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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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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원불교 최초의 정기간행물로 평가되는 『월말통신』 이후에 계승하여 발행된 정기간행물. 1928년 음력 5월 31일에 창간한 『월말통신』을 제36호(1932년 음력 5월)부터 『월보』로 바꾸었다. 『월말통신』은 당시 지방 교당에 소태산대종사의 법설요지와 본관의 전달사항 및 교단의 소식을 주로 보도하는 데에 그쳤으나 점차 기관지로서의 성격을 추구하면서 의견교환의 역할도 겸했으며 법설 기재와 감각·감상·의견·처리·문목건 등의 제출이 많이 권장되어 초기교단의 정신적 유산으로 길이 남게 되었다. 하지만 제47호(1933년 음력 5월)까지 발행되던 『월보』는 일제 당국으로부터 출판허가가 없다는 이유로 적발되어 제48호 전부를 일경( ...

2025-10-08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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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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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원효종

본지는 대한불교원효종의 종보로서 2000년 5월 26일 창간되었다. 2005년 7월 8일 문화관광부에 정기간행물로 등록(문화관광부 다06917)되었다. <참고문헌> 『한국불교총람』(대한불교진흥원, 2008)

2025-10-08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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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입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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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일주평화국

1964년 ‘하나님의 집 공회’라는 이름으로 교단을 창립한 양도천은 이후 ‘세계일가공회’(1969), ‘세계일주국’(1979) 등을 거쳐, 1980년 8월 15일 ‘세계일주평화국’으로 개칭하고, 1981년 성황(聖皇)으로 취임하였다. 1994년 다시 ‘우주일주평화국’으로 개칭하였다. 양도천이 성황으로 취임한 해인 1981년 12월에는 신도들을 성민(聖民)이라 칭하기 시작하였으며, 이 중 18명을 정성민(正聖民)으로 임명하고 신앙서약을 시켰다. 세계일주일주국의 신도를 정성민, 준성민, 예배성민, 원입성민으로 구분하였다. 성민이 되기 위한 초심자들을 일러 원입성민이라고 한다. → 예배성민 항목 참조.

2025-10-08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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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융도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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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융도

1931년 별도로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포교활동을 하던 김선군은 홍우창(洪祐彰)의 원융도(圓融道)에 합류한다. 그리고 당시 고양군 한지면 신당리(新堂里) 139에 당우를 건립하여 ‘원융도별원(圓融道別院)’이라고 하고 이곳에 머문다. 그러나 1933년 관장(管長)인 홍우창이 별원으로 이주하게 되고, 이듬해 김선군은 포천군(抱川郡) 소흘면(蘇屹面) 송우리(松隅里) 443에 사무소를 개설하고 이주한다. 1934년 당시 김선군의 별원에 다소의 신도가 있을 뿐, 홍우창의 본원은 유명무실한 상태였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원융도의 실질적인 본부의 역할을 이곳 별원이 담당한 것으로 보인다. → 원융도 참조. <참고문헌> 『朝鮮의 類似宗 ...

2025-10-08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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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교수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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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1977년(원기62) 12월 26·27일 26일 중앙훈련원에서 7개 대학 43명의 교수들이 창립총회를 열고 발족되었다.(초대회장서리: 전팔근) 일원의 종지 아래 회원 상호간의 유대를 공고히 하여 제반 문화 활동을 통해 일원상 진리를 널리 선양함을 목적으로 창립했으며 한국 지성인들의 교화와 각 대학의 원불교동아리 지도 등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2025-10-08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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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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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1975년에 원불교정화사에서 편찬해 출판했으며, 내제(內題)는 ‘원불교 반백년 교단사’이다. 편차는 개벽의 여명, 회상의 창립, 성업의 결실의 전3편으로 박중빈의 탄생과 구도 및 대각(大覺)에서 교단 창립과정, 그리고 1971년 개교반백년 기념대회의 교단상황까지를 정리했다. 아울러 교단사의 정리에서 구체적으로 밝히는 인명록인 교사별록이 첨부되어 있다.

2025-10-08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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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영산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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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원불교의 발상지이자 근원성지로서 전남 영광군 백수읍 성지로 일대를 말한다. 박중빈이 탄생하여 성장하고 구도과정 끝에 일원상의 진리를 깨친 후, 제자들과 함께 저축조합, 방언공사, 법인성사 등 원불교의 초석을 다진 곳이다. 박중빈의 탄생가·옥녀봉·삼밭재 마당바위·구호동 집터·귀영바위 집터·선진포 입정터·노루목 대각터의 만고일월비·정관평 방언답·방언공사 제명바위·구간도실터·구인기도봉·영산원·대각전·영모전·영산선학대학교·범현동 이씨재각 등 많은 사적지가 있다.

2025-10-08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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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교

누군가에 못 당할 일을 당하여 분통이 터지고 한을 품어 맺힌 것을 말한다. 원(怨)은 이것이 맺혔을 경우 적극적으로 대항하여 앙갚음하려는 성향이라면, 한(恨)은 스스로 체념하고 자기 내면에서 삭혀 내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원(寃)은 이 양자를 겸한 것으로 보인다. 원은 자기의 욕구나 의지의 좌절에 따른 삶의 파국과 그에 따른 내면의 상처이다. 우리 민족은 특히 원이 깊게 자리 잡고 있다. 계속되는 내우외한으로 인한 불안과 위축의 역사, 남녀·적서·반상 등 사회적 불평등과 차별로 인해 많은 원이 쌓인 민족이다. 그래서 민간신앙, 속담·설화·민요·판소리 등에는 이 원이 주제가 된 내용이 많고, 문학작품 역시 원한이 주제 ...

2025-10-08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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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무라 간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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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기독교

그는 삿뽀로 농업대학시절 기독교로 개종하여, 1884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애머스트(Amherst) 대학에서 수학하였다. 이때 서구 기독교에 대한 회의와 반성을 크게 하게 되었다. 공부를 마친 그는 성직자가 되지 않고 다시 일본으로 귀국한다. 1888년 귀국한 그는 미국에서 보고 배웠던 신앙의 훈련을 심어주기 위해 니가타[新潟縣]에 있는 기타고시시학관에서 후진을 양성하다가 곧 사임하고 도쿄에 있는 제일고등학교 교원으로 부임하였다. 1891년 천황의 절대 권력을 상징하는 ‘교육칙어’ 봉독식때 정성들여 예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른바 ‘불경사건’으로 말미암아 교직을 사임하게 된다. 이후 문필가로서의 삶을 평생 살게 되었다. 그는 ...

2025-10-08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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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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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일지개태도광사

삼천일지개태도광사를 창립한 김광영은 개태사에 용화회라는 조직을 구성하고 ‘삼천일지개태도광사’라는 간판을 붙였다. 이후 1946년에 용화불을 모시는 ‘삼천지상정천궁’을 건립하였고, 1947년에는 단군을 모시는 ‘창운각’을 건립한다. 1949년에는 본전 남쪽 정면에 ‘우주당’을 짓고 그 가운데에 관운장을 봉안하는 ‘충의전’을 건립하였다. <참고문헌> 『한국신흥종교총감』(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10-08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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