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대종사약전
원불교
내제는 《대종사약력(大宗師略歷)》이라 했다. 24.5cm×17.5cm의 불법연구회 전용갱지 52쪽의 단권에 국한문 혼용 펜글씨 초고이다. 연호를 ‘대정(大正)’ 등 일기(日紀)로 사용하고 있으므로 1943년(원기28) 6월 박중빈이 열반하고부터 1945년(원기30) 8월 해방까지의 작품으로 보인다. 이 책은 전권을 11장으로 나누고 편년체에 일화를 곁들여 서술하고 있다. 목차에 의하면 ①탄생 ② 유시(幼時) ③발심 ④구도 ⑤입정(入定) ⑥오도(悟道) ⑦불법기연(佛法機緣) ⑧불교혁신 ⑨접화(接化) ⑩건설 ⑪입적(入寂) 그리고 연보표(年譜表)를 부록하고 있는데 집필은 건설 부분의 중간에서 멈추고 있으므로 미완성본이다.
2025-07-05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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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사상학술원
대순진리회
대순진리회 종립학교인 대진대학교 부설연구기관. 1996년 대진대학교 교책 연구소로 설립되어 대순사상에 관한 전문적인 연구논총을 연차적으로 발간해 오고 있음.
2025-07-03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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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사상논총
대순진리회
대진대학교 부설 연구기관인 대순사상학술원이 발간하는 정기 학술지. 대순사상의 학문적 발전을 위해 종지 신조 목적 등을 주제로 한 다양한 논문과 대순사상의 학문적 이해를 심화시킬 수 있는 논문으로 구성되어 있음.
2025-07-03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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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오
우리 말로는 수릿날(戌衣日)이라고 하는데 으뜸 되는 날이라는 뜻이다. 단오절이 되면 임금은 규장각 신하들에게 쑥으로 호랑이 모양을 만든 애호(艾虎)를 내린다. 또 공조에서 부채를 만들어 신하들에게 하사하는데 이를 단오선(端午扇)이라 한다. 관상감에서는 붉은 주사로 부적을 만들어 문 위에 부쳐 나쁜 귀신을 물리치게 하였다. 임금에게는 제호탕(醍醐蕩)과 옥추단(玉樞丹)을 바쳐 액을 물리치고 질병에 대비하도록 했다. 아녀자들은 창포 뿌리로 비녀를 만들어 전염병을 예방했는데 이를 단오치장(端午粧)이라 했다. 그네를 많이 했고 씨름도 흥했다. 대추나무 시집보내기도 단오에 많이 했다. 강릉의 단오제가 대관령 산신제(성황제)와 결합 ...
2025-07-02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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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천포덕
금강대도
토암은 부인 서자암(徐慈庵)과 제자 백련(白蓮) 정태용(鄭泰鎔 1880~1932) 부자(父子)와 더불어 1910년 제자의 인연을 찾아 남쪽 지방인 충청도로 거주지를 옮겨 중생들을 구제하고자 하는 뜻을 펼치기 시작하는데 이를 ‘남천포덕(南遷布德)’이라고 한다. 남천포덕을 결행하기 전에 토암은 직접 수천인의 성명을 한 책에 써놓고는 “내 장차 남방에 가서 이 사람들을 만나 사제의 인연을 맺게 되리라.”고 하고는 곧 불살라 버리기도 했다. 수차례에 걸쳐 길을 떴다가 되돌아오곤 하던 토암은 마침내 37세 되던 1910년 3월15일 가족과 제자 30여인을 데리고 길을 떠나 4월8일 계룡산 신도안 백암동(白岩洞)에 도착하게 되었다 ...
2025-07-01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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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지훈
남선단군전
남지훈은 1918년 충남 한산(韓山)에서 출생하여 예산(禮山)에서 성장하였다. 20대에 남편과 사별하고 친가에 돌아와 산사(山寺)를 돌아다니며 기도생활을 했는데 계룡산에서 기도 중에 단군의 현몽을 얻고 그의 계시에 의해 남선리(南仙里) 석각골에 단군전 건립을 계획하였다고 한다. 1958년 그녀는 충남 대덕군 진잠면 남선리에 주택을 세우고 그 동쪽 산기슭에 단군전을 착공하였다. 건평 10여 평으로 된 목조 와가를 설계하였다. 이때 서울 사람 홍정초의 협조를 받았으나 겨우 상량을 해 놓고 중단한 채 4년을 방치하였다. 1963년 경작답을 매각하고 청양 사람 조병호(趙柄鎬)의 도움으로 다시 착공했으나 경비부족으로 완전한 내부 ...
2025-07-01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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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통일법회
한국불교법화본종
한국불교법화본종에서 격년으로 행하는 남북통일기원법회. 참고문헌 :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7)
2025-07-01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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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희
상주동학교
상주동학교의 창립자.
2025-06-30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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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렬
임무교
임무교(壬戊敎)를 창립한 김종렬(金鍾烈 1899-1966)은 1899년 8월 6일 강원도 평창군 평창면 종부리에서 김진국(金鎭國)의 아들로 출생했다. 1917년 보천교(普天敎)에 들어가 신앙하였고 이상호의 대법사(大法社)에도 적극 가담하여 중앙통제위원(中央統制委員) 직을 맡기도 했다. 그러다가 1954년 전라북도 김제군 금산면 쌍룡리 자기 집에서 임무교를 창립하여 활동하다가 1966년 사망했다. 증산 강일순을 옥황상제로 신앙하였고 특별한 독자적인 사상이나 주장은 없었다. 참고문헌 : 『범증산교사』(홍범초 도서출판 한누리 1988) 『한국신흥종교총람』(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06-30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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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운
대승불교법화회
법회계 신흥 종단의 탄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대승불교법화회(大乘佛敎法華會)의 초대 교령이었다. 그는 1898년 경기도 수원시 복수동에서 태어났다. 매우 병약하였으며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낸다. 19세에 불교에 귀의하여 관악산 망월사에서 수련하고 21세에 수원의 용주사에서 임성진(林性眞)화상을 은사로 수계 득도하였다. 병고와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신교육을 받아 26세에 신풍공보를 졸업하였다. 『법화경』에 심취하며 병고를 극복한 그는 묘법을 얻고 1927년 수원시 복수동에 묘수사(妙壽寺)를 세운다. 그는 이후에도 철저한 기도정진을 계속하였는데 일본 승려 본문불립강(本門佛立講)의 야스다[安田]와 본문법화종(本門法華宗)의 우에 ...
2025-06-30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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