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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강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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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단군전

대전단군전은 이남성(李南星)이 창립하였으나, 주요 교리와 사상에 있어서는 이민우(李敏雨)를 지도자로 모셨다. 이민우는 자신이 신명(神明)을 받아서 썼다고 하는 『춘강강서(春岡降書)』를 토대로 기존과 다른 독특한 사상을 전개한다. 그 대표적인 내용이 ‘십자원전도(十字○田圖)’, ‘오판도(午板圖)’, ‘운도이론(運度理論)’, ‘삼신신선론(三神神仙論)’등이며, 이를 기반으로 신행가 수련을 행하였다. <참고문헌> 『한국신흥종교총감』(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10-11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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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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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가윗날, 가배(嘉俳), 중추(仲秋)라고도 한다. 가배는 가운데의 음역(音譯)으로 가장 큰 가운데 날, 즉 보름이라는 뜻이다. 신라 유리왕 때 육부의 아녀자들을 두 패로 갈라 길쌈(績麻) 경쟁을 시켰는데, 진 편에서는 술과 음식으로 사례하고, 진 편의 아녀자는 슬픈 곡조로 '회소(會蘇) 회소'하며 노래를 불러 이를 회소곡이라 했다고 한다. “늘 팔월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속담에서 알 수 있듯 일 년 중 가장 오곡백과가 풍성한 계절이라, 햇곡식과 과실을 조상에 먼저 올리는 차례를 지낸다. 집에서 차례를 올리고 성묘(省墓)를 한다. 햇벼로 떡을 빚고(송편), 무, 호박을 섞어 시루떡을 찐다. 인절미, 밤단자, 토란단 ...

2025-10-11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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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법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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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최치원은 12살이 되던 868년에 당나라에 건너가 수학 후 과거에 급제하였고, 지방관으로 임명이 되어 황소의 난 때에 이를 격퇴한 공을 세웠다. 따라서 신라에서보다는 당나라에서 크게 이름을 떨쳤고, 헌강왕 11년에 귀국하여 한림학사나 시독(侍讀) 등, 주로 학문 분야를 전담하는 중앙 고위 관직에 종사한 사실이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신라시대 인물로서는 유일하게 개인 문집 『계원필경(桂苑筆耕)』을 남기고 있다. 이는 신라 중기 이래 숭유와 모화(慕華)사상이 지배적이었던 당시에 자연히 정신문화 영역에서 두드러진 인물로 평가될 수 있는 조건이었을 것이다. 또한 「난랑비서문」과 함께 이 부분이 한국 고유의 선교에서 도조로 ...

2025-10-11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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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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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법사

서울대법사를 설립한 최위석(崔偉錫, ?~1963)은 일찍이 보천교(普天敎)에 입도하여 보천교 6임 중의 한사람이었는데 보천교를 탈퇴하고 서울에서 독자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8·15해방 후 이정립을 만나 증산교인들을 모아 증산의 치성을 드리자고 상의하고, 8월 20일 신도 40여명을 모아 치성을 올리고 나서 동지들을 더 모아 교단운동을 재개하자고 했다. 그리하여 대순절(9.19 증산탄신일)에 서울 마포구 합정동 자신의 집에서 145명이 모여 대법사를 출범하였다. 그 후 본부를 서울 종로구 필운동에 두고 교단운영을 위한 조직을 단행했다. 이때 그는 대법사의 기획부장이 되었다. 그러나 6·25한국전쟁이 일어나 ...

2025-10-11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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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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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최린은 양반 집안에 태어나 13세 때 밀양 박씨와 결혼했고, 1896년에 함경남도 관찰부 집사가 되었다. 1902년 일본육군사관학교 출신 유학생들의 비밀결사로 정부개혁의 쿠데타를 음모한 일심회(一心會)에 가담했다가 계획이 발각되자 일본으로 망명했다가 손병희를 만났다. 1904년 황실특파유학생으로 뽑혀 동경부립제일중학교에 입학했고, 1906년 메이지대학 법과에 진학했다. 1907년 3월 30일 와세다 대학에서 개최된 모의국회에서 학생들이 한국의 왕을 일본 황족으로 하자는 안을 제출하자 이에 학장을 만나 항의하고 학생들의 퇴학을 요청하였다. 1908년 대한학회 회장, 1909년 대한흥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했다. 메이지 대학을 ...

2025-10-11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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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성공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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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

증산 강일순은 ‘지금은 온천하가 가을운수의 시작에 들어섰다’고 말하고 ‘내가 하늘과 땅을 뜯어고쳐 후천을 개벽하고 천하의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후천선경의 무량대운을 열려하니 너희들은 정의(正義)와 일심(一心)으로 만세의 복을 구하라 지금은 천지성공시대라’고 했다. 또 ‘천지신명이 나의 명을 받들어 가을 기운의 대의(大義)로서 불의를 숙청하고 의로운 사람을 은밀히 도와주나니 악한 자는 가을에 지는 낙엽같이 떨어져 망할 것이요, 참된 자는 온갖 과실이 가을에 결실함과 같다’고도 했다. 그러므로 지금은 만물의 생명이 다 새로워지고 만복(萬福)이 다시 시작되는 시기라는 것이다. 가을 개벽 기에는 서신이 명을 받아 천지에서 기 ...

2025-10-10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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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조단군국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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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포는 14때에 보천교에 입교하기도 하였으며, 이후 생업인 상업에 종사하면서도 자택에 구천상제하감지위(九天上帝下鑑之位), 옥황상제(玉皇上帝)하감지위, 칠성군응(七星君應))하감지위라고 하는 삼위신위(三位神位)를 모시고 신앙생활을 하였다. 1945년 해방 후에는 서울시 종로2가 낙원동 자택에 단군영상을 그려 구천상제와 옥황상제의 중간에 모셔놓고 매월 초삼일에 천제를 지냈다. 천제를 지낼 때에는 『천부경』을 사용했으며, 그 때마다 축문을 지어서 봉독하였다. 1946년에는 대한일민계몽회(大韓一民啓蒙會)를 조직하여 활동했는데, 이 조직의 목적은 일심상생거병해원(一心相生劫病解寃)이었고, 시대강령으로 영천(影天)·명덕(明德)·정편 ...

2025-10-10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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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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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세도 도조 이선평은 본격적으로 포교를 시작 한 후, 교세가 확대되자 교단을 동서남북의 사관(四觀)으로 나누어 운영하였으며, 자신의 제자 중 뛰어난 네 사람을 각 관의 도주로 임명하고, 본부에서 자신이 이를 통솔하였다. 초기의 남도주였던 김해제는 이선평이 사망하기 이전에 이미 교단명칭을 ‘천인교’로 바꾸어 독립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남도주는 이선평에 의해 장명성이 임명된 것으로 보인다. 김해제는 천인교를 포교하다가 사망하게 되고, 한계택(韓啓澤)이 그 뒤를 잇게 되며, 다시 한백우가 교단을 이끌었으나 교세가 미미하여 마침내 소멸되었다. <참고문헌> 『한국민족종교총람』(한국민족종교협의회, 1992) 『한국신흥종교총 ...

2025-10-10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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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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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구인식(具仁植)은 단군시대로부터 전해오는 천왕도(天王道)의 교리를 풀이한 『천왕도』를 편찬하였다. 부제가 ‘민족고유(民族固有)의 제정철학(祭政哲學)’이라고 붙어 있으며, 세로글 양장으로 되어 있다. 대종문화연구원에서 편찬하였으며, 출판사는 대지출판사이다. 규격은 B6판으로 총 분량은 254쪽에 이른다. 당시 가격은 2,500원이었다. <참고문헌> 《매일경제》(1976. 11. 3.)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7)

2025-10-10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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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사대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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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천도교의 네 가지 계명. 약속을 뒤집지 말 것, 물욕에 빠지지 말 것, 헛된 말로 남을 미혹하지 말 것, 하늘을 속이지 말 것 이상 네 가지를 말한다.

2025-10-10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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