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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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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문화연구원

박천봉은 1922년 경상북도 길주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교사와 교감을 지내는 등 교육계에 종사하다가 마을금고를 운영하는 사업을 시작했으나 실패하게 된다. 이후 그는 인생무상을 느끼고 종교의 현묘지도를 찾기 위해 헤매다가 단군사상에 있어 ‘홍익’이야말로 현묘라는 것을 깨치게 되었으며 1986년에 서울시 서대문구에 단군전(홍은사)을 세웠으며 이후 홍익문화연구원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참고문헌>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한국종교학회, 1985)

2025-07-08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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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불교진흥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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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렬(金亨烈)이 창립한 미륵불교의 일시 이름.

2025-07-08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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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심인화삼대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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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도

①나는 전쟁 병고 기한의 삼대 불평등인 술 고기 담배에 있음을 깨달았노라. 그러므로 인류의 행복에 광명이 되고자 한다. ②나는 입과 손과 머리로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아서 생명있는 만물에 도움 될 일을 하도록 하고 또 노래 풍류로 그 정신을 새로이 하리라. ③나는 창조의 신명의 부를 받았으니 육체의 이익심을 마귀라고 규정한다. 그러니까 정신에 있어 나도 남도 화락하고 풍부하고 고상히 살도록 신불엄하리라. 참고문헌 : 『한국신흥종교총람』(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7)

2025-07-08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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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종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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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전쟁에서 청에 대한 일본의 승리는 곧 서구문명의 승리로 간주되면서 동도서기론이 약화되고 급진개화파가 득세하는 계기가 되었고 김옥균 박영효 등 개화파들 사이에 유교를 중심한 중화문명에 패배를 안겨준 서구문명의 원천을 기독교에서 찾는 문명종교론이 유통되었다. 기존에 척사론이나 동도서기론이 야만으로 인식하던 기독교를 부국강병을 위해 유용한 문명 교화의 수단으로 고려하기 시작했고 기독교를 서구문명의 정신적 힘이며 문명의 기호로 간주하는 새로운 문명담론이 부상하였다. 이러한 문명종교론은 개항기 기독교 선교사들에게 효과적인 선교전략이었을 뿐 아니라 고종이나 개화파의 부국강병에 대한 염원 황폐한 현실에서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의 ...

2025-07-08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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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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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효

2025-07-08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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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문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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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대도회

무량대도회의 교리로서 글은 배우지 않고 주문만으로 도가 통하는 것을 지칭함. 수련을 계속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상한 토설이 나오게 되며 수련의 힘이 쌓여지게 되면 무식한 사람이라도 명문장(名文章)과 뜻 깊은 법언(法言)을 하게 되는데 이것을 「무문도통(無文道通)」이라고 한다. 환자들이 주송수련(呪頌修練)을 계속하면 그리 큰 공을 들이지 않아도 질병은 퇴치되지만 무문도통의 경지에 이르기는 대단히 어렵다고 한다. 참고문헌 : 『한국신흥종교총람』(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한국종교학회 1985) 「손치성의 무량대도회」(김홍철 한국신흥종교탐방『원광』 1987년 4월호)

2025-07-08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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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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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주가 창립한 무을교의 초기 이름

2025-07-08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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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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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얼교

본서는 신정일이 편찬한 수많은 저술 가운데 가장 처음으로 출판한 경전이다.

2025-07-08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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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유신이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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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선교종

만해 한용운(韓龍雲)이 『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新論)』(1910) 등에서 제시하고 있는 불교개혁의 이념을 말하는 것으로 대한불교선교종에서는 원효의 화쟁(和諍)정신과 더불어 이러한 만해의 유신이념의 실천궁행(實踐躬行)을 첫 번째 종지로 하고 있다. → 대한불교선교종 참조. 참고문헌 :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종교문제연구소 1997) 『한국불교총람』(대한불교진흥원 2008)

2025-07-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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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구치 츠네사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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創價學會

일본 니이가타현 카시와자키시(新潟県柏崎市) 출생으로 청소년기를 홋카이도(北海道)에서 보낸 그는 홋카이도심상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모교의 교사가 되었다. 1901년에 퇴직하고 가족 모두를 데리고 동경으로 이주했다. 사회지리학의 선구적인 연구인 『인생지리학(人生地理學)』을 저술하였지만 학자의 길을 단념하고 1909년 소학교 훈도가 되었으며 1932년까지 동경에서 교직을 역임했다. 이 기간 그는 향토연구 모임에 참가하여 『향토과연구(鄕土科硏究)』를 집필했다. 1928년에는 다이세키지(大石寺)를 총본산으로 하는 일련정종(日蓮正宗)에 입신했으며 1930년에 토다 조세이(戸田城聖 1900-1958)와 함께 초등교육의 연구실천단체인 창 ...

2025-07-07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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