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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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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교도

장병훈은 1934년 대구시 북동 심정에서 출생했으며, 경북대학교 법정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대중당(社會大衆黨)에서 정치활동을 하다가 5·16쿠데타 직후 3개월간 구금된 후로는 정치에서 손을 떼고 종교로 눈을 돌리게 된다. 그는 무당의 신굿을 구경하다가 접신무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접신현상에 대해 연구하면서 스스로가 접신되기 위해 주송수련을 하였다. 수련 도중 돌연 몸이 떨리고 강신현상과 눈앞에 환상이 떠오르는 체험을 하였다. 그는 이러한 종교현상을 연구하였고, 접신과 개안의 방술(方術)을 ‘영동신기술(靈動神氣術)’이라 하였다. 이 영동술로 사람들을 치료하기 시작하였고, 신통하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신자들이 모여들었다 ...

2025-10-09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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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대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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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삼덕도

용화삼덕도(龍華三德道)를 세운 강기춘(康基春, 1903-?)은 신앙의 대상으로 태상노군·아미타불·용화불·석가불을 모시고 있다. 그 이유는 김봉남이 부처님은 선이므로 부처님을 부지런히 부르면 선한 사람이 된다하였으므로 부처님을 모신다고 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는 자기에게는 이미 토설로서 부처님을 봉남과 함께 받들어야 할 천명과 호흡보살(呼吸菩薩)이라는 법명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963년 5월 남해 금산 상봉에서 기도수도를 할 때였다는 것이다. 이때 ‘선화대도 봉남진여대성불 용화교주 오봉구천 미륵존불 호흡보살 보령통신 각도득지 태상노군 급급여율령섭(禪化大道 奉南眞如大聖佛 龍華敎主 吾奉九天 彌勒尊佛 呼吸菩薩 ...

2025-10-08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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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희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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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희선도태백원

인희선도태백원에서는 1984년『인희보감』 상·하권을 출간하였고, 본교의 중점사업으로 『인희보감』의 강론이 자리하고 있다. <참고문헌>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종교문제연구소, 1997)

2025-10-08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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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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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종교통일본부

이창환은 1919년 5월 2일에 서울에서 태어났다. 교동초등학교, 경기고등학교, 연희전문학교 상과를 졸업했다. 건축업과 자동차업에 종사하기도 했으나 실패했다. 1953년 서울에서 자신 삶의 임무를 ‘세계통일의 사명자’로 자각하고 진리 탐구에 매진하는 중 자신의 심리를 텅 빈 상태에 두게 되면 우주신과의 교령이 가능했고, 그때마다 세계통일의 진리와 그 방법을 영감으로 자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자기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 세계천재구락부 창립, 세계초능력자구락부 창립, 인류조상전 건립, 세계종교박물관 건립, 영적 UN기구 창립제안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특히 미확인비행물체(UFO)가 지구에 안착하는 방법과 그 시 ...

2025-10-08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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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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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강교

이원영은 1898년 전북 임실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 이석용(李錫庸)은 유명한 의병장이었다. 아버지가 의병장으로 활동하다 붙잡혀 교수형을 당하자 어려서부터 일제의 감시와 탄압이 극심한 가운데 불안한 생활을 했다. 그러는 중에 김일부의 정역원리에 선후천 교역으로 새 세계가 개벽된다는 것과 오음주송(五音呪頌)의 신비한 작용이 일어나는 것을 체험한 뒤 마음이 끌린 바 있어 입신하였다. 해방 후 그가 행하는 오음주송으로 질병이 낫고 또한 영가무도(詠歌舞蹈)의 신비한 도법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그를 추종하는 신자들이 모이게 되어 하나의 교단이 형성된 것이다.

2025-10-08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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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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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숭령회

이담은 1945년 단군전봉공회를 설립하였으며, 1958년 이 단체의 명칭을 단군숭령회로 바꾸고 문교부의 인가를 얻어 서울에 본부를 두고 활동하였다. 단군숭령회의 목적은 단군을 숭봉함으로써 민족주체의식을 앙양하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그는 1961년 전국의 단군숭봉단체를 통합할 것을 결의하고 사단법인 단군숭령회중앙본부의 간판을 걸고 민족주체의식의 신소생운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한국신흥종교총감』(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10-08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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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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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학회

이기의 본관은 고성(固城), 호는 해학(海鶴), 자는 백증(伯曾). 전북 만경 출생. 실학을 연구하여 유형원과 정약용을 계승하였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 때 동학군을 이끌고 서울로 진격하려다가 김개남의 반대로 자택으로 돌아왔으며, 1905년 포츠머스조약을 체결할 당시는 한국의 처지를 알리기 위해 나철과 미국에 가려 하였으나 일본의 저지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을사조약이 체결된 후 나철 등과 함께 을사오적을 암살할 계획을 세웠으나 실패로 돌아간 후, 이 일로 체포되어 7년의 유배형을 받게 된다. 석방된 후 서울로 돌아와 『호남학보』를 발행하면서 민중계몽운동에 종사하였다. 단단학회에서는 이기가 석방된 후 단군숭봉과 아울 ...

2025-10-08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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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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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대도

‘의성(義誠)’이란 금강대도인의 모든 수행과 신앙의 상징으로서, 대도덕성사건곤부모의 도덕개화사업에 ‘불감사기신(不敢私其身)·불감사기재(不敢私其財)’의 정성으로 보필함을 의미한다. 1941년 신사사변으로 일제의 모진 고문을 받아 옥중에서 순도한 사람이 11명이나 되었고, 그 외의 많은 도인들이 고문과 옥살이로 고통을 받았다. 이에 제3대 도주 이월란은 신사사변의 어려움을 당하여 대도를 위해 순도하고 도로써 몸을 마친 제자들을 밖으로 드날리고 의로운 정성의 뜻을 기리고자 의성탑을 건립하였다. 의성탑은 대도의 법리인 원[○]·정[□]·방[△]의 상징을 형상화하였으며, ‘의(義)’·‘성(誠)’ 두 글자를 파자(破字)하여 동서남 ...

2025-10-08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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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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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대도

문자적으로 볼 때, ‘의(義)’라는 것은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마땅한 도리를 말함이요, ‘성(誠)’이라고 하는 것은 그 인간관계의 내용, 즉 누구에게나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니, ‘올바름’과 ‘정성’, 이것이 바로 의성이다. 나라에 대한 충성(忠誠), 부모에 대한 효성(孝誠)도 모두 의성에 포함되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승, 즉 건곤부모에 대한 성경(誠敬)을 말하는 것이니, 건곤부모에 대한 절대적 신앙의 자세를 강조한다. 토암은 “선생이 소금 짐을 지고 물속으로 들어가라 해도 의심치 아니하고 믿어 행할 수 있어야 나의 제자라 할 만하다.”고 했고, “선생을 독실히 믿어 파리가 천리마에 붙어 힘들이지 ...

2025-10-08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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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적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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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최제우는 1860년 4월 5일 한울을 체험하여 깨달음을 이룬 뒤 널리 창생을 구하고자 동학을 펴고자 하였다. 그러나 영남 사대부들과 관아의 탄압을 받아 1861년 전라도 남원 선국사 은적암으로 피신하였다. 은적암의 본래 명칭은 덕밀암(德密庵)이었는데, 수운이 이곳을 은적암이라 고쳐 불렀다. 선국사 대웅전 뒤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은적암 터 가는 길, 덕밀암 터 가는 길”이라는 팻말이 나오는데, 은적암은 동학농민혁명 당시 접주 심노환(沈魯 煥)의 도소였다는 이유로 관병에게 불태워지고 현재 그 터만 남아 있다. 수운은 여기서 도수사(道修詞), 권학가(勸學歌), 칼노래(劍訣), 논학문(論學文), 수덕문(修德文), 몽중노소 ...

2025-10-08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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