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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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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화교

제화교(濟化敎)를 창립한 이치복은 전라북도 부안군 하서면 언독리에서 부친 이석기(李碩璣)와 모친 임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이 강일순의 종도가 되어 강일순이 천지공사(天地公事)를 할 때 참여하여 『대순전경』 등 증산교의 여러 경에 수차례나 그 이름이 등장된다. 이치복이 강일순을 처음 만났을 때 이름이 치화(致和)라고 하자 화(和)는 화(禍)와 같은 음이라 사람은 복이 있어야 하나니 치화(致和)를 치복(致福)으로 하라고 그의 이름을 고쳐주었다. 강일순이 사망한 후 차경석의 보천교(普天敎)에 참여하여 교단건설에 협력했으나 의견이 맞지 않아 거기서 물러나 1916년 김제군 금산면 원평에서 제화교라는 교파를 따로 세워 포교했 ...

2025-10-08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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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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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정수회

이춘상은 1964년 단군사상에 조예가 깊은 김일권(金一權)과 손을 잡고 ‘정수회(正守會)’라는 이름의 단체를 만들었다. 이후 이들은 단군사상을 고무하는 간담회를 수시로 열었고, 1965년 10월 1일부터는 월간 『정수회보』를 발간해서 일반인에게 무료로 배포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무법대의 창립자인 김구연과 선불유야각의 창립주 계월주가 한때 일주와 월주의 관계를 맺고 각세도남관에서 활동을 하다가 둘 사이에 잡음이 생기게 되었는데, 이 파문이 정수회에 미칠 것이 염려되어 이춘상은 정수회에서 손을 떼게 된다. <참고문헌> 『한국신흥종교총감』(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10-08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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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최출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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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운교

수운교에서는 1864년 3월 10일에 일어난 최제우의 갑자참형시에 수운의 진신(眞身)은 이최출룡자로 다시 살아났다고 믿는다. 이것을 또 최제우의 사지환생(死地還生)이라고 한다. 이최출룡자는 나옹도사를 통해 천서를 전수받았으며, 1864년 갑자년 이후로 동학이 탄압받던 때에는 주로 전국의 명산 영기처로 주류하며 포덕천하, 광제창생, 보국안민 삼대원 성취를 위해 기도 정진하다가, 근 50년만인 1912년 3월 3일 충남 청양군 청양면 적누리 칠룡산하에 초가삼칸을 짓고 은거한다. 이최출룡자는 1920년 9월 15일(음) 박성호, 박성현, 안교승, 이종하, 이공필 등 5인의 제자들과 함께 도성암을 떠나 예산군 광시면 서초정리에 ...

2025-10-08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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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식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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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동학의 제2대 교주 최시형은 도인들에게 설법할 때 “천지만물이 한울의 신령한 기운[靈氣]을 모시지 않은 것이 없고, 우리 도의 뜻은 한울로써 한울을 먹고[以天食天], 한울로써 한울을 화할[以天化天] 뿐”이라 하였다. “천지는 한 기운[一氣]”이요 “만물은 천도의 표현”이다. 이돈화는 『신인철학』에서 ‘이천식천’을 ‘이질적 기화(異質的 氣化)와 동질적 기화(同質的 氣化)’로 풀이했다. 지구상에서 생명의 사멸은 시시각각으로 일어나고, 생물은 다른 종의 생물을 먹는 수요자가 되는 동시에 자신이 먹히는 공급자가 된다. 이는 참담한 생존경쟁이 되나 우주의 전적 행위, 한울의 전적 기화작용으로 보면 우주 그 자체를 키우기 위한 교 ...

2025-10-08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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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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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교중앙본부

이창규는 1917년 평안북도 창성군 창성면 장천동에서 출생했다. 15세에 결혼하여 남편의 직장을 따라 만주 등으로 돌아다니다, 1945년에 월남했다. 그녀는 1958년 4월 5일 아침식사를 마치고 동네 아낙들과 담소를 나누던 중 갑자기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와 큰 불덩이가 온 몸을 스치는 듯한 경험을 한 후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나게 된다. 이후 그녀는 영안이 열리고 병든 사람들을 만지거나 보기만 해도 낫게 하는 영적 능력을 갖게 된다. 이후 100일간의 공부를 시작하는데, 7일간은 기적, 19일간은 공자라는 노인이 나타나서 주역과 도덕경을 알려주어 천지인 창조의 이치를 알게 되었고, 34일간은 유불선 삼교와 기독교의 ...

2025-10-08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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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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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산단군전

이진탁은 1859년 경북 김천에서 출생하였다. 호는 화부(花富). 젊었을 때 김천에서 옥천으로 이사하여 자택에 사숙(私塾)을 설치하고 아동교육에 힘썼다. 그 뒤 종교에 뜻을 두고 41세인 1900년에 백두산에 입산하여 수도하다가 단군의 영적 계시를 받았다고 한다. 1913년 동지 박내인과 함께 자택에 단군전을 세우고 단군신앙을 시작했다. 작산단군전은 정훈모의 시흥단군전보다 17년이나 앞선 것으로 근대 이후 한국 최초의 단군전이라 할 수 있다. 그는 1900년에 입산수도하여 단군의 계시를 받았다는 점에서 백봉의 단군교 33인 중 한 사람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단군에 대한 신앙과 포교에 힘쓰다가 1930년에 사망하 ...

2025-10-08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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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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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이진구는 1887년 충청남도 부여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한산(韓山), 호는 위당(韋堂)이다. 어려서부터 한학을 배웠고, 1908년 의병운동에 참가하여 항일투쟁 중 체포되었으나 탈옥하여 해외로 망명하였다. 1914년 대종교에 입교하여 활동하다가 해방 후 귀국하여 1946년 참교(參敎)가 되었다. 같은 해 신탁통치반대위원회의 한성지부 위원장을 맡아 활동하였다. 1947년에는 지교(知敎)로 승질되어 경의원 참의(參議)로 임명되었고, 1950년에는 상교(尙敎)로 승질되어 남일도전무(南一道典務)의 직책을 맡았으며, 동년 11월 서일도순교원(西一道巡敎員)이 되었다. 한국전쟁 중에는 대종교선무반(大倧敎宣撫斑)의 평양지부장을 역임하 ...

2025-10-08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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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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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도교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형백(馨伯) 또는 형중(馨仲), 호는 토정(土亭), 시호는 문강(文康)으로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후손이고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이산해(李山海)의 숙부이다. 충청남도 보령에서 출생했고 서울에서 자랐다. 서경덕(徐敬德)의 문인으로 유학(儒學) 뿐 아니라 상수역학(象數易學)·천문·지리·의학에 두루 해박하였다. 벼슬에는 뜻이 없었으나 1574년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포천현감과 아산현감을 잠시 지냈다. 평생을 마포 강변의 흙담 움막집[土亭]에서 살았으며, 구리로 만든 솥을 머리에 쓰고 다니다가 그 솥을 벗어 밥을 지어 먹었다거나 직접 배를 몰고 나가 바다 가운데 있는 소금 산을 찾아 소금을 가 ...

2025-10-08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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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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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이제(禰祭)는 유교 제례의 하나로, 가을의 마지막 달인 음력 9월 중 하루를 택일하여 사당에 봉안한 고위(考位)와 비위(妣位)의 신주(神主)를 모시고 나와서 정침(正寢, 사랑방)이나 중청(中廳, 대청)에서 지내는 제사이다. 여기서 ‘이(禰)’는 아버지의 사당[父廟]을 뜻하는 말로 부모를 가리킨다. 주자(朱子)의 『가례(家禮)』에 따르면 이제의 절차는 복일(卜日)·재계(齋戒)·설위진기(設位陳器)·설소과주찬(設蔬果酒饌)·봉신주(奉神主)·참신(參神)·강신(降神)·진찬(進饌)·초헌(初獻)·독축(讀祝)·아헌(亞獻)·종헌(終獻)·유식(侑食)·합문(闔門)·계문(啓門)·수조(受胙)·사신(辭神)·납주(納主)·철(徹)·준(餕)의 순서로 ...

2025-10-0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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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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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교

정도교(正道敎)를 창립한 이정원은 1935년 1월 29일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호동리에서 출생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자칭도인인 증산교인을 만나 도를 들은 후 그 뒤 혼자 5년간 도 공부를 했다. 22세 때 객지로 나와 갖은 고생을 하며 생업에 종사하다가 1968년에 신(神)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1970년에 부산시 부산진구 전포동에 법당을 차리고 점도 치고 굿도 하였다. 1973년 4월 5일 천사명으로 태상노군을 받고 스스로 천존대왕이라고 했고, 1978년부터는 스스로 하느님이라 했다. 1979년 대한승공경신연합회 부산진구 지부장직을 지내다가 그해 12월에는 대한불교유불선종(대한정도교)의 간판을 걸고 천신제를 지 ...

2025-10-08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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