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천왕도
1976년 구인식(具仁植)은 단군시대로부터 전해오는 천왕도(天王道)의 교리를 풀이한 『천왕도』를 편찬하였다. 부제가 ‘민족고유(民族固有)의 제정철학(祭政哲學)’이라고 붙어 있으며, 세로글 양장으로 되어 있다. 대종문화연구원에서 편찬하였으며, 출판사는 대지출판사이다. 규격은 B6판으로 총 분량은 254쪽에 이른다. 당시 가격은 2,500원이었다. <참고문헌> 《매일경제》(1976. 11. 3.)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7)
2025-10-10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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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재
천도재는 망자가 극락정토로 왕생하기를 기원하는 불교의식이다. 불교에서 죽음의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유한한 삶에서 죽음은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다. 대부분의 종교는 이 죽음의 문제를 다양하게 설명한다. 불교에서의 죽음은 삶의 연장이고, 생이 다하면 인간의 영혼은 극락과 지옥으로 간다고 말한다. 삶의 업보에 따라 결정되는 극락과 지옥이지만, 망자를 위해 정성으로 천도재를 올리면 누구나 극락으로 갈 수 있다는 믿음이다. 천도재는 사람의 사후 일정한 시기에 행하는 사십구재(四十九齋)와 모든 영혼들의 왕생을 기원하는 수륙재, 그리고 우란분재(盂蘭盆齋,) 지장재(地藏齋) 등이 있다. 사람이 죽으면 다음 생을 받을 ...
2025-10-10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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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청년운동
천도교
초기 천도교청년운동은 천도교청년교리강연부의 취지대로 ‘성신쌍전(性身雙全)의 유무겸전(有無兼全)인 원만무결한 인내천주의의 실현’에 있었다. 이는 사회의 묵은 제도의 개혁과 신문명 건설에 책임을 다하는 것으로 인식되었고, 이러한 맥락 하에서 월간잡지 『개벽(開闢)』을 창간했다. 사회주의가 풍미하고 노동문제가 핵심주제로 부상함에 따라 1921년 4월 25일에는 교리강연부를 천도교청년회로 변경하여 민족과 계급을 포함하면서도 이를 뛰어넘는 ‘범인간적(凡人間的) 민족주의’를 제창하였다. 1921년 4월에는 천도교소년부를 창립하여 5월에 어린이날 행사를 거행함으로써 우리나라 소년운동의 효시가 되었고, 1922년 6월에는 여성잡지 『 ...
2025-10-10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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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창건사
천도교
천도교창건사는 1933년 이돈화가 저술하고 천도교 중앙종리원에서 발행한 중요한 역사 문헌이다. 서문은 현암(玄菴) 정광조(鄭廣朝)와 계암(桂菴) 최석련(崔碩連)이 썼다. 최석련은 서문에서 천도교 역사를 “후천생활의 창조적 역사이며, 후천인류의 시조적(始祖的) 역사”라 평하였다. 책의 내용은 대신사편(大神師編), 해월신사편(海月神師編), 의암성사편(義菴聖師編), 중의제편(衆議制編)의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천도교 역사 70년래의 사적과 법설의 개략을 적은 것이다. 수운의 대각(大覺)을 섬세하게 묘사한 것이 특징이고,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이돈화 자신의 관점을 서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는 동학농민혁명의 원인 ...
2025-10-10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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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대교당
천도교
천도교 중앙총부에서는 대교당 신축과 독립운동자금 마련을 위해 3·1운동의 전 해인 1918(포덕59)년 4월 4일 부구총회(部區總會)에서 중앙대교당과 중앙총부 건물을 신축하기로 결의하였다. 이에 따라 각 연원을 통해 매 교호당 10원 이상씩의 건축특성금을 10월 28일 대신사 탄신기념일까지 내도록 하였다. 모금이 시작되자 총독부는 기부행위금지법 위반이라는 이유로 한성은행(漢城銀行)에 3만 원, 상업은행(商業銀行)에 3만 원, 한일은행(韓一銀行)에 6천 6백 원 등 모두 6만 6천 6백 원의 예금을 동결시켰다. 이러한 일제의 방해를 무릅쓰고 많은 교인들은 논밭과 황소 등을 팔아 성금을 냈다. 각종 어려움 끝에 교당건축성금 ...
2025-10-10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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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교리독본
천도교
이돈화의 『천도교교리독본』의 목차를 보면 “1. 무극지운 2. 대신사의 내력 … 7.포덕과 도성 덕립 … 21. 계명. 22. 오관 … 26. 해월신사의 행적과 말씀 … 30. 한울에 대한 말씀”으로 이뤄져 있다. 천도교 교리 독본을 쓴 이돈화는 천도교 사상을 근대적 시각에서 이해했고, 여러 잡지를 통해 이를 널리 알렸다. 호는 야뢰(夜雷)·백두산인(白頭山人)이고, 도호(道號)는 두암(豆菴)이다. 1902년 동학에 입교하여 1910년부터 천도교월보사에 근무했다. 1919년 천도교 청년교리강연부와 이듬해 천도교청년회 조직에 참여했다. 1920년 6월 『개벽』 창간을 주도하여 주간으로서 천도교 교리에 대한 근대적 해석과 민 ...
2025-10-10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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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궁
천궁을 창립한 정소아(1914~1992)는 1946년에 신기(神氣)가 있어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굿과 점업(占業)을 하다가 1958년에 서울시 용산구 용문동에서 ‘경용암’이란 이름으로 종교활동을 시작했다. 한때는 단골신자가 수백 명에 이르렀으나 점점 신자가 떨어져 나가고 절일에 20여명이 모이다가 1992년에 교주가 사망하고 난 뒤 멸실 되었다. 천궁의 신앙대상은 신(神)과 불(佛)이었다. 신으로는 금강신장, 신중, 극락도사, 달마대사, 시왕(十王) 등이 있고, 불로는 관세음보살, 아미타불, 대세지보살, 보현보살, 석가세존, 문수보살, 미륵보살, 칠성여래 등이 있다. 특별히 단군성조도 숭배했다. 빌고 가르치는 내용은 국 ...
2025-10-10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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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복음전도회
구인회의 새마을전도회가 변경한 명칭.
2025-10-10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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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복음기도단
1929년 평양에서 태어난 김옥순은 30세 무렵 심한 병에 걸려 회현동 송죽고아원에서 3일간 안수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시력과 청력이 신이하게 트이는 듯한 체험을 한 그는 이후 도처에서 심령을 보고 타인의 마음을 투시하는 능력을 얻게 되었으며, 1959년 4월에 대한수도원에 들어가 45일간을 금식기도를 한 뒤 은사체험이 더욱 강화되어 성령이나 마귀와의 대화가 가능하게 되었다고 한다. 1965년 1월 “사람이 전하는 것은 천국의 복음이 될 수 없으므로 하나님의 계시를 직접 받은 김옥순 본인이 천국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제단을 쌓는다.”고 주장하면서 ‘대한예수교천국복음제단’을 창립하였다. 1970년대 말 서울 강남 신사동에 ...
2025-10-10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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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교도칠계율
천교도
①목숨을 소중히 여겨라. 반드시 소용되지 않거든 살생을 피하라. 살생을 즐기는 자 저도 그러함을 당하리라. ②탐욕을 경계하며 사치와 허영을 삼가라. 마음에 탐욕이 일어나면 이미 도적이나 다를 바 없으니 죄와 빈곤에 신음하리라. ③말을 슬기롭게 쓰며 언행을 일치하라. 비방이나 거짓말을 하지 말며 허황된 말을 삼가라. 괴롭다 슬프다 아프다고 말을 하지 말고 오직 기쁘다 즐겁다 감사하다는 말만 하라. 이 모두가 복이 되어 돌아오느니라. ④어리석은 마음을 가지고 성을 내지 마라. 내 마음을 밝혀 복을 구하며 귀신이나 우상에 빌어 복을 구하지 마라. 이 모두 사도니라. ⑤겸손하고 그리고 참회하라. 교만하고 방자한 자마다 인화를 ...
2025-10-10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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