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인불도
본교의 창립자 전판철은 어려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난 뒤, 신안(神眼)이 열리고 이보(耳報)와 구보(口報)가 열렸으며, 이후 병든 사람의 손을 잡고 ‘인불대신(人佛大神)’이라는 주문을 외우면 대부분의 병이 낫는 신통력을 갖게 되었다. 이렇게 사람들을 치료해주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으며, 그를 도통한 ‘인불(人佛)’로 불렀다고 한다. 이후 그를 따르는 무리가 천여 명에 이르고, 전판철을 ‘인불대신’으로 받들게 되자 1965년 전북 익산군 용안면 교동에 교당을 신축했다. 이 교당도 당시 서울 모 회사의 사장이었던 조용채(趙龍采)라는 사람이 전판철로부터 중병을 치료받고 그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거액의 성금을 기부하여 사당을 ...
2025-10-08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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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환
세계종교통일본부
이창환은 1919년 5월 2일에 서울에서 태어났다. 교동초등학교, 경기고등학교, 연희전문학교 상과를 졸업했다. 건축업과 자동차업에 종사하기도 했으나 실패했다. 1953년 서울에서 자신 삶의 임무를 ‘세계통일의 사명자’로 자각하고 진리 탐구에 매진하는 중 자신의 심리를 텅 빈 상태에 두게 되면 우주신과의 교령이 가능했고, 그때마다 세계통일의 진리와 그 방법을 영감으로 자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자기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 세계천재구락부 창립, 세계초능력자구락부 창립, 인류조상전 건립, 세계종교박물관 건립, 영적 UN기구 창립제안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특히 미확인비행물체(UFO)가 지구에 안착하는 방법과 그 시 ...
2025-10-08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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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원
각세도본원
각세도는 도주 이선평이 생존 당시에도 교단 내부에 분열이 있었으며, 또한 그는 자신의 후계자를 지목하지 않고 사망하였다. 따라서 그의 사후 많은 분파가 나타나게 된다. 그 중 당시 남관의 도주였던 장명성은 ‘대각교’라는 명칭으로 포교활동을 시작하였다. 장명성 사후 그의 제자였던 임선호(任善鎬), 정수성(鄭秀星), 전태성(全泰成), 한병헌(韓炳憲) 등이 다시 분파하게 되는데, 한병헌이 중심이 되어 1969년 도조의 아들인 이동주를 비롯하여 이규헌, 이주원, 이성채, 차갑순 등이 충북 영동군 학산명 서산리 서곡에서 각세도본원이라는 이름으로 각세도의 재흥을 시도하였다. 이들은 각세도의 제1대 도주를 이선평으로 하고, 제2대 ...
2025-10-08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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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유
대종교
이재유는 1878년 함경남도 홍원군 삼호면 풍산리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백람(白嵐)이다.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하였고, 고향에서 10년 동안 한문사숙의 교원으로 근무하였다. 1910년 만주 봉천으로 이주하여 농업에 종사하다가, 1919년 흥업단(興業團)에 가입하여 3년 동안 활약하였다. 1921년 대종교에 입교하였으며, 참교(參敎)·지교(知敎)·상교(尙敎)로 승질하였고, 북일도시교원(北一道施敎員)과 경의원참의(經議院參議)등을 역임 하였으며, 교적간행회(敎籍刊行會)와 천전건립주비회(天殿建立籌備會)에도 헌신하였다. 1942년 11월 19일 일제가 대종교를 탄압하기 위해 조작한 임오교변 때에 일경에 체포 ...
2025-10-08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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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청
정역파
정역파의 창립자인 이상룡의 별칭. <참고문헌> 『한국신흥종교총감』(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10-08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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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재
각세도천지원리교
이성재는 1921년 11월 18일 충청북도 충주에서 출생하였다.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그는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인간으로서 삶의 목적과 의의 등에 관심을 갖게 되어 스승을 찾았으나 만족할 만한 답을 얻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피난을 갔던 충북 영동군 학산면에서 각세도 도주인 이선평의 아들 이동주를 만나 각세도에 대해 알게 되었고, 각세도에 입문한 후 도조 이선평을 찾아가 2년여에 걸쳐 왕래하였다고 한다. 그러는 도중에 한의학을 공부하여 한의사가 된 그는 서울로 가서 김월정(金月正)을 만나 결혼하게 되고, 두 부부는 함께 각세도 신앙과 수련에 주력하게 된다. 그러다가 이선평이 사망한지 20년 되던 1975년 부인 김월정이 ...
2025-10-08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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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화
신종교학
이능화(1869∼1943)의 자는 자현(子賢)이고, 호는 간정(侃亭)·상현(尙玄)·무능거사(無能居士)다. 본관은 전주(全州)로 홍문관교리와 이조참의, 군국기무처 회의원을 지낸 개화파 이원긍(李源兢, 1849~1919)의 아들이다. 어려서 한문을 수학하였고 20여 세에 한양에 왔다. 당시 어지러운 내외정세를 알고 국제문물에 접하기 위하여 불어·영어·일어·중국어 등 외국어 습득에 전력하였다. 1895년 관립법어학교에 입학하였다. 1897년 졸업도 하기 전에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불어를 가르쳤다. 1906년 10월 관립한성법어학교 교장으로 임명되었으며, 이어서 1909년 관립한성외국어학교로서 새로운 학제가 시행될 때 ...
2025-10-08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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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금강대도
문자적으로 볼 때, ‘의(義)’라는 것은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마땅한 도리를 말함이요, ‘성(誠)’이라고 하는 것은 그 인간관계의 내용, 즉 누구에게나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니, ‘올바름’과 ‘정성’, 이것이 바로 의성이다. 나라에 대한 충성(忠誠), 부모에 대한 효성(孝誠)도 모두 의성에 포함되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승, 즉 건곤부모에 대한 성경(誠敬)을 말하는 것이니, 건곤부모에 대한 절대적 신앙의 자세를 강조한다. 토암은 “선생이 소금 짐을 지고 물속으로 들어가라 해도 의심치 아니하고 믿어 행할 수 있어야 나의 제자라 할 만하다.”고 했고, “선생을 독실히 믿어 파리가 천리마에 붙어 힘들이지 ...
2025-10-08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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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윤원
황황교
윤윤원은 1894년에 출생하여 30세 되던 때 갑자기 사경에 들어갔다가 몇일 후에 깨어났다고 한다. 이 사경에서 하늘의 음성을 듣고 황황공부를 시작하여 1960년 충남 공주군 계룡면 구왕리에서 황황교를 창립했다. 윤 여인은 하늘의 지시를 받고 있는 영사(靈師) 또는 강사(降師)라 불렸다.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열리는 정기집회 때 그녀는 자기의 고유한 춤을 추게 되는데 그 춤의 모양이 무녀의 춤과 흡사했다고 한다. 또한 윤윤원은 점, 사주나 궁합 등에 능통했다고 한다. <참고문헌>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종교문제연구소, 1997) 『한국신흥종교총감』(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
2025-10-08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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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봉
대한불교법상종(미륵불교)
유제봉(柳濟鳳, 1870-1954)은 1870년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 아곡리에서 출생했다. 1921년에 김형렬이 서울에서 ‘미륵불교진흥회’를 만들 때 참석했고, 김형렬이 사망하자 이를 이어 받아 교명을 ‘용화계’로 고쳐 활동했다. 그러다가 1951년 12월에 최선호(崔善湖)를 만나 ‘미륵불교’를 부흥시킬 것을 상의하고 전라북도 김제군 금산면 용화동 최선호의 집에 머물면서 종교 활동을 전개했다. 그리고 최선호의 부인 최선애(崔善愛)에게 종통을 전하고 1954년에 사망했다. 『대한불교법상종지(大韓佛敎法相宗旨)』라는 책을 보면 ‘김형렬이 유제봉에게 법계를 전하고 사망한 뒤에 2대 화상이 된 유제봉은 계속하여 불사를 하다가 ...
2025-10-08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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