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정심의서
정심회
『정심의 서』는 2005년 2월부터 2006년 10월까지 창시자인 박귀달이 설한 정심의 진리를 엮어서 모은 정심회의 경전이다. 참다운 정심의 마음이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 깨달음의 길을 찾아 갈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2025-10-0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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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오
영세종주도
영세종주도(永世宗主道)를 창립한 정대오(丁大午, 1930~?)는 1930년 10월 25일 전라남도 무안군 이로면 대양리 내화촌에서 출생하여 녹동에서 성장했다. 19세시 순천도를 알고 도를 찾아 전라북도 김제군 황산면 남양리로 이사하여 거기서 살았다. 전봉래 연원으로 류춘래를 만나고 그의 가르침을 받으며 혹독한 수련을 하였다. 금구면 개전리에 수련소를 짓고 8년 동안 머리도 깎지 아니한 채 수련을 했다. 그러던 중 1964년 12월 26일 『현무경(玄武經)』을 읽다가 새로운 후천역이 떠올랐다고 하였다. 그는 그의 일생 해야 할 일을 ‘십상성도(十相成道)’로 표현했다. 9상은 준비과정이고 10상 째는 중생제도라고 했다. 수 ...
2025-10-09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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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수행
선불교(선교)
선불교의 기본수행은 절수행, 활구수행, 수벽치기수행, 불광활법수행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절 수행은 절을 하는 수행인데, 이에 대해 선불교에서는 절을 하는 것이 ‘저의 얼’을 되찾는 수행으로 건강한 몸을 만들고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는 수행법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감정이나 관념으로 힘든 마음을 깨끗이 비워줌으로써 자신을 돌아보고 본성을 밝힐 수 있다는 것이다.
2025-10-09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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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훈
천교도
장병훈은 1934년 대구시 북동 심정에서 출생했으며, 경북대학교 법정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대중당(社會大衆黨)에서 정치활동을 하다가 5·16쿠데타 직후 3개월간 구금된 후로는 정치에서 손을 떼고 종교로 눈을 돌리게 된다. 그는 무당의 신굿을 구경하다가 접신무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접신현상에 대해 연구하면서 스스로가 접신되기 위해 주송수련을 하였다. 수련 도중 돌연 몸이 떨리고 강신현상과 눈앞에 환상이 떠오르는 체험을 하였다. 그는 이러한 종교현상을 연구하였고, 접신과 개안의 방술(方術)을 ‘영동신기술(靈動神氣術)’이라 하였다. 이 영동술로 사람들을 치료하기 시작하였고, 신통하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신자들이 모여들었다 ...
2025-10-09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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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붕불교회관
대한불교일붕선교종
본 회관은 1987년 대한불교일붕선교종 창종자 서경보의 주도로 건립된 것으로, 종로구 세검정의 기존 일붕선원(一鵬禪院)을 중축한 것이다. 대지 150평 건평 250평의 4층 규모로, 세계불교법왕청준비위원회 사무실, UN전권대사 사무처로 사용되었다. <참고문헌> 《매일경제신문》(1987.07.15)
2025-10-08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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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대팔정
용화삼덕도
용화삼덕도(龍華三德道)를 세운 강기춘(康基春, 1903-?)은 신앙의 대상으로 태상노군·아미타불·용화불·석가불을 모시고 있다. 그 이유는 김봉남이 부처님은 선이므로 부처님을 부지런히 부르면 선한 사람이 된다하였으므로 부처님을 모신다고 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는 자기에게는 이미 토설로서 부처님을 봉남과 함께 받들어야 할 천명과 호흡보살(呼吸菩薩)이라는 법명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963년 5월 남해 금산 상봉에서 기도수도를 할 때였다는 것이다. 이때 ‘선화대도 봉남진여대성불 용화교주 오봉구천 미륵존불 호흡보살 보령통신 각도득지 태상노군 급급여율령섭(禪化大道 奉南眞如大聖佛 龍華敎主 吾奉九天 彌勒尊佛 呼吸菩薩 ...
2025-10-08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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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훈
천도교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으로 3·1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1920년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 혐의로 2년간 옥고를 치렀으며 출옥 후 천도교 내 지하 독립운동 조직인 고려혁명위원회의 고문으로 활동하였다.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나 유년기에 윤치소, 의친왕, 권동진 등과 필운학당에서 수학하였다. 이후 명문가 출신인 윤치소의 조카와 결혼했다. 1883년 동학에 입도한 선생은 1894년 동학농민전쟁 2차 봉기과정에서 부상하기 시작, 경기·충청·강원을 망라한 20여 개가 넘는 포를 아우르는 북접 지도자로 성장하였다. 이후 손병희가 일본에 망명하던 시기 박인호 등과 함께 교단 운영에 참여하였고, 1905년 12월 천도교가 창건되는 과정에 ...
2025-10-08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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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규
금강대도
월궁(月宮)에서 신비한 난새가 날아와 품에 안기고, 색상이 장엄하고 금빛이 찬란한 원정방(圓正方)의 삼보금인(三寶金印)을 받는 태몽으로 호를 ‘월란(月鸞)’이라 하였다. 어려서부터 한학을 하였고,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에서 유불도 삼교를 섭렵하면서 금강대도의 사상을 철학적으로 심화시켰다. 1960년 김향련(金香蓮)과 결혼하였고, 청학과 보단 사후 1962년 전도인의 추대로 총관장에 취임, 도무를 총괄하게 되었다. 그가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것은 전국적으로 교화 조직을 확대하고, 금천 성지를 성역화하는 일이었다. 1973년 금강 개도(開道) 100년과 1983년 연화 개도 100년을 기하여 금천리 일대를 대대적으로 성역화 ...
2025-10-08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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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영
요강교
이원영은 1898년 전북 임실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 이석용(李錫庸)은 유명한 의병장이었다. 아버지가 의병장으로 활동하다 붙잡혀 교수형을 당하자 어려서부터 일제의 감시와 탄압이 극심한 가운데 불안한 생활을 했다. 그러는 중에 김일부의 정역원리에 선후천 교역으로 새 세계가 개벽된다는 것과 오음주송(五音呪頌)의 신비한 작용이 일어나는 것을 체험한 뒤 마음이 끌린 바 있어 입신하였다. 해방 후 그가 행하는 오음주송으로 질병이 낫고 또한 영가무도(詠歌舞蹈)의 신비한 도법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그를 추종하는 신자들이 모이게 되어 하나의 교단이 형성된 것이다.
2025-10-08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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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담
단군숭령회
이담은 1945년 단군전봉공회를 설립하였으며, 1958년 이 단체의 명칭을 단군숭령회로 바꾸고 문교부의 인가를 얻어 서울에 본부를 두고 활동하였다. 단군숭령회의 목적은 단군을 숭봉함으로써 민족주체의식을 앙양하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그는 1961년 전국의 단군숭봉단체를 통합할 것을 결의하고 사단법인 단군숭령회중앙본부의 간판을 걸고 민족주체의식의 신소생운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한국신흥종교총감』(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10-08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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