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남정
청림교
청림교(靑林敎)의 창시자. 본명은 남한준(南韓駿) 호는 청림(靑林).
2025-07-01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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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철유서
대종교
나철은 1916년 8월 4일에 구월산 삼성사(三聖祀)에서 천제를 올린 다음 대종교의 도통을 김교헌에게 전수한다는 내용을 남기고 오전 11시 폐기법(閉氣法)으로 별세하였다. 이때 그는 유서를 남기는데 유서는 ①순명삼조(殉命三條) ②유훈(遺訓:密諭) ③전수도통(傳授道通) ④유계장사칠조(遺誡葬事七條) ⑤가중유서(家中遺書) ⑥별봉유서(別封遺書) ⑦이세가(離世歌) 등이 있으며 이 외에도 별봉(別封)한 유서가 63편이 있었고 중광가(重光歌) 54장(章)이 있었다. 참고문헌 : 『한국신흥종교총람』(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07-01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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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옥
보화교
보화교(普化敎)를 창립한 김환옥(金煥玉 1896-1954 호 淸江)은 1896년 1월 11일 전라북도 정읍군 칠보면 신흥리에서 부친 김용술(金龍述)과 모친 박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병으로 시달리며 자랐다. 1921년에는 신효묘방(神效妙方)을 얻어 창생을 구제할 생각으로 보천교(普天敎)에 입교하여 9년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으나 큰 뜻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하여 1929년에 보천교를 나와 사방으로 주유천하를 했다. 1930년 주신수련(主神修練)의 입공에 들어가 입공한 지 3일째 되던 날 수운 최제우와 증산 강일순이 나타나 수운은 ‘나를 보고 수운 아버지라고 불러라’하고 증산은 ‘나를 보고 증산 어머니 ...
2025-07-01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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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태
동천교
동천교(東天敎)의 창시자.
2025-06-30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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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장군탄일
화랑정신선양회
김시성이 창립한 화랑정신선양회에서는 단군을 신앙의 대상으로 받들고 홍익인간 사상을 널리 보급시키며 단군사상의 결정체인 화랑정신을 드러내는 데 목적이 있다. 특히 화랑정신의 표상인 김유신장군의 업적을 기리고 그를 추모하는 사업을 중시한다. 따라서 본회에서 설립한 사당인 홍덕전 안에는 김유신장군 영정을 모시고 있으며 춘계대제(3월 27일)와 추계대제(9월 27일) 김유신장군 탄일(10월 5일) 등에 향례를 올린다. 춘계대제는 김유신 장군이 단석산에 들어가 수도하여 비법을 얻었고 그 후 석실에서 7년간 고행하여 대각한 날을 기리기 위함이고 추계대제는 김유신 장군에 대한 추계향배라는 점에서 김유신을 중심으로 한 신앙을 행하고 ...
2025-06-30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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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성
화랑정신선양회
김시성은 1908년 전남 함평에서 출생하였다. 경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이후 한학을 공부하면서 화랑정신에도 관심을 가지고 수도를 하였다. 1928년 중국으로 건너가 의당(宜堂)이라는 중국인에게 의술을 배우면서도 화랑도와 단군의 풍월도 등에 대해 배웠다고 한다. 이후 스스로 화랑도와 김유신장군 등에 대해 깊이 연구하였고 한편으로는 상해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보내고 독립운동가를 도와주는 활동을 하였다. 해방 후 귀국하여 용산에서 한약업을 하다가 한국전쟁 발발로 충남 예산으로 피난하게 되었으며 1965년 본인이 회장으로 있는 가락김씨 종친회를 통해 ‘화랑사’를 건축하고 단군사상과 화랑정신 특히 김유신장군의 업적을 기리는 ...
2025-06-30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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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기
광화연합도관
광화연합도관(光華聯合道觀)의 창시자.
2025-06-30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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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태
도교
도교(道敎: 봉남계)를 창립한 김덕태(金德泰)는 경상남도 울산에서 태어났다. 부산영도에 거주할 때 병이 있어 김봉남의 부인 박씨에게서 물법치료를 받고 효험이 있은 후로 봉남의 신자가 되었다. 봉남이 사망한 뒤 부산 동래구 온천동에서 환자들을 시술하면서 천지의 어머니인 태상노군(太上老君)이 자기에게 강림해 있다고 하면서 자신을 신격화시켰다. 그래서 신자들은 김덕태를 ‘천지어머니’라 신봉하였으며 한때 수백 명의 신도가 있었다. 법단에는 천지어머니라고 하는 노고(老姑)의 상을 모시고 있었는데 이 상은 김덕태의 얼굴과 흡사했다. 수련은 태상노군을 주송하면서 단식을 했고 이런 수련으로 환자들의 병을 고치게 했다. 참고문헌 : 『 ...
2025-06-30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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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명
동학
김덕명은 1895년 금구 용계에서 태어났다. 1886년 동학에 입도하고 그 해 10월 11일 경상도 상주의 화령 근처에 있는 전성촌으로 제2대 교주 최시형(崔時亨)을 찾아가 도를 받았다. 1887년에는 원평에 동학의 도회소(都會所)를 설치하고 포교에 힘썼다. 그는 교조신원운동 과정에서 원평집회의 주역이였으며 1894년 4월 무장봉기 이후 원평지역 농민봉기 황토현 전투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다. 원평 전투의 패전으로 동학혁명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김덕명은 이후 금산면 장흥리 안정사동에 약 1개월간 숨어 있다가 붙잡혀서 서울로 압송되었고 1895년 3월 29일 전봉준·손화중·최경선·성두환(成斗煥)과 함께 처형되었다.
2025-06-30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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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선
감로법회
금강산 건봉사(乾鳳寺)의 포교사로서 1925년 중앙포교원(中央布敎院 당시 경성부 이화동 1)에 부임한 김기선(金基瑄)은 매월 24일 관음제일에 모인 신자들을 중심으로 감로법회를 조직하였다. → 감로법회 참조 참고문헌 : 『朝鮮の類似宗敎』(村山智順 朝鮮總督府 調査資料 第42輯 1934)
2025-06-30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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