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정근

|

수운교

수운교에는 두 가지 기도법이 있다. 하나는 주문 등으로 주력(呪力)공부하는 법과 다른 하나는 부처님 명호를 반복적으로 송하는 염불(念佛)기도가 있다. 법일예식 중에는 정근을 하는데, 염불로 정근을 한다. 즉 ‘남무 청정 법신 비로자나불 원만보신 노사나불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 남무구품도사 남무아미타불’(7회), ‘남무아미타불’(7회), ‘남무대자대비 구고구난 관세음보살’(7회)를 연속적으로 송한다. 모두 21회를 칭명(稱名) 염불로 정근 한다. <참고문헌> 『수운교 진리』(수운교출판부, 1999)

2025-10-09 16:59

20

장하단군전

|

1961년 부여 장암면 장하리에 대종교인 강진구(姜鎭求)에 의하여 세원진 단군계 신종교 성격의 사묘.

2025-10-09 15:40

20

임제종

|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불교종단 원종(圓宗)의 대표 이회광(李晦光)이 1910년 10월 7일 일본 조동종과의 연합을 시도하자, 이를 매종행위(賣宗行爲)로 규탄하며, 한용운(韓龍雲), 박한영(朴漢永), 진진응(陣震應), 김종래(金鐘來) 등의 민족주의적 성향의 승려들이 주도가 되어 1911년 1월 15일 송광사에서 만들어진 불교종단이다. 이에 앞서 1911년 1월 6일 김학산(金學山), 장기림(張基林), 박한영, 한용운 등의 15명이 광주 증심사에서 모여 이회광의 매종행위를 규탄하고, 불교쇄신을 논의한다. 그리고 같은 달 15일 송광사에서 승려대회를 개최하고 임제종을 탄생시켰으며, 선암사의 김경운(金敬雲)을 임시종무원 관장으 ...

2025-10-09 00:30

20

일월개벽

|

일부계

김항(金恒)은 종래의 우주관을 담고 있는 『주역(周易)』을 선천(先天)의 역(易)이라고 하였고, 이에 대해 자신이 직접 후천역(後天易)에 해당하는 『정역(正易)』 저술하는 것으로 도래할 후천개벽의 도수를 사상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김항의 후천개벽 사상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일월개벽과 신명개벽이 그것이다. 그 가운데 일월개벽이란, 후천시대에는 우주의 운행질서 자체가 변화함을 말하는 것이다. 선천 세상에는 건곤(乾坤·天地·陰陽)이 잘못되어 있었는데, 후천시대에는 이것이 정위치를 잡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일월의 운행이 크게 변화함에 따라 종래의 윤력(閏曆)이 후천시대에는 정력(正曆)으로 바뀌게 된다는 ...

2025-10-09 00:06

20

일부상제

|

김일부를 상제로 모신다는 의미.

2025-10-08 23:40

20

인천세계경전

|

광명도

광명도의 창립자 정요순은 잃어버린 민족정신을 회복하고 정치의 좌우세력을 합일시키며, 종교와 종파를 귀일시키고, 나아가 인류의 삼대 불행인 전쟁, 질고(疾苦), 기한(飢寒)을 없애기 위해 ‘인류광명화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이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출판부를 설치하여 『인천세계경전』 등 많은 책을 출판하게 되며, 이후 이들 문헌을 경전으로 사용하게 된다. 주요 내용은 우주만물의 창조와 인간문명의 발생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과거의 성자들인 공자, 석가, 예수, 최제우 등이 모두 홍익인간의 이념을 실천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참고문헌> 「정요순의 광명도」(김홍철, 한국신흥종교탐방 『원광』, 1990년 1월호) 『 ...

2025-10-08 23:19

20

이창환

|

세계종교통일본부

이창환은 1919년 5월 2일에 서울에서 태어났다. 교동초등학교, 경기고등학교, 연희전문학교 상과를 졸업했다. 건축업과 자동차업에 종사하기도 했으나 실패했다. 1953년 서울에서 자신 삶의 임무를 ‘세계통일의 사명자’로 자각하고 진리 탐구에 매진하는 중 자신의 심리를 텅 빈 상태에 두게 되면 우주신과의 교령이 가능했고, 그때마다 세계통일의 진리와 그 방법을 영감으로 자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자기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 세계천재구락부 창립, 세계초능력자구락부 창립, 인류조상전 건립, 세계종교박물관 건립, 영적 UN기구 창립제안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특히 미확인비행물체(UFO)가 지구에 안착하는 방법과 그 시 ...

2025-10-08 22:16

20

이지함

|

유교, 도교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형백(馨伯) 또는 형중(馨仲), 호는 토정(土亭), 시호는 문강(文康)으로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후손이고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이산해(李山海)의 숙부이다. 충청남도 보령에서 출생했고 서울에서 자랐다. 서경덕(徐敬德)의 문인으로 유학(儒學) 뿐 아니라 상수역학(象數易學)·천문·지리·의학에 두루 해박하였다. 벼슬에는 뜻이 없었으나 1574년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포천현감과 아산현감을 잠시 지냈다. 평생을 마포 강변의 흙담 움막집[土亭]에서 살았으며, 구리로 만든 솥을 머리에 쓰고 다니다가 그 솥을 벗어 밥을 지어 먹었다거나 직접 배를 몰고 나가 바다 가운데 있는 소금 산을 찾아 소금을 가 ...

2025-10-08 22:09

20

이재철

|

저축조합, 방언공사, 혈인기도 등을 마친 이재철은 그 후 영산에서 계속 교단 창립에 일하다가 1924년부터 총부 건설에 합력했다. 1933년에는 총부 상조부 지점장 겸 공익 인재부장으로 일했고, 1934년부터 5년간은 총부 서정원장으로 봉직했다. 1941년에는 총부 이사겸 산업부장으로, 1942년부터 열반 전까지 총부 산업부장으로 근무했다. 이재철은 언제나 박중빈 앞에서는 손을 내려놓은 일이 없고 겸허한 태도로 공수(拱手)를 하며 물러날 때에도 그냥 되돌아서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이재철은 키가 크고 신상(身相)이 구족하며 위풍(威風)이 좋아 ‘영광(靈光)의 인물’이라는 평을 받았다. 중심은 철두철미하여 대의가 분명하고 ...

2025-10-08 21:53

20

이재유

|

대종교

이재유는 1878년 함경남도 홍원군 삼호면 풍산리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백람(白嵐)이다.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하였고, 고향에서 10년 동안 한문사숙의 교원으로 근무하였다. 1910년 만주 봉천으로 이주하여 농업에 종사하다가, 1919년 흥업단(興業團)에 가입하여 3년 동안 활약하였다. 1921년 대종교에 입교하였으며, 참교(參敎)·지교(知敎)·상교(尙敎)로 승질하였고, 북일도시교원(北一道施敎員)과 경의원참의(經議院參議)등을 역임 하였으며, 교적간행회(敎籍刊行會)와 천전건립주비회(天殿建立籌備會)에도 헌신하였다. 1942년 11월 19일 일제가 대종교를 탄압하기 위해 조작한 임오교변 때에 일경에 체포 ...

2025-10-08 21:52

20

처음으로 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