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일월산기도원
1934년 경북 경산에서 태어난 김성복은 1963년 경북 영양군에 있는 일원산에서 신도 10여 명과 함께 금식 기도를 하던 중 신비 체험을 한 뒤 일월산이 말세 심판의 피난처요 새 세계의 땅이라는 계시를 받았다. 이에 자신의 이름을 ‘한국’으로 고치고 일월산에 기도원을 세우고 예수 재림을 주장하였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화신으로서, 본인의 피를 받아 하나님께 기도하면 모든 소원이 성취되고 질병이 낫게 된다고 주장한다. 또한 인류의 멸망과 말세 심판이 임박하였으므로, 본인의 피를 받은 자만이 왕의 권좌와 영화를 누리고 영원토록 살 수 있다고 하였다. 교주를 제외한 모든 신도들에게 돼지고기, 비늘 없는 고기, 복숭아와 같 ...
2025-10-09 00:10
15
인화도덕경
태인미륵불교
『인화도덕경(人化道德經)』은 태인미륵불교(泰仁彌勒佛敎)를 창립한 정인표(鄭寅杓)가 설한 경으로 단행본으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엄수섭이 다른 경전들과 혼합하여 책명을 『인화도덕경』이라 하여 1958년 평화출판사에서 발행했다. 이 책은 서론, 본론, 결론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있는데 서론과 결론은 편자가 집필한 것이고 본론 부분은 그동안 크고 작은 단행본으로 발행했던 미륵불교의 경전들을 편집한 내용이다. 목차는 제1절 교리정전(敎理正典), 제2절 명리대전(明理大全), 제3절 인화도덕경, 제4절 삼강대전(三綱大典), 제5절 미륵하생경전(彌勒佛下生經典)으로 되어 있다. 제3절에 들어있는 원래의 인화도덕경 속에는 천도(天道)의 근 ...
2025-10-08 23:20
15
인불도
본교의 창립자 전판철은 어려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난 뒤, 신안(神眼)이 열리고 이보(耳報)와 구보(口報)가 열렸으며, 이후 병든 사람의 손을 잡고 ‘인불대신(人佛大神)’이라는 주문을 외우면 대부분의 병이 낫는 신통력을 갖게 되었다. 이렇게 사람들을 치료해주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으며, 그를 도통한 ‘인불(人佛)’로 불렀다고 한다. 이후 그를 따르는 무리가 천여 명에 이르고, 전판철을 ‘인불대신’으로 받들게 되자 1965년 전북 익산군 용안면 교동에 교당을 신축했다. 이 교당도 당시 서울 모 회사의 사장이었던 조용채(趙龍采)라는 사람이 전판철로부터 중병을 치료받고 그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거액의 성금을 기부하여 사당을 ...
2025-10-08 22:56
15
인간혁명선언(예수재림)
광명도
①공자, 석가, 예수는 한얼님의 홍익인간 이념을 보급하므로 종신하였다. 그러니까 진정한 신앙은 성인의 덕을 보자는 것이 아니요, 성인을 본받아서 실천하자는 것이다. ②인간이 인간의 진리를 잃은 것이 전쟁이요, 병고요, 기한인 까닭에 인간들은 누구나 인간성을 닦는 수도(修道), 수복(修福), 수신(修身)의 필요가 있는 것이다. ③인간들이 예수의 한얼정신으로 화해하여서 하나님의 아들노릇하도록 하고 석가의 수정(守情)으로 지계(持戒)를 행하여서 부처(富處)노릇 하도록 하고 공자의 정심(正心)으로 예의(禮儀)를 닦아서 사람노릇 하도록 한다. ④그것은 인간들의 입과 손과 머리가 그 사명을 행할 책임이 있는 까닭에 그렇다. ⑤입으 ...
2025-10-08 22:41
15
이진구
대종교
이진구는 1887년 충청남도 부여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한산(韓山), 호는 위당(韋堂)이다. 어려서부터 한학을 배웠고, 1908년 의병운동에 참가하여 항일투쟁 중 체포되었으나 탈옥하여 해외로 망명하였다. 1914년 대종교에 입교하여 활동하다가 해방 후 귀국하여 1946년 참교(參敎)가 되었다. 같은 해 신탁통치반대위원회의 한성지부 위원장을 맡아 활동하였다. 1947년에는 지교(知敎)로 승질되어 경의원 참의(參議)로 임명되었고, 1950년에는 상교(尙敎)로 승질되어 남일도전무(南一道典務)의 직책을 맡았으며, 동년 11월 서일도순교원(西一道巡敎員)이 되었다. 한국전쟁 중에는 대종교선무반(大倧敎宣撫斑)의 평양지부장을 역임하 ...
2025-10-08 22:10
15
이주원
각세도본원
각세도는 도주 이선평이 생존 당시에도 교단 내부에 분열이 있었으며, 또한 그는 자신의 후계자를 지목하지 않고 사망하였다. 따라서 그의 사후 많은 분파가 나타나게 된다. 그 중 당시 남관의 도주였던 장명성은 ‘대각교’라는 명칭으로 포교활동을 시작하였다. 장명성 사후 그의 제자였던 임선호(任善鎬), 정수성(鄭秀星), 전태성(全泰成), 한병헌(韓炳憲) 등이 다시 분파하게 되는데, 한병헌이 중심이 되어 1969년 도조의 아들인 이동주를 비롯하여 이규헌, 이주원, 이성채, 차갑순 등이 충북 영동군 학산명 서산리 서곡에서 각세도본원이라는 이름으로 각세도의 재흥을 시도하였다. 이들은 각세도의 제1대 도주를 이선평으로 하고, 제2대 ...
2025-10-08 22:03
15
이재희
태극통일구국도량
이재희는 1912년 전북 완주군에서 태어났다. 그는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한학을 수학하면서 동양철학과 도학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주역』에 심취하여 역학의 모순을 발견하고 더 깊은 원리를 찾고자 하였다. 해방 후 유물사관에 심취하기도 했으나 1950년대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신교리 응암마을에서 태극사상을 중심으로 동양사상연구에 몰두하였다. 페허가 된 ‘영덕사(靈德寺)’라는 암자를 복구하여 부처님을 모시고 불공하러 오는 신자들에게 자기의 사상을 가르쳤다
2025-10-08 21:54
15
이용신
오방불교
오방불교의 3대 교주인 이용래의 이름 중 하나. <참고문헌> 『한국신흥종교총감』(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10-08 21:41
15
이영태
무극대종교(无極大宗敎)
대종교(영가무도교:무극대종교)를 창립한 하상역의 제자로 보이며 그가 창종한 무극대종교는 김일부를 종조로 하고 하상역-이영태를 거쳐 7대 홍성준에 이르고 있다.
2025-10-08 21:32
15
이민제
성도교(性道敎)
이민제(李民濟)는 1907년 동학에 입도하였지만 이후 시천교에 들어갔다. 그는 입산수도 끝에 1923년 득도하여 『삼역대경(三易大經)』을 저술하고 성도교를 창립하였다. 성도교가 포교를 시작하자 일본경찰은 성도교를 사교로 간주하여 이민제를 9개월 간 수감시켰다. 출옥 뒤에도 지속적으로 포교활동을 하다가 경찰에 체포되어 옥사했다.
2025-10-08 20:53
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