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삼보정도
천교도
삼보정도는 주존(主尊)과 교화(敎化)와 수도(修道)를 의미한다. 주존은 한님[桓因]·한웅님[桓雄]·한검님[桓儉]의 삼신일체(三神一體)로 한얼님을 신앙의 주체로 하는 것이다. 교화는 천·지·인 삼재가 바름으로써 합하는 세계를 이룩하고 이(耳)·목(目)·구(口)의 보고 듣고 말하는 것을 바르게 함으로써 참된 자아를 찾고 바른 길을 바로 깨쳐서 바로 행하는 악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수도는 마음을 밝혀 옳은 생각을 하도록 하고[明心正思] 어려운 일을 당해서는 다섯 번 참고 세 번 가늠하도록 하며[五忍三考] 심신이 하나가 되도록 하는 것[心身一統]이다. <참고문헌> 『한국신흥종교총감』(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 ...
2025-07-09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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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성취
금강대도
첫째 도덕군자 되는 것이요 둘째 귀한 자식을 두는 것이요 셋째 명당대지를 얻는 것이요 넷째 생사극락(生死極樂)을 누리는 것이다. <참고문헌> 『건곤부모님과 금강대도의 진리』(이재헌, 미래문화사, 2003)
2025-07-09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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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강령
무량대도회
무량대도회의 종지인 사대강령(四大綱領)은 영지개발(靈智開發)․심신보건(心身保健)․해원보은(解寃報恩)․포덕제중(布德濟衆)이다.
2025-07-09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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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선양보경회
원융도(圓融道)의 전신으로 1921년 탁발승이었던 홍우창(洪祐彰)의 주도로 만들어진 조직이다. 당시 경기도(京畿道) 고양군(高陽郡) 한지면(漢芝面) 왕십리(往十里)에 사무소가 개설되었으나 유명무실화 되어 1927년에 ‘원융도연구원(圓融道硏究院)’으로 개칭된다. → 원융도 참조.
2025-07-09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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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실
수운교
1929년에 건립된 수운교 본부사무실로 전국의 교인 및 지부의 업무를 총괄 집행하는 곳이다. 일제 말기에는 공립학교 교실로 광복에는 태극지하종교연합회 사무실로 6.25 당시에는 북한군이 주둔한 곳으로써 역사성을 간직한 동향(東向)건물이다. 본부 사무실은 ‘ㄱ’자형 평면에 겹처마 형식이며 좌우 퇴칸을 제외하면 정면 5칸이다. 중앙 1칸의 한옥지붕을 가진 현관과 상·중·하인방이 뚜렷이 구분되는 벽면이 특징적이다. 사무실 안에는 총무원장실과 역대 총무원장의 사진이 걸려있고 서고엔 초창기와 일제시기에 사용했던 교적(敎籍)원부가 보관되어 있다. 등록문화재 제334호로 지정되었다.(2007.7.3) <참고문헌> 『수운교 진리』(수 ...
2025-07-09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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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천교청년단
보천교
1923년 당시 23세인 보천교인 이봉진(李琫振)이 보천교세가 약화되는 것을 염려하여 교리 연구 및 청년들에게 신지식을 주입시키기 위해 설립한 청년 단체다. 만 16세부터 30세 이하의 보천교 청소년 30여 명을 자신의 집으로 모이게 해 회의를 갖고서 그 이름을 ‘보천교정의단’이라 하였다. 보천교청년단은 그 이후에 바뀐 이름이다. 교단의 간부들이 일제의 탄압을 불러올 수 있다며 청년단 구성에 우려를 표하자 이봉진은 스스로 보천교청년단을 해체하였다. <참고문헌> 『管內最近の狀況說明資料(全北)-普天敎一般』(全羅北道, 1926) 「보천교의 교육활동」( 김재영, 『신종교연구』 제14집, 한국신종교학회, 2006)
2025-07-09 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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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결
금강대도
금강대도의 제2대 도주인 청학이 제중포덕의 한 방편으로 처음 보결을 만들었다. 1937년 처음으로 38부(符)의 보결을 주사(朱沙)로 인쇄하여 보급하였고 1941년 1949년 1951년 등 질병이나 전란 등으로 사회가 어지러울 때마다 보결을 내려 제자들을 안심시켰다고 한다. 보결에는 ‘대겁보제(大劫普濟)’ ‘무병장수(無病長壽)’ ‘소재멸액(消災滅厄)’ 피병란(避兵亂) 축사(逐邪) 등 여러 종류가 있는데 환자는 그것을 태워 냉수에 타서 마시고 건강한 사람은 붉은 주머니에 넣어서 왼쪽 가슴에 차도록 하여 악한 질환과 흉한 겁운을 예방케 하였다고 한다. <참고문헌> 『도성적편년』(금강대도) 『금강대도 종리학 연구론』(이재헌, ...
2025-07-09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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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일수련
무극대도
강승태(姜昇泰)가 창립한 무극대도(無極大道)의 매월 3일 13일 23일에 진행되는 수련.
2025-07-09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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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대전
원불교
박중빈은 대각의 심경과 그 지견으로 내다 본 세계상에 대하여 많은 글을 읊으면서 김광선에게 붓을 잡아 기록하게 하여 《법의대전》이라 이름 붙였다. 1920년(원기5)에 이르러 불에 태워 파기했으며 현재는 후인들이 외우고 있던 내용 일부가 전한다.
2025-07-09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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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왕궁유마종
대한불교유마종의 초기명칭.
2025-07-09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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