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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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수(陽數)가 겹쳐 중양(重陽)이라고도 한다. 삼짇날 왔던 제비가 강남으로 돌아간다. 산에서 나는 황국(黃菊) 꽃잎을 따다가 찹쌀떡을 만든다[菊花煎]. 유자를 잘게 썰고 석류 알과 잣 등을 꿀물에 타서 마시니, 이를 화채(花菜)라 한다. 경상북도 등 벼 수확이 늦는 지역에서는 중양절에 차례를 지내기도 한다.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하는 때라 농촌에서는 무척 바쁜 계절이다. 수유주머니를 차고 높은 산에 올라 국화주를 마시는 등고회(登高會)는 중국의 오랜 풍속이다. 중국에서는 추석보다 중양절을 더 큰 명절로 친다. 불가에서는 이 날 제사 지낼 자손이 없는 이들을 위하여 제사를 지내주기도 한다.

2025-10-09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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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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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모든 정책과 활동의 기초가 되는 조선노동당의 유일지도사상이다. 1930년대에 김일성이 천명하였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대외적으로 발표된 것은 1955년 이후이며 1970년대 들어 철학적으로 체계화되었다. 김일성은 주체를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일반원리와 다른 나라의 경험을 북한의 실정에 맞게 창조적으로 적용해 나간다는 것”이라고 규정하였다. 주체사상은 대외적으로 원조를 받지 않고 자기갱생을 해야 하는 북한의 현실을 반영한 통치 이데올로기인 동시에 북한 특유의 철학 이념으로서 자유주의 국가의 지배 종교를 대체하는 위상을 갖는다. 주체사상의 내용은 철학적 원리, 사회역사원리, 지도원칙으로 구성된다. 철학적 원리는 ‘인간 ...

2025-10-09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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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해설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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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도김갑진파

순천도김갑진파의 창립자인 김갑진(金甲眞)이 저술한 책.

2025-10-09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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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생태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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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성운동

생태환경 파괴의 가공할만한 속도에 비해, 한국사회에서 이러한 흐름에 저항하는 생태주의 담론과 운동은 상대적으로 느리게 전개되어 왔다. 한국사회에서 생태주의 담론과 운동이 활성화되기 시작한 시기는 1990년대 이후부터이며, 종교계의 생태주의 담론과 운동 역시 1990년대 이후부터 조금씩 활동영역을 넓혀가면서 여러 방향으로 전개되어 왔다. ‘종교생태주의’는 대략 2000년대 초반에 종교계의 생태주의적 담론과 운동이 활성화되면서 비종교계의 생태주의적 담론이나 운동과 구별되는 종교적인 성격을 띤 생태주의적 사상과 실천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되기 시작했다. 특히 우주론을 형성하는 종교의 잠재력을 강조하는 사람들에게서 종교생태주의의 ...

2025-10-09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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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단체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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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이창규가 창립한 단군교중앙본부의 별칭.

2025-10-09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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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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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부전

명부전에서는 정해판(井海板) 이라는 일종의 운도판을 만들어놓고 장차 이 판도에 들어가 일할 사람 12명을 가입시키고 더 이상은 신도를 만들지 않는다고 한다.

2025-10-09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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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종포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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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불교정토종 참조.

2025-10-09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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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역기념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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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역사상연구학회에서는 매년 6월 26일에 정역기념축제를 거행하였다.

2025-10-09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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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심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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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경조회

김지한은 개천경조회를 창립하고, 단군신앙과 사상을 중시하면서도 수행에 있어서는 단전호흡에 의한 기수련을 가르쳤다. 『정심사기』는 그가 기의 원리와 기사상에 대해 연구하여 저술한 것으로, 이 책에서 김지한은 기는 생멸·변화·이동이라는 성질을 가지고 있으므로 누구나 감지할 수 있으며, 이 기는 전류·자력·열감 등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냉감·팽창감·축소감·이탈·광명·무중력·상실감·무거움·가벼움·영·인체·자각 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고 하였다. 또 기는 몸과 마음이 일체가 되는 순간 하나가 되며, 그 자체가 바로 우주와 만물의 본질에 합일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기와 단전호흡을 연결하여 건강을 증진시키는 방법에 대해서도 설명 ...

2025-10-09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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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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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궁

천궁을 창립한 정소아는 1914년 11월 7일 경남 남해군 남해면 사신리에서 태어났다. 19세 때 결혼했으나 실패하고 오빠를 따라 일본 오사카에 건너가 직공 고물상 엿도매상 등 생업에 종사했다. 1946년에 귀국한 후 신기가 있어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굿과 점업(占業)을 하다가 1958년에 서울 용산구 용문동에서 ‘경용암’이란 이름으로 종교활동을 시작했다. 한때는 단골신자가 수백 명에 이르렀으나 점점 신자가 떨어져 나가고 절일에 20여명이 모이다가 1992년에 교주가 사망하고 난 뒤 멸실되었다.

2025-10-09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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