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여호와이래 3대 서약
동방교(東方敎)
여호와이래는 동방교 창교자 노광공을 의미한다. 그리고 3대 서약은 성민들이 여호와 이래에게 충성 서약하는 것을 말한다. 주요 내용은 “① 여호와의 피는 내 피요 내 피는 여호와께 바치겠노라. 어떠한 난관 어떠한 쓰라림이 있을지라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돌진하기를 결심하노라. ② 나의 생명은 하늘에 달려 있으니 여호와의 지시대로 달게 받겠노라. ③ 나는 땅의 미천한 인생이나 땅에 미련이 없는 것이니 어떠한 쓰라림 불만이라도 극복하여 하늘나라만 향하여 나가겠노라. 아멘 할렐루야”이다.
2025-10-07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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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종보
한국불교여래종
한국불교여래종 총무원에서 발간하는 월간신문
2025-10-07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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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명학
양명학은 송대 성리학(性理學)의 사상과 대립하여 명나라 때 왕양명(王陽明)이 주창한 학문이다. 육상산(陸象山)의 철학과 함께 심학(心學)이라고도 불린다. 왕양명은 성리학(性理學)적 관점에서 말하는 성즉리(性卽理)를 비판하고 심즉리(心卽理)를 주장하였다. 『대학』의 격물치지설(格物致知說)에 대해서도 선지후행적(先知後行的)인 주지주의를 배격하고,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주장하였다. 지식과 실천에 관해서 지식이 선행하고 실천이 뒤따르는 것이 아니라 지식과 실천은 모두 마음을 주체로 하기 때문에 지는 심지(心知)가 되고 행도 심행(心行)이 된다고 보았다. 한국에서는 정주학파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의 계곡(谿谷) 장유(張維) ...
2025-10-07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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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신궁
불아신궁(弗亞神宮)의 이칭.
2025-10-07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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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오계율
천상환인미륵대도
천상환인미륵대도에서는 신도들이 일상 생활 속에서 지켜야 할 계명으로 8계명과 15계율을 제시하고 있다. 그 가운데 15계율은, ①살생을 하지 말라, ②도둑질을 하지 말라, ③간음을 하지 말라, ④허언과 음언을 삼가라, ⑤모략중상을 삼가라, ⑥남의 재물을 탐하지 말라, ⑦어육을 탐하지 말라, ⑧나태함과 아만심을 내지 말라, ⑨치심과 시기심을 내지 말라, ⑩탐심과 진심을 내지 말라, ⑪과도한 음주흡연을 삼가라, ⑫실없는 투쟁을 삼가라, ⑬고성방가를 삼가라, ⑭인신공격을 삼가라, ⑮망령된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이다. <참고문헌> 『한국민족종교총람』(한국민족종교협의회, 1992)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
2025-10-07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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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상성도
영세종주도(永世宗主道)의 창립자인 정대오(丁大午 1930-?)가 그의 일생 해야할 일을 표현한 것. 9상은 준비과정이고 10상 째는 중생제도라고 했음.
2025-10-07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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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인불교건국참회원
대한불교진각종의 초기 명칭으로, 1951년 7월 기존의 참회원에서 심인불교건국참회원으로 변경되었고, 도량명 역시 심인당으로 통칭된다. 현재와 같은 대한불교진각종이라는 교단명은 1953년 12월 개정된 것이다. → 대한불교진각종 참조.
2025-10-07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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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인불교
1947년 참회원(懺悔園)이라는 명칭으로 시작된 대한불교진각종은 1948년 밀교금강승심인불교재가보살정도회(密敎金剛乘心印佛敎在家菩薩正道會)로 교명을 정하고, 다시 1949년 12월 4일 심인불교(心印佛敎)라는 명칭으로 경북도청에 교명을 등록하였다. → 대한불교진각종 참조.
2025-10-07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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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성론
한국 성리학의 특징은 심성론(心性論)이라 할 수 있다. 성은 천리(天理), 곧 태극(太極)이 인간이라는 개별적 존재에 내재하는 것이고, 또한 순수한 지선(至善)이나 사람의 본성이 이와 기로써 이루어져 있다. 퇴계 이황은 인간의 심성(心性) 문제를 논의하는 중에 이기설(理氣說)을 전개한다. 그는 인간 존재에서 중추가 되는 것을 ‘한 몸의 주재(主宰)’로서 마음이라고 파악하고 있으며 이러한 마음이 자신 및 다른 사물도 인식할 수 있는 주재의 기능을 한다고 말한다. 그에 있어서 마음은 성품과 감정의 통합체이다. 수운 최제우는 인간의 마음을 본래 비어 있는 것(心兮本虛)으로 파악하고, 이 마음을 닦음으로써 덕을 알게 된다고 했 ...
2025-10-07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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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철
태을교
태을교(太乙敎)를 창립한 신현철(申鉉喆)은 보천교(普天敎) 간부로 있다가 교금 유출사건으로 차경석(車京石)과 마찰이 생겨 보천교를 탈퇴했다. 그리고 1921년 서울에서 태을교를 세워 차경석과 대결하였으나 곧 소멸되었다. <참고문헌> 『한국신흥종교총감』(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10-07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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