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74

이슬성신

|

전도관

‘이슬성신’은 기독교 『성경』 호세아서 14장 5절을 근거로 전도관의 박태선이 주장하는 육신영생의 구원을 확신하게 하는 종교적 모티브이다. 6.25 전쟁 중 박태선은 피가 바뀌는 체험을 하였는데 이것을 이슬 혹은 ‘이슬성신’을 체험했다고 주장했고, 이후 전도관에서 ‘이슬성신’은 구원과 영생의 주체이며 육신영생을 확신하게 하는 종교체험으로 믿어지고 있다. 박태선 자신을 ‘이슬성신’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특히 전도관 초기 이슬성신이 사진으로도 촬영되었다고 주장했다. ‘이슬성신’은 전도관의 영향을 받은 조희성의 승리제단에서도 이와 유사한 개념으로 신봉되고 있다.

2025-10-08 21:19

16

이성재

|

각세도천지원리교

이성재는 1921년 11월 18일 충청북도 충주에서 출생하였다.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그는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인간으로서 삶의 목적과 의의 등에 관심을 갖게 되어 스승을 찾았으나 만족할 만한 답을 얻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피난을 갔던 충북 영동군 학산면에서 각세도 도주인 이선평의 아들 이동주를 만나 각세도에 대해 알게 되었고, 각세도에 입문한 후 도조 이선평을 찾아가 2년여에 걸쳐 왕래하였다고 한다. 그러는 도중에 한의학을 공부하여 한의사가 된 그는 서울로 가서 김월정(金月正)을 만나 결혼하게 되고, 두 부부는 함께 각세도 신앙과 수련에 주력하게 된다. 그러다가 이선평이 사망한지 20년 되던 1975년 부인 김월정이 ...

2025-10-08 21:14

16

이상제

|

귀임도, 각세도동관

각세도의 도주 이선평은 교단을 설립 후 포교가 확대되자 사관제도를 두어 교단의 체제를 정비하게 된다. 사관제도는 동서남북 네 방면에 관(觀)을 두고, 자신의 10대 제자 가운데서도 가장 뛰어난 네 사람을 선발하여 각 관의 도주로 임명하고 관리, 운영하도록 한 것이다. 이때 각세도 동관의 도주로 임명된 것이 이상제이다. 이상제는 동관의 도주로서 전권을 위임받아 포교활동에 주력하다가, 1956년 이선평이 사망한 후 ‘귀임도’로 교단명칭을 변경하고 독자적인 포교활동에 나서게 된다. 그러나 이상제 사후 원제상 등이 후계를 이어받아 교단을 운영하였으나, 교세가 크게 쇠퇴하였다. <참고문헌> 『한국민족종교총람』(한국민족종교협의회, ...

2025-10-08 21:08

16

이기

|

단단학회

이기의 본관은 고성(固城), 호는 해학(海鶴), 자는 백증(伯曾). 전북 만경 출생. 실학을 연구하여 유형원과 정약용을 계승하였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 때 동학군을 이끌고 서울로 진격하려다가 김개남의 반대로 자택으로 돌아왔으며, 1905년 포츠머스조약을 체결할 당시는 한국의 처지를 알리기 위해 나철과 미국에 가려 하였으나 일본의 저지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을사조약이 체결된 후 나철 등과 함께 을사오적을 암살할 계획을 세웠으나 실패로 돌아간 후, 이 일로 체포되어 7년의 유배형을 받게 된다. 석방된 후 서울로 돌아와 『호남학보』를 발행하면서 민중계몽운동에 종사하였다. 단단학회에서는 이기가 석방된 후 단군숭봉과 아울 ...

2025-10-08 20:27

16

의성탑

|

금강대도

‘의성(義誠)’이란 금강대도인의 모든 수행과 신앙의 상징으로서, 대도덕성사건곤부모의 도덕개화사업에 ‘불감사기신(不敢私其身)·불감사기재(不敢私其財)’의 정성으로 보필함을 의미한다. 1941년 신사사변으로 일제의 모진 고문을 받아 옥중에서 순도한 사람이 11명이나 되었고, 그 외의 많은 도인들이 고문과 옥살이로 고통을 받았다. 이에 제3대 도주 이월란은 신사사변의 어려움을 당하여 대도를 위해 순도하고 도로써 몸을 마친 제자들을 밖으로 드날리고 의로운 정성의 뜻을 기리고자 의성탑을 건립하였다. 의성탑은 대도의 법리인 원[○]·정[□]·방[△]의 상징을 형상화하였으며, ‘의(義)’·‘성(誠)’ 두 글자를 파자(破字)하여 동서남 ...

2025-10-08 19:33

16

윷판의 원리

|

대종교, 중앙대종교

1898년 김항이 사망한 후 제2대 교주가 된 하상역은 김영곤과 함께 ‘윷판의 원리’라는 이론을 제창하면서 ‘대종교’를 창립하였다. ‘윷판의 원리’란, 윷말판의 점수배열이 외부 도형에 20점, 내부 십자형에 9점으로 모두 29점인데, 그들은 이 말판 29점의 배열이 곧 『정역』의 기본원리라는 것이다. 곧 복희씨(伏羲氏)의 선천팔괘는 ‘하도(河圖)’에 의해 만들어졌고, 문왕(文王)의 후천팔괘는 ‘낙서(洛書)’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김항의 정역팔괘도는 이 윷판도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하상역과 김영곤은 윷말판의 비법과 영가무도의 비력(秘力)만이 구세의 법이며, 후천선계에 나아가는 비력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포교하였다. ...

2025-10-08 19:16

16

윤선녀교

|

본교의 창교주인 윤선녀(법명:윤도솔행)은 26세 때부터 도에 뜻을 두고 20여 년간 기도생활을 계속하다가 영문(靈門)이 열려, 치병 및 예언이 적중하여 전국적으로 수백 명이 넘는 신도들을 확보한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전생사를 이야기 해주며 재액(災厄)을 면할 부적(까지부적)과 약(전생에 자기가 묻어 두었던 소금을 자신의 집터 밑에서 캐냈다는 데 그것을 조금씩 주면서 거기에다 들깨와 찹쌀가루를 타서 마시라고 한다)을 주면서 부적을 지니고 다니면 재수가 있고 만민의 도움을 얻게 되며, 약을 먹으면 만병통치가 되고 인류의 평화가 온다고 가르쳤다. 또한 미륵신앙을 표면화하는데, 미륵을 정성으로 모시면 구원된다고 믿었고, 그녀의 ...

2025-10-08 19:07

16

유재봉

|

대한불교법상종(미륵불교)

유제봉(柳濟鳳, 1870-1954)은 1870년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 아곡리에서 출생했다. 1921년에 김형렬이 서울에서 ‘미륵불교진흥회’를 만들 때 참석했고, 김형렬이 사망하자 이를 이어 받아 교명을 ‘용화계’로 고쳐 활동했다. 그러다가 1951년 12월에 최선호(崔善湖)를 만나 ‘미륵불교’를 부흥시킬 것을 상의하고 전라북도 김제군 금산면 용화동 최선호의 집에 머물면서 종교 활동을 전개했다. 그리고 최선호의 부인 최선애(崔善愛)에게 종통을 전하고 1954년에 사망했다. 『대한불교법상종지(大韓佛敎法相宗旨)』라는 책을 보면 ‘김형렬이 유제봉에게 법계를 전하고 사망한 뒤에 2대 화상이 된 유제봉은 계속하여 불사를 하다가 ...

2025-10-08 18:23

16

월말통신

|

원불교

초기 교단의 면모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매우 중요한 사료이다. 1928년 음력 5월 31일에 창간하여 처음에는 매월 1회씩 복사판으로 발행했다. 『월말통신』제1호는 20여 쪽 분량의 복사판으로 5부 발행되었으며 발간 실무는 송도성과 전음광이 담당했다. 아울러 이공주가 소태산 대종사의 법설을 수필한 ‘약자로 강자되는 법문’이 수록되어 있어서 그 의미를 더하고 있다. 이와 같이『월말통신』은 소태산의 법설과 공부인들의 감각건과 처리건, 예회에 대한 기록, 인사동정 및 각종 소식, 본관과 지부의 근황을 명료하게 기재하여 각 지부 출장소에 발송하고 해당지역 회원에게 소개하는 기능을 수행했다. 하지만 『월말통신』은 복사판으로 34 ...

2025-10-08 17:55

16

원정대성사

|

불교총지종

→ 손정우 참조.

2025-10-08 17:14

16

처음으로 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