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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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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일제가 창립한 선교(仙敎)의 초기이름.

2025-10-09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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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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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정원택은 1890년 9월 27일 충청북도 괴산군 불정면 지장리에서 출생했다.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했으며, 1910년 대종교에 입교하였다. 1912년 상해로 망명하여 동제사(同濟社)에 들어갔다. 1916년 교질이 참교(參敎)로 승질(陞秩)되었고, 1918년에는 파리강화회의 한국대표로 참석하는 김규식의 여비를 조달하기 위해 군자금 1만4천원을 간도 노령에서 인수해 오기도 하였다. 1919년 대한독립의군부(大韓獨立義軍府) 조직에 참여하여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였다. 1919년 4월 제2회 임시의정원회의에서 의정의원으로 선임되어 입법활동을 하였고, 자금조달 및 비밀사명을 띠고 귀국하였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1년간 옥 ...

2025-10-09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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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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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교종무청

정봉화는 백봉의 교지를 받들어 백전, 두일백 등이 포명한 단군교가 나철에 의해 대종교로 개명된 후, 다시 정훈모에 의해 단군교의 맥이 이어졌다고 보면서 스스로 단군교의 명맥을 잇기 위해 단군교종무청을 창립했다고 한다. 그는 1981년 서울시 강남구 방배동에서 단군교종무청을 창립한 후, 1983년에는 전북 무주군 설천면 대불리에 ‘신선도원(神仙道園)’을 설립하고 3년 수도과정으로 교직자를 양성하였고, 『한마음회보』(계간, 3,000부 발행)라는 기관지를 간행하는 등 활발한 포교활동과 문화활동, 인력양성 등을 통해 한때는 신자가 1만 명에 이르는 교단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정봉화는 1990년대 초 사망하게 되며, 그 ...

2025-10-09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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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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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심교별파

정봉오는 강대성(姜大成)이 창립한 일심교(현 更定儒道) 신자였는데 1954년 강대성이 사망 후 1955년 스스로 강대성의 재생신이라는 종교체험을 주장하며 논산군 두마면 신도안에서 일심교별파를 창립했다.

2025-10-09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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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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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대도금강연화종

각 선원(宣院)의 연화도인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매월 1회 수신궁행하여 차생군자 됨을 성취하는 법회.

2025-10-09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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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령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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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세도

각세도에서는 신도들이 수련을 할 때 가장 중심이 되는 원각주를 외우게 하면서도, 그 외에 정각주, 정도령신주, 후천주, 탈각주, 보신주 등의 주문을 외우게 한다. 그 중 정도령신주는 ‘지도통관(持道統管) 정도영신(正道靈神) 천감만응(千感萬應) 동귀영계(同歸靈界)’로 되어 있다. 내용을 풀이하면, 일관되게 도를 닦아 나아가면 정도령신이 천 번 만 번 감응하여 비로소 함께 신령스러운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정도령은 『정감록비결』에서 정도령(鄭道令)으로 표현되나, 이선평은 정도령(正道靈)이라고 표현을 바꾸어 바른 도를 닦아 신령스러운 세계로 귀일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참고문헌> 『한국신흥종 ...

2025-10-09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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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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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세종주도

영세종주도(永世宗主道)를 창립한 정대오(丁大午, 1930~?)는 1930년 10월 25일 전라남도 무안군 이로면 대양리 내화촌에서 출생하여 녹동에서 성장했다. 19세시 순천도를 알고 도를 찾아 전라북도 김제군 황산면 남양리로 이사하여 거기서 살았다. 전봉래 연원으로 류춘래를 만나고 그의 가르침을 받으며 혹독한 수련을 하였다. 금구면 개전리에 수련소를 짓고 8년 동안 머리도 깎지 아니한 채 수련을 했다. 그러던 중 1964년 12월 26일 『현무경(玄武經)』을 읽다가 새로운 후천역이 떠올랐다고 하였다. 그는 그의 일생 해야 할 일을 ‘십상성도(十相成道)’로 표현했다. 9상은 준비과정이고 10상 째는 중생제도라고 했다. 수 ...

2025-10-09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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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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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정광조는 8세부터 15세까지 한문을 배우고 흥화영어학교에 입학했다. 1904년 손병희의 둘째 딸과 결혼하였다. 1906년 일본으로 건너가 부립(府立) 제일중학교를 거쳐 와세다대학교 정경학부를 졸업하고 1911년 귀국했다. 1909년 대한흥학회 평의원, 1910년 12월 대종사종법원 및 외사원, 1912년 보성전문학교 교감, 1914년 청주대교구장을 역임했다. 1919년 3·1운동을 막후에서 준비했고, 의친왕 탈출을 꾀한 대동단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된 후 심한 고문을 받았다. 1920년에 신숙을 상해 임시정부에 파견하고 군자금을 조달했다. 천도교 교단 분규시 이돈화와 함께 최린의 손을 들어주어 신파 세력에 큰 힘이 되었다 ...

2025-10-09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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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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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불교(선교)

선불교의 기본수행은 절수행, 활구수행, 수벽치기수행, 불광활법수행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절 수행은 절을 하는 수행인데, 이에 대해 선불교에서는 절을 하는 것이 ‘저의 얼’을 되찾는 수행으로 건강한 몸을 만들고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는 수행법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감정이나 관념으로 힘든 마음을 깨끗이 비워줌으로써 자신을 돌아보고 본성을 밝힐 수 있다는 것이다.

2025-10-09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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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동포구호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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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되자 송규는 그 해 10월에 『건국론』을 저술하는 등 교단의 총력을 기울여 민족이 처한 현실문제에 적극 대응하고자 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전재동포구호사업이다. 전재동포를 대상으로 한 구호활동은 9월 4일 이리역전(현 익산역)에, 9월 10일 서울역전에 ‘전재동포구호소’를 설치하면서 시작되었다. 익산에서는 13개월 반, 서울에서는 6개월 반 동안 굶주리고 헐벗고 병들어 방황하는 귀환 동포들에게 식사·의복의 공급, 숙소 안내, 무임승차권 제공, 응급치료와 분만보조, 그리고 사망자에 대한 치상 등을 적극적으로 행하였다. 각처의 활동성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서울구호소:서울 남대문통 5 ...

2025-10-09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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