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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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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계

단군을 신앙의 대상으로 하는 단군계 신종교에서는 사묘를 만들어 단군을 숭배하고 있다. 사묘의 양태는 대부분 묘각인데, 굴(窟)·축단(築壇)·탑비(塔碑)·조상(彫像) 등으로 이루어진 경우도 있다. 또한 단군의 영정을 ‘천진(天眞)’이라고 칭하며, 주로 묘각으로 된 사묘에서 봉안하고 있다. 이와 같이 단군의 영정을 모시는 사당을 천진전이라고 부르며 정기적으로 향례를 올린다. <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 1991)

2025-10-10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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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조단군국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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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포는 14때에 보천교에 입교하기도 하였으며, 이후 생업인 상업에 종사하면서도 자택에 구천상제하감지위(九天上帝下鑑之位), 옥황상제(玉皇上帝)하감지위, 칠성군응(七星君應))하감지위라고 하는 삼위신위(三位神位)를 모시고 신앙생활을 하였다. 1945년 해방 후에는 서울시 종로2가 낙원동 자택에 단군영상을 그려 구천상제와 옥황상제의 중간에 모셔놓고 매월 초삼일에 천제를 지냈다. 천제를 지낼 때에는 『천부경』을 사용했으며, 그 때마다 축문을 지어서 봉독하였다. 1946년에는 대한일민계몽회(大韓一民啓蒙會)를 조직하여 활동했는데, 이 조직의 목적은 일심상생거병해원(一心相生劫病解寃)이었고, 시대강령으로 영천(影天)·명덕(明德)·정편 ...

2025-10-10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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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동학제화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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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김형규(金炯奎)가 전북 김제군 금산면 원평에서 창립한 제화동대도의 초기 이름.

2025-10-09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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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사상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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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교(증산진법회)

증산진법회(甑山眞法會)를 창립한 배용덕(裵容德)이 강일순의 사상을 보다 체계적이고 학문적으로 연구하기 위하여 1974년에 창설하였다. 본 연구회 창립당시 이항녕·여동찬·윤태림 등을 고문으로 하고 이일청을 회장으로 추대하였으나 모든 실질적인 운영은 배용덕이 맡아 했다. 이 연구회는 1974년 1월 저명 종교사상 분야 학자들을 초청하여 제1차 증산사상연구 간담회를 개최한 이래 수십 차에 걸쳐 증산사상에 관한 학술회의·기념강연회·연구발표회 등을 개최하였으며, 1975년 3월 『증산사상연구』 제1집을 발행한 이래 1995년 12월 21집(『증산사상 중심의 인류갱생 철학개론』)을 발행했다. 연구지 외에도 배용덕은 『증산이념과 여 ...

2025-10-09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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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교단친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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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동도교 연례총회에 참석했던 홍범초의 발의로 90여명의 각 증산교 교단 대표들이 보천교에 모여 결성했다. 회장에 박기백, 부회장에 이종호, 배동찬 등이었다. 증산교단친목회 결성 동기는 동도교가 그 조직체나 이념이 순수한 증산교단 전체를 대표하여 건전한 발전을 할 수 없다는 데 있었다. 그 뒤 증산교단협회로 명칭을 개칭했다. 1971년 음력 11월에 총회를 열고 임원을 개선하여 회장에 이시발(李時潑)하고 1972년에 사단법인으로 등록했다. 『상생』이라는 기관지를 발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다. <참고문헌> 『증산교개설』(홍범초, 창문각, 1982)

2025-10-09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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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광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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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대종교의 역사나 국학 연구자들에 의하면 “나철은 1909년 음력 1월 15일에 오기호, 강우, 유근 등 10여 명과 함께 서울 북부 재동 취운정 아래 6간 초가집 북벽에 단군의 신위를 모시고 제천의식을 올리며 대종교를 중광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장소가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최남선의 유품에서 발견된 나철의 친필 중광가 머리말에 보면 ‘가회동 14번지 이봉춘(李逢春) 현거(現居)’라고 정확하게 장소가 기재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주소는 2001년 (재)대한불교조계종 안국선원이 인수하면서 지상 4층 건물로 신축된 것이 확인되었다.

2025-10-09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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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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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정원택은 1890년 9월 27일 충청북도 괴산군 불정면 지장리에서 출생했다.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했으며, 1910년 대종교에 입교하였다. 1912년 상해로 망명하여 동제사(同濟社)에 들어갔다. 1916년 교질이 참교(參敎)로 승질(陞秩)되었고, 1918년에는 파리강화회의 한국대표로 참석하는 김규식의 여비를 조달하기 위해 군자금 1만4천원을 간도 노령에서 인수해 오기도 하였다. 1919년 대한독립의군부(大韓獨立義軍府) 조직에 참여하여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였다. 1919년 4월 제2회 임시의정원회의에서 의정의원으로 선임되어 입법활동을 하였고, 자금조달 및 비밀사명을 띠고 귀국하였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1년간 옥 ...

2025-10-09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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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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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교(正道敎)를 창립한 이정원(李正院, 1935~?)은 1935년 1월 29일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에서 출생했다. 객지로 나와 생업에 종사하다가 1968년도에 신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1970년도에 부산진구 전포동에 법당을 차리고 점도 치고 굿도 하였다. 1973년 천사명으로 태상노군을 받고 스스로 천존대왕이라고 했고, 1978년부터는 스스로 하느님이라 했다. 1979년 대한승공경신연합회 부산진구 지부장직을 지내다가 그해 12월에는 대한불교유불선종(대한정도교)의 간판을 걸고 천신제를 지내기도 했다. 1988년에 부산시 부산진구 초읍동으로 이전하여 정도교라 하였다. 본교의 신앙의 대상은 하느님 즉 증산천사이다. 천상 ...

2025-10-09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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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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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운교

수운교에는 두 가지 기도법이 있다. 하나는 주문 등으로 주력(呪力)공부하는 법과 다른 하나는 부처님 명호를 반복적으로 송하는 염불(念佛)기도가 있다. 법일예식 중에는 정근을 하는데, 염불로 정근을 한다. 즉 ‘남무 청정 법신 비로자나불 원만보신 노사나불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 남무구품도사 남무아미타불’(7회), ‘남무아미타불’(7회), ‘남무대자대비 구고구난 관세음보살’(7회)를 연속적으로 송한다. 모두 21회를 칭명(稱名) 염불로 정근 한다. <참고문헌> 『수운교 진리』(수운교출판부, 1999)

2025-10-09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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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음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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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서무부서기로 임명되어 교무사무를 아울러 5년간 근무했다. 1932년부터 3년간은 연구부장과 교무부장을 지냈고 다시 2년간 교무부장을 맡으면서 총부구내에 야학원을 만들어 100여명의 아동을 교육시키기도 했다. 박중빈과 최초로 은부자(恩父子)의 결의를 맺고 가까이서 시봉을 하며 지도를 받았으며, 박중빈의 꾸중과 칭찬을 누구보다도 많이 받으며 인격을 도야했다. 그는 언론사업과 공익사업에 관심을 많이 두었다. 현재 월간지 『원광』과 각종 공익자선사업의 밑받침이 되었다. 일정(日政)말기 원불교가 어려운 문제에 직면할 때마다 전음광은 일본 경찰과 접촉하여 침착하고도 능란한 말과 글로 그들을 감화시켰다. 이렇게 전음광은 ...

2025-10-09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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