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부럼
정월 대보름 새벽이면 날밤 호도 잣 은행 등 껍질 딱딱한 과실을 깨물고 ""일 년 열두 달 무사태평하고 부스럼 하나 나지 맙시사""하고 축원한다. 이를 '부럼 깨물기[嚼癤]'라고 하며 '부럼 먹는다'고도 한다. 또는 “이를 단단하게 하는 방법[固齒之方]”이라 하기도 한다. 어린아이들이 새벽에 엿을 깨무는 것을 '치교(齒較)'라 하기도 한다. 모두 정초에 오복의 하나인 건강 이빨을 기원하는 풍속이다. 부럼은 견과류(堅果類)를 총칭하는 말이기도 하고 부스럼[腫氣]의 준말이기도 하다.
2025-07-09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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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실
수운교
1929년에 건립된 수운교 본부사무실로 전국의 교인 및 지부의 업무를 총괄 집행하는 곳이다. 일제 말기에는 공립학교 교실로 광복에는 태극지하종교연합회 사무실로 6.25 당시에는 북한군이 주둔한 곳으로써 역사성을 간직한 동향(東向)건물이다. 본부 사무실은 ‘ㄱ’자형 평면에 겹처마 형식이며 좌우 퇴칸을 제외하면 정면 5칸이다. 중앙 1칸의 한옥지붕을 가진 현관과 상·중·하인방이 뚜렷이 구분되는 벽면이 특징적이다. 사무실 안에는 총무원장실과 역대 총무원장의 사진이 걸려있고 서고엔 초창기와 일제시기에 사용했던 교적(敎籍)원부가 보관되어 있다. 등록문화재 제334호로 지정되었다.(2007.7.3) <참고문헌> 『수운교 진리』(수 ...
2025-07-09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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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천교청년단
보천교
1923년 당시 23세인 보천교인 이봉진(李琫振)이 보천교세가 약화되는 것을 염려하여 교리 연구 및 청년들에게 신지식을 주입시키기 위해 설립한 청년 단체다. 만 16세부터 30세 이하의 보천교 청소년 30여 명을 자신의 집으로 모이게 해 회의를 갖고서 그 이름을 ‘보천교정의단’이라 하였다. 보천교청년단은 그 이후에 바뀐 이름이다. 교단의 간부들이 일제의 탄압을 불러올 수 있다며 청년단 구성에 우려를 표하자 이봉진은 스스로 보천교청년단을 해체하였다. <참고문헌> 『管內最近の狀況說明資料(全北)-普天敎一般』(全羅北道, 1926) 「보천교의 교육활동」( 김재영, 『신종교연구』 제14집, 한국신종교학회, 2006)
2025-07-09 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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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천교교장
보천교
일반적으로 보천교의 교장은 보천교를 상징하는 ‘정(井)자기’를 말한다. 정(井)은 수원(水源)을 의미하고 수(水)는 만물을 생성자육(生成慈育)하는 것으로서 보천교의 덕화(德化)가 수원과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또는 정자는 보천교의 근거지인 정읍(井邑)을 상징한다거나 중국 주나라의 정전법(井田法) 체계를 상징화한 것이라는 전언이 있다. 교기(敎旗)인 정자기는 황색 바탕에 정(井)자를 적색으로 새겼다. 7대 치성일이나 기념일에 중앙본소나 각 가정에서 게양하였다. <참고문헌> 『보천교연혁사(상·하)』(보천교중앙총정원·협정원·총령원, 1948) 『증산교사』(이정립, 증산교본부, 1977) 『범증산교사』(홍범초, 도서출판 ...
2025-07-09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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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일수련
무극대도
강승태(姜昇泰)가 창립한 무극대도(無極大道)의 매월 3일 13일 23일에 진행되는 수련.
2025-07-09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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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왕궁유마종
대한불교유마종의 초기명칭.
2025-07-09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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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파
증산교파는 그 수도방법상에서 크게 태을주(太乙呪)를 비롯한 여러 주문을 주로 염송하는 주송파(呪頌派)와 법문 즉 『현무경』사상을 주로 공부하기 때문에 법문파라 한다.
2025-07-09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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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원소천연균성선식연구원
버섯을 주로 하여 포도 등 산중에서 나는 과실을 가지고 단군이 먹던 불로장생의 선약을 만든다고 한다. 경용암에 「천연과수재배 보호 육성 동지회」라는 간판도 붙이고 있다. 참고문헌 : 『한국신흥종교총람』(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07-09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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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용성
불교
법명은 진종(震鍾)이며 용성(龍城)은 법호이다. 본관은 수원(水原)이고 속명은 상규(相奎)이다. 1864년 전라북도 장수(長水)에서 출생하였다. 16세 때 해인사에 입산하여 화월(華月)을 은사로 하여 승려가 되었으며 전국의 사찰을 주유(周遊)하면서 심신을 연마하였다. 1907년 중국으로 가서 중국 불교계를 2년 동안 시찰하였고 1910년 지리산 칠불암(七佛庵) 선원의 조실(祖室)로 추대되어 수행자들을 지도하였다. 1911년 서울에 대각사(大覺寺)를 건립하여 불교의 현대적 포교에 힘썼다. 1919년 3·1운동 때 불교계를 대표하여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고 그로 인해 1년 6개월 동안 복역하였다 ...
2025-07-09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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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순
대종교
백순은 1864년 충남 공주에서 출생하였다. 호는 은계(隱溪). 16세 때 소산림(蘇山林)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했으며 일본의 유신사(維新史)와 지리학 정치학 경제학 서양사 등을 공부하였다. 1895년부터 공주읍 농공은행 및 보명학교(普明學校) 강경읍 농공은행 지점 및 보화학교(普化學校)를 설립하는 등 교육계와 실업계에 헌신하였다. 1909년 나철에 의해 대종교가 창립되자 입교하여 1911년 참교(參敎)가 되고 1913년 지교(知敎) 1918년 상교(尙敎) 1923년 정교(正敎)로 승질되면서 대형(大兄)의 호를 받았다. 1925년에는 사교(司敎)에 승질되었고 1927년에는 교주 대리인 도사교위리(都司敎委理)에 선출되었고 ...
2025-07-09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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