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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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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교

동천교(東天敎)의 창시자.

2025-06-30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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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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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기독교회

그는 1918년 봉산(鳳山) 신원교회(新院敎會)를 맡고 있으면서 장로교가 선교사의 주도아래 구태의연한 보수주의 신학에 매몰되어 있다고 비판하고 조선적 신학과 자유로운 신학연구를 이끌며 기성교회로부터 자치를 선언한 인물이다. 그의 이러한 활동은 서구의존적인 신앙과 신학에서 벗어나고자 했다는 점에서 한국의 기독교사에서 신앙과 신학의 토착화운동의 흐름과 같은 맥락을 형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김장호 외에 김종태(金鐘台) 현성원(玄聖元) 등도 조선기독교회를 주창하였다. 그러나 반선교사와 반교권(反敎權)이라는 그들의 좋은 취지의 활동에도 일제치하라는 상황 때문에 친일로 기울어질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었다.

2025-06-30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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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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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성교(關聖敎)

김용식의 구체적인 생애는 알려진 바가 없으나 1920년 박기홍(朴基洪)과 함께 종래의 관제(關帝)를 숭배한 숭신단체 전내무(殿內巫) 및 일반 민중을 교도로 하는 관제숭배자를 규합하여 관성교를 조직하였다. 김용식은 전내무 등에 의해 잘못 전해진 관제의 교를 교정하는 한편으로 관제의 충렬용의(忠烈勇義)로써 민중을 선도하려고 하는 취지요령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朝鮮의 類似宗敎』(村山智順 저 최길성․장상언 공역 계명대학교출판부 1991)

2025-06-30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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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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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남사파

봉남사파(奉南寺派)를 창시한 김완진(金完珍 1921-? 호 月河)은 1921년 제주도에서 출생했다. 김봉남(金奉南)의 조카였다. 경상남도 기장으로 나와 숙부가 지도하는 물법수련 공부에 힘써 봉남으로부터 월하라는 도호까지 받았다. 김봉남 사망 후 김해 교인들을 모아 자기 집에 ‘봉남사’라는 간판을 걸었다. 한 때 수백 명의 신도를 얻었으나 제주도로 돌아가 불승(佛僧)이 되었다. 아미타불과 봉남을 신앙하였다. 그는 봉남교를 불교적으로 만들어 포교하는 것이었지만 그러면서도 봉남이 가르친 물법치료와 주송수련은 그대로 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7)

2025-06-30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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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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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단정도회

김연은 1963년 서울 용산구 도원동에서 단군신앙을 중심으로 한 숭봉단체인 신단정도회를 창립하였다. 그가 단군신앙운동을 통해 국민정신을 진흥 단합시키고 나아가 세계를 한 집안으로 만드는 새 세계 건설을 이룰 것을 주장하였다. 특히 그는 자신이 단군신앙운동을 전개하게 된 배후에 기독교인 정득은과 증산교인 강기산의 지시가 있었다고 말하여 기존과 다른 독특한 계통의 단군신앙 단체를 만들었다. 참고문헌 : 『한국신흥종교총람』(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06-30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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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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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정신선양회

김시성은 1908년 전남 함평에서 출생하였다. 경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이후 한학을 공부하면서 화랑정신에도 관심을 가지고 수도를 하였다. 1928년 중국으로 건너가 의당(宜堂)이라는 중국인에게 의술을 배우면서도 화랑도와 단군의 풍월도 등에 대해 배웠다고 한다. 이후 스스로 화랑도와 김유신장군 등에 대해 깊이 연구하였고 한편으로는 상해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보내고 독립운동가를 도와주는 활동을 하였다. 해방 후 귀국하여 용산에서 한약업을 하다가 한국전쟁 발발로 충남 예산으로 피난하게 되었으며 1965년 본인이 회장으로 있는 가락김씨 종친회를 통해 ‘화랑사’를 건축하고 단군사상과 화랑정신 특히 김유신장군의 업적을 기리는 ...

2025-06-30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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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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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

도교(道敎: 봉남계)를 창립한 김덕태(金德泰)는 경상남도 울산에서 태어났다. 부산영도에 거주할 때 병이 있어 김봉남의 부인 박씨에게서 물법치료를 받고 효험이 있은 후로 봉남의 신자가 되었다. 봉남이 사망한 뒤 부산 동래구 온천동에서 환자들을 시술하면서 천지의 어머니인 태상노군(太上老君)이 자기에게 강림해 있다고 하면서 자신을 신격화시켰다. 그래서 신자들은 김덕태를 ‘천지어머니’라 신봉하였으며 한때 수백 명의 신도가 있었다. 법단에는 천지어머니라고 하는 노고(老姑)의 상을 모시고 있었는데 이 상은 김덕태의 얼굴과 흡사했다. 수련은 태상노군을 주송하면서 단식을 했고 이런 수련으로 환자들의 병을 고치게 했다. 참고문헌 : 『 ...

2025-06-30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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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능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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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심교정원

김능복은 1940년 황해도 현성군 금산면 감수리에서 태어났다. 한국전쟁 당시 월남하여 익산군 함라면 신대리에 살며 초등학교와 중학을 졸업했다. 중학 2학년 때인 1969년 본원 창설의 원리인 「삼심대(三心大)」를 경험하게 되었다고 한다. 중학교 졸업 후 여러 종교를 편력하며 다니다가 군에 입대하여 1957년 제대하고 전북 익산군 함라면 신대리에서 윤불물십본지(圇佛物十本地:念佛宗)란 교명으로 문공부에 사회단체 등록을 했다. 그 뒤로도 원불교 · 통일교 · 삼각산 · 구복암 · 팔공산도덕암 · 대전기원정사 등을 돌아다니며 다른 종교의 교리사상을 섭렵하고 수양도 했다. 1978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2025-06-30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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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산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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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천교

1920년대 초부터 보천교 중앙본소가 있는 정읍의 대흥리에는 자급자족을 위한 방직공장 염색공장 농기구공장 갓공장 등의 생산 시설이 들어섰다. 대흥리의 자급자족적 공동체를 후천선경의 신정부 수도로 인식한 탄갈자(가산을 교단에 기부하고 중앙본소 주변으로 이거한 사람들)들이 늘면서 이러한 생산시설은 더욱 늘어났다. 중앙본소에서는 1924년에 탄갈자들의 생존권을 보장해주기 위한 협동조합 형태의 기산조합(己産組合)을 결성하였다. 기산조합은 입회금과 조합비를 납부하면 조합원증을 발급했으며 조합원들로 하여금 조합원증을 항상 휴대토록 하였다. 기산조합은 직업을 알선하거나 물품의 매매나 소개를 돕기도 하고 재난 시에 교인 상호간의 구호 ...

2025-06-30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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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문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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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불교

미륵불교 창립자인 김형렬이 1915년에 모악산 금강대에 올라가 백일기도를 드린 후 신안(神眼)이 열려 영서(靈書)를 받게 되었다고 하면서 발표한 글.

2025-06-03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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