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오대양사건
기독교/기타
사건 발생 당시 수사 당국은 오대양 대표 박순자가 1984년 공예품 제조업체인 오대양을 설립하고 종말론을 내세우며 교주로 행세다가 사업 확장을 위해 빌린 사채 170억 원을 갚지 못하자 자신을 따르는 신도들과 함께 집단 자살한 것이라고 수사를 종결했다. 또한 수사 당국은 170억 원에 달하는 거액이 오대양과 밀접한 관련이 있던 ‘기독교복음침례회’(세칭 구원파)로 흘러들어갔던 것으로 보고, 기독교복음침례회 목사 격으로 있던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을 배후로 지목해 조사했지만 연관성을 밝혀내지 못해 무죄를 선고했다. 오대양은 박신자가 만든 시한부종말론을 믿는 종교단체로 알려졌다. 그녀는 신도들과 신도들의 자녀들을 모아 집단 ...
2025-10-07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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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병역거부
여호와의 증인,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양심적 병역거부 안에서도 거부의 범위나 대상에 따라 다양한 하위유형들이 존재하지만, 그 공통의 뿌리는 ‘양심적 전쟁거부’에 있다. 다시 말해 조직화된 인명살상 행위인 전쟁을 반대하는 입장이 전쟁을 수행하는 전문집단인 군대나 병역, 집총훈련을 거부하는 태도로 구체화된 것이다. 한반도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둘러싼 국가-종교 갈등은 한국전쟁 발발 직전 및 도중에 남한과 북한에서 징병제가 본격적으로 실시되면서 시작되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처음부터 욕설과 구타 등 온갖 형태의 폭력에 노출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금과 징역형에 처해졌다. 1961년 군사정권의 등장을 계기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국가의 처벌은 한층 강 ...
2025-10-07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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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프
옴진리교가 해체된 후, 나머지 세력이 주축이 되어 창설한 종교 단체.
2025-10-07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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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제국
기독교계
시온산제국 운동은 경북 청송의 수락마을에서 출생한 박동기(朴東基:1907~1991년)에 의해 발생한 기독교 천년왕국 운동이다. 미국 장로교 선교사들로부터 배운 성경지식과 1928년과 1940년 두 차례에 걸친 신비체험은 박동기의 신앙관 형성과 시온산제국 교리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특히 1940년의 신비체험은 악의 멸망 및 하나님의 역사 개입과 축복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그는 이를 통해 일본의 패망과 새로운 세상의 도래를 확신하게 되었다. 1944년 4월 25일, ‘일본 제국주의와 더불어 싸우라’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선포된 시온산제국은 박동기의 본격적인 사명자 사역의 시작이었다. 박동기가 이해한 성경 내용과 하 ...
2025-10-03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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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심정기
동학
최제우는 『동경대전』, 「수덕문」에서 “인의예지(仁義禮智)는 옛 성인의 가르친 바요, 수심정기(修心正氣)는 내가 다시 정한 것이라.” 하여 수심정기는 인의예지와는 다른 가르침이라 말하였다. 여기서 최제우는 수심정기의 수자(守字)를 ‘닦을 수(修)’로 써서 지킬 수(守)와 닦을 수(修), 양 글자를 혼용하고 있는데, 한울님 마음을 보존하고 지키는 수심(守心)이나 한울님 마음을 지키도록 마음을 닦는 수심(修心)이나 양자 모두 “한울님을 길이 모시겠다.”는 수련으로 그 지향하는 바는 같다고 볼 수 있다. 수심정기는 천지만물 본래 일심(一心)인 한울 마음을 지켜 천지기운과 하나 됨으로 기운을 바르게 함이다. 마음이 한울님과 어 ...
2025-10-01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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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운동
천도교, 불교, 기독교
천도교에서 추진한 3·1운동은 민족운동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크다. 3·1운동은 천도교, 기독교, 불교 등의 연합으로 전개되었지만, 특히 천도교는 3·1운동의 준비 과정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천도교가 3·1운동을 주도하게 된 것은 동학의 민족적, 혁명적 전통을 이어 받았기 때문이다. 천도교는 3·1운동의 계획과 준비를 주도하였고, 기독교 측에 자금을 조달해주는 등 운동자금을 부담하였다. 또한 선언문의 작성, 인쇄, 제작, 배포 등을 주도하였다. 민족대표 33인 중 15명이 천도교도였다는 점과 손병희(孫秉熙)가 영도자로 추대된 사실은 천도교가 주역을 담당한 것을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다. 천도교 중앙총부의 도사였던 ...
2025-07-12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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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정화운동
한국 근현대불교에서 가장 큰 쟁점과 혼란 중의 하나는 승려의 대처를 둘러싼 갈등과 대립이다. 일본은 한국을 점령하고 불교를 사찰령(寺刹令)이라는 악법으로 관리하였다. 행정편의주의 발상에서 사찰을 본산체제로 재편하고, 일본불교화하면서 반불교적인 대처를 권장하였다. 한국불교는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수행하는 원칙을 철저히 지켜왔다. 그러므로 일본불교의 결혼을 권장하는 제도는 한국불교의 근간을 뒤흔드는 심각한 위기였다. 일제 강점 말기 7천여 승려 중에서 대처하지 않은 수행승은 불과 3~6백여 명 정도였다. 수행자인 승려의 청정생활은 기본이자 상식이었지만 사찰 내에서 재가자와 같이 가족을 이루어 생활하는 풍조가 만연하였다 ...
2025-07-09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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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사진경
벽사진경(辟邪進慶)은 요사스러움을 물리치고 경사가 오게 한다는 성어(成語)이다. 이는 종교의례와 밀접히 관련된 말로서 특히 방상씨(方相氏)의 탈을 쓰고 역귀(疫鬼)를 몰아내는 의식인 나례(儺禮)에서 자주 쓰였던 표현이다. 고대에서부터 방상씨나 초라니의 가면을 쓰고 벽사진경을 하는 행사가 전승되어 왔으며 조선시대에는 섣달과 정초에 재앙을 쫓는 의식으로 정착하여 궁중과 민간 모두에서 행해졌다. 특히 궁중에서는 관상감에서 주관하여 섣달 그믐날 밤에 방상씨의 가면을 쓰고 벽사진경을 하는 나례의식을 행하였으며 민간에서는 섣달이나 정초에 농악(農樂)놀이나 가면희(假面戲)의 형식으로 전국적으로 행해졌다. 벽사진경 의식 가운데 오늘날 ...
2025-07-09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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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선원
동산선원은 1955년(원기40) 1월에 교무연합회의 결의로 중앙 직할 3대선원의 설립이 공고됨에 따라 1953년(원기38) 6월에 설립된 이리고등선원을 동산선원으로 발전시켜 설립했다. 처음 고등선원 시절에는 교역자 양성과 일반 교도훈련을 겸했다. 동산선원이 자리하고 있는 전북 익산시 동산동은 일제 강점기 옛 신사터 자리에 있다. 이 곳은 소태산대종사가 ‘앞으로 이곳에서 대성(大聖)이 상주설법하고 천여래 만보살이 배출될 것’이라고 한 언급에 근거하여 교육기관이 설립되었다. 1947년(원기32) 7월 송혜환(宋慧煥)과 최수인화(崔修仁華)의 주선으로 일본 신사 터를 인수받아 1950년(원기35)에 건물을 신축하기 시작하여 1 ...
2025-07-07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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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순
천지대안도
김태순(金泰順 1927-?)은 1927년 제주도 북제주군 구좌면 금정리에서 탄생 18세에 결혼했으나 곧 이혼하고 독신으로 살았다. 27세 되던 해 심장병으로 고생하던 중 부경순을 만나 찬물치료법으로 효험을 보고 본교에 입도 여러 제자 중 제일먼저 백일단식기도를 성공하고 부경순의 신임제자로 활동하다가 그의 유언에 따라 후계자가 되었다. 그녀는 입교 후 수도에 성심성의를 다하여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침저녁 냉수목욕 후 기도생활을 하였으며 때로 단식기도와 생식기도를 계속하였다. 1954년 처음으로 100일 단식기도를 성공한 이래 그녀의 단식기도는 매년 계속되었고 1966년 4월에는 법질서를 세우기 위한 555일 생식 기도를 ...
2025-06-30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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