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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대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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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삼덕도

용화삼덕도(龍華三德道)를 세운 강기춘(康基春, 1903-?)은 신앙의 대상으로 태상노군·아미타불·용화불·석가불을 모시고 있다. 그 이유는 김봉남이 부처님은 선이므로 부처님을 부지런히 부르면 선한 사람이 된다하였으므로 부처님을 모신다고 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는 자기에게는 이미 토설로서 부처님을 봉남과 함께 받들어야 할 천명과 호흡보살(呼吸菩薩)이라는 법명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963년 5월 남해 금산 상봉에서 기도수도를 할 때였다는 것이다. 이때 ‘선화대도 봉남진여대성불 용화교주 오봉구천 미륵존불 호흡보살 보령통신 각도득지 태상노군 급급여율령섭(禪化大道 奉南眞如大聖佛 龍華敎主 吾奉九天 彌勒尊佛 呼吸菩薩 ...

2025-10-08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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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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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진리회

대순진리회 『전경』에 의하면 “천존과 지존보다 인존이 크니 이제는 인존시대라。마음을 부지런히 하라.”(교법 2장56절)고 한 데서 지금은 인존의 이념이 지배하는 시대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인존사상은 전통적으로 일컬어온 인도주의(人道主義), 인본주의(人本主義), 혹은 인간중심주의(人間中心主義)와는 맥락을 달리하고 있다. ‘인존’의 이념은 기본적으로 유신론(有神論)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또한 신과 인간이 조화(調化)를 이룬 신인간의 모습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순사상의 이상적 인간관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대순지침』에 따르면 “우리 대순진리의 인존사상이 바로 평화 사상이다.”라고 하여 인존이 실현될 때 진정한 평화 ...

2025-10-08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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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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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악교

모악교의 창립자인 여처자의 이칭. 인정상관이란 신법(神法)을 행한 여도인(女道人)의 우두머리라는 뜻.

2025-10-08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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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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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의 창립자 전판철은 어려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난 뒤, 신안(神眼)이 열리고 이보(耳報)와 구보(口報)가 열렸으며, 이후 병든 사람의 손을 잡고 ‘인불대신(人佛大神)’이라는 주문을 외우면 대부분의 병이 낫는 신통력을 갖게 되었다. 이렇게 사람들을 치료해주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으며, 그를 도통한 ‘인불(人佛)’로 불렀다고 한다. 이후 그를 따르는 무리가 천여 명에 이르고, 전판철을 ‘인불대신’으로 받들게 되자 1965년 전북 익산군 용안면 교동에 교당을 신축했다. 이 교당도 당시 서울 모 회사의 사장이었던 조용채(趙龍采)라는 사람이 전판철로부터 중병을 치료받고 그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거액의 성금을 기부하여 사당을 ...

2025-10-08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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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불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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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불도

인불도의 창립자인 전판철은 어려서부터 앓던 지병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 후 치병의 능력이 생겼는데, 그는 환자의 손을 잡고 안마하면서 ‘인불대신’이라는 주문을 외우고, 환자로 하여금 이 주문을 외우게 하면 대부분의 병이 나았다고 한다. 따라서 인불대신은 주문이나, 이후 전판철을 따르는 신자들은 그를 ‘인불대신’이라고 칭하게 되며, 신앙의 대상으로 모시게 된다. 특히 전판철의 사후에는 일시적으로 단군성조의 위패를 모시던 사당을 ‘인불성전’이라고 고치고 전판철의 영정을 모시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한국민족종교총람』(한국민족종교협의회, 1992) 「전판철의 인불도」(김홍철, 『원광』, 1990년 4월호)

2025-10-08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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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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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정심회

미륵정심회(彌勒正心會)를 창립한 이호정은 1875년 경상북도 군위군 산성면에서 출생했다. 일찍이 보천교에 입도하여 중요간부인 육임(六任)으로 있었다. 보천교가 쇠퇴한 후 고향으로 돌아가 영일군 죽장면 지동에 서당을 차리고 훈장노릇을 하면서 제자들에게 미륵사상(彌勒思想)을 주입시켰다. 1944년경부터이다. 8.15해방이 되자 본격적인 포교활동을 전개, 정심교라는 교명으로 종단을 형성, 포항 덕수동에 교단본부를 두고 포교한 결과 1960년대에 1,000여명의 신도를 얻었다. 그는 포교방침을 불교 사찰내의 침투라는데 착안하여 신도들로 하여금 머리를 깎고 신도가 되어서 절에 들어가 포교할 것을 명하였다. 이런 방침은 기성불교의 ...

2025-10-08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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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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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1892년 평안남도 강동군 원탄면 상리마을에서 출생했다. 1914년 개신교 학교인 평양 광성소학교를 졸업, 1918년 미국 유학을 목적으로 상해로 갔다가 1919년 2월 평양으로 돌아왔다. 그해 6월 다시 용정으로 가서 1922년 독립운동을 하였다. 용정 감리교회에서 회개체험을 한 후 협성신학교에 입학하였으며, 이곳에서 변성옥 학감의 민족주의에 영향을 받았다. 1933년 이용도의 별세 후 그 뒤를 이어 평양에서 창립된 예수교회공의회의 중앙선도원 선도감(宣道監)에 취임하였다. 만주사변 후 신사참배가 강요를 피해 1937년 일본으로 유학하여 1943년에 귀국했다. 끝까지 창씨개명을 반대했다. 해방 후 교파 없는 신학교, 평 ...

2025-10-08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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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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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이창언은 1877년 12월 6일 함경북도 경성군 주북면 직동에서 출생했다. 호는 백향(白香).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하였고, 고향에서 계몽사상 고취에 힘썼다. 1916년 대종교에 입교하여 20년 동안 시교원(施敎員)으로 활동하면서 수천 명의 교인을 입교시켰고, 참교(參敎)·지교(知敎)·상교(尙敎)로 승질(陞秩) 되면서 신일당전무(信一堂典務)·성일당전무(成一堂典務)·참의원참의(參議院參議) 등을 역임하였다. 1942년 11월 19일 일제가 대종교를 탄압하기 위해 조작한 임오교변으로 체포되어 목단강경무처에 구금되어 심한 고문과 기한에 시달리다가 15개월만인 1944년 1월 9일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교단에서는 1946년 8월 ...

2025-10-08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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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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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으로 3·1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1920년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 혐의로 2년간 옥고를 치렀으며 출옥 후 천도교 내 지하 독립운동 조직인 고려혁명위원회의 고문으로 활동하였다.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나 유년기에 윤치소, 의친왕, 권동진 등과 필운학당에서 수학하였다. 이후 명문가 출신인 윤치소의 조카와 결혼했다. 1883년 동학에 입도한 선생은 1894년 동학농민전쟁 2차 봉기과정에서 부상하기 시작, 경기·충청·강원을 망라한 20여 개가 넘는 포를 아우르는 북접 지도자로 성장하였다. 이후 손병희가 일본에 망명하던 시기 박인호 등과 함께 교단 운영에 참여하였고, 1905년 12월 천도교가 창건되는 과정에 ...

2025-10-08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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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운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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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운규의 속명. <참고문헌> 『한국신흥종교총감』(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10-08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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