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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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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송나라 휘종(徽宗) 숭녕(崇寧) 3년(1104)에 ‘벽옹문선왕전(辟雍文宣王殿)’을 ‘대성전’이라 한 뒤 그 명칭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서울의 성균관을 비롯하여 전국 231개의 향교마다 설치되었다. 성균관 대성전 건물 안에는 대성지성문선왕(大成至聖文宣王)인 공자를 정위(正位)로 하여 동쪽에 안자(顔子)와 자사(子思)가 서쪽에 증자(曾子)와 맹자(孟子)가 배치되어 있다. 또한 4성(四聖: 안자‧자사‧증자‧맹자)의 뒷줄로 동쪽에는 민손(閔損)·염옹(冉雍)·단목사(端木賜)·중유(仲由)·복상(卜商)과 송대(宋代)의 주돈이(周敦頤)·정이(程頤)·장재(張載)를 앞줄에 설총(薛聰)·안유(安裕)·김굉필(金宏弼)·조광조 ...

2025-07-03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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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동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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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마니숭조회

단군마니숭조회에서는 1984년 서울에 본부를 옮긴 후 주로 신자들을 대상으로 한 기도를 통해 종교활동을 전개해 왔다. 기도는 주로 중고생 청년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49일 기도 63일간의 남북 진혼(영혼) 화합기도 천일기도 등이 있으며 5세 미만의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하는 ‘단동기도’ 등이 있다. 기도는 주로 본부에서 진행하나 때로 강화도 마니산에서 하기도 한다. 참고문헌 :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7)

2025-07-02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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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영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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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이후 이진탁(李鎭鐸)이 건립한 작산단군전(作山檀君殿)을 주관하기 위하여 주민들이 결성한 단체로서 단군교의 현재 남아 있는 유일한 교파.

2025-07-01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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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십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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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종교원

단군십계명은 『천부경』이나 『삼일신고』 등의 우주관을 인간의 신체에 접목시키고 특히 어린이의 천진무구한 상태에서 우주의 진리를 찾으려 했던 해석으로 추정된다. 역사적으로 그 맥락을 알 수 없으나 1962년 출간된 안명선의 『빛나는 겨레의 얼』(성문각 발행)에 소개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새종교원에서는 이러한 단군십계명에 자신이 주장하는 태극사상을 접목시켜 새로운 항목을 추가하는 등 전혀 다른 해석을 행하였고 이를 신도와 일반인들에게 태극사상의 회복을 위한 진리로서 제시하기도 하였다. 안명선의 단군십계명은 ①불아불아(不亞不亞) ②시상시상(侍想侍想) ③도리도리(道理道理) ④지암지암(持闇持闇) ⑤곤지곤지(坤地坤地) ⑥서 ...

2025-07-01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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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사직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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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화불교(天華佛敎)에서는 1963년 서울 사직공원의 가건물에 9척의 단군신상과 사직신상을 모시고 매년 9월 15일(어천절 御天節)과 10월 3일(개천절)에 단군사직대제를 봉행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불교 유가밀교』(천화불교포교원 1968)

2025-07-01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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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건수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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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정유도

1918년부터 수도(修道)에 뜻을 두고 정성(精誠)과 선심(善心)에 바탕을 두고 정진해 오던 강대성은 1928년 기도를 하던 중 “금강산 금강암에 가서 수도하라”는 천신의 외침을 듣게 되었다고 한다. 전북 순창이 고향이었던 그는 인근 회문산 내에 승강산(勝剛山: 금강산보다 더 나은 산이라는 의미)이 있고 그곳에 금강암이라는 암자 터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는 그곳에 초가 3칸을 짓는다. 그리고 본격적인 구도수련(求道修鍊)은 초가3칸이 완성된 이듬해(1929년) 2월 20일(음)부터 시작된다. 강대성은 혼자서 수도를 한 것이 아니라 부인 문씨와 아들 용학(龍鶴)에게도 수도하는 묘방을 일러주어 함께했다. 그는 부인과 아들에게 ...

2025-07-01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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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산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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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대도

1934년 11월 이토암 대성사부가 타계하자 처음에는 충남 연기군 금남면 신촌리에 양례(襄禮)하였는데 1946년에 연기군 금남면 영대리 삼태봉으로 이장하였다가 2001년 충남 논산군 노성산의 훈풍로심(薰風露心; 향내음 바람에 꽃 마음이 드러난 것)혈로 다시 이장하였다. 이곳은 토암 자신이 “만고에 신령스런 지경의 천연성지로다…이곳은 네 선생과 팔사(八士)의 몸이 거처할 땅이니라.”할 정도로 명당대지로 알려져 일찍부터 성지로 꼽혀왔으며 수 십 년간 종단의 숙원사업이었다. 노성산은 일매팔지(一梅八枝)의 형국으로 옥룡자(玉龍子)가 보고 “鷄鳴九曲天將曉하니 馬路春風北麓肥라. 天下名山何處在오. 舞童山下亂花飛”라고 찬탄했다고 한다 ...

2025-07-01 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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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통일기원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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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정유도

갱정유도는 도조 영신당주 강대성이 ‘대화중흥국’을 주창하고 2세 교주인 계도선사 김갑조가 ‘통일과 평화를 위한 민족선언 4대 항목’을 선포하는 등 남북통일과 세계평화를 위한 종교적 실천운동을 꾸준히 전개해왔다. 이 연장선상에서 갱정유도는 1984년 3월 20일 분단을 상징하는 휴전선 인근 임진각에서 남북통일과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기원대제를 봉행했다. 갱정유도인 600여 명과 내외귀빈 100여 명이 참석한 이날 기원대제는 ‘천황상제존위(天皇上帝尊位)’를 모신 제단에서 갱정유도의 전통적 종교의식에 따라 봉행되었다. 기원대제가 끝난 뒤에는 대통령과 남북한동포 그리고 유엔사무총장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각각 채택되었다. 참고문헌 ...

2025-07-01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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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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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백교

김판례는 대전에서 태어났으며 일찍이 일본으로 건너가 13년간 거주하였는데 시모노세키[下關]에 살 때 몸에 신기가 있어서 신설(神說)을 토설하였다고 한다. 해방 후 귀국하여서는 일시적으로 기독교를 신앙하였는데 몸이 심하게 괴로워지고 3남매가 병사하고 남편은 객사하는 등 집안에 우환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는 대전 보문산에 들어가 기도수련을 시작했는데 이후 신병과 가세가 풀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김판례는 이 모든 것이 단군국조의 은덕이라 믿고 단군초상화를 걸고서 기도를 시작했는데 이때 단백교를 함께 창립한 남편 양준룡을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1955년 대전시 대사동 보문산에 불당을 짓고 ‘마곡사본산대전선교소’라고 ...

2025-06-30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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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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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문좌(文佐) 호는 심산(心山)·벽옹(躄翁)이다. 1919년 전국의 유림 130여 명이 독립청원서에 서명하여 파리강화회의에 보낸 이른바 파리장서사건을 주도하였으며 이후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였다. 1921년부터 『천고(天鼓)』 『사민일보(四民日報)』등의 독립운동지를 발간하였고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를 조직해 군사선전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1925년 국내로 잠입하여 비밀리에 독립운동자금 모금활동을 벌이고 다시 중국으로 출국하였으며 이 때 모금한 자금을 1926년 나석주에게 주어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투척하는 거사를 단행하도록 하였다. 1927년 상하이의 영국인 병원 ...

2025-06-30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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