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새한단전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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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경조회

개천경조회에서 사용하는 경전의 하나.

2025-07-13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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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진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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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교도

천교도에서는 음력 10월 3일 개천절 법회와 음력 3월 3일 교주생일 기념을 ‘삼진법회’라고 하며 의식을 행한다. <참고문헌> 『한국신흥종교총감』(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07-12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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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진흥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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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욱은 1910년 나라가 일제에 합병되자 보국안민(輔國安民)을 위해 문중의 청년들을 모아 자기 마을에서 남녀개로(男女皆勞) 공동취사(共同炊事) 문맹퇴치(文盲退治) 등의 구호를 내걸고 산업진흥운동을 전개하였다. 큰 성과는 없었으나 이 운동의 결과 이 마을에 직조공장이 생겨 10여 년간 운영되기도 했다.

2025-07-09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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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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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운교

1929년에 건립된 수운교 본부사무실로 전국의 교인 및 지부의 업무를 총괄 집행하는 곳이다. 일제 말기에는 공립학교 교실로 광복에는 태극지하종교연합회 사무실로 6.25 당시에는 북한군이 주둔한 곳으로써 역사성을 간직한 동향(東向)건물이다. 본부 사무실은 ‘ㄱ’자형 평면에 겹처마 형식이며 좌우 퇴칸을 제외하면 정면 5칸이다. 중앙 1칸의 한옥지붕을 가진 현관과 상·중·하인방이 뚜렷이 구분되는 벽면이 특징적이다. 사무실 안에는 총무원장실과 역대 총무원장의 사진이 걸려있고 서고엔 초창기와 일제시기에 사용했던 교적(敎籍)원부가 보관되어 있다. 등록문화재 제334호로 지정되었다.(2007.7.3) <참고문헌> 『수운교 진리』(수 ...

2025-07-09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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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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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박중빈은 대각의 심경과 그 지견으로 내다 본 세계상에 대하여 많은 글을 읊으면서 김광선에게 붓을 잡아 기록하게 하여 《법의대전》이라 이름 붙였다. 1920년(원기5)에 이르러 불에 태워 파기했으며 현재는 후인들이 외우고 있던 내용 일부가 전한다.

2025-07-09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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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왕궁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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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유마종

1992년 무해(김길수)에 의해 창종된 대한불교유마종(도솔천유마종)에서 발행한 월간신문으로 1993년 등록(공보처 제6151)되었다. → 대한불교유마종 참조. <참고문헌>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종교문제연구소, 1997) 『한국불교총람』(대한불교진흥원, 2008)

2025-07-09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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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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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사

김종용(金宗用)이 창립한 증산계 신종교인 용화사(龍華社)가 올바른 역을 규명하기 위해 조직한 위원회.

2025-07-09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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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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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상 최초의 이름은 《산해경(山海經)》의 〈대황북경(大荒北經)〉에 언급된 불함산이다. 최남선(崔南善)은 ‘불함’을 ‘’의 역음으로 보고 그 뜻을 천주(天主)인 신명(神明)으로 해석했다. 중국에서는 몽고족의 ‘불이간(不爾干)’ 곧 신무(神巫)의 뜻으로 보아 백두산에 신이 있다는 의식에서 연유했다고 본다. 《삼국유사》에서는 “하느님께서는 아드님의 뜻을 아시고 하계를 두루 살피시더니 태백(太伯) 곧 백두산이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 만한 곳으로 여기시어 곧 아드님에게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고 내려가서 그곳을 다스리게 하였다.”라고 하여 백두산을 한민족의 발상지로 간주한다. 또 고려 태조 왕건(王建)의 아버지 융(隆) ...

2025-07-09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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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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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사도행전 2장에 의하면 각 지역의 사람들이 갈릴래아 사람들의 말을 알아듣게 되자 신기하게 생각하였다고 한다. 신이 자신의 의지를 이방인들에게도 전파하기 위하여 초기의 기독교인들에게 성령이 부어준 신령한 은사라고 이해하였다. 즉 방언이란 영적 힘에 이끌리어 라틴어와 헬라어 이외의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능력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당시에 라틴어와 헬라어가 표준어이었고 문화인들의 언어였으며 이를 제외한 다른 언어들은 야만인들의 언어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의 기독교는 방언의 은사를 영이 기도하는 은사로 이해하며 신과의 영적 교통의 은사로 간주한다. 신과의 영적인 교통을 위해서는 인간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방언기도가 ...

2025-07-08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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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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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박준승은 1890년 4월 23일에 입도하여 1897년에 접주(接主)가 되고 이어 도집 교령을 지냈다. 1907년 12월 임실군 창립교구장을 지냈고 1908년 수접주 1909년 임실군 의사원 1910년 교훈 도훈 및 호남교구 순회감독 1912년에 전라도 순독원 1914년 장성군대교구장 1918년 총부도사실 도사로 활동했다. 1919년 3.1운동 당시 33인 대표의 1인으로 참가하여 유태홍·박영창·김의규에게 독립선언서 5000매를 배부하고 장성·남원·임실 등지에서 궐기하게 하였다. 2년간 옥고를 당한 후 출옥하여 포덕사 및 종법사를 역임하다 정읍군 산외면 정량리에서 병사하였다. 묘소는 정읍시 북면 마정리에 안장했다가 196 ...

2025-07-08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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