』을 저술하고 성도교를 창립하였다. 성도교가 포교를 시작하자 일본경찰은 성도교를 사교로 간주하여 이민제를 9개월 간 수감시켰다. 출옥 뒤에도 지속적으로 포교활동을 하다가 경찰에 체포되어 옥사했다.

2025-10-08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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