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박공우
증산교인암파
증산교인암파(甑山敎仁菴派)를 창립한 박공우(朴公又 1876-1940)는 1876년 전주 교동에서 부친 박순문과 모친 오묘전의 아들로 태어났다. 키가 180cm가 넘었으며 풍체가 당당하고 음성이 웅장하고 힘이 장사여서 전라북도 정읍 · 고창 · 흥덕의 세 장을 주름잡고 다녔다. 3명의 부인과 혼인하여 5남 5녀를 두었다. 고창에서 야소교를 믿어 수십 명을 전도한 일이 있고 동학에 들어가 열성 있는 신도가 되었다. 그러던 그가 증산 강일순을 만나 그의 수제자중 한사람이 되고 증산의 천지공사에 적극 협력하였다. 증산이 사망하고 난후 기운을 내려 줄 것을 증산상제에게 기원하여 신력(神力)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191 ...
2025-07-08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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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계림
개천교(開天敎)
박계림은 1931년 함경남도 북청에서 출생하였다. 그녀의 할머니는 단군과 미륵불을 함께 모셨는데 자신이 타계하면 그 신통력을 물려주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할머니의 신앙이 싫어서 함남여고를 졸업한 후 배우가 되기 위해 무용을 배우거나 기독교 감리교에 들어가 활동하기도 하였고 역학을 배우거나 불교의 보살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는 와중에 그녀는 갖은 질병에 시달리게 되었는데 결국 단군할아버지를 모시기 시작하자 그동안 자신을 괴롭혀왔던 모든 병마가 씻은 듯이 나았다고 한다. 1984년에는 계시를 받아 ‘개천교’를 창립하였다. 신앙의 대상은 환웅천왕과 단군왕검이며 교리는 홍익인간과 이화세계를 이념의 바탕으로 삼뿌리사 ...
2025-07-08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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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울라
바하이교
바하올라는 1817년 오늘날 이란의 수도인 테헤란에서 출생했다. 본명은 미르자 후세인 알리 누리(Mírzá Ḥusayn-`Alí Núrí)다. 27세가 되던 해에 바하울라는 바압의 종교운동에 참여해서 핵심적인 지위에 올랐다. 바압의 종교단체에게 탄압을 받던 1850년대에 그는 자신이 신의 전령사임을 알리는 신의 계시를 받았고 1863년 바그다드 체류기에 자신을 따르던 추종자들에게 그 사실을 공개적으로 알리고 바하이교를 설립하였다. 1868년 오스만제국에 의해서 바하울라와 그의 추종자들은 아카(`Akká)로 유배되었고 그곳에서 아들을 잃는 고통을 겪었다. 술탄의 사후에 자유를 얻은 바하울라는 말년에 바흐지(Mansion ...
2025-07-08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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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신앙총연맹
1961년 2월에 국무원에 등록하고 서울 견지동 80에 본부를 두었다. 발기 교파는 증산교대법사 ․ 삼덕교 ․ 보화교 ․ 선불교 ․ 천도교 등이고 미륵불교 ․ 미륵계 ․ 약방파 ․ 태극도 ․ 광명도덕교 ․ 상제교 ․ 도학교 ․ 일관도가 참여하였다. 강령은 민족단일종교의 건설과 민족문화의 건설로 인류문화 발전에 기여하자는 것이었다. 기관지 ‘종교연합신문’을 발행하는 등 활동을 했으나 5.16혁명으로 중단되었다. 뒤에 결성된 동도교(東道敎)의 모체가 되었다. 참고문헌 : 『증산교개설』(홍범초 창문각 1982)
2025-07-08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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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신앙선도회
대한불교원효종
1970년 11월 29일 대한불교원효종은 산하에 본회를 설립하여 무속신앙과 기복신앙을 지양하고 대중생활 속에 순수한 보살도(菩薩道)를 심기위한 운동을 전개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종교문제연구소 1997) 『한국신흥종교총람』(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07-08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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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신
미신이라는 말은 상대적으로 규정되는 용어이다. 우리나라에서 근대에 과학 개념이 소개되었을 때 미신은 과학에 대조되는 개념으로 설정되었다. 종교 영역의 경우에 일제강점기 당시 종교로서의 위상을 인정받았던 기독교 불교 유교의 경우에는 합리성을 지닌 신앙으로 여겨진 반면에 종교로 인정받지 못한 신앙은 미신으로 취급되었다. 1970년대 이후 전통적인 풍습 특히 무속을 미신으로 보는 사회적 인식이 강화되었고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한편 종교에 적용되는 것보다 넓은 의미에서 일반적인 건전한 상식으로 판단하여 합리적·과학적인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는 생활 지식을 믿거나 실천하는 것을 미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2025-07-08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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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종불입행원
→ 무상교 참조.
2025-07-08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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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불영원회
정인표(鄭寅杓)가 창립한 태인미륵불교의 초기 이름.
2025-07-08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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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불교진흥회
김형렬(金亨烈)이 창립한 미륵불교의 일시 이름.
2025-07-08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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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무성
김항은 1881년에 「대역서(大易序)」를 지었다. 그 내용의 첫 머리가 “聖哉 易之爲易 易者曆也. 无曆無聖 无聖无易”로 시작된다. 내용은 “성스럽도다. 역(易)이 역(易)이 됨이여. 역(易)이라는 것은 곧 책력(曆)이니 책력(曆)이 없으면 성인이 없고 성인이 없으면 역(易)도 없다”는 뜻이다. 책력이 없으면 곧 성인도 없다는 뜻은 모든 성인이 역수원리가 인간의 본성에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아 성인이 되는 것이니 역수원리가 없으면 깨달음의 근거가 사라지게 되므로 성인이 존재할 수 없게 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더불어 이렇게 역수원리를 깨달은 성인이 있어야만 비로소 역(易)의 원리가 바르게 드러난다는 점에서 역(易)→역 ...
2025-07-08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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