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이공주
원불교
어려서부터 자질이 총명하였으며 1909년에서 1913년까지 대한제국 황실의 윤(尹)황후의 시독으로 창덕궁에 입궐하여 『논어』·『심상소학독본』 등을 공부했다. 1913년부터 1916년까지 경성여자보통학교(현 경기여고) 본과를 수료했다. 1916년 박장성(朴將星)과 결혼하여 두 아들을 낳았으나, 1922년에 부군이 별세했다. 1924년 10월 소태산을 만나 입교했다. 1927년 5월에 교단최초의 수양교과서 『수양연구요론』(소태산 술)을 편집·출판했으며, 영산 방언공사에 따른 부채를 탕감했다. 1930년 4월 출가하여 서울교당 교무, 여자수위단 조직과 함께 중앙단원에 선출, 1932년 5월 서울교 당 부지를 마련하여 신축, ...
2025-10-08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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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성
선도(증산교안내성파)
선도(仙道:증산교안내성파)를 창시한 안내성(安乃成, 1867-1949)은 1867년 10월 25일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면 도음곡에서 출생했다. 일찍 불경(佛經)을 배워 열심히 염불을 하였다. 하루는 진주 촉석루에서 얼핏 잠이 들었는데 하늘에서 노래 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음성이 들리는데 ‘석가모니 부처는 지나간 부처이니 염불을 그만하고 이제부터 너는 천선생(天先生)을 찾아 모시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그 뒤부터 전국 방방곡곡 중국까지 다니며 천선생을 찾아 다녔는데 어떤 사람이 ‘당신이 찾는 천선생은 조선에 계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귀국하게 되었다. 그 뒤 1907년 증산 강일순을 만나 그의 종도가 되었다. 1909년 증 ...
2025-10-07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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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계 신종교
일본의 종교가 한반도에 최초로 상륙했다는 기록은 신숙주(申叔舟)의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1471)에 나타난다. 조선시대에 삼포왜관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의 절에 대한 기록이 그것이다. 근대에 이르러서는 1876년 강화도 조약 다음 해에 부산에 상륙한 정토진종 대곡파의 본원사별원이 본격적인 포교에 나섰다. 이를 계기로 1911년까지 한반도에 들어온 일본불교는 6개 종단 11개 종파에 달한다. 일본의 신도 또한 1893년에 천리교의 포교를 시작으로 다른 교파신도의 진출이 이루어졌으며, 1910년에는 4개의 교파신도가 가세하였다. 그리고 일본의 기독교계인 일본조합교회의 진출이 1899년에 이루어졌으며, 1910년경에는 그 ...
2025-10-08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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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향숙
기독교대한감리회
애향숙은 일제 강점기인 1940년 경북 김천의 용문산 자락의 부락민들을 대상으로 나운몽이 시작한 계몽운동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명칭에서 드러나듯이 이 단체는 ‘하느님 사랑’, ‘땅 사랑’, ‘민족 사랑’이라는 세 가지 구호를 내세웠다. 그러나 운동 시작 6개월 만에 민족운동 단체로 낙인찍혀 일제에 의해 해산되었다. 해방 후인 1947년 5월에는 나운몽은 애향숙을 재건하여 농촌운동을 다시 시작하는 한편 기도원 운동도 전개함으로써 농촌운동과 성령운동을 동시에 전개해 나갔다. 그 후 고등성경학교(1955년), 기드온신학교(1956년), 용문산수도원(1960년)을 잇달아 세웠으며, 1964년 문교부로부터 재단법인 애향숙의 인가를 ...
2025-10-07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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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교
성화교(聖化敎)는 1931년 7월31일 지령제 1043호로 허가되어 동년 11월22일 윤익선(尹益善)이 서울 재동(齋洞)에서 개교하였다. 개교 당시 설립목적은 무산아동(無産兒童)의 교양(敎養)을 목표로 하는 학원을 설립하고, 빈민자녀를 수용·교육하기 위한 자선기관으로 의료부(醫療部)를 두고 의료사업 전개에 목적이 있었다(《매일신보》, 1931.11.22). 반면 종교단체로서도 활동하였는데, 성화교에서는 성모천주와 법우대사(法佑大師)를 무조(巫祖)로 하고 조선 각지의 무녀를 통제하고 불교적으로 이를 선도하고자 하였다. 이들은 저명한 인사를 고문으로 모시거나 학술 강습소 등을 개최하여 교세확장을 시도하였으나 교세가 약하여 ...
2025-09-21 22:02
132
새일수도원(새일수도원말세복음부흥단)
새일수도원은 이유성에 의해 1964년 9월 24일 창설되었다. 1967년 7월 수도원의 창설자인 이유성이 제자들에 의해 한 때 축출되었지만 1967년 12월 다시 수도원에 들어오게 되고 이듬해인 1968년 1월 여호와새일교단을 세우면서 이 수도원은 새일교단의 출발점이면서 동시에 교단에 소속된 기관이 되었다. 그러나 1979년 4월 11일 국립공원 정화사업에 따라 새일수도원은 계룡산에서 철거되었다. 현재 새일수도원은 승리새일교회와 같은 자리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으며 새일중앙교회에 속해 있다. 새일수도원에 소속된 ‘말세복음부흥단’이 있었는데 이 부흥단의 특징적인 것은 공산주의를 완전히 말살시킬 것이라는 점과 애국애족의 정신 ...
2025-07-13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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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부인신정기
증산교본부
『고부인신정기(高夫人神政記)』는 선도교(仙道敎)를 세운 고판례(高判禮:고부인)의 일대기로 여러 증산교단의 초기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책이다. 1963년에 증산교본부의 전신인 증산대도회본부(甑山大道會本部)에서 발간 프린트판 133면이다. 내용은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봉사시대: 1909년 증산 강일순사망 후 고부인이 해체된 교단을 다시 정비하여 세우게 되는 과정에 대한 내용. 제1교단시대: 1911년부터 1918년까지 차경석(車京石)의 도움을 받아 교단을 정비하던 선도교 시절. 제2교단시대: 1918년부터 1931년까지 차경석이 교권을 장악하여 보천교(普天敎)를 세우자 고부인은 거기서 물러나 새롭게 태을교(太乙敎)를 ...
2025-05-24 18:50
132
계세관념
한국 고대인은 사후에도 현재의 삶을 계속해서 누린다는 계세사상을 믿고 있었다. 불교 유입 이전 순장(殉葬) 풍습이나 생전의 물품들을 그대로 묻는 무덤의 부장물(副葬物) 등은 그러한 계세관념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러나 불교의 유입 이후 이러한 전통적인 사생관(死生觀)은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된다. 즉 불교의 윤회전생설(輪回轉生說)과 천당지옥 관념이 광범하게 유포되면서 계세관념과 그에 기초한 매장풍습은 크게 약화되고 화장(火葬) 풍습이 새롭게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화장은 왕족이나 귀족 층에 국한된 것으로 일반에까지 보급되지는 않았다. 일반에서는 불교와는 다른 저승관념이 지속되었고 계세관념도 이에 수용되어 부분적으로 전승되고 ...
2025-05-24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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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팔수
고대 중국에서는 해와 달, 오성(五星, 목성, 금성, 수성, 토성, 화성)의 운행을 관측할 때 28개의 별자리를 나누고, 그것을 이용하여 해와 달, 오성이 이르는 위치를 설명했는데, 여기에는 각기 몇 개의 항성(恒星)이 포함되어 있다. ‘이십팔사(二十八舍)’ 또는 ‘이십팔성(二十八星)’이라고도 부른다. 이십팔수는 고대 중국의 천문학과 종교, 문학, 점성술, 풍수지리 등에 광범하게 응용되었으며, 특히 각 영역마다 특수한 의미를 부여하여 그 내용이 대단히 복잡하다. 이십팔수라는 개념은 이미 전국시대부터 형성되어 있었으며, 이후 시대에 따라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이것을 방위를 기준으로 나누면 다음과 같다. 동방의 각(角), ...
2025-10-08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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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동산사건
아가동산
1996년 12월 1일 신종교 단체인 ‘아가동산’의 피해자라고 주장한 30여 명이 신도 2명을 무참히 살해 암매장했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검찰에 제출하면서 세상에 알려진 사건이다. 아가동산 교주 김기순씨는 조세포털·횡령·폭행 등 여섯 가지 죄목에 대해 유죄가 인정되어 징역 4년 및 벌금 56억원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김씨의 살인이나 사기 등 주요 혐의는 입증할만한 충분한 증거를 확보할 수 없어 증거재판주의 원칙아래 무죄를 선고했다. 교주 김기순씨는 1978년 전북 이리시 주현동 J교회에서 이 교회 이모 목사와 ‘삭발교’ 라는 종교를 만들어 운영해오다 1982년 경기도 이천시 대월면 대대리에 임야 4천여평을 구입해 ‘아가농 ...
2025-10-07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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