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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불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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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교일반/기타

1882년 조선과 미국 사이에 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자 프랑스도 조약의 협상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교섭에 나섰다. 여기에는 조선에서 활동하던 프랑스 선교사들의 안전을 보장하고, 천주교 선교의 자유를 확보하려는 목적이 강하게 작용하였다. 하지만 조선은 협상에 나서면서 선교사 문제를 거론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조선에서는 프랑스의 최대 관심사가 종교 문제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초기의 협상은 난항을 거듭하다가 결렬되고 말았다. 조선과 프랑스가 다시 협상을 시작하려는 조짐은 1885년에 가서 조선 정부의 외교 고문이었던 묄렌도르프(Möllendorff)의 중재로 가시화되었다. 결국 프랑스 정부를 대신하 ...

2025-10-11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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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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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종교의 진리나 구원에 대해서 기독교(신학)가 취하는 입장은 크게 ①‘배타주의’(exclusivism), ②‘포괄주의’(inclusivism), ③‘다원주의’(pluralism)로 나뉜다. 이 중 포괄주의는 교회 밖에도 구원이 주어지며, 도덕적인 삶을 사는 자라면 타종교인이나 무신론자도 하느님의 은총과 구원에 참여할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모두 ‘익명의 그리스도인’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에서 선포된 타종교에 대한 가톨릭의 공식적인 입장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포괄주의는 자신의 종교를 중심으로 타종교를 포용하려는 입장을 취하면서 타자를 자신의 논리로 흡수하려 ...

2025-10-11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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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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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일찍부터 한학을 익혔으나 기울어져가는 가세, 성리학의 적서와 남녀 차별, 서구 제국주의 국가의 서세동점(西勢東漸) 등이 그의 유년기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13세의 나이로 울산 출신의 박씨(朴氏)와 혼인하였고, 16세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어릴 적부터 성리학의 봉건적 사회에 대한 불만과 서세동점의 위기에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 잡고 창생을 구할 수 있는 새로운 진리를 구하기 위해 구도에 나섰다. 우선 주유천하를 통해 장사와 의술(醫術)·복술(卜術) 등에 관심을 보였으며, 울산 유곡동에 정착하여 명상을 하던 중 1855년 한 이인으로부터 천서를 받고, 천성산 적멸굴에서 49일 기도를 행하였다. 그럼에 ...

2025-10-11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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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복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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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회

천복궁은 통일교회에서 용산구민회관으로 사용되어 온 건물을 매입하여 9개월간 리모델링 공사 끝에 봉헌한 한국 통일교회 본부교구이다. 지상 4층, 지하 1층의 연면적 8,300여㎡ 규모로 2천여 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3~4층에 위치한 대성전에서는 1천2백여 명이 함께 예배드릴 수 있다. 문선명은 봉헌식에서 ‘천복궁 천심통일교회(天福宮 天心統一敎會)’라는 휘호를 정했다. 천복궁을 세계종교가 함께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는 전당으로 운영하고자 하였다. 이런 특별한 설립취지에 따라 천복궁은 초교파·초종교적 요소들이 배치되어 있다. 천복궁의 1층 정성실에는 예수 그리스도, 석가모니, 공자, 무함마드 등 4대 종단 성인의 초상이 ...

2025-10-10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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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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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안호상은 초등학교를 마친 후 한학을 공부하였고, 1919년 서울로 올라가 중동중학(中東中學)을 다니면서 대종교에 입교(1920)하였고 그 해 일본에 유학하여 도쿄 세이소쿠 영어학교에 입학하였다. 1922년 중국으로 건너가 상하이 중덕학교(中德學校)에 유학하였으며, 이어서 독일에 유학하여 1929년에 독일 예나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영국·일본 등지에서 연구원 등 비학위 연수를 마치고 귀국하여 1933년 보성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철학연구회를 창립하고 1대 회장을 맡았다. 보성전문학교 재직 중 이광수의 소개로 모윤숙과 결혼하였으나 후에 이혼하였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에 연루된 바 있으나, 병 ...

2025-10-07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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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혈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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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혈의식(歃血儀式)은 원래 고대 중국에서 행해지던 의례로 왕이나 제후가 동맹을 하거나 언약을 맺을 때 동물을 잡아 신(神)에게 희생(犧牲)으로 바치고 그 희생의 피를 마시거나 입술에 바름으로써 약속을 지킬 것을 신 앞에서 맹세하던 의식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 나라들 사이에 삽혈의식을 통해 동맹의 맹세를 하거나 왕이 신하들과 더불어 삽혈의식을 거행한 사례가 여러 차례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도 몇 번 거행되었는데 태종 원년에 왕이 제복(祭服)을 입고 마암(馬巖)의 단(壇) 아래에서 좌명공신(佐命功臣)들과 삽혈동맹을 행하였다는 기록과 인조 3년 이괄(李适)의 난을 평정한 뒤에 왕과 세자가 17공신 및 ...

2025-07-12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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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남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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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부경』·『칠성경』·『태을경』 등이 있다. <참고문헌> 『한국신흥종교총감』(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07-09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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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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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권태훈은 1900년 서울 재동에서 출생했다. 부친 중면(重冕)은 대한제국의 내부판적국장(內部版籍局長) 평산·진도·능주군수 등을 지냈으며 모친은 숙부인(淑夫人) 경주 김씨다. 본관은 안동 초명은 인학(寅鶴) 자는 윤명(允明) 또는 성기(聖祈) 호는 여해(如海)·봉우(鳳宇)·연연(然然)·물물(勿勿)이다. 권태훈의 부친은 을사조약에 서명한 중현(重顯)과 형제의 의를 끊고 1907년 정미칠조약을 계기로 관직에서 물러났으며 이러한 집안 분위기와 시대상황 속에서 그는 6세의 어린 나이에 어머니로부터 조식법(調息法)을 배우는 등 선도(仙道)를 접하였다. 1910년 서울 종로에 있던 단군교포교당에서 나철을 만나 가르침을 받았고 11세 ...

2025-06-03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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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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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의암 손병희는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하고 천도교 교헌과 교기를 제정했는데 궁을기는 천도교를 상징하는 깃발이다. 궁을기가 처음 게양된 것은 1906년 2월 서울 천도교당에서이다. 손병희는 동경에 있을 때 권동진 오세창 양한묵 3인에게 교기 도안을 지시하였다. 그들은 교기의 도안을 수운 최제우가 종교체험을 할 때 한울님으로부터 받은 궁을 영부(弓乙 靈符)에 바탕하여 제작하였다. 수운 최제우(崔濟愚)는 “나에게 영부(靈符)가 있으니 그 이름은 선약이고 그 모양은 태극이요 궁궁(弓弓)이라.”했다. 궁궁은 마음을 상징하는 心字의 破字를 형상화한 것이다. 궁을기의 흰 바탕은 한울님을 상징하고 붉은 바탕은 인간을 상징한함다. 그리고 ...

2025-06-03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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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원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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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연원제의 기원은 천도교 초기의 단위조직인 접제(接制)와 포제(包制)이다. 접제는 1862년 12월 29일 경북 포항 흥해 매곡동에서 처음으로 접주를 임명하면서 조직화되었다. 포제는 접제의 발전으로 1893년 3월 10일 충북 보은 장내리에서 전개한 척왜양창의운동(斥倭洋倡義運動)에서 처음으로 실시되었다. 접포제(接包制)는 1894년부터 1895년까지 이어지는 동학농민혁명의 기본 조직었다. 포제는 접제의 상위 조직으로, 여러 개의 접을 하나로 묶어 포라고 하였다. 접이나 포는 전교인과 수교인의 관계로 형성되는 천도교(동학) 초기 조직이며 이를 연비(聯臂) 또는 연원(淵源)이라고 한다. 이를 토대로 하여 마련된 제도가 연원회 ...

2025-10-07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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