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74

이정

|

대종교

이정은 1895년 12월 2일 함경북도 경원군 안농면 양동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하였고, 1914년 주청현 사립 명동(明東)소학교를 졸업하고 대종교에 입교하였다. 1917년 광성사범학교(光成師範學校)를 졸업하였으며, 1918년에 영계(靈戒) 및 참교(參敎)를 받았다. 1920년 북로군정서 사관양성소 속성과를 수료하고 1921년 주청현 사립 융동(隆東)소학교에서 교원으로 근무하다가, 1920년 공립 제십(第十)소학교 교장으로 취임하여 6년간 근무하였다. 1936년 신안진(新安鎭) 농무계 사무원과 신안진 수도계원을 지냈다. 1942년 10월에 지교(知敎)로 승질되었으나, 11월 19일 발생한 임오교변 때 일 ...

2025-10-08 21:55

3

이재희

|

태극통일구국도량

이재희는 1912년 전북 완주군에서 태어났다. 그는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한학을 수학하면서 동양철학과 도학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주역』에 심취하여 역학의 모순을 발견하고 더 깊은 원리를 찾고자 하였다. 해방 후 유물사관에 심취하기도 했으나 1950년대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신교리 응암마을에서 태극사상을 중심으로 동양사상연구에 몰두하였다. 페허가 된 ‘영덕사(靈德寺)’라는 암자를 복구하여 부처님을 모시고 불공하러 오는 신자들에게 자기의 사상을 가르쳤다

2025-10-08 21:54

3

이재철

|

저축조합, 방언공사, 혈인기도 등을 마친 이재철은 그 후 영산에서 계속 교단 창립에 일하다가 1924년부터 총부 건설에 합력했다. 1933년에는 총부 상조부 지점장 겸 공익 인재부장으로 일했고, 1934년부터 5년간은 총부 서정원장으로 봉직했다. 1941년에는 총부 이사겸 산업부장으로, 1942년부터 열반 전까지 총부 산업부장으로 근무했다. 이재철은 언제나 박중빈 앞에서는 손을 내려놓은 일이 없고 겸허한 태도로 공수(拱手)를 하며 물러날 때에도 그냥 되돌아서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이재철은 키가 크고 신상(身相)이 구족하며 위풍(威風)이 좋아 ‘영광(靈光)의 인물’이라는 평을 받았다. 중심은 철두철미하여 대의가 분명하고 ...

2025-10-08 21:53

3

이일수

|

오방불교

오방불교 창립자인 이복래의 별칭. <참고문헌> 『한국신흥종교총감』(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10-08 21:51

3

이원영

|

요강교

이원영은 1898년 전북 임실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 이석용(李錫庸)은 유명한 의병장이었다. 아버지가 의병장으로 활동하다 붙잡혀 교수형을 당하자 어려서부터 일제의 감시와 탄압이 극심한 가운데 불안한 생활을 했다. 그러는 중에 김일부의 정역원리에 선후천 교역으로 새 세계가 개벽된다는 것과 오음주송(五音呪頌)의 신비한 작용이 일어나는 것을 체험한 뒤 마음이 끌린 바 있어 입신하였다. 해방 후 그가 행하는 오음주송으로 질병이 낫고 또한 영가무도(詠歌舞蹈)의 신비한 도법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그를 추종하는 신자들이 모이게 되어 하나의 교단이 형성된 것이다.

2025-10-08 21:45

3

이옥분

|

대법사

무녀(巫女)로서 1951년 10월 10일 부산 영도에 대법사(大法寺)를 창건하였다. 대법사는 1960년과 1970년 사이에는 영도에서 약 1,700여명의 신도를 확보할 만큼 규모가 큰 사찰이었다. 1970년 사망하였고, 대법사는 그녀의 딸 김순옥(金順玉)이 관리하다가, 1973년 조계종 승려 이암(李庵)에게 매각되었다. → 대법사 참조. <참고문헌>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한국종교학회, 1985)

2025-10-08 21:35

3

이영호

|

보천교

1930년대에 보천교의 『교조약사(敎祖略史)』나 『보천교연혁사(普天敎沿革史)』 (상·하·속) 등을 편술했던 보천교의 간부이다. <참고문헌> 『보천교연혁사(상·하)』(보천교중앙총정원·협정원·총령원, 1948) 『범증산교사』(홍범초, 도서출판 한누리, 1988) 『보천교와 한국의 신종교』(김재영,신아출판사, 2010)

2025-10-08 21:33

3

이연담

|

이운규의 호. <참고문헌> 『한국신흥종교총감』(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10-08 21:31

3

이신환성

|

천도교

1909년 12월 손병희는 교조인 최제우의 유허지를 순례하고 양산 통도사에서 49일 기도회를 올렸다. 그리고 천성산 적멸굴을 방문하여 이적을 체험했는데, 이때 그는 사람의 사후문제를 크게 깨닫고 성령출세설(性靈出世說)을 주장했다. 1912년 4월에는 각 지방 두목을 모아 도선암에서 49일 동안 연성기도회(煉性祈禱會)를 행했고, 6월에는 교인들의 수련장소로 사용하기 위해 우이동에 봉황각(鳳凰閣)을 준공했다. 이후 7년 동안 49일 또는 105일씩 총 480여명을 수련시켜 3.1운동을 준비했다. 1916년 9월에 천도교 의사원(議事員) 일동이 우이동 봉황각을 찾아갔을 때 손병희는 이들에게 ‘유형한 나로써 무형한 나를 찾으라 ...

2025-10-08 21:24

3

이슬성신

|

전도관

‘이슬성신’은 기독교 『성경』 호세아서 14장 5절을 근거로 전도관의 박태선이 주장하는 육신영생의 구원을 확신하게 하는 종교적 모티브이다. 6.25 전쟁 중 박태선은 피가 바뀌는 체험을 하였는데 이것을 이슬 혹은 ‘이슬성신’을 체험했다고 주장했고, 이후 전도관에서 ‘이슬성신’은 구원과 영생의 주체이며 육신영생을 확신하게 하는 종교체험으로 믿어지고 있다. 박태선 자신을 ‘이슬성신’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특히 전도관 초기 이슬성신이 사진으로도 촬영되었다고 주장했다. ‘이슬성신’은 전도관의 영향을 받은 조희성의 승리제단에서도 이와 유사한 개념으로 신봉되고 있다.

2025-10-08 21:19

3

처음으로 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