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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불회통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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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에 입각한 예교(禮敎)국가로 출범한 조선 초 유교와 불교가 다르지 않으며 서로 회통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조선 초기의 고승 기화(己和)가 유교와 불교를 비교하여 논술한 『유석질의론(儒釋質疑論)』이 대표적인 저술인데, 이는 정도전 등 유학자들의 배불론(排佛論)에 대하여 불교의 입장에서 유교와 불교를 대질하여 자문자답식으로 논술한 책이다. 유교와 불교는 세상을 구제하고 백성을 이롭게 하는 교법이므로 공존함이 마땅하니 서로 배척하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를 펼치고 있다. 이후 배불론과 불교옹호론 및 절충론 등의 논쟁이 이어졌으나, 조선 성리학이 정착되면서 유불회통론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2025-10-08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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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원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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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원불교 정기간행물은 『월말통신』을 위시하여 『월보』, 『회보』로 이어졌으나 일제의 언론탄압정책과 경제의 핍박으로 인하여 1941년에 자진 정간했다. 이를 계승하여 1949년 7월에 『원광』이 창간되었으며 교화·교육·자선 등 각 방면에 걸친 원불교의 활동 상황과 종법사의 법설, 교리 연구논문 및 해외소식·신앙수기·시·수상·타종교 소개 등이 게재된다. 1969년 국가의 ‘간행물 일제 정리’ 방침에 따라 계간으로 등록하고 제63호(1969년 10월 20일)부터 국가의 공인을 받은 정기간행물로 발행되기 시작했다. 1984년 8월호부터 월간으로 전환했으며, 통권108호(1984년 9월 20일)부터 편집체제를 세로편집에서 가로편집 ...

2025-10-08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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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산신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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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교회

함경남도 갑산 출신의 백남주(1902~1949)는 1930년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뒤 원산 지역에서 그리스어와 히브리어 및 요한복음의 강의로 명성을 얻었다. 그는 스웨덴의 신비주의사상가인 스웨덴보리(Swedenborg)의 사상에 영향을 받았으며, 기성교회를 비판하는 신앙부흥운동에 동참하였다. 1933년 동료 목회자들과 예수교회를 출범시켜, 그 해 9월 원산 광석동에 ‘신학을 공부하는 산’이라는 뜻의 신학산(神學山)을 차리고 신학생을 양성하였다. 백남주가 수도감에 취임하고, 교수진으로 백남주·한준명·박승걸 등이 있었다. 성경·신학·노동 등을 수련과목으로 하였다. 신학산은 예수교회와 마찬가지로 신비주의적 성향을 띠었으며, 약 ...

2025-10-08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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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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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종교와 철학 등 원불교와 관련 있거나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판단되는 내용도 수록했다. 『원불교대사전』은 총 1310페이지로 4536개 항목으로 대항목 114, 중항목 409, 소항목 4013으로 나눠 집필했다. 참여 집필위원은 32명, 첨부 사진은 135장이다. 『원불교대사전』은 원불교100년기념성업회 학술분과 사업으로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에서 2013년 편찬했다. 출판은 원불교출판사에서 했다.

2025-10-08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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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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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제, 샘고사, 샘굿, 우물제, 정호제(井戶祭), 용수제(龍水祭), 정제(井祭)라고도 한다. 우물은 수도 시설이 발달하지 않았던 옛날에 물을 얻기 위해 만들어진 시설로 수맥을 찾아 땅을 파서 지하수를 지상에 노출시킨 시설이다. 보통 한 동네가 공동으로 하나의 우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우물 하나가 오염되면 마을 전체가 수인성 질병에 걸리는 경우도 있다. 때문에 예로부터 우물은 용왕이 사는 곳이라 하여 매우 신성하게 여겼으며, 정기적으로 우물제를 지내고 우물을 청소하여 깨끗이 관리하였다. 군사기지나 성, 보루로 쓰이던 곳이나 여유 있는 집에서는 집 안에 우물을 만들기도 했다. 단, 풍수지리에 대한 믿음이 강하던 시절에는 “지 ...

2025-10-08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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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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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교회

조셉 스미스 시니어와 루시 맥 스미스의 슬하에서 11명의 자녀 중 5번째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성서를 공부하고 기도 생활 등을 통해 가정에 종교적인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러나 어린 시절에 조셉 스미스는 정기적으로 교회에 출석하지는 않았다. 감리교회에 좀 더 관심을 가지기도 했지만, 기독교의 여러 교파들이 공존하는 상황에서 어떤 교파의 신앙이 올바른 것인지를 두고 고민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14세 때 기도 중에 그리스도가 나타나 “수세기를 거치면서 기독교가 타락했으며, 참된 복음을 회복하기 위한 예언자이며 종으로서 조셉 스미스가 선택되었다.”는 말을 듣는다. 1823년에는 모로나이라는 천사의 계 ...

2025-10-07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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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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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오지영은 1868년 몰락 양반 출신으로 태어나 1891년 3월 23세에 동학에 입교하였다. 그는 1892년 손화중의 지시를 받아 선운사 석불 비결사건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것으로 전해지고, 1893년 11월에는 익산 민란에서 장두(狀頭)로서 활약하였다. 1894년 동학 농민군이 집강소를 설치 할 때에 대접주인 김방서의 휘하에서 집강소 사무를 담당했다. 10월에는 공주 우금치와 논산 황화대에서 경병(京兵)과 전투하였다. 전투에서 패배한 뒤 한양으로 피해 양주 묘적암에 은거하였다. 1908년에는 익산교구장, 1909년 이후에는 중앙총부에서 교역자로 활동하였고, 호남학회에도 가담하였다. 1920년에는 천도교 1차 분규 때 혁신 ...

2025-10-07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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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심당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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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1923년 천도교청년당은 경성에 불불당(不不堂), 평양에 오심당(吾心堂)을 각각 조직하였다가 1929년 이를 하나로 통합하여 오심당으로 명명하고, 활동을 강화하였다. 1931년 일본이 대륙침략을 획책하자 중앙대표 김기전, 평양대표 김길수(金 吉洙), 지방대표 이도순(李道淳) 등이 모여 향후 일제가 국제적·정치적으로 위기에 봉착할 것으로 전망하고 조선독립운동을 추진하기 위해 당원과 자금을 늘리기로 결정하였다. 당원은 서울·황해도·평안남북도·함경남북도에 걸쳐 10년 이상 천도교를 독실히 믿어온 교도들 중에서 신중히 선발하고 1년에 5원씩 운동자금을 내어 대중운동을 준비하도록 의무화하였다. 조직이 발각되기까지 230명의 당원 ...

2025-10-07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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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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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오근태는 1882년 10월 23일 강원도 화천군 화천면 풍산리에서 출생하였다. 자는 성범(聖範), 호는 죽포(竹圃)이다.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하였고, 1905년부터는 고향에서 15년간 한문사숙 선생을 하였다. 1913년 대종교에 입교하여 시교원(施敎員)이 되었고, 1917년 만주 봉천성 장백현으로 이주하였다. 1918년 영계(靈戒) 및 참교(參敎)를 받았으며, 동년 현립 제이정몽학교(第二正蒙學校)의 교원으로 근무하였다. 1924년에는 윤세복을 따라 길림성 영안현으로 이주하였으며, 지교(知敎)가 되었다. 이후 경각봉선(經閣奉宣), 총본사 전범(典範) 등을 역임하였으며, 화룡현 교구에서 근무하였다. 1927년부터 8여 년 ...

2025-10-07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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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교영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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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춘생이 전북 완주군 소양면 쌍계사에서 창립한 영주교(林春生)의 다른 이름.

2025-10-07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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