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이희남
타불교
이희남은 남편 김원숙(金元淑)과 제주도 구좌면 동복리에서 살았다. 김원숙이 갑자기 정신병에 걸려 고민하던 중 제주에온 김봉남에게 물법치료를 받고 병이 나았다. 이로 인해 부부가 봉남의 신자가 되어 봉남을 따라 부산 영도에 가서 김원숙은 선원으로 종사하면서 물법교화를 받아 고참 교인이 되었다. 그 후 이희남의 물법시술은 영험이 있다고 소문이 나서 많은 신자들이 그녀에게 몰려들었다. 봉남이 사망하고 이들 부부는 다른 신자들과 함께 봉남교단본부 설치에 협력하였으나 실패로 돌아가자 모두 흩어져 한 교파씩을 만드는 중에 그들도 나름대로 포교한 것이 수백 명의 신도를 갖는 교파가 되었다. 자기 집에 만든 법단에 봉남의 사진을 모시 ...
2025-10-08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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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훈
천도교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으로 3·1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1920년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 혐의로 2년간 옥고를 치렀으며 출옥 후 천도교 내 지하 독립운동 조직인 고려혁명위원회의 고문으로 활동하였다.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나 유년기에 윤치소, 의친왕, 권동진 등과 필운학당에서 수학하였다. 이후 명문가 출신인 윤치소의 조카와 결혼했다. 1883년 동학에 입도한 선생은 1894년 동학농민전쟁 2차 봉기과정에서 부상하기 시작, 경기·충청·강원을 망라한 20여 개가 넘는 포를 아우르는 북접 지도자로 성장하였다. 이후 손병희가 일본에 망명하던 시기 박인호 등과 함께 교단 운영에 참여하였고, 1905년 12월 천도교가 창건되는 과정에 ...
2025-10-08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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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영
요강교
이원영은 1898년 전북 임실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 이석용(李錫庸)은 유명한 의병장이었다. 아버지가 의병장으로 활동하다 붙잡혀 교수형을 당하자 어려서부터 일제의 감시와 탄압이 극심한 가운데 불안한 생활을 했다. 그러는 중에 김일부의 정역원리에 선후천 교역으로 새 세계가 개벽된다는 것과 오음주송(五音呪頌)의 신비한 작용이 일어나는 것을 체험한 뒤 마음이 끌린 바 있어 입신하였다. 해방 후 그가 행하는 오음주송으로 질병이 낫고 또한 영가무도(詠歌舞蹈)의 신비한 도법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그를 추종하는 신자들이 모이게 되어 하나의 교단이 형성된 것이다.
2025-10-08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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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의
대천교
이영의는 오태환 등과 함께 1926년 대천교를 창립하였으며, 교주가 없는 대천교의 대표라 할 수 있는 대성사(제1대)가 되어 활동하였다. 다만, 그의 행적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은 관료로서 단군교에서 활동하였던 이영의라는 인물과 동일인일 것으로 추측될 뿐이다. <참고문헌> 《동아일보》(1928. 1. 4.)
2025-10-08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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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성신
전도관
‘이슬성신’은 기독교 『성경』 호세아서 14장 5절을 근거로 전도관의 박태선이 주장하는 육신영생의 구원을 확신하게 하는 종교적 모티브이다. 6.25 전쟁 중 박태선은 피가 바뀌는 체험을 하였는데 이것을 이슬 혹은 ‘이슬성신’을 체험했다고 주장했고, 이후 전도관에서 ‘이슬성신’은 구원과 영생의 주체이며 육신영생을 확신하게 하는 종교체험으로 믿어지고 있다. 박태선 자신을 ‘이슬성신’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특히 전도관 초기 이슬성신이 사진으로도 촬영되었다고 주장했다. ‘이슬성신’은 전도관의 영향을 받은 조희성의 승리제단에서도 이와 유사한 개념으로 신봉되고 있다.
2025-10-08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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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담
단군숭령회
이담은 1945년 단군전봉공회를 설립하였으며, 1958년 이 단체의 명칭을 단군숭령회로 바꾸고 문교부의 인가를 얻어 서울에 본부를 두고 활동하였다. 단군숭령회의 목적은 단군을 숭봉함으로써 민족주체의식을 앙양하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그는 1961년 전국의 단군숭봉단체를 통합할 것을 결의하고 사단법인 단군숭령회중앙본부의 간판을 걸고 민족주체의식의 신소생운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한국신흥종교총감』(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10-08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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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탑
금강대도
‘의성(義誠)’이란 금강대도인의 모든 수행과 신앙의 상징으로서, 대도덕성사건곤부모의 도덕개화사업에 ‘불감사기신(不敢私其身)·불감사기재(不敢私其財)’의 정성으로 보필함을 의미한다. 1941년 신사사변으로 일제의 모진 고문을 받아 옥중에서 순도한 사람이 11명이나 되었고, 그 외의 많은 도인들이 고문과 옥살이로 고통을 받았다. 이에 제3대 도주 이월란은 신사사변의 어려움을 당하여 대도를 위해 순도하고 도로써 몸을 마친 제자들을 밖으로 드날리고 의로운 정성의 뜻을 기리고자 의성탑을 건립하였다. 의성탑은 대도의 법리인 원[○]·정[□]·방[△]의 상징을 형상화하였으며, ‘의(義)’·‘성(誠)’ 두 글자를 파자(破字)하여 동서남 ...
2025-10-08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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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서정리제세경
갱정유도
사람이 병이 나는 이유가 상승하는 기운과 하강하는 기운이 조화롭지 못해서 그런 것처럼 세상이 병이 드는 이치도 마찬가지임을 밝혀놓은 경전이다. 즉, 하늘[天]은 상승하는 기운을 갖고 있으며, 오행(五行)으로 말하면 목(木)과 화(火)가 이에 해당한다. 땅[地]은 하강하는 기운을 갖고 있으며, 오행으로 말하면 금(金)과 수(水)가 이에 해당한다. 사람이 건강하려면 이 상승하는 기운과 하강하는 기운이 조화로워야 한다. 마찬가지로 세상의 병을 다스리는 방법도 하강하는 기운은 위에 있고, 상승하는 기운은 아래에 있어야 서로 조화를 이루게 된다. 그러므로 천상일기가 인간 세상에 하강하는 세상이 평화롭고 복된 세상임을 말하고 있다 ...
2025-10-08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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윷판교
오음주송의 수련에 의해 종교적 신비의 경지에 들어가기를 강조한 일부계 분파의 신종교.
2025-10-08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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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허일
타고난 총명으로 5세에는 한시(漢詩)를 짓기 시작하였으며 13세에는 사서삼경(四書三經)을 통독하여 철리(哲理)에 밝았다. 23세에는 8개군 합동 유림강회에서 『주역』을 강론하여 유주역(柳周易)이라는 별칭까지 받았다. 젊어서는 민족광복에 뜻을 두어 독립지사들과 모임을 갖고 상해에 건너가려하였으나 부친의 열반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33세부터 영광보통학교 교원으로 13년간 인재양성에 힘을 기울였으나 요시찰인물로 지목되어 일체 자유 활동을 제지당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일제의 감시와 방해에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대한독립만세’를 부르고 교원직을 사임했다. 이후 몇 년간을 울분에 휩싸여 좌절하며 지내다가 1932년 10 ...
2025-10-08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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