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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가불교한국입정교성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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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는 1938년 니와노 닛쿄우와 나가누마 묘오코의 주도로 『법화경』 신앙을 표방하는 영우회(靈 友會)에서 분파된 신종교이다. ‘대일본입정교성회(大日本立正佼成會)’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본종은 현재 일본 신종교 중에서도 약 600만 명의 신자를 자랑하는 대교단으로 성장하였다. ‘입정교성(立正佼成)’에서 ‘입정(立正)’은 올바른 가르침에 입각한다는 것인데, 『법화경』의 가르침을 바로 세운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교성(佼成)’은 신앙적인 교섭과 신자들의 화합적인 교류로서 인격을 완성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무량의경(無量義經)』,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불설관보현보살행법경(佛說觀普賢菩薩行法經)』의 법화삼부경을 소의 ...

2025-10-09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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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희선도태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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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극천리(無極天理)·천인합발(天人合發)·인신공화(人神共和)의 시운을 맞이하여 노예생활을 청산하고 이를 다스리는 주인을 양성하기 위하여 설립되었으며, 세계 전 인류에게 선도(仙道)의 수련방법인 신무도(神武道) 수련을 통하여 초능력을 개발하고 인본주의를 파악케 하여 유리세계(琉璃世界) 건설에 참여케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규약에 규정된 목적을 보면 ①선도의 생활화, ②선도의 대중화, ③선도의 공익화로 밝히고 있다. 조직은 원장, 부원장, 이사, 감사, 사무국장, 명예임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 집단의 중점사업은 신무도수련, 난치병 치료, 『인희보감』 강론에 있으며, 산하지원 20개소, 회원 1,000여명이 있다. 간행물 ...

2025-10-08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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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운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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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학계

이운규는 세종의 제18왕자인 담양군(潭陽君)의 13세손으로 그가 노년기에 접어들면서 일찍이 서울에서 낙향했거나 혹은 그의 고향인 파주에서 이주하여 김항의 고향인 담곡 서쪽에 있는 띠울(茅村)에 와서 은거하였다. 하상역(河相易)이 창립한 대종교(大宗敎)에서 발간된 「김일부 선생행장(金一夫 先生行狀)」에 의하면 이운규의 휘(諱)를 ‘운규(雲圭)’라 하였고, 김치인(金致寅, 號는 光華)이 창립한 남학교단(南學敎團)의 『금강불교연원록(金剛佛敎淵源錄)』에 의하면 “이운섭 호연담 전주인 세종대왕14세손 수도우청림도사(李雲燮 號蓮潭 全州人 世宗大王十四世孫 受道于靑林道士)”라고 기록하여 호는 ‘연담’이요 휘는 ‘운섭’이라 하였다. 이 ...

2025-10-08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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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린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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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는 1947년 일본 사가켄[佐賀県] 타쿠시[多久市]에서 리키히사 닷사이(力久辰齋 1907-1977)에 의해 천지공도선린회(天地公道善隣會)라는 이름으로 창교되었다. 교조 닷사이는 투시능력 및 예언 등으로 유명하였던 부친 리키히사 타츠사부로(力久辰三朗 : 1859-1926)의 뒤를 이어 종교활동에 투신하는데 타츠사부로는 원래 교파 신도 중 실행교(實行敎)인 리키히사교회[力久敎會]를 설립하고 활동하면서 영능력을 깨우쳐 1902년부터 스스로 종교활동을 개척하였다고 한다. 이로 인해 선린교에서는 타츠사부로를 도조(道祖)라고 부른다. 1926년 10월 20일 67세의 나이로 타츠사부로가 별세하게 되자 닷사이가 리키히사교회를 계 ...

2025-07-14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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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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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계

‘검결’은 ‘검가’ ‘칼노래’ 등으로 혼용되어 불리고 있으며 일부 동학 경전 필사본에서는 ‘격흥가’ ‘侍劍歌’ 등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검가’는 칼을 추며 부르는 노래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검결’의 ‘訣’은 비결이라는 의미로 최제우가 한울님으로부터 비결을 받은 노래라는 의미가 동시에 지닌다. ‘겸결’은 동학의 종교적 의식과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 특히 최제우는 관에 체포되어 대구 감영에서 취조관에게 검결을 “한울님으로부터 서양의 침공을 물리치도록 받았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라서 ‘검결’은 최제우의 종교체험인 한울님의 계시에 의하여 서양의 침략을 막는다는 종교적 주술 기능과 함께 쓰여진 노래이며 종교적 의식에서 ...

2025-05-22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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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불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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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교일반/기타

1882년 조선과 미국 사이에 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자 프랑스도 조약의 협상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교섭에 나섰다. 여기에는 조선에서 활동하던 프랑스 선교사들의 안전을 보장하고, 천주교 선교의 자유를 확보하려는 목적이 강하게 작용하였다. 하지만 조선은 협상에 나서면서 선교사 문제를 거론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조선에서는 프랑스의 최대 관심사가 종교 문제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초기의 협상은 난항을 거듭하다가 결렬되고 말았다. 조선과 프랑스가 다시 협상을 시작하려는 조짐은 1885년에 가서 조선 정부의 외교 고문이었던 묄렌도르프(Möllendorff)의 중재로 가시화되었다. 결국 프랑스 정부를 대신하 ...

2025-10-11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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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요도, 공부의 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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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사은·사요는 인생의 요도로서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마땅히 밟아가야 할 바른 길을 의미하고, 삼학·팔조는 공부의 요도로서 공부인이 마땅히 밟아 행해야할 중요한 길을 뜻한다. 사은·사요의 신앙으로 인생의 의미를 실현하고, 삼학·팔조의 수행으로 인격을 완성한다는 일원상 신앙과 수행의 강령을 담고 있다. 우리는 천지·부모·동포·법률의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은혜에 의해서 생명을 얻고 존재를 유지해 간다. 따라서 그 은혜를 발견하고 감사하며 보은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나아가 자력양성·지자본위·타자녀교육·공도자숭배의 사요를 실천함으로써 평등사회를 구현해야 하는 것이다. 인생의 요도와 공부의 요도는 상보적 관계에 있다. 『정전』에서는 ...

2025-10-08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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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중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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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도의 성주교회 평양집회소의 책임자로 있던 허호빈은 김성도가 죽고 나서 60명의 신도와 함께 40일 동안 기도하다가 남편 이일덕과 함께 더 깊이 파고들자고 하면서 다시 김성도의 사진을 걸어놓고 3개월을 기도하였다. 그러던 중 허호빈의 배에서 움직임이 생기고 예수가 나타나 ‘어머니’라고 부르더라는 것이다. 이에 당황한 허호빈은 그에게 절을 하며 ‘저는 어머니가 될 수 없습니다.’라고 했더니 그러면 ‘나는 선생님이라 하고 너는 사모님이라 하자’라고 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교인들은 예수를 선생이라 하고 허호빈을 사모님이라 불렀다. 그 때부터 예수가 허호빈의 몸에 직접 나타나 역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그들의 모임을 성 ...

2025-07-09 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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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백교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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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백교

백백교(白白敎)는 동학에 근원을 둔 것으로 전정운(全廷芸)의 백도교(白道敎)의 분파로 탄생되었다. 1899년경 동학군 전정운이 금강산에 들어가 4년 동안 수도하여 도통하고 그의 부친이 살았던 함경남도 문천군 운림면 사람들을 대상으로 교화한 것이 시작이였다. 신도가 늘어나자 1912년에 그는 강원도 금화군 근동면 수태리 오성산에 본거지를 두고 교명을 백도교로 하고 교세를 확장하였다. 1919년에 전정운이 사망하자 분열이 일어났다. 1923년 전용주는 이희룡을 교주로 내세워 인천교를 세우고 우광현(禹光鉉)은 교명을 백백교로 바꾸고 전정운을 교조로 그리고 자신을 교주로 하는 새 교단을 창설하였다. 1924년 우광현이 교주직을 ...

2025-07-09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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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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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무당'은 남자무당을 이르는 말인데 황해도와 평안도에서는 박사 박새 박시 등으로 불렸고 강원도에서는 할보무당이라 부르기도 한다. '박수'는 몽골어 '박시(baksi)'에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다. 몽골어에서 '박시'는 '선생' '스승' '지혜로운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한자로는 박사(博士)·박수(拍手)·복사(卜師) 혹은 화랑(花郞)으로 표기되었다. 박사는 두루 많이 아는 사람이라는 뜻이고 복사는 점복과 예언을 통해 앞날을 예측하는 훌륭한 스승 또는 신의 대리자라는 뜻이다. 박사나 점사라 한 것은 박수(博數)라는 숫자에서 비롯되었는데 점보는 방법으로 숫자를 풀어서 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산통점 육효점 복점 ...

2025-07-08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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