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증산교단친목회
1970년 동도교 연례총회에 참석했던 홍범초의 발의로 90여명의 각 증산교 교단 대표들이 보천교에 모여 결성했다. 회장에 박기백, 부회장에 이종호, 배동찬 등이었다. 증산교단친목회 결성 동기는 동도교가 그 조직체나 이념이 순수한 증산교단 전체를 대표하여 건전한 발전을 할 수 없다는 데 있었다. 그 뒤 증산교단협회로 명칭을 개칭했다. 1971년 음력 11월에 총회를 열고 임원을 개선하여 회장에 이시발(李時潑)하고 1972년에 사단법인으로 등록했다. 『상생』이라는 기관지를 발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다. <참고문헌> 『증산교개설』(홍범초, 창문각, 1982)
2025-10-09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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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교김사모파
증산교김사모파(甑山敎金師母派)는 김태봉(金泰鳳, ?~1964)이 창립했다. 김태봉과 함께 이 교파를 만들고 주도했던 사람은 김점옥(金點玉)이다. 김점옥의 꿈에 강일순이 천지공사를 하기 위해 죽음 얼마 전에 맞이했던 세 번째 수부(首婦) 김사모(金師母)가 나타나 증산가에서 원통하게 죽은 원한을 풀어달라고 애원 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김태봉은 김점옥과 함께 1959년에 김사모의 시체를 발굴하여 자기 집 뒤에 콘크리트로 지은 소옥(小屋)에 넣어놓고 치성을 드렸다. 여기에 김사모의 영감이 있으리라 믿고 모여드는 신자들이 있어 한 무리를 이루게 되었다. 1964년 김태봉이 죽고 김점옥이 강일순과 김사모의 영체를 석불(石佛)로 ...
2025-10-09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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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사
대한불교본원종
대한불교본원종에서는 본존불로서 석가모니불을 본사(本師), 아미타불을 존사(尊師)로 봉안한다. <참고문헌>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종교문제연구소, 1997)
2025-10-09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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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왕
기타
부엌은 주부가 관할하는 곳이므로 조왕은 주부, 즉 시어머니 또는 며느리가 모시는 신령으로 불의 신(火神)이다. 부엌은 음식을 조리하는 물리적인 장소일 뿐만 아니라 신령이 내재한 신성공간이며 부정을 씻는 정화의 장소이다. 민간에서는 이 신령을 조왕각시, 조왕할매, 조왕대신, 정지각시, 삼덕할망과 같이 여성 신격으로 모신다. 그러나 무가나 불교계에서는 부부 또는 남성 신격으로 모시고 있다. 이 신령은 가정에서 모시는 가신 중에서 성주, 조상과 함께 상위에 위치한다.
2025-10-09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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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회
대종교
정인회는 1893년 10월 9일 서울 종로구 궁정동에서 출생했다. 호는 춘파(春坡). 1910년 기독교청년학관 중학과를 졸업했으며, 그 이듬해 1월부터 황해도 배천군에 있는 이포사립명신학교(梨圃私立明新學校)에서 3년간 교사로 근무했다. 1910년 대종교에 입교하였고, 이름을 관(寬)으로 개명하였다. 1911년 5월 교질(敎秩)이 참교(參敎)가 되었고 곧바로 이포시교당(梨圃施敎堂)의 찬무(贊務)로 임명되었다. 동년 6월에는 백천지사(白川支司)의 종리부장에 임명되었고, 지교(知敎)로 승질(陞秩)되었다. 해방 후에는 남도본사(南道本司)를 재건하면서 선리(宣理)에 임명되었고, 1946년 총본사가 환국하자 상교(尙敎)로 승질되었 ...
2025-10-09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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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판철
인불도
전판철은 1905년 전북 익산군 용안면 법성리에서 출생하였다. 13세 때 위장병에 걸려 오랫동안 고생하다가 40세에 병세가 악화되어 절명상태에 빠졌는데, 꿈에 자기가 용이 되어 천상으로 오르다 떨어지면서 소생하였다고 한다. 그 뒤로도 며칠 사이에 두 번 절명하였는데, 천상의 옥황상제와 선녀, 단군할아버지를 보고 깨어났다고 한다. 이후 그는 자신도 모르게 ‘나무아미타불’을 연발하였는데, ‘네가 어찌 천명을 반대하느냐’는 신설(神說)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또한 방 안에서 눈 감고 있어도 밖의 사물들이 눈앞에 있는 것처럼 나타나기도 하고, 사해용왕(四海龍王)을 비롯한 신명들도 보였다고 한다. 때로는 악마들이 나타나 해를 ...
2025-10-09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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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음광
1926년 서무부서기로 임명되어 교무사무를 아울러 5년간 근무했다. 1932년부터 3년간은 연구부장과 교무부장을 지냈고 다시 2년간 교무부장을 맡으면서 총부구내에 야학원을 만들어 100여명의 아동을 교육시키기도 했다. 박중빈과 최초로 은부자(恩父子)의 결의를 맺고 가까이서 시봉을 하며 지도를 받았으며, 박중빈의 꾸중과 칭찬을 누구보다도 많이 받으며 인격을 도야했다. 그는 언론사업과 공익사업에 관심을 많이 두었다. 현재 월간지 『원광』과 각종 공익자선사업의 밑받침이 되었다. 일정(日政)말기 원불교가 어려운 문제에 직면할 때마다 전음광은 일본 경찰과 접촉하여 침착하고도 능란한 말과 글로 그들을 감화시켰다. 이렇게 전음광은 ...
2025-10-09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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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선도
안두승이 전북 정읍에 본부를 두고 포교할 때 신자가 경남 거창지방까지 늘어나게 되었다. 이때 거창경찰서장의 부인이 간장염으로 사경에 이른 것을 자아도(찬물교)의 여신도가 찬물요법으로 치료하였는데 이 교에서는 치료 후에 돈을 받는 일이 없었으므로 찬물교의 은혜를 입은 서장은 찬물교는 참으로 적선하는 교라고 칭찬하면서 포교에 협조하는 바람에 이 지방에서 이 교가 적선교라 불리게 되었다. 뒤에 자아도의 거창지방 지도자로 있던 황우영(黃宇永)이 대구지방으로 이사 가면서 조학래라는 사람과 손잡고 이 지방에 포교하여 수백 명의 신도를 얻어 하나의 독립교단을 만들고 적선도라 했다.
2025-10-09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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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도
자아도(自我道)를 창립한 안두승(安斗承, 1906~1985)은 정읍에서 태어났다. 한학과 한의학을 익혀 일찍이 한의업에 종사했다. 1947년 물법교를 창립한 김봉남(金奉南)의 일행이 정읍군 입암면 접지리 용화사에서 물법 포교를 할 때 김봉남의 시술법(施術法)에 감복되어 마침내 그의 제자가 되었다. 봉남은 안두승에게 이 지방의 포교를 위촉하고 경남지방으로 떠났다. 그런데 김봉남이 이곳을 떠난지 2년 만에 사망하고 봉남의 제자들이 각기 별도의 교단을 형성해 버렸기 때문에 안두승도 찬물교의 교주가 되어 한 교파를 이루게 되었다. 그는 교명을 ‘청수교(淸水敎)’라 했다가 뒤에 ‘자아도’로 개명하였다. 그러나 조직적인 활동이나 ...
2025-10-09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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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성학교
대한불교진각종
대한불교진각종이 어린이 포교를 위해 각 심인당에 개설한 부속학교로서, 1953년 12월에 처음 개설되었다. 2015년 1월 현재는 전국에 100여개의 자성학교가 운영되고 있다. <참고문헌> 대한불교진각종 홈페이지 (http://jingak.jhost.co.kr/) 『자성동이』(2015년 1월호)
2025-10-09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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