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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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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조합, 방언공사, 혈인기도 등을 마친 이재철은 그 후 영산에서 계속 교단 창립에 일하다가 1924년부터 총부 건설에 합력했다. 1933년에는 총부 상조부 지점장 겸 공익 인재부장으로 일했고, 1934년부터 5년간은 총부 서정원장으로 봉직했다. 1941년에는 총부 이사겸 산업부장으로, 1942년부터 열반 전까지 총부 산업부장으로 근무했다. 이재철은 언제나 박중빈 앞에서는 손을 내려놓은 일이 없고 겸허한 태도로 공수(拱手)를 하며 물러날 때에도 그냥 되돌아서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이재철은 키가 크고 신상(身相)이 구족하며 위풍(威風)이 좋아 ‘영광(靈光)의 인물’이라는 평을 받았다. 중심은 철두철미하여 대의가 분명하고 ...

2025-10-08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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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운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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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운규의 속명. <참고문헌> 『한국신흥종교총감』(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10-08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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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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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방불교

오방불교의 3대 교주인 이용래의 이름 중 하나. <참고문헌> 『한국신흥종교총감』(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10-08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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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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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사

무녀(巫女)로서 1951년 10월 10일 부산 영도에 대법사(大法寺)를 창건하였다. 대법사는 1960년과 1970년 사이에는 영도에서 약 1,700여명의 신도를 확보할 만큼 규모가 큰 사찰이었다. 1970년 사망하였고, 대법사는 그녀의 딸 김순옥(金順玉)이 관리하다가, 1973년 조계종 승려 이암(李庵)에게 매각되었다. → 대법사 참조. <참고문헌>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한국종교학회, 1985)

2025-10-08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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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사절후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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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정유도

갱정유도에서는 천지음양의 순환을 나타내는 24절후(절기)에 맞춰 치성의식을 봉행한다. 갱정유도인들은 절후치성 하루 전에 음식을 가리고 언행을 삼가는 재계를 한 다음 치성에 임한다. 치성에는 향(香)·촉(燭)을 밝히고 정화수(井華水)를 올린 다음 「고축문(告祝文)」을 독축(讀祝)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치성 의식은 먼저 「해인경(海印經)」 3독 후 재배, 다음으로 「신조귀래경(神助歸來經)」 3독 후 재배, 「천지동력경(天地同力經)」 1독 후 재배 및 심축(心祝), 「내명경(來明經)」 3독 후 재배 순서로 진행된다. 마지막으로 분축(焚祝)함으로써 마무리하게 된다. <참고문헌> 『갱정유도개설』(갱정유도성당, 1989) 「갱정유 ...

2025-10-08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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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개조 마음가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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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①수도자는 반드시 삼존수행(三尊修行)하라(참회하고 기쁜 마음으로 수도하여 수마(睡魔)를 물리쳐라), ②한얼님 조상을 숭배하라, ③핏줄을 더럽히지 마라, ④선험자나 인도자의 지침을 명심하라, ⑤사법을 경계하라, ⑥사법에 속지마라, ⑦의심하지 마라, ⑧다짐하라, ⑨소중히 하라, ⑩밝히라, ⑪정성을 다하라, ⑫법수(法水)를 소중히 하라, ⑬법문과 기도문을 잊지 마라, ⑭개인법회를 실천하라, ⑮공덕(功德)을 소홀히 마라, ⑯1만 2천 도통군자가 되도록 정진하라, ⑰마음과 몸을 깨끗이 갖추라, ⑱시공(施功)하라, ⑲현세천국건설에 헌신하라, ⑳번뇌하지 마라. <참고문헌> 『한국신흥종교총감』(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10-08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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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오도연합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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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해방 이후 남북의 교회가 두절되어 전국 교회를 묶는 총회활동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북한의 교회만이라도 총회 기능을 대신할 잠정적 협의기관을 구성하게 되었다. 1945년 12월 1일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평안남북도·함경남북도·황해도의 16개 노회가 연합하여 김진수(金珍洙)를 회장으로 연합노회를 설립하였다. 이 연합노회는 종전의 총회 헌법 고수, 신사참배의 과오 통회, 신학교 직영 등을 결의하였다. 그러나 북한 정권의 와해 공작과 지도자들의 투옥이나 회유로 제대로 활동하지 못했으며, 김익두(金益斗) 목사를 총회장으로 하는 조선기독교도연맹이 공식적으로 결성된 이후 북한의 교회들은 점차 친사회주의 노선을 걷게 되고 연합노회의 영향 ...

2025-10-08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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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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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교(性道敎)

이민제(李民濟)는 1907년 동학에 입도하였지만 이후 시천교에 들어갔다. 그는 입산수도 끝에 1923년 득도하여 『삼역대경(三易大經)』을 저술하고 성도교를 창립하였다. 성도교가 포교를 시작하자 일본경찰은 성도교를 사교로 간주하여 이민제를 9개월 간 수감시켰다. 출옥 뒤에도 지속적으로 포교활동을 하다가 경찰에 체포되어 옥사했다.

2025-10-08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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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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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교

동방교 창교자 노광공은 이래 조부님으로 불리며 두 아들과 삼위일체를 이룬다고 믿어졌다. 동방교의 조직에서 노광공을 중심으로 좌우에 양학식과 정재덕이 있었는데, 이 두 사람의 직책은 이래목사였다. 동방교 신앙인들은 이래목사와 이래장로를 반신반인(半神半人)의 존재로 인식하였다.

2025-10-08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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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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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하면 묘지에 대한 음택풍수를 지칭할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 묘지뿐만 아니라 부도, 태실 등도 음택풍수에 해당된다. 음택풍수의 기본전제는 명당발복의 이론적 토대인 동기감응설(同氣感應說)에 의한다. 음택풍수는 크게 간룡법, 정혈법, 장풍법, 득수법, 물형론 등으로 구성된다. 『장설(葬說)』이라는 책에는 “무덤 자리를 정한다는 것은 그 땅의 좋고 나쁨을 정하는 것이지, 음양가들이 말하는 길흉화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도 있다. 음택풍수가 한반도에 언제 들어왔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사료가 없다. 다만 통일신라 전후에 중국의 음택풍수가 들어왔던 것으로 추정된다. 국교가 불교인 고려에서는 화장을 선호하였던 까닭에 ...

2025-10-08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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