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원효종성전
대한불교원효종
본서는 대한불교원효종의 교의서로서 1967년 5월 30일 원효종성전간행회의 편저로 간행되었다. 본서의 구성은 발행 취지를 언급한 서문과 원효종의 종지의 해설을 시작으로, 제1편 신앙문(信仰門), 제2편 교리문(敎理門), 제3편 수도문(修道門), 제4편 행원문(行願門), 원문, 별록, 주해(註解)로 이루어진다. 전체적으로 원효종의 종조인 원효의 사상과 그 바탕을 이루는 여러 경전의 내용을 집약하고 있다. 제1편 신앙문에서는 불법승 삼보에 대한 예찬과 공덕을 고양하는 부분으로 주로 『화엄경』의 법문을 인용하였다. 제2편 교리문에서는 여래장사상이 강조되고 있으며, 제3편 수도문에서는 원효의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 『대승 ...
2025-10-08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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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정신
성덕도
성덕도의 ‘원자(圓慈)’는 유교의 인(仁), 불교의 자비(慈悲), 기독교의 박애(博愛)에 비유되는 용어이다. 성덕도에 따르면, 천지는 말이 없어도 큰 은덕으로 만물을 한 품에 품어 살려준다고 한다. 따라서 사람은 천지 명에 순종하며 성스러운 덕화의 길을 본받아 자성반성하여 청정정심을 찾아서 이기심을 버리고, 인류가 다 같이 행복하게 사는 자유 평화의 도덕사회를 건설하고자 함을 의미하는 것이 성덕도 원자정신이다.
2025-10-08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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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무라 간조
일본기독교
그는 삿뽀로 농업대학시절 기독교로 개종하여, 1884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애머스트(Amherst) 대학에서 수학하였다. 이때 서구 기독교에 대한 회의와 반성을 크게 하게 되었다. 공부를 마친 그는 성직자가 되지 않고 다시 일본으로 귀국한다. 1888년 귀국한 그는 미국에서 보고 배웠던 신앙의 훈련을 심어주기 위해 니가타[新潟縣]에 있는 기타고시시학관에서 후진을 양성하다가 곧 사임하고 도쿄에 있는 제일고등학교 교원으로 부임하였다. 1891년 천황의 절대 권력을 상징하는 ‘교육칙어’ 봉독식때 정성들여 예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른바 ‘불경사건’으로 말미암아 교직을 사임하게 된다. 이후 문필가로서의 삶을 평생 살게 되었다. 그는 ...
2025-10-08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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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당
삼천일지개태도광사
삼천일지개태도광사를 창립한 김광영은 개태사에 용화회라는 조직을 구성하고 ‘삼천일지개태도광사’라는 간판을 붙였다. 이후 1946년에 용화불을 모시는 ‘삼천지상정천궁’을 건립하였고, 1947년에는 단군을 모시는 ‘창운각’을 건립한다. 1949년에는 본전 남쪽 정면에 ‘우주당’을 짓고 그 가운데에 관운장을 봉안하는 ‘충의전’을 건립하였다. <참고문헌> 『한국신흥종교총감』(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10-08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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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사
천도교
손병희의 수련장소로 천도교로서는 유적의 의미가 있으나 현재는 조계종 소속의 사찰이다. 손병희가 1882년 동학을 믿기 시작하면서 전도사로부터 받은 주문 21자를 매일 3만 독(讀)씩 읽고 외우며 지극한 수련을 쌓기 시작하였다. 손병희는 주문을 읽는 틈틈이 매일 같이 짚신을 두 켤레씩을 삼았으며, 이 짚신을 한 달에 여섯 번 5일만에 열리는 청주장에 나가 팔았다. 이와 같은 생활을 3년간이나 수련으로 일관된 생활을 해 나갔던 것이다. 손병희는 공주 가섭사, 익산 사자암, 그리고 풍천 용문사 등에 들어가 수련을 하였다. 이와 같은 지극한 종교적인 수행이 훗날 그 많은 업적을 이루게 하였던 원동력이 되었다. <참고문헌> 「천 ...
2025-10-08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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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룡암
구한말에 안석현이 남산의 약수터 위에 묘당을 지어 제갈무후(諸葛武候:臥龍先生)를 봉안하고 사람들의 기복, 재액, 치명을 기원하였다. 그 후 이 묘당이 화재로 소실되었는데 김교상(金敎商)이 이 곳에 전처럼 묘각을 건립하고 무후묘(武候廟)라 하였고, 관운장까지 모셔 한때 관왕묘의 지부가 되기도 했다. 해방 후에는 단군까지 봉안하고 그 옆에는 불당을 세워 당호를 와룡당이라 했다.
2025-10-07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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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진리교
옴진리교는 요가 단체로 출발하였으나, 종교단체로 발전하여 시바를 주신(主神)으로 폐쇄적인 공동체을 유지하며 종말론적 세계관, 교조에 대한 절대적 신뢰 등을 특징으로 한다. 교조 아사하라(1955~)는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종말론적 예언을 내놓기 시작하였다. 동시에 자신이 이러한 파멸의 시기에 나타난 구세주이며, 자신의 영적인 에너지를 받은 추종자는 살아남아 새로운 왕국을 세울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불교적 이상세계인 ‘샴발라’(Shambhala)를 본 딴 ‘로터스 빌리지’를 전역에 건설하여 일본을 세계구제의 중심부로 만들고자 하였다. 옴진리교는 90년대 전후 이미 폐쇄적인 집단으로 발전하여 내부 불만자나 ...
2025-10-07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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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창
천도교
오세창은 16세 나이로 1879년 역과에 합격하였고, 1886년 1월 우리나라 최초 신문인 《한성순보》가 《한성주보》로 복간되었을 때, 그 해 12월 박문국(博文局) 주사(主事)로 발탁되어 우리나라 최초의 주간신문인 《한성주보》기자로 활동하였다. 30세에는 우정국 통신국장을 지냈고, 1902년 6월 유길준이 주도했던 개혁당 사건에 연루되어 일본으로 망명했을 때 손병희를 만나 동학에 입도하였다. 1906년 손병희와 함께 국내로 돌아와 천도교기관지 《만세보(萬歲報)》사장에 취임하는 등 언론을 통한 문명개화운동에 전력을 쏟았고, 1919년 손병희·권동진과 더불어 독립운동에 관해 협의할 때, 운동의 3대 기본노선을 대중화·일원 ...
2025-10-07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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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수산리
천도교
정부의 탄압을 피해 최시형이 어디로 은신했는지는 기록에 따라 다소 다른 점이 있다. 하지만 최시형이 1867년 2월경에 예천 수산리에 온 것만큼은 사실로 보인다. 행정구역상 예천군 풍양면 고산 1리에 속한다. 저수지를 앞에 두고 마을 뒤로 우뚝 솟은 삼각형 산이 이채롭다. 산 아래 마을이 ‘수산리(水山里)’이다. 마을 앞 들판에서 땅을 파면 어디서든 물이 솟는다고 해 마을 이름을 수산리라고 부르게 됐다는 두메산골이다. 30여 가구에 주민 60여 명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이 작은 산마을이 한때 최시형이 관아의 탄압을 피해 은신한 곳이라는 역사적 기록을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동학운동의 탄압으로 1864년 최제우가 ...
2025-10-07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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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
종교일반
종교와 신화에서는 초월적 존재가 선택한 자를 통해 미래를 예언(豫言, prophecy)한다. 예언을 하는 사람을 예언자(預言者, prophet)라 한다. 샤먼 즉 무당의 점술, 구약성서의 선지자의 예언 등이 모두 이에 속한다. 고대 중국에서는 하도(河圖)·낙서(洛書) 등과 같은 초자연적인 현상을 통해 하늘의 뜻이 인간에게 전해진다고 보았다. 물론 그 뜻을 해석하는 것은 점술가의 역할이었다. 불교에서는 인과론(因果論)의 연기(緣起) 법칙에 따라 세계의 질서를 예측 가능한 것으로 보지만, 주재신(主宰神)과 숙명론의 존재를 부정하므로 엄밀한 의미에서의 예언은 없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자생 신종교들은 도참서(圖讖書), 비기 ...
2025-10-07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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